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아니!”
드디어 따라잡은 소년에게 모든 정신이 쏠려 있었다.
쾌속하게 날아가는 자신을 급습할 존재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늪 표면에 바짝 붙어 날고 있었고, 배후를 잡혔다.
독림의 제왕.
불길함을 느꼈을 뿐, 마른 비조차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두꺼비의 은신이 뛰어났다.
또한 그 움직임은 믿기지 않을 만큼 민첩했다.
후릅―
붉은 두꺼비가 설지굉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어? 어엇!”
“저게 무슨…!”
“자, 장로니이임!”
좌우로 늪을 우회하던 설검대가 비명을 질렀다.
제대로 본 게 맞나?
어둠 속에 오래 있다 보니 환각이라도 본 걸까?
몇몇은 꿈인가 싶어 두 눈을 비비며 끔뻑였다.
“지금…… 두꺼비가 장로님을 잡아먹은…?”
이 반응.
모두가 보았다면 잘못 본 게 아니다.
경공을 펼치던 설검대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파공음을 흘리며 기세 좋게 날아가던 설지굉과 난데없이 튀어 나온 시뻘건 두꺼비.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짤막한 소란 이후, 늪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음산한 고요를 되찾았다.
6조장조차 말을 더듬을 뿐 머리가 새하얘져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 하하.”
마른 비가 실소를 흘렸다.
이제야 겨우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전에 노인이 당도했다면 정말 위험한 상황을 맞이했을 거다.
독림을 휘어잡은 무언가가 있을 거란 짐작은 했지만, 거대 두꺼비라니.
게다가 그 무시무시한 노인을 한입에 집어삼켜?
‘아냐. 정신 차려. 그 노인이 고작 저 정도에 죽을 리 없잖아.’
수많은 맹독들이 뒤섞이며 생성된 독무라면 모를까.
독림의 제왕이라고 해도 단일 개체가 만들어낸 독일 뿐이다.
수식어나 고유의 이름이 붙은 놈도 아니고, 기형적으로 변이한 생물의 독 정도로는 그 괴물 같은 노인을 쓰러뜨릴 수 없다.
“카아아아악!”
방금 끔찍한 일을 경험한 자가 지를 법한 발작적인 괴성.
질퍽한 늪 아래서 잿빛의 검기가 화려하게 번쩍이고, 웬만한 코끼리에 버금가는 거대 두꺼비의 몸통이 두 쪽으로 쪼개져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으아아아아!”
이쯤 되면 거의 불사조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엉망이던 옷들은 녹아내려 걸레 조각이 되었고, 피부 곳곳이 독과 위산에 상했지만, 적섬여를 배 속에서부터 가른 설지굉은 몸 성하게 늪을 뚫고 나왔다.
“자, 장로님!”
“다행이야! 무사하시다!”
저 멀리서 설검대의 안도에 찬 외침이 들려왔다.
‘아냐. 저 노인, 중독됐어.’
밤눈을 발동해 설지굉의 안색을 살핀 마른 비는 그의 얼굴이 옅은 보랏빛으로 물든 걸 확인했다.
‘그런데도 멀쩡해? 괴물은 괴물이네.’
가야 한다.
해독하든 몸 한구석으로 밀어놓든 저 노인은 침투한 독기를 제어할 수단이 있을 거다.
살기가 번들거리는, 핏발 선 눈동자.
금세 미친 듯이 따라붙을 게 분명했다.
“너…! 네놈! 이 찢어발겨도 모자랄 애새끼야! 거기 그대로 있어라!”
떠들 테면 계속 떠들어라.
마른 비는 날아오는 욕설에 대꾸하지 않고 숲으로 진입했다.
“저, 저 쌍놈의 새끼가! 카아아악!”
명백한 무시.
알아듣지 못할 괴성을 짐승처럼 질러대던 설지굉이 적섬여의 사체를 밟고 거칠게 날아올랐다.
으직! 덥석! 콰콱!
