63화
“하압!”
지붕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두 놈!
아주 적절한 구도다.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며 머리는 아래로, 다리는 하늘로.
좌우로 내뻗은 날짐승 떨구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들의 머리를 때렸다.
퍼- 퍼억!
힘 조절을 할 겨를이 없다.
잘 익은 수박이 터지듯 머리 두 개가 터져 나가고, 선혈과 뇌수가 허공에 비산한다.
피를 흠뻑 뒤집어 쓴 마른 비가 민가 지붕 위에 안착했다.
‘동쪽!’
넓게 퍼졌던 점창의 제자들 중 앞서 나갔던 자들이 뒤돌아 지붕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다섯 명.
빠르게 뚫지 못하면 뒤에서 달려오는 놈들에게 둘러싸이고 만다.
마른 비는 ‘우둔한 땅’의 조언을 되새겼다.
‘싸움, 기세다. 맞붙기 직전, 위압하여 적들 움츠러들게 만든다. 자연기, 언령에 담아 내질러라. 적들, 움츠러든다. 그때 모조리 부수는 거다.’
상단전에서 흘러나온 뇌력과 중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염원이 만나 기적을 일구니, 그것이 곧 야수 제어다.
자연기가 언령을 감싸 안아 길을 안내하니, 마른 비가 내지른 포효가 앞을 가로막은 다섯 명의 면전에서 터져 나왔다.
『오오오오!』
“뭐, 뭐냐?!”
“큭!”
“으윽! 이, 이게 대체?”
귀를 넘어 뇌리에 직접 꽂혀 드는 언령이다.
겪어본 적 없는 자들이 당황할 것은 예정된 이치.
전투 함성에 노출된 다섯 명의 검사가 귀를 틀어막거나 다리를 꺾으며 멈춰 섰다.
번갯불로 신형을 튕긴 마른 비가 적들의 코앞까지 쇄도했다.
‘지붕 위. 어깨나 등으로 들이받는 기술은 축이 되는 발을 내려찍는 것부터 시작해. 지붕이 버티지 못할 거야. 그렇다면…!’
성년식을 출발하기 전.
마른 비는 ‘매서운 눈’과의 대련을 떠올렸다.
‘음?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교육이란 교육은 죄다 불참했던 놈한테 내가 왜……. 뭐? 내 기술이 가장 멋져서? 흥. 꼬맹이가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알았다. 뭘 배우고 싶나? ……뭐? 불벼락? 어림없는 소리하지 마라. 그건 너 같은 꼬맹이가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매서운 눈은 까불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마른 비는 결국 습득해냈다.
아직은 제 위력의 2할밖에 내지 못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쓰기에는 더없이 유용한 기술이다.
마른 비의 오른 다리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우우웅―
발뒤꿈치에 자연기를 집중하는 것쯤은 어려울 게 없다.
문제는 운용.
수직으로 내리꽂힌 발이 목표한 지점에 다다른 순간, 응축시킨 자연기를 정확히 터뜨린다.
매서운 눈처럼 숙달되면 원하는 목표에 정밀한 타격을 가하는 게 가능해지지만, 마른 비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허공을 가른 오른발에 중앙에 위치한 자의 머리가 박살나고, 곧이어 자연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꽈르르릉!
“크아악!”
“커헉…!”
언령에 주춤했던 네 명의 검사들이 불벼락의 확산형 폭발에 머리를 움켜쥐며 무너져 내렸다.
“저 새끼가…! 잡아아아!”
적들이 민가의 골목과 지붕을 빼곡하게 메우고 달려든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에 새하얀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저놈. 강하다!’
비천십이표로 지붕을 타고 이동하던 호국영은 저 앞에서 일곱 명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걸 목격했다.
아직 성취가 깊지 못한 제자들이라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하긴. 그 괴물 같은 족장의 아들이니 저놈도 새끼 괴물이겠지.’
사절단으로 갔을 때 마주한, 야생 호랑이를 연상케 하는 남자.
너른 하늘과 대면했던 순간은 호국영의 일생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편안히 웃고 있음에도 눈도 제대로 마주치기 힘들 정도의 압도적인 존재감.
와족의 족장은 스승인 운검 장로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절대 강자의 위엄을 물씬 풍겨내고 있었다.
‘그래서 저놈을 무조건 잡아야 해!’
와족을 지우기 위한 장문인의 준비는 철저하다.
하지만 족장이 날뛰기 시작하면 점창은 산출 불가능한 피해를 입을 게 자명하다.
