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큭…!’
마른 비는 귀를 움켜쥐고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보다 월등한 청력을 지닌 별비는 견디기가 힘든지 부들부들 떨었다.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심원한 공포를 건드리는 울음.
마른 비와 별비의 신형이 흔들리며 주변 지형과의 괴리를 만들었다.
하마터면 은신이 풀릴 뻔한 것이다.
황급히 정신을 집중한 둘은 발각되기 전에 지형에 동조할 수 있었다.
‘방금 그 울음… 야투에서의…!’
마라라고 했던가.
투주, 아니, 환마가 마라라고 불렀던 괴생명체의 울음소리와 흡사하다.
더욱 소름 끼치고, 한층 음산하며, 훨씬 강력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게 문제지만.
울음은 맥동하는 심장으로부터 뿜어진 게 분명했다.
좀 더 정확히는 심장의 내부에서부터 우러난 소리였다.
‘설마 저거, 살아 있는 생물의 심장을 꺼낸 건가? 아니야, 있을 수 없어…! 어디서 저런 게…!’
규격 외로 거대한 운남의 맹수들을 보고 자란 마른 비다.
심장의 크기는 믿을 수 없게도 전상의 덩치에 육박했다.
저런 심장을 품은 생물이라면 본신은 대체 얼마나 클 것인가.
단언컨대 저토록 큰 생물은 존재할 수 없었다.
아니, 아니다.
한족의 상상 속 이야기에 나오는 용이란 동물이 실존한다면 저런 심장을 가지고 있을지도.
하지만 마른 비는 그런 게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중요한 건 그가 믿거나 말거나 심장은 눈앞에 실재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힘차게 맥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밤눈을 발동해 새카만 어둠을 노려보던 마른 비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저거… 설마…?!’
심장은 마치 인간의 핏줄 같은 촉수를 동굴 벽으로 뻗어 스스로를 허공에 매달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핏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듯 동굴로부터 생장을 위한 자양분을 얻고 있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심장 표면에 난 균열들이었다.
아니, 저걸 균열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울룩불룩한 살덩이들이 꿈틀대는 가운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든 접합부가 존재했다.
접합부.
그래, 그 표현이 정확하겠다.
지금 자신의 몸 내부에서 뛰고 있는 것과 비슷한 크기의 심장들이 누덕누덕 기워져 있었으니까.
거대한 심장의 정체는 인간의 심장 수천 개를 이어붙인 ‘무엇’이었다.
“이… 이 미친…!”
마른 비는 뇌가 타버릴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저게 왜, 어떻게 뛰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저 끔찍한 것을 만들기 위해 희생됐을 수천 명의 목숨이 사무치도록 애달팠다.
마른 비는 적진에 침투했다는 것도 잊은 채 목소리를 냈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 미친 새끼들이 대체 무슨 짓을…!”
이 순간만큼은 거대 심장의 박동이 마른 비를 도왔다.
두쿵-! 거리는 소리가 마른 비가 흘린 음성을 덮었으니까.
심장 박동과 괴생물체의 울부짖음을 견디기 힘들어서인지 광장엔 경비를 서는 무인도 없었다.
‘괴생물체…!’
그래. 심장만 있는 게 아니다.
야투에서 들었던 울음소리와 흡사한 비명을 지른 무언가가 있을 터였다.
저 심장을 두고 마라라고 부르는 걸 수도 있겠지만, 마른 비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돌이켜보면 소름 끼치는 울음소린 분명 저 심장의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저 안에 뭔가가 있구나!’
찰나에 얻은 확신이었다.
동굴로부터 무언가를 빨아들이듯 촉수를 뻗은 심장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태동.
아니, 저건 생명이라고 부르기 힘들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무언가가 깨어나려 하는 듯한 감각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면 저 심장은 ‘무언가’를 품고 있는 태낭(胎囊)이자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그것을 지키는 알이나 다름없었다.
내부에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다면, 저것을 만들기 위해 소비된 인간의 심장은 생각보다 적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단 한 명의 목숨이라 할지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었다.
