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무슨 말이야, 그게? 방금 아저씨가···.”
“아이고! 여기 좀 보소! 야만인이 생사람을 잡네! 살려주시오!”
사내는 시장 거리가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마른 비의 뒤편에서 사내 셋이 다가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너 이 새끼! 내 친구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까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갔던 세 명.’
전낭을 훔치려다가 팔목이 빠진 남자와 한패인 자들이었다.
그들은 일부러 몸을 부딪쳐서 반응을 보고, 마른 비가 무인인지 아닌지를 가늠했다.
무를 수련한 자라면 반사적으로 피하거나 부딪히려는 자를 제지했을 테니까.
세 번에 걸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마른 비를 보고, 그들은 확신했다.
이놈은 허우대만 멀쩡한 쭉정이라고.
“누가 야만인 아니랄까 봐 무고한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군. 너, 내 친구를 상처 입히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셋 중 가장 덩치가 큰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 중에 대장 격인 남자였다.
힘깨나 쓸 것 같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에서다.
마른 비에 비하면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어? 저 사람?’
앞서 몸이 부딪혔을 때 비웃었던 남자다.
사내가 예의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기회를 주지. 당장 내 친구에게 무릎 꿇고 사과해라. 그리고 의원에 가서 팔을 치료할 수 있도록 치료비를 내놔. 그럼 용서해 주마.”
삼류 파락호의 저질 협박이었지만, 마른 비가 그런 걸 알 리 없었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될 뿐이다.
“이 아저씨가 다친 건 사실이니 사과는 할게. 하지만 무릎은 안 돼. 전사는 무릎을 꿇으면 안 된다고 배웠거든. 치료비도 필요하다면 주겠어. 근데······ 잠시만.”
마른 비가 주저앉은 사내의 팔목을 붙잡았다.
사내는 피하려고 했지만 너무도 쉽게 잡히고 말았다.
잠시 빠진 팔목을 들여다보던 마른 비가 사내를 보며 말했다.
“참아. 아저씨. 조금 아플 거야.”
우두두둑.
“끄, 끄아아아아!”
마른 비가 빠져서 덜렁대는 팔목을 강제로 당겼다가 제자리에 끼워 맞췄다.
끔찍하게 아픈 건 당연했다.
하지만 깔끔한 처치 덕분에 사내의 팔목은 제 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당분간 좀 삐걱대고 아프겠지만, 괜찮아질 거야. 미안해, 아저씨.”
팔목을 고쳐주고, 사과까지 한 마른 비가 빙글 몸을 돌렸다.
“사과했어. 팔목은 이제 괜찮지? 그럼 치료비도 줄 필요 없는 거고. 이제 가도 돼?”
“그럴 리가! 네놈 때문에 고통스러워한 친구의 정신적 피해를 보상해야 할 것 아니냐!”
사내의 억지에 마른 비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저씨. 아저씨 친구가 먼저 내 품에 손을 넣으려고 했어. 난 한족들의 문화를 모르지만, 그게 정상적인 행동으로는 안 보이는데?”
“시끄럽다! 내 친구가 언제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네가 가만히 있는 사람을 다치게 한 거잖아! 당장 그 품에 있는 주머니를 내놔!”
삼류일 뿐만 아니라 머리도 나쁘다.
아니, 마른 비를 제외한 모두가 처음부터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으니 본색을 드러낸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사내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주머니?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그거 때문이었어?”
마른 비가 그믐의 조언을 떠올렸다.
‘한족들의 땅은 운남과는 달라. 거긴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다. 항상 사람을 조심해라. 특히 비아 네게 재물이 있다면 더더욱.’
품속을 더듬으니 금복인의 전낭이 있었다.
마른 비의 눈이 사나워졌다.
“이걸 훔치려고 그랬단 말이지? 그게 실패하니까 이렇게 나오는 거고. 나쁜 사람들이네, 아저씨들.”
“시끄럽다! 너 같은 야만인이 그런 거금이 어디서 난 거냐! 누군가를 해치고 빼앗은 게 아니냐! 솔직히 말해!”
사내는 차라리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궁색한 이유를 늘어놓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사내가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
“그걸 놓고 꺼져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주마!”
어깨에 힘을 주고, 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는다.
