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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세록 남천제-228화 (228/463)

228화

“그르릉…!”

나루터에서 서성이던 별비가 고개를 홱 돌렸다.

녀석의 눈은 저 멀리 보이는 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별비야? 어딘지 알 것 같아?”

별비는 따라오라는 눈짓을 하더니 세 갈래 길로 돌아갔다.

그리고 풀숲을 헤치며 정면의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마른 비는 뒤를 따르며 꼼꼼히 살폈지만, 꽤 달려도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별비야! 여기가 맞아? 사람은커녕 짐승이 지나간 흔적도 없는데?”

별비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갈 뿐이다.

마치 지체하면 겨우 발견한 무언가를 놓칠 것처럼 다급한 기색이었다.

“왜 저러지?”

마른 비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별비를 믿고 뛰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정신없이 뛰던 별비가 급제동을 걸며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별비는 그 자리에서 자세를 낮추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웬만하면 답을 줄만도 한데 별비는 대꾸할 정신도 없다는 듯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크르르…….”

별비는 정면을 노려보더니 이빨까지 드러내며 그르렁댔다.

풀숲이 끝나고 개활지가 시작되는 곳.

조금 더 뛰면 마안산의 영역에 진입할 수 있었다.

별비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꺾어 우측으로 냅다 뛰었다.

“어… 어? 뭐야?”

마른 비는 영문도 모른 채 별비의 뒤를 따랐다.

달리는 도중 정신을 집중하니 저 멀리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산 쪽에 뭔가가 있는데……. 뭐지, 저게? 어어? 왜 강으로 뛰어들어?”

별비는 강 속으로 풍덩 입수했다.

그리고 얼굴만 살짝 물 밖으로 내놓은 채 헤엄치기 시작했다.

집채만 한 덩치의 백호가 수영을 하는 모습은 꽤 진귀한 광경이었다.

앞발을 파닥이는 게 꼭 커다란 강아지 같아서 마른 비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어어? 엄청 빠르네?”

앙증맞은 모습과 달리 별비는 물살을 헤치며 쑥쑥 나아갔다.

가만히 있다가는 놓칠 것 같아서 마른 비도 후다닥 강물로 뛰어들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별비는 마안산의 우측 산자락을 향해 헤엄치는 듯했다.

『별비야! 산으로 갈 거면 길을 따라가는 게 낫지 않아?』

마른 비의 언령에도 별비는 잠자코 헤엄만 쳤다.

『야아~! 차라리 땅으로… 어푸!』

언령을 발하느라 입을 벌렸던 마른 비가 물을 먹고 꼬르륵댔다.

별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뒤를 힐끗 보더니 짧게 울었다.

〔그냥 따라와.〕

육안으로 산 쪽의 사물이 식별될 만한 거리에 도달했을 때였다.

별비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물속으로 잠수했다.

‘왜 저러는 거야?’

궁금했지만, 마른 비는 별비를 믿었다.

그래서 폐에 공기를 잔뜩 밀어 넣고 별비를 따라 잠수했다.

마른 비의 폐활량은 경이적인 수준이었지만, 산까지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남아 있었고, 산자락에 근접할 즈음 숨이 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비가 잠수 중이었기에 마른 비는 공기를 갈구하는 폐의 외침을 무시하고 잠영을 계속했다.

스르륵―

물 위로 육지의 풍경들이 다가오자 별비는 소리 없이 부상했다.

그리고 조용히 헤엄치며 산자락에 바짝 붙었다.

‘어?’

뒤따라 수면으로 나온 마른 비의 눈이 커졌다.

육지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풍경.

강 쪽으로 난 절벽 아래에 작은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런 곳에…!’

동굴은 작은 소선이 지나갈 만한 높이였다.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고, 배를 타거나 수영을 해야 진입할 수 있었는데, 상부에는 벽을 타고 자라는 담쟁이과 식물들이 늘어져 있어 장강을 지나는 배라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심지어 안쪽으로 우묵하게 파인 곳에 있어서 그야말로 위치를 아는 자들만이 찾을 수 있는 비처였다.

