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비마대…! 비마대는 어디 있지?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오지 않았네. 아무도.”
“……안 왔다고?”
비마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뒤를 살피라고 남겨 두었지만, 벌써 복귀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와야 할 비마대는 안 오고, 엄한 놈이 따라왔다?
그게 의미하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야만인 놈에게 당한 건가.”
환마가 침중하게 중얼댔다.
비마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버럭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주원장의 처소에서 놈을 보았다! 짐승과 함께 덤빈다 해도 팔십 명의 비마대를 이길 순 없어!”
“하지만 놈은 왔고, 비마대는 오지 않았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자네도 알지 않나.”
환마는 확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전멸. 전부 당했을 걸세.”
비마의 볼은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믿을 수 없고, 믿기가 싫을 뿐.
비마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카아아아악!”
그의 분노가 폭발하자 마기가 사방으로 분출됐다.
마교 칠대 장로의 일인이 평생토록 쌓은 내력은 전율적이었고, 광장으로 달려온 경비병들이 괴로워하며 비틀댔다.
눈이 새빨갛게 변한 비마가 입술을 떨며 외쳤다.
“죽인다! 반드시 잡아 죽이겠어! 그 야만인 꼬맹이를 붙잡아서 산 채로 씹어 먹고 말 것이다!”
비마는 등을 돌리더니 강 쪽 출구로 향했다.
절대 발견할 수 없을 거라 믿었기에 상대적으로 경비가 허술한 곳.
이 길을 아는 침입자라면 당연히 그쪽으로 도망쳤을 터였다.
진 마라를 공격한 방향과도 일치했기에 비마는 마른 비가 강으로 갔을 거라고 확신했다.
“같이 가지. 제조소에 이어 부화장까지……. 나도 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잠을 못 자겠어. 놈을 빠르게 처리하고 사영을 쫓도록 하지.”
환마가 비마를 따라나서려 할 때였다.
죽은 줄만 알았던 괴생물체가 꿈틀댔다.
“끼, 키에엑….”
“아니?!”
환마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미친 듯이 달려갔다.
그리고 진 마라의 숨이 붙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끔찍한 피해를 입었지만, 잘하면 소생시킬 수도 있겠다.
환마가 다급하게 외쳤다.
“비마! 놈을 잡는 건 자네에게 맡기겠네! 난 진 마라를 돌보겠어!”
“그러든지 말든지. 그 살덩이는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니니 알아서 하라고.”
비마는 진 마라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걸어갔다.
두 장로가 무얼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환마는 우려가 되었는지 비마의 등에 대고 당부했다.
“반드시 잡아야 하네! 진 마라가 살아 있고, 놈이 부화장을 목격한 이상, 절대 놓치면 안 돼!”
뚜벅뚜벅 걸어가던 비마가 멈췄다.
그리고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봤다.
그의 얼굴엔 짙은 분노와 함께 짜증이 묻어났다.
“지금 내게 훈수 두는 거냐? 잊은 모양인데, 네가 장로에 임명되기 10여 년 전부터 난 장로였다. 직위가 같다고 해서 잊지 마. 서열은 여전히 내가 위라는 걸. 조언을 할 거면 상황을 봐가면서 하란 말이다.”
열이 뻗친 비마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이성이 돌아온 환마는 한시라도 빨리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한발 물러섰다.
“잊을 리가 있겠나.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군. 그쪽을 부탁하지.”
비마는 환마를 힐끗 보더니 강 쪽의 출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환마는 우두커니 서 있는 경비병들에게 외쳤다.
“뭘 멍하니 서 있나! 절반은 비마 장로를 따라서 침입자를 쫓아라! 나머지는 나를 도와서 마라를 여기로 옮긴다! 당장 움직여!”
진 마라를 보호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태낭이 박살 났지만, 아직 방법이 있었다.
진 마라의 자양분이 되는 마라들.
임시방편으로 그중의 하나를 태낭이자 숙주로 삼는다.
환마는 가장 가까이 있는 마라의 위치를 떠올렸다.
‘비마가 나간 통로 쪽이군.’
마른 비가 동굴에 침투하여 처음으로 마주친 갈림길.
무언가가 바라본다고 느꼈던 건 착각이 아니었다.