종횡으로 뒤엉킨 나무들 사이를 지날 때마다 사방에서 독물들이 달려든다.
놈들은 마른 비의 몸을 물어뜯으며 이빨을 박아 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건 길을 재촉하는 입장에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 정도로는 안 돼. 이놈들아.’
그렇다. 단지 귀찮을 뿐이다.
독림의 강자들이 모여 있는 검은 늪.
그중에서도 영역을 확보한 놈들이 뒤엉키며 생성한 독무가 태풍이었다면, 검은 숲을 맴도는 녀석들의 독은 기껏해야 산들바람에 불과하다.
와족의 강피를 뚫을 만큼 강인한 턱을 가진 놈도 드물었지만, 겨우 이빨을 박아 넣고 주입한 독도 마른 비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자연기를 둘러칠 필요도 없다.
물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지형을 주파한다.
더 이상 독림에서 마른 비를 위협할 수 있는 독물은 없었다.
스겅! 스겅!
쇠붙이가 무언가를 베는 절단음과,
우지지직― 콰쾅!
거대한 물체가 넘어가며 다른 물체에 부딪히는 충돌음이 숲을 울렸다.
‘엇!’
미약한 독물들과 달리 저 굉음을 만들어낸 존재는 지극히 위험하다.
마른 비의 고개가 후방을 향해 반사적으로 꺾였다.
‘벌써 따라왔어?!’
절반이나 남은 늪을 단숨에 뛰어넘었나 보다.
복잡하게 엉킨 나무들 틈으로 몸을 빼내기보다 통째로 베어 넘기며 길을 내는 모양이었다.
저 집요한 노인은 기운의 분배를 포기하고 최단 시간 내에 자신을 잡으려고 작정한 게 틀림없었다.
‘서두르자.’
이 앞에 어떤 지형이 펼쳐져 있고, 어떤 생물들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마른 비도 모른다.
그저 활로를 열 가능성이 가장 높기에 애뢰산을 택했을 뿐이다.
일단은 무조건 전진한다.
그리고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으로 삶을 도모한다.
처음부터 구체적인 대책 따윈 없지 않았나.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할 뿐.
소년의 걸음이 빨라졌다.
피피핏- 피핏-!
“카아압!”
후두두둑―
식물과 독사, 독충들이 가릴 것 없이 잘리고 토막 나 땅으로 떨어진다.
검은 숲의 한복판.
작심하고 검을 휘두르는 설지굉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분쇄하는 한 마리 악귀와 같았다.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깡그리 베어 넘기며 나아간다.
내력의 소모가 상당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것들!’
검을 쉴 틈이 없다.
빽빽하게 들어찬 초목은 둘째 치더라도, 주제를 모르고 달려드는 이 독물들.
욕설이 절로 튀어나올 만큼 징글징글하다.
10년 전, 처음 운남을 밟았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에 와서는 더욱 이 땅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략 한나절쯤 지났나? 시간이 없다!’
하늘이 보이지 않아 시간을 짐작하기 어렵다.
육신에 새겨진 감각으로 대략적인 시간의 경과를 가늠할 뿐.
‘한나절이 더 지나면 밤. 밤을 지새운 후에도 잡지 못하면 창산으로 복귀해야 한다.’
꼬마를 쫓는 과정에서 백이 넘는 설검대가 목숨을 잃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쟁이고 뭐고 지옥 끝까지 뒤따라가, 사지를 뜯어 까마귀밥으로 던져주고 싶다.
하지만 사문의 명운이 걸린 전쟁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두가 복수심에 불타서 집요하게 꼬마를 쫓고 있지만, 시간이 되면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설검대는 점창의 핵심 무력 단체이며, 자신은 그 지휘자인 동시에 장로가 아닌가.
참전은 마땅한 의무이자 책무였다.
눈이 뒤집혔을지라도 일의 경중을 분별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짜증이 솟는구나.’
책임이나 의무 따위 개나 줘버리라고 던져버릴 수만 있다면.