별비는 곧바로 진입하지 않고 절벽 쪽에 몸을 붙인 채 수면에 둥둥 떠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냄새를 놓쳤을 거다. 놈은 저 안으로 들어간 게 확실해.〕

별비가 서두른 이유였다.

그리고 후각 범위에 잡혔다면 비마가 저곳으로 진입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위. 느껴지지?〕

별비의 물음에 마른 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 위쪽. 절벽 위에 감시자들이 있네.』

우묵하게 파인 지형 위쪽에서 익숙한 기운들이 감지됐다.

가면을 쓴 마교의 인물들.

은신의 수준은 비마대보다 뛰어났다.

순수한 마교의 인물들이라기보다는 야전단처럼 중원에서 활동하기 위해 따로 은신을 수련한 자들 같았다.

마른 비와 별비의 감각을 속이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랐지만.

『잠수하자.』

침투는 간단했다.

깊숙이 잠수한 둘은 절벽을 따라 이동했고, 곳곳에 있는 암초들을 이용해 몸을 숨기며 동굴로 다가갔다.

시야에 잡아도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어스름의 은신술.

감시자들 중 수중의 지형에 녹아든 마른 비와 별비를 잡아낼 만한 실력자는 없었다.

그들은 어렵지 않게 동굴로 진입했고, 한 번 들이마신 호흡으로 굴의 안쪽까지 침투할 수 있었다.

깊지 않은 통로를 지나자 물이 차가워지며 공간이 넓어졌다.

‘안쪽에 이런 공간이…!’

넓어진 공간으로 진입한 순간이었다.

마른 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막을 통과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밀려드는 농밀한 기운에 인상을 찡그렸다.

‘마기…!’

몇 번 접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마교 무인들 특유의 기운이 동굴 전체에 넘실대고 있었다.

마른 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아까 느꼈던 이질감의 정체가 이거였구나!’

마기를 숨겨주는 막.

앞서 달리던 별비는 이걸 감지하고 강으로 뛰어든 모양이었다.

이쪽에서 비마의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개활지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감시자를 염두에 두고 강을 택한 거였다.

감각을 좀 더 개방하니 막을 구성한 기운의 정체를 더듬을 수 있었다.

주술.

주술에 가까운 힘이 마기가 외부로 새어나가는 걸 차단하고 있었다.

뽀그르륵-

‘이런.’

호흡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른 비는 잠영의 속도를 높여서 땅 쪽으로 다가갔다.

어둠이 덮인 수면 위로 불그스름한 빛들이 흔들렸다.

동굴 내부를 밝히기 위한 횃불의 빛이 틀림없었다.

‘후욱, 후우….’

수면 위로 조심스레 얼굴을 내민 마른 비가 공기를 들이켰다.

동굴 내부에는 둥글게 강물이 들어찬 공간이 있었고, 중간에 해당하는 부분에 몇 대의 소선이 정박해 있었다.

비마는 저 배 중에 하나를 이용한 게 분명했다.

마른 비의 짐작을 확인해주듯 별비가 인간처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도 경비병이 있네.’

횃불의 빛이 닿지 않는 곳.

마른 비와 별비는 강물이 들어찬 공간의 우측 끝에 붙어서 내부 상황을 살폈다.

소선이 정박한 곳 근처에는 검을 찬 경비병들이 모여 서성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가면을 쓰지 않았고, 기운을 누르는 데 큰 힘을 쏟지도 않았다.

이쪽으로 침입하는 자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의 무공 수준이 상당했고, 경계 태세에는 빈틈이 없었다.

『들어가자.』

스르륵―

문제는 침입자가 절정의 은신술을 지닌 자들이라는 점이었다.

마른 비와 별비는 서서히 동굴의 지형에 녹아들었다.

횃불이 비추는 곳은 한정돼 있었고, 어둠을 등에 업은 와족의 은신술을 잡아낼 경비병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부로 이어지는 길은 하나뿐이었지만, 상당히 크고 넓어서 둘은 어렵지 않게 동굴 내부로 파고들었다.

‘살수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해.’