험악한 인상에 칼까지 들었으니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줄행랑을 칠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칼? 고작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는 거야? 진짜 못 쓰겠네, 당신들.”
마른 비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사내에게선 살기가 흘러나왔고, 그건 말을 듣지 않으면 저 칼을 휘두를 생각이라는 뜻이었다.
“그래. 이제야 상황이 이해가 가냐? 셋 셀 동안 그 주머니를 내려놓고 꺼져라. 하나, 둘···.”
사내가 셋을 발음하려는 순간.
빠아악!
그의 턱이 돌아갔다.
시장 거리 전체가 조용해졌다.
“어? 어?”
옆에 서 있던 사내 둘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분명히 멀찍이 서 있던 야만인이 어느 순간 코앞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신들도 같은 생각으로 온 거지?”
“어? 아, 아니, 우린···!”
빡! 빠악!
그들도 의식을 잃고 무너졌다.
셋의 부상 정도로 보아 앞으로 음식을 씹어 먹을 수는 없을 듯했다.
마른 비는 사내 셋을 쓰러뜨리자마자 몸을 돌려서 팔목이 빠졌던 소매치기에게 걸어갔다.
“자, 잠깐! 너, 너 이 새끼! 아니, 그게 아니라, 공자! 잠깐만 멈추시오! 제발, 제발 멈춰어어어!”
우뚝.
그대로 달려들 줄 알았던 마른 비가 멈췄다.
“왜? 무슨 말을 하려고?”
“나, 나는 들개 형님의 식구요!”
“들개? 당신, 개였어?”
“들개 형님을 모른단 말이오? 이 시장 거리를 지배하는 분인데···!”
“몰라. 그런 사람.”
마른 비가 손을 뻗었다.
“자, 잠깐! 나는 하오문(下午門)에 소속된 문도요!”
“하오문? 그게 뭔데? 먹는 거야?”
마른 비는 방금 끼워 맞췄던 사내의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 당겼다.
우드드득!
“아, 아악! 아아아악!”
한 번 빠졌던 팔목이 다시 빠지니 기절할 만큼 아팠다.
소매치기 사내는 시장 바닥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당신들, 하는 짓을 보니까 이게 처음이 아냐. 살기를 뿜는 게 무척이나 익숙해. 당신들보다 힘이 약하면 죽이고 빼앗은 적도 많지?”
마른 비는 땅을 구르는 사내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또 눈에 띄면 당신 식구들한테 찾아갈 거야. 꼭 전해. 알겠어?”
마른 비가 소매치기 사내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작심하고 살기를 뿜었다.
마른 비는 이제 단순히 힘만 센 청년이 아니다.
전쟁을 겪었고, 야생의 맹수들을 무릎 꿇렸으며, 저 검치호마저 꺾었다.
와족의 차기 족장으로 뽑혔던 전사.
그가 마음먹고 내뿜는 살기는 절대 평범한 사람이 받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소매치기 사내는 부들부들 떨더니 오줌을 지렸고, 극심한 공포에 눈을 까뒤집었다.
빠악!
그렇다고 봐줄 리 없다.
마른 비의 주먹이 사내의 턱에 꽂혔고, 마찬가지로 턱이 부서진 사내가 무너져 내렸다.
쿠웅!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는 고요.
마른 비가 구경꾼 중 한 명에게 물었다.
“방향을 까먹었어. 옷 만들어 주는 사람한테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
마른 비는 난생처음 한족의 의복을 입었다.
침선장은 벌써 소식을 들었는지 마른 비를 보자마자 바짝 긴장했고, 혼신의 힘을 다해 옷을 만들어 주었다.
가장 무난한 회색 계열의 옷이지만, 마른 비가 입으니 태가 났다.
“자, 잘 어울리세요. 최고입니다!”
무서워서 한 말이지만, 실제로 그렇다.
마른 비의 체형이 훌륭해서 정말 멋지게 보였으니까.
“으······. 불편해.”
하지만 마른 비는 불만스러웠다.
온몸을 가리는 옷은 처음인 데다 움직이기도 쉽지가 않았다.
이런 걸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일 지경이었다.
“음. 그럼 이제 밥을 먹을까?”
마른 비가 혼자 중얼거리던 그때,
“이 새끼냐?”