점창파에 몸담기 전처럼 자신의 목적과 욕구에만 충실해도 되는 야인이었다면.
그랬다면, 이런 빌어먹을 고민 따위 하지도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고,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라도 전쟁에서 공을 세워야만 했다.
‘망할 당가(唐家)의 애송이.’
한평생 거칠 것 없이 강호를 주유했던 자신이 자유를 포기한 채 조직에 얽매이는 걸 감수하게 된 계기.
기를 쓰고 위로 올라가려 발버둥 쳤던 이유.
지워지지 않을 화인처럼 새겨진 그날의 기억 때문이었다.
‘회안검 선배.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그러고도 무림의 선배로 존중받길 바라십니까? 한평생 정파인으로 지내고도 선배는 정도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릅니다.’
으드득.
육신의 흉터는 깨끗이 나았지만, 상처 입은 자존심은 십여 년이 지나도 아물 줄을 몰랐다.
어깨에 틀어박혔던 비수의 차가움과 상처를 움켜쥔 채 무릎을 꺾은 자신의 한심한 모습.
그 앞에 굳건히 서서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던 청년의 모습이 시공을 가로질러 노인의 망막을 채웠다.
‘이 전쟁만 끝나면. 그리고 대장로가 되면. 내 반드시 네놈에게 찾아가리라.’
그 순간을 위해 이 악물고 살아온 십 년이다.
일신의 무공은 차치하더라도 당가라는 거대 조직은 개인이 어찌해볼 수 없는 금성철벽과 같았다.
뒷배가 필요했다.
시비든 비무든 분쟁거리가 생겼을 때 당가와 대등하게 맞서며 자신을 비호해 줄 조직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강력한 문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며, 그런 거파에서 외부인을 쉽사리 받아들일 리 없었다.
그렇다고 사파나 마교에 몸담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울분을 삭히던 중, 점창이 문호를 개방했다는 소식과 함께 영입 제의가 들어왔다.
하늘이 준 기회였다.
‘그 애송이와 다시 붙을 계기는 만들면 그만이다. 그저 혈족의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미치광이 새끼들 같으니라고. 더군다나 가주 직계의 순혈. 나 때문에 전쟁이 터지더라도 날 내칠 수 없을 정도의 입지가 필요해.’
설지굉이 대장로라는 직위에 집착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것은 설지굉이 봉검과 운검에게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적대감을 내비치는 이유이기도 했다.
대 문파 안에서 태어나 절세의 무공을 전수받고, 편히 수련하다가 대장로의 직위까지 꿰찬 자들.
한평생 그릇된 일을 한 적이 없어 만인에게 존경을 받는, 정파의 표상과 같은 인물들.
참으로 손쉬운 인생이 아닌가.
잘 닦여 있는 대로를 아무 걱정 없이 걷기만 하면 됐겠지.
‘정도. 정도……. 말은 쉽지. 빌어먹을 새끼들. 힘과 권력, 배경에 금력, 그리고 인망까지. 모든 걸 다 갖췄으니 그딴 허울 좋은 소리나 뇌까릴 수 있는 거겠지. 네놈들이 밑바닥에서 구르며 생을 부지한 자들의 고충을 눈곱만큼이라도 알겠나.’
안다고 말하겠지.
그리고 ‘올바른 길’이란 외부의 환경적 조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고 일장 훈계를 늘어놓을 게 안 봐도 훤하다.
개소리.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개소리다.
안온한 궁궐에서 등 따습고 배부르게 머무는 자들이 담벼락 밖의 세상에 대해 무얼 알겠나.
그들은 중원을 돌며 남루하고 비참한 삶을 충분히 보고, 듣고, 경험했다 말할 거다.
역시 귀 기울일 필요 없는 개소리다.