적진에 들어와서 한가하게 발자국 따위를 살필 여유는 없었다.

방향을 잡는 건 전적으로 별비의 몫이었다.

둘은 모든 정신을 은신에 쏟은 채 별비의 후각이 가리키는 지점을 향해 나아갔다.

『별비야. 비마를 마주치면 안 돼.』

마교의 인물들을 마주한 순간, 침입자가 비마일 거라는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가 환마급의 실력자라면, 마주치는 순간 들키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진 한복판에서 발각된다?

아무리 둘이 함께라도 빠져나가는 건 요원한 일이 될 터였다.

별비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스르륵―

좌측 벽에 붙어 전진할 때였다.

처음으로 옆으로 빠지는 길 하나가 나왔다.

어둠만이 자리한 그곳에서 기묘한 감각이 감지됐다.

두근… 두근….

‘……심장 소리?’

잘못 들은 걸까?

너무 낮아서 확신할 수 없는 그 소리는 묘하게 신경을 자극했다.

계속되는 것도 아니다.

맥박이 뛰는 듯한 소리는 울리다가 끊기고, 울리다가 끊기길 반복했다.

마른 비의 청각으로도 제대로 잡아낼 수 없을 만큼 나지막하지만, 고요함 속에 설명하기 힘든 치열함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죽어 있는 무언가가 새 생명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한 느낌이랄까.

두근… 두근…… 슈르륵.

소리에 귀 기울이던 마른 비는 갑자기 오싹해져서 몸을 떨었다.

그저 심상일 뿐이지만,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눈을 뜨고 이쪽을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별비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털이 바짝 곤두서서 어둠에 싸인 안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살수의 위치를 찾는 데만 몰두하다 보니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리지 못했다.

이 동굴의 용도가 무엇이냐는 의문.

단순한 은신처라고 보기엔 바깥에서부터 지나치게 공을 들여놨다.

추적에 도가 튼 마른 비라도 별비의 후각이 아니었다면 절대 입구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감각을 휘돌리니 머리 위, 그러니까 동굴 위쪽으로 무수한 생기가 느껴졌다.

마른 비의 감각으로도 간신히 감지할 만큼 잦아든 기운들.

아마도 산등성이를 타고 마교의 무인들이 포진하고 있는 듯했다.

‘막의 안쪽인데도 가면을 쓴 채 기운을 죽이고 있어. 저 위는 만전의 태세구나.’

아마도 육로를 통해 다가올 불청객을 경계하는 듯했다.

바짝 벼려진 기운들이 그들의 경계 태세를 짐작게 했다.

육로로 진입했다면 한순간에 겹겹이 둘러싸일 만큼 굉장한 숫자였다.

‘위에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중요한 건 여기야. 저들은 침입자로부터 동굴을 지키기 위해 배치된 거야.’

그 말이 의미하는 건 단순했다.

동굴로 진입하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십중팔구 그건 산중 어딘가로 통하는 육로일 터였다.

‘저 안에 있는 게 뭘까?’

자신과 별비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 무언가.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확인할 것인가.

원래의 목적대로 살수를 구하는 데 집중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였다.

‘일을 벌이지 말자. 기존의 목표에 집중하는 거야.’

호기심이 치솟지만, 지금은 아무리 궁금해도 억눌러야 할 때였다.

마른 비는 살수의 냄새를 쫓기로 했고, 별비에게 눈짓했다.

둘은 다시 통로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억누르고 전진했음에도 둘은 마주하고야 말았다.

마교가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어떤 의식’을.

통로를 따라가자 거대한 광장이 나왔고, 거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커다란 무언가가 있었다.

두쿵― 두쿵―!

귀를 괴롭게 할 만큼 울리는 심장 소리.

환각이라도 보는 걸까?

여러 갈래의 소로가 만나는 그곳엔 두 눈을 의심케 할 만큼 거대한 심장이 펄떡이고 있었다.

‘뭐, 뭐야 저게?!’

마른 비가 속으로 경악을 뱉은 순간,

“끼아아아아악~!”

소름 끼치는 귀곡성이 동굴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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