어둠이 도사린 그곳에는 야투에 있던 것과 같은 마라가 웅크리고 있었다.
‘손이 부족하다. 나는 진 마라를 살려야 하고, 비마는 야만인을 쫓아야 해. 사영은 어쩌지?’
우선순위를 골라야만 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가장 중요한 건 진 마라이며, 둘째는 부화장을 목격한 침입자를 잡는 것이었다.
여긴 절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곳이니까.
사영이 그랬듯, 환마는 마른 비가 사영을 구하러 왔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홧김에 비마를 쫓아왔거나, 사영을 죽이기 위해 따라왔다고 추측할 뿐.
‘사영을 잡는 건 뒤로 미룰 수밖에.’
무슨 바람이 불어서 도망을 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놈은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인질이 이쪽 손에 있으니까.
사영을 놔준 게 먼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환마는 진 마라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
그 시각, 마른 비는 산으로 나가는 출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별비의 후각은 몇 개 안 되는 출구 중 하나를 정확히 짚어냈고, 협로를 거슬러 오른 둘은 순식간에 출구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문제는 거기부터였다.
동굴의 소란을 감지한 외부의 병력이 진입한 것이다.
마교의 무인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통로는 좁았다.
아무리 어스름의 은신술이 뛰어나도 존재 자체를 지울 수는 없으며, 별비의 덩치만으로도 꽉 차는 통로에서 적들과 부딪히는 건 필연이었다.
적들이 다가오는 걸 보고, 마른 비는 돌파할 결심을 굳혔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야! 가자, 별비야!』
스르륵―
협로로 들어선 마교의 무인들이 주춤했다.
도약 한 번이면 닿을 거리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족의 청년.
그들의 눈이 커지는 순간, 마른 비는 돌진했다.
쾌애애액―!
역시 급습에 이만한 기술은 없다.
올빼미 사냥이 쏘아지고, 명치가 꿰뚫린 적들이 무너졌다.
통로가 좁아서 뒤쪽에 있는 자들까지 팔이 닿지 않자, 마른 비는 쓰러지는 적들을 밀치며 전진했다.
‘수평, 소낙비!’
빠바바바박!
마른 비는 두 발을 앞으로 내민 채 돌진했다.
늘씬한 두 다리가 협로에 들어선 적들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커헉!”
“크악! 저, 적이…!”
앞선 동료들이 기습을 당하고 쓰러질 때쯤, 뒤를 따르던 마교의 무인들은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매서운 눈이 전수한 발차기는 검까지 통째로 부러뜨리며 적들의 가슴뼈를 짓이겼다.
꽉 막힌 협로가 한순간에 뻥 뚫렸다.
『이제 기습은 안 통할 거야! 힘으로 뚫어야 해!』
마른 비의 생각이 맞았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외부의 경비병들은 내부의 소란을 곧바로 알아챘다.
“뭐냐?!”
“안에 무슨 일이…?”
〔내가 먼저 간다!〕
순수한 돌파력이라면 별비가 한 수 위다.
외부의 경비병들이 동굴을 들여다볼 때, 새하얀 섬광이 뛰쳐나왔다.
“커허허헝!”
푸화학―!
피가 튀고, 살점이 흩날린다.
별비의 발톱이 긋고 지나간 경로에 남아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인 석양 아래, 부러진 뼈와 박살 난 가면이 민들레 씨처럼 흩날렸다.
“무… 뭐냐! 이건?”
“희, 흰 호랑이…?!”
평소와 다름없이 경계를 서고 있는데, 갑자기 튀어나와 동료들을 학살하는 백호.
마교의 무인들은 그처럼 거대하고 강인한 짐승을 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화탄이 터졌다면 덜 놀랐으리라.
노을을 등진 별비의 모습은 일시적으로 사고를 마비시킬 만큼 강렬했다.
“꾸, 꿈인가?”
그래서 눈을 비빈 경비병을 탓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별비에게 시선이 쏠린 사이, 마른 비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타아앗!”
이제 소리를 죽이는 행동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른 비는 힘차게 기합을 지르며 적들을 휩쓸었다.
동굴에서 튀어나온 그는 허공을 빙글빙글 돌아서 적들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꽈르르릉―!