돌아갈 곳이 있는 자가, 자신을 지킬 배경과 힘을 구비한 자가 길바닥 위에서 며칠 굴러봤다 하여, 부랑자의 심장을 옥죄는 좌절과 피부를 저미는 불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그것은 마치 비극적인 경극(京劇)을 관람하는 부유한 관객의 입장과 같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고 그들의 삶을 상상할지언정 결코 그들 자체가 될 순 없는 것이다.
체험.
그들이 하는 건 그저 한순간의 체험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모든 걸 안다는 듯이 말한다.
너의 처지를 이해하고, 나 또한 힘든 상황을 겪었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정도를 지켰다 말한다.
너는 왜 그리 못 하느냐, 환경에 좌우되는 것은 진정한 정도가 아니라고 잘난 듯이 말한다.
설지굉은 그들의 착각이, 위선이, 고고한 척하는 언행이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원승이라 했나. 유협이라 불리는 머저리. 차라리 그놈이라면 정도를 입에 담을 자격이 있지.’
호남성 장사에 위치한 원가장의 핏줄.
그놈도 나름 쥐고 태어난 것은 있으나 자의로 모든 걸 버렸다.
살아남기 위해 의와 불의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아비가 못마땅해, 대판 싸우고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왔다 했던가.
피 끓는 가슴 하나로 원 치하에서 고통받는 한인들을 돕겠다며 가문을 버린 정신 나간 놈이다.
‘머저리지.’
놈은 현실 감각이 모자란 머저리다.
삶이 각박해지며 전보다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세상은 넓고, 그런 정신 나간 것들은 여전히 왕왕 목격된다.
자신이라면 가문에 남아 힘과 세력을 키우는데 집중했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타인을 돕고 싶었다면 누구도 무시 못 할 존재가 되어 더 큰 영향력을 지닌 후에 선을 베풀었을 것이다.
핏줄과 가문까지 등지고 나와서 남은 결과가 무엇인가.
서른 중반이 되도록 고작 일류 정도의 무공을 쌓고, 있는 대로 좌절한 뒤에 점창에 들어와 삼대 제자가 된 것?
한심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그래도 그놈은 싫진 않았다.
최소한 위선적이란 생각은 들지 않으니까.
‘십좌. 여휘.’
그래, 거친 풍상을 겪으며 스스로도 제법 꼬였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그자는 그런 자신으로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남자다.
배경을 제외한 모든 것을 제 힘으로 쌓아 올렸지만, 그걸 뒤로 한 채 자신이 옳다 믿는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으니까.
평생에 걸쳐 쌓은 명성과 존경, 지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명을 뒤집어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은 자니까.
‘궁극의 머저리지.’
머저리에도 단계가 있다면 그렇게 부르는 게 맞을 거다.
그리고 정신이 나가도 그 정도로 나갔다면 인정해주는 게 옳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자였다.
십좌 중에서도 수위를 다툰다는, 저 여휘가 존경해 마지않는다는 협검(俠劍) 악경처럼 말이다.
원승, 여휘, 그리고 악경.
그들을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인정은 한다.
미쳤다 욕할지라도 싫어하진 않는다.
대리에서 여규와 원승에게 직접 손을 쓰지 않은 근본적인 연유가 거기에 있었다.
‘따지고 보니 생각보다 미친놈들이 많군.’
의? 협? 선?
설지굉은 전혀 관심 없는 개념들이었다.
누구 앞에서도 꺾이지 않을 자존심과, 그 자존심을 지탱하기 위한 무(武).
그리고 십여 년 전, 무너져 내린 자부심을 회복하는 것.
설지굉이 점창에 몸담은 이유이며, 대장로의 직위를 노리는 이유인 동시에 와족을 증오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십 년간 공들여 키운 자신만의 세력을 와르르 무너뜨린 게 와족이니까.
‘전쟁에서 복수한다.’
와족을 두고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장문전에서 선언했듯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
대장로에 오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자신의 것을 무너뜨린 놈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설지굉은 참전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전에 저 앞에 있는 꼬맹이는 반드시 잡아 죽인다.
“음?”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러 길을 열며, 깊은 상념에 젖었던 설지굉이 눈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