그자에게 고삐를 맬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준비해야 한다.
그 괴물에게 인질이 통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시도할 만한 가치는 있었다.
최소한 섣불리 달려들지는 못할 테니까.
‘지금쯤이면 겨울 달과의 이야기를 들었겠지.’
자신이 겨울 달을 이용한 걸 알고 있을 거다.
다시 마주치게 되면 족장은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 인간 같지 않은 자가 살기를 뿜으며 달려온다?
상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했다.
호국영에게 있어 마른 비의 등장은 족장을 제어하라고 하늘이 던져준 기회로까지 여겨졌다.
“잊지 마라! 부상을 입히는 건 상관없지만 생포해야 한다!”
사형제들에게 명을 내린 호국영이 거리를 좁히기 위해 백족천인공을 끌어올렸다.
쒜에엑―!
지붕을 타고 넘으며 대리고성 동문을 향해 달리던 마른 비가 뒤를 돌아봤다.
‘와…! 엄청 많네.’
적들은 어디선가 꾸역꾸역 기어 나와 합류하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삼백에 가까운 인원이 뒤를 쫓아온다.
대리 안에서 따라잡히면 끝이다.
어떻게든 동문을 빠져나가 인근의 숲으로 진입해야 한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품으로 들어간다면 마른 비는 어떻게든 적들을 따돌릴 자신이 있었다.
“서라!”
“너 같으면 서겠어?”
빠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또 한 명이 허물어졌다.
대부분의 점창 제자들은 도주하는 마른 비의 뒤를 쫓고 있지만, 앞서 나가서 수색을 하던 일부 인원이 간헐적으로 길을 막아섰다.
‘약해.’
지금 달려드는 놈들은 숫자는 많지만 개개인으로는 마른 비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민가에서 습격해온 암습자와는 달랐다.
당연한 일이다.
점창을 대표하며 일선에서 뛰는 응목대, 그것도 부대주급의 무력과 아직 주력 전투 부대에 편입되지도 못한 젊은 제자들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수준 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까.
강호를 주유하다가 영입된 노련한 삼대 제자들과 호국영 정도만이 마른 비에게 위협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고, 그래서 위험하다.
성문으로 달리는 마른 비의 얼굴에 초조함이 어렸다.
빠바박!
“커억!”
정면에서 달려든 세 명을 쓰러뜨리고 나니 민가의 끄트머리다.
대리고성의 성문이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성문을 지나고 전속력으로 달려서 숲으로 진입하면 한시름 놓을 수 있다.
마른 비가 다리에 자연기를 더욱 밀어 넣은 순간.
“닫아!”
내력을 실은 호국영의 외침이 대리고성의 동쪽 성벽을 울렸다.
끼이익- 하는 마찰음과 함께 성문이 점점 닫히고 있었다.
미리 앞질러온 점창의 제자들이 마른 비의 탈출을 막기 위해 문을 닫는 게 보였다.
“제길!”
성문으론 나갈 수 없다.
문은 이미 인간이 통과할 수 없는 크기까지 좁혀져 건너편의 풍경을 차단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
마른 비가 급격히 진로를 틀었다.
“준비!”
달리는 걸 멈추지 않으며, 호국영이 외쳤다.
미리 지시라도 내린 건지 삼백에 가까운 제자들이 일제히 멈춰 서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끼익- 쾅!
성문이 닫히는 순간, 마른 비는 성벽을 수직으로 밟고 있었다.
성벽보다 높은 고목들도 한달음에 치달아 오르는 마른 비다.
군데군데 불거진 석재들은 밟기 좋게 배치된 디딤돌이나 다름없었다.
성벽을 수직으로 질주하는 소년이 중턱을 지나는 순간, 그럴 줄 알았다는 억양을 담은 고함이 터졌다.
“지금이다! 투척!”
쐐액- 쾌애액! 슈슈슈슈슉―!
호국영의 명령이 떨어지자 삼백 자루의 검이 시간차를 두고 하늘을 날았다.
거리가 있고, 야만인 소년이 선보인 무력이라면 비검술(飛劍術)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제자들의 검에 목숨을 잃을 리 없다.
설령 죽는다 해도 놓치는 것보다는 낫다.
이대로 성벽에 오르는 걸 저지하지 못한다면 삼백 명이 있다 한들 잡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막상 쫓다 보니 야만인 소년의 질주는 거리를 좁히기 힘들 만큼 빨랐다.