마른 비는 절대 저걸 그냥 두고 갈 생각이 없었다.
〔잠깐! 기다려, 비아야!〕
마른 비를 멈춘 건 그의 하나뿐인 벗이었다.
별비는 황급히 마른 비의 앞을 막아섰고, 푸른 눈을 빛내며 의사를 전했다.
〔어떤 심정인지 안다. 하지만 지금 그래선 안 돼. 저것에 손을 대는 순간 구출은 둘째치고, 우리도 살아나가지 못한다!〕
별비는 분노로 이글대는 마른 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느껴지지? 통로마다 들어찬 적의 기척이. 여긴 모든 길이 만나는 중앙이야. 우리가 지나온 길에도 경비병이 있었지만, 다른 통로엔 적들이 바글바글하다. 지금 저걸 건드리면 절대 살아나가지 못해.〕
과거의 마른 비라면 뒤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심장을 부수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성장했고, 완수해야 할 목표와 지켜야 할 벗이 있었다.
부들거리는 주먹을 가까스로 푼 마른 비가 숨을 들이마시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래. 그거다. 나도 저걸 두고 볼 생각이 없는 건 마찬가지야. 순서를 조금 미루자.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는 거야.〕
마른 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별비는 앞장서서 광장에 이어진 십여 개의 통로 중 하나로 들어섰다.
태연해 보이지만, 평소와 달리 별비의 어깨에도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마른 비와 지내며 감정을 느끼는 데 익숙해진 걸까?
짐승인 별비조차도 생명을 농락한 잔인무도한 참상에 분노를 느끼는 게 분명했다.
둘은 깊은 침묵으로 화를 삭이며 임무를 수행하는 데 집중했다.
〔근처에 놈이 있다. 조심해.〕
통로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별비가 위험을 알려왔다.
‘놈’이란 건 비마를 말하는 게 틀림없었고, 그걸 증명하듯 경비병들의 질이 대폭 향상됐다.
이제는 전처럼 빠르게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마른 비도 비마의 위치를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난… 마기!’
은신처에 들어와 가면을 벗은 걸까?
마른 비가 지나는 통로 좌측으로는 또 다른 길이 있었고, 그 길의 끝에 굉장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자가 있었다.
그의 마기는 처음 접하지만, 기운의 세기로 보아 주원장의 처소에 침입했던 비마가 틀림없었다.
천만다행인 건 비마가 머무는 것으로 추정되는 통로는 깊었고, 그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발각될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여기서부턴 언령을 전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마른 비와 별비는 눈짓을 주고받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 나아가려 할 때였다.
‘……!’
마른 비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갑자기 기감에 잡힌 어마어마한 기운!
그건 마른 비와 별비가 전진하려는 방향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비마에게 집중하는 사이 급격히 가까워진 무언가는 이쪽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려는 몸의 반응조차 억누른 채, 둘은 슬금슬금 물러섰다.
‘제길…!’
위험하다.
정말로 위험하다.
정면에서 다가오는 자는 비마에 필적하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통로에는 경비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어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주원장을 공격한 살수처럼 아예 그림자로 스며든다면 모를까.
지형에 동조하는 와족의 은신술과, 보고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어스름의 비기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다.
고르고 고른 마교 무인들의 이목을 속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저 앞에서 다가오는 자는 눈뜬장님처럼 둘을 지나칠 리 없었다.
마른 비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최대한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뚜벅, 뚜벅.
‘환마…!’
간신히 얼굴이 식별될 만한 거리에 이르자 상대의 정체가 드러났다.
가면을 쓰고 있지만, 체형과 기운으로 볼 때 야투에서 마주쳤던 환마가 분명했다.
환마와 비마.
중원 무림에 두려움으로 각인된 마교의 일곱 기둥 중 둘이 여기에 있었다.
‘알아채면…!’
끝이다.
발각되는 순간 절대로 살아나갈 수 없다.
마른 비와 별비는 평생토록 연마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 은신에 집중했다.
뚜벅, 뚜벅. 슥―
쭉 걸어오면 끝장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환마는 비마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통로를 향해 몸을 돌렸다.