시커먼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 눈을 흉흉하게 번뜩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우리 애들을 반병신으로 만들어 놓은 게 너냐?”
덕창의 시장 거리를 지배하는 파락호들.
그리고 그들에게 대형이라고 불리는 ‘들개’ 장팔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야만인 놈인데 감히 이 덕창에 기어 들어와서 행패야, 행패가?”
장팔은 제법 날카로운 기세를 흘리고 있었다.
척 보니 무를 체계적으로 수련한 자는 아니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과 독기를 바탕으로 밑바닥 싸움판을 전전하며 실전 감각을 터득한 자였다.
덕창 정도 규모의 지역에선 왕 행세를 할 만한 실력이 있는 남자였다.
“응. 내가 한 거 맞아. 그 사람들이 먼저 잘못한 거고. 근데 아까부터 계속 야만인, 야만인 하는데 그거 듣기에 별로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른 비는 창산에 방문했을 때, 여규에게 물었다.
대리에서부터 몇몇 점창의 사람들이 자신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던데 그게 무슨 뜻이냐고.
여규는 흠칫하며 얼굴을 굳혔지만, 그 뜻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지저분하고 미개한 야만인 새끼를 야만인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를까?”
장팔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미개? 나, 그 뜻도 알아. 그거도 하지 마.”
“하! 니들, 이런 모자란 애새끼한테 처맞고 온 거냐?”
장팔이 마른 비에게 턱이 박살 난 사내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큰 부상을 입은 그들의 뺨을 차례로 후려쳤다.
“윽···!”
“크윽! 악!”
두 명은 비명이라도 질렀지만, 나머지 둘은 끔찍한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자신의 화를 푸는 동시에 마른 비를 겁주기 위한 행위였는데, 마른 비는 겁을 먹기는커녕 화가 났다.
“너 이 야만인 새끼야! 당장 이리···!”
“왔어.”
빠아악!
복부에 꽂힌 바위 부수기.
깜짝 놀란 장팔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 어어억?”
놀라움. 그리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끔찍한 통증.
장팔은 신음도 제대로 뱉지 못하고 풀썩 엎어졌다.
“어? 어어어··· 억······.”
“죽이진 않아. 근데 당신은 가만 놔두면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힐 게 뻔해. 당신에게서 나는 이 지독한 악취. 사람을 대체 몇 명이나 죽인 거야?”
살인은 지워지지 않는 향을 남긴다.
그리고 살인의 방식과 사람을 죽일 때의 상황에 따라 그 향은 천차만별이다.
정당한 결투 끝에 살인을 했다면 이토록 지독한 향은 나지 않는다.
자신보다 약한 자를, 잔인하게 괴롭히며 살해했을 때 남는 냄새.
살인을 할 당시의 감정과 기억에 영향을 받는 그것은 자연기의 감각으로만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당신 옆에 있기도 싫어. 악취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야.”
“사, 살려···!”
“살려 준다니까? 다만 이제부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 거야.”
우지직.
장팔의 양다리가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천하제일의 의술을 지녔다는 괴의 화통달이 온다면 모를까, 장팔은 이제 전처럼 걸어 다니기는 힘들어 보였다.
“내가 힘이 약했다면 여기서 당신들한테 죽었겠지. 당신들이 먼저 싸움을 걸었고, 난 받아쳤을 뿐이야. 그러니까 억울해하지 마.”
예전의 마른 비가 아니다.
전쟁을 겪고, 공지량이나 호국영, 청목 같은 인간들을 목격한 청년은 이제 누구에게나 상냥할 생각이 없었다.
장팔을 따라온 인간들에게선 하나같이 악취가 진동을 했고, 마른 비는 악취의 정도에 따라 응징을 가했다.
눈 깜짝할 사이, 시장 거리 바닥엔 반병신이 된 파락호들이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기어 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들을 쭉 훑어본 마른 비가 등을 돌려 멀어졌다.
소중한 생명을 망가뜨렸다는 점에 불편함을 넘어 죄책감까지 들지만, 중원으로 나오기 전에 결심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망설이지 말자고.
열여덟이 된 마른 비는 더 이상 순수하기만 한 소년이 아니었다.
“당신, 잠깐 거기 서 봐.”
그때, 시장 거리 골목 한구석에서 누군가가 마른 비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