날카롭게 벼린 삼백 개의 검이 달빛을 반사하며 하늘을 나는 광경은 그 흉험함에 어울리지 않게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콰차창! 차창! 챙강! 채채챙!
“큭!”
요란한 금속음이 한참이나 울리고, 결국 신음이 터지고야 만다.
성벽을 상하좌우로 이동하며 날아드는 검들을 피하거나 쳐냈지만, 한 자루의 검만은 걷어내지 못했다.
성벽 중턱에서 휘청거리는 마른 비.
그의 왼쪽 어깨를 새하얀 검 한 자루가 관통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이를 악문 마른 비가 헛디딘 발을 성벽으로 내뻗고, 디딤돌을 밟는 동시에 위로 솟구쳐 올랐다.
검사들이 검을 내던지다니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다.
반드시 잡고 말겠다는 적들의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이제 저들은 더 이상 공격할 방도가 없었다.
‘꼭대기! 꼭대기까지만 가면 돼! 그럼 빠져나갈 수 있어…!’
마른 비가 피를 흩뿌리며 성벽 위로 치닫는 광경은 그야말로 필사적이란 말 외에는 형용할 단어가 없었다.
터억!
결국 해냈다.
드높은 성벽의 꼭대기.
야수들의 영역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수림이 대리고성의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친 채 손짓하고 있었다.
어서 이리 오라고.
고개를 돌린 마른 비가 닭 쫓던 개의 모습으로 엉거주춤 서 있는 적들을 훑었다.
“허억! 헉! 허억…!”
멈췄던 적들이 달리고, 굳게 닫힌 문을 열 때쯤이면 자신은 숲으로 진입할 것이다.
큰 부상을 입긴 했지만 살아난 것이다.
마른 비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직 안심하긴 이르지 않나?”
하얀 피부.
깎아놓은 것처럼 반듯한 얼굴 위로 대어를 잡은 낚시꾼의 득의양양함이 어렸다.
마른 비가 날아오는 검들을 피하느라 주춤한 사이, 전력으로 따라붙은 남자.
백족천인공을 머금은 호국영의 검이 사선으로 내리꽂혔다.
“다리를 잘라서 끌고 가주마!”
마른 비가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뒤를 잡은 호국영의 검날이 공기를 사선으로 갈랐다.
패애액!
“큭!”
떨어져 내리는 검.
노리는 곳은 하반신이다.
짧게 뛰어오른 마른 비가 공중제비를 돌며 검의 궤도에서 가까스로 몸을 빼냈다.
‘이걸 피해?!’
완벽한 급습이었고, 다리가 잘려서 꿈틀대는 족장의 아들을 나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검은 빗나갔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상대는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놓칠 것 같으냐!”
추격을 위해 백운보를 밟으려는 순간, 야만인 소년의 왼발이 꿈틀댔다.
‘역공?!’
파아앙!
공기를 꿰뚫은 날짐승 떨구기가 호국영의 머리 위 공간에 작렬했다.
간신히 피한 호국영은 감히 따라붙지 못하고 주춤했다.
‘이 상황에서 역공을!’
‘피했어?!’
마른 비 또한 놀랐다.
마음이 풀어진 틈.
적에게 급습을 허용했지만 피해냈고, 회피와 동시에 반격에 나섰다.
깔끔하게 머리를 후려치려 했는데 이걸 피할 줄이야.
지금까지 달려든 놈들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었다.
‘그래도 처음의 암습자보다는 떨어져.’
민가에서 쓰러뜨린 자가 방금 전과 같은 기회를 잡았다면 꼼짝없이 두 다리가 잘렸을 터다.
이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허여멀건 얼굴.
지닌 검 실력에 비해 상대의 실전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은 듯했다.
그게 마른 비를 살렸다.
호국영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마른 비가 왼쪽 어깨를 관통한 검에 손을 가져갔다.
“으으윽!”
강피와 자연기가 있는 이상 출혈은 문제가 아니다.
검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며 검을 뽑아낸다.
어깨를 저미는 날붙이의 감촉에 인상이 찡그려지고, 상반신 전체를 울리는 묵직한 통증에 신음이 절로 나왔다.
탱그랑!
“흡!”
어깨 근육을 꽉 조이자 뭉클뭉클 샘솟던 피가 멎었다.
자연기를 응집해서 상처 부위를 단단히 고정한 마른 비가 호국영을 노려봤다.
“호 사형이 대치 중이다! 서둘러!”
성벽 아래쪽에서는 멈췄던 적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