터져 나오려는 안도의 숨을 안간힘을 다해 참는 순간,
“뭐냐?”
우뚝 멈춘 환마가 말했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마른 비 쪽을 향하고 있었다.
‘제길! 걸렸나?’
마른 비의 동공이 잘게 요동쳤다.
식은땀이 등을 적시고,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혹시 새어나갈지 모를 안광까지 숨기기 위해 마른 비는 시선을 내려 땅을 쳐다봤다.
“죄, 죄송합니다!”
마른 비의 바로 옆이었다.
경계를 서던 무인 하나가 부동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그는 잘못이 적발된 하급자의 얼굴로 말했다.
“자, 잠시 졸음이 몰려오는 바람에 그만…! 주의하겠습니다!”
환마는 지그시 인상을 쓰며 말했다.
“비마 장로가 며칠에 걸쳐 잠도 못 잔 채 임무를 수행했고, 조금 전에 복귀했다. 한데 편하게 경계나 서면서 잠이 온단 말이지?”
“죄, 죄송합니다! 장로님!”
경비병은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뒤이어 떨어질지 모를 징계가 두려운 듯했다.
환마는 한동안 말없이 그를 노려보더니 통로로 들어서며 말했다.
“중원에 나온 후로 죄다 기강이 해이해졌어. 한 번 더 그런 모습을 보이면 부화장의 일부가 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사지를 찢어 죽인다는 말보다 무서운 말이었다.
침을 꿀꺽 삼킨 경비병이 크게 외쳤다.
“예, 장로님! 관용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환마가 사라진 뒤에도 직각으로 허리를 꺾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조심스럽게 허리를 든 그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후우… 잠깐 졸았다가 영원히 잘 뻔했네.”
그와 조를 이룬 경비병이 말했다.
“후아! 내가 다 놀랐다. 정신 차리라고 했지? 환마 장로님은 느슨한 비마 장로님과는 다르다고. 실수 한 번에 심장이 뜯긴 놈이 한둘인 줄 알아?”
심장.
심장이라고 했다.
광장에 있는 거대 심장의 정체가 명확해진 순간이었다.
저 많은 숫자를 아군으로 채웠을 리는 없고, 가끔 실수를 저지른 자들을 제물로 삼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차라리 바깥에 있으면 졸 일이 없을 텐데.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겠냐. 어둡고, 조용하고, 심심하고……. 졸기 딱 좋은 환경 아니냔 말이야. 하마터면 진(眞) 마라의 먹이로 던져질 뻔했네.”
그의 동료는 끔찍하단 얼굴로 말했다.
“부화장의 일부가 되느니 자결하는 게 낫지. 어차피 심장이 뜯기고 시체도 못 남기는 건 마찬가지라도, 산 채로 체액과 정기를 빨아 먹힐 걸 상상하면….”
오한이 들었는지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환마는 아군조차 희생양으로 삼는 잔인무도한 짓거리를 버젓이 행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저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생으로 뜯은 자가 무슨 짓인들 못 할까.
마른 비는 또 한번 울컥했지만 가까스로 감정을 누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짐작건대 아마도 피로를 풀기 위해 잠든 비마와,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한 환마를 지나치며.
“끼아아아악~!”
일정 주기마다 저러는지 뒤쪽 광장에서 괴생물체가 포효를 토했다.
거리도 있고, 대비하고 있던 터라 마른 비는 이번엔 흔들리지 않았다.
앞서가던 별비가 멈춰서 뒤를 돌아본 건 그때였다.
우측으로 빠지는 통로.
칙칙한 어둠이 자리한 곳에서 고통에 찬 숨소리가 들렸다.
눈빛을 교환한 마른 비와 별비는 지체 없이 그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여기야!’
별비의 후각은 정확했다.
둘은 새카만 어둠을 파고든 끝에 하얀 붕대를 온몸에 칭칭 감은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흘을 내리 달린 끝에 마침내 살수를 발견한 마른 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른 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살수의 상태가 예상보다 더욱 심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