속도전.
그렇다면 역시 매서운 눈의 기술이 적합하다.
확산형 불벼락이 작렬하자 별비를 보고 있던 마교 무인들의 머리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과거 대리에서 점창의 이, 삼대 제자들을 돌파하던 시절과는 다르다.
설익은 다섯 명을 쓰러뜨렸던 그때와 달리, 훨씬 강한 마교 무인 여덟 명이 일합에 쓸려나갔다.
마른 비는 착지와 동시에 반대쪽 발로 지면을 쓸었다.
“하앗!”
빠바바박! 퍼걱! 뿌악!
초저공을 휩쓴 발차기.
자연기를 주입한 철골은 병장기를 수련하는 이들의 육신으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고, 마른 비의 다리에 걷어차인 마교 무인들의 발목이 성냥개비처럼 부러졌다.
끔찍한 비명이 터지고, 별비에게 시선을 빼앗겼던 적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기습의 효과를 살릴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휘이이익―!
장소성이 울리고, 경비병들이 침입자의 출현을 알렸다.
“적…! 살수가 아니다! 야투를 부순 야만인이야!”
“적은 둘이다! 짐승도 같이 있어!”
산에 퍼져 있던 병력이 운집하기 시작했다.
낮게 가라앉았던 기운들이 들불처럼 일어나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별비가 적들과 대치하는 사이, 마른 비는 주변을 살폈다.
‘동쪽…!’
천만다행인 건 협로의 출구가 동쪽에 나 있었다는 점이다.
응천부로 가는 길에 가까운 쪽.
저 멀리에 별비가 방향을 틀어서 강으로 뛰어들었던 숲이 보였다.
문제는 거기까지 가려면 산에서 내려가서 개활지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인데….
‘어쩔 수 없지. 방법이 없어.’
적을 돌파하고, 죽을힘을 다해 뛸 수밖에.
이제부턴 자신이 쌓아 올린 힘과 하늘이 허락한 운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쪽이다! 쫓아라!”
방금 뛰쳐나온 협로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부의 경비병들도 쫓아온 모양이었다.
마른 비가 눈짓하자 별비가 훌쩍 뛰어올랐다.
“커헝!”
꽈아아앙!
별비가 출구의 상단부를 후려치자 암석이 무너져 내렸다.
협로를 틀어막은 별비가 옆에 서자, 마른 비가 적들을 둘러봤다.
“마교.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중원에서는 공포의 대명사라며?”
어느새 진형을 갖춘 마교의 무인들은 일정 거리를 둔 채 달려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사방에서 지원 병력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속도전을 상정했던 마른 비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동굴 안에 있는 거, 모르지 않겠지? 다들 알면서도 저걸 지키고 있던 거야. 인간의… 심장으로 만든 걸 말이야.”
그래서?
뭘 어쩌라는 말이냐.
마교 무인들의 눈빛이 말하는 바였다.
그걸 본 순간, 마른 비는 확실히 마음을 정했다.
“소교주가 이끌던 자들과 당신들은 달라. 싸잡아서 마교라고 불리는 게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당신들은…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 돼.”
숲을 헤치며 지원 병력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환마와 비마가 없지만, 지금 모인 자들만으로도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적들은 강했다.
마른 비는 감당이 가능할 정도의 아슬아슬한 수위를 가늠하고 있었다.
“오늘, 나를 놓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살아서 돌아가면 너희는 앞으로 무척이나 피곤해질 테니까.”
지금이다!
이 이상 모이면 뚫을 수 없다.
마른 비는 돌파 가능한 한계치까지 적들을 끌어모은 후에 움직였다.
“지금부터 마교의 명성을 시험해보겠어. 날 막아봐.”
오만한 도발을 들은 마교의 무인들이 발작하려는 찰나, 마른 비가 먼저 입술을 뗐다.
“막을 수 있다면.”
마른 비의 말이 끝나는 순간, 하늘이 내린 영수의 포효가 터졌다.
“커허허허헝!”
“컥…!”
“크학!”
적들의 심혼을 짓누르는 울부짖음!
귀를 막으며 주저앉았던 마교의 무인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 철벽같은 등이 진형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