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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세록 남천제-236화 (236/463)

236화

“이건 또 뭐냐?! ……사영?!”

장력은 이미 쏘아졌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야만인 놈과, 어지간한 검대보다도 강력한 영수가 짓쳐오고 있었다.

비마는 양손에 집중한 내력으로 마른 비와 별비를 요격 중이었다.

“카아아악!”

회수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공격하면 야만인과 백호는 피떡으로 만들 수 있지만, 사영의 칼날에 목숨을 잃고 말 테니까.

빌어먹을 살수 놈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사영! 네놈이 왜?!”

비마는 마른 비의 발차기를 장력으로 상쇄하고, 별비의 앞발은 상체를 꺾어서 흘렸다.

남은 한 손을 사영의 검과 마주치니, 요란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큭…!”

사영은 비마와 부딪친 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네가 왜 이놈들을 돕는 거냐! 미친 게야?!”

위기를 넘긴 비마가 눈을 부라렸다.

마른 비가 사영을 구하기 위해 쫓아왔다는 걸 비마가 알 리 없었고, 그렇기에 그는 사영이 마른 비의 편을 드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마른 비는 비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당연한 것을. 그보다 동굴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리던데, 일부러 그런 거냐? 날 탈출시키기 위해서?”

위기의 순간, 환마와 비마가 광장으로 향해서 사영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보가 아닌 이상 마른 비가 소란을 일으켰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사영은 고마움의 크기만큼 마른 비가 자신을 위해 무리를 한 걸 탓하고 있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게 있었거든. 그 이야기는 나중에. 일단 저자를 쓰러뜨리자.”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다.

곧 마교의 지원군이 들이닥칠 테니까.

마른 비의 말을 들은 비마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외쳤다.

“쓰러뜨려? 나를? 쓰레기가 주제를 모르는구나! 잡것들 세 마리가 모였다고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으냐!”

빈틈을 내주지 않는 한 자신이 패할 리는 없다.

놈들은 전부 부상을 입었고, 체력과 기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이런 놈들에게 진다면 칠대 장로라는 직함을 내려놓아야 하리라.

비마는 양손 가득 내력을 불어넣으며 외쳤다.

“사영! 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이걸로 네가 지키려는 자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너 때문이다! 네가 그를 죽인 것이야!”

공격을 준비하던 사영이 움찔했다.

대항하기로 결심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인질의 안위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흔들리는 그를 다잡은 건 마른 비였다.

“듣지 마! 알고 있잖아. 말을 듣는다고 해서 인질을 놔줄 놈들이 아니라는 거. 살아남은 후에 그 사람을 구하면 돼! 싸움에 집중해!”

비마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뭐냐? 네가 인질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지?”

“알 바 없잖아.”

동그래졌던 비마의 눈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렇군. 너구나. 네놈이 사영을 꼬드긴 거였어! 며칠 전에 목숨 걸고 싸웠던 놈들이 어쩌다가 이런….”

“그것도 당신이 알 바 아니지.”

간단하게 비마의 말을 자른 마른 비가 사영에게 말했다.

“이길 자신이 있다면 우리에게 당장 달려들었을 거야. 먼저 움직이지 않는 건 이자도 우리 셋을 동시에 상대하는 게 부담스럽단 뜻이지. 집중해. 이길 수 있어.”

“하! 부담? 어디서 씨알도 안 먹힐 개소리를…!”

마른 비는 비마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았다.

그는 남은 자연기를 박박 긁어서 비마에게 돌진했다.

“협공해야 해! 나와 별비가 달려들 테니 틈을 노려!”

요 며칠간 암습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지만, 마른 비의 진실한 힘은 백병전에서 드러난다.

동굴에서 사영이 짐작했던 것처럼, 그는 정면으로 적을 분쇄하는 자였다.

자연기를 둘러친 마른 비가 훌쩍 뛰어올랐다.

“타앗!”

솔잎 털기.

중단을 노린 발차기 연타는 눈부셨다.

하지만 상대는 지금껏 싸운 적 중에 가장 강한 자였다.

“발? 감히 노부에게 각법으로 덤빈다고? 까불지 마라! 설익은 풋내기가!”

공교롭게도 비마의 장기는 발차기였고, 마교 제일의 경공 고수답게 그의 발놀림은 눈부셨다.

빠바바바박!

비마는 폭발하듯 쇄도하는 솔잎 털기를 오른발 하나로 모조리 상쇄했다.

‘이럴 수가! 멀쩡해?!’

처음이다.

교룡갑을 두른 철골과 부딪히고도 멀쩡한 상대는.

오히려 마른 비의 다리가 뒤로 밀리고 있었다.

‘내공의 차이 때문에…!’

마른 비가 달려든 순간, 별비도 가만있지 않았다.

“크허헝!”

자연기를 머금은 발톱.

무지막지한 힘을 머금은 앞발은 비마라도 맞받기 부담스러웠다.

“미물 따위가 어디서 감히…!”

하지만 비마는 당황하지 않았다.

강한 힘에 굳이 힘으로 맞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술.

비마는 별비의 앞발을 교묘하게 흘렸고, 텅 빈 가슴을 후려쳤다.

콰앙! 하는 충격음과 함께 별비의 육중한 몸이 뒤로 날아갔다.

고강한 내력과 노련한 기술.

완숙에 이른 타격이었다.

후우웅―

와족 정권, 바위 부수기.

곧고도 강렬한 권격이 뿜어졌지만, 지금은 힘이 모자랐다.

비마는 양손을 놀려 날아드는 주먹의 궤도를 꺾었고, 손가락을 세워 팔을 찍었다.

피피핏―!

점혈.

뛰어난 점혈은 절정에 이른 지법과 같다.

비마의 손가락이 마른 비의 팔을 찍자 핏물이 터져 나왔다.

“케케. 그 팔은 이제 쓰지 못할 거다. 겁도 없이 그런 단순한 공격을….”

“하압!”

마른 비는 웃기지 말라는 듯 기합을 넣었고, 그 순간 팔에 침투했던 비마의 내공이 외부로 뽑혀 나갔다.

육신에 침투한 이물질을 걷어내는 자연기의 효능은 전투 중에도 충실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아니?!”

계속 놀라고 있어라.

놀라다가 죽게 만들어 줄 테니.

뼈창, 무소의 뿔, 악어 이빨…!

마른 비만의 독문 기술들이 불을 뿜었다.

자연기가 모자라지만, 충돌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마른 비는 직접 맞부딪히는 걸 피하며 철저하게 빈틈을 노렸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동작들은 처음부터 하나의 투로인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적의 움직임을 묶기 위한 노림수가 담겨 있었다.

비마는 힘의 우위를 지니고도 연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능숙해! 이 애새끼, 싸움에 능숙하다! 어떻게 이 나이에 이런 노련함을…!’

비마가 마른 비가 거쳐 온 길을 짐작이나 할까.

목숨을 건 실전은 하늘이 내린 재능을 꽃피웠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었다.

비마는 처음으로 마른 비와 별비의 기력이 온전했다면 자신이 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악! 웃기는 소리! 말도 안 된다!”

비마가 마음에 일어난 두려움을 억누르는 사이, 살수의 검이 내리꽂혔다.

“컥…!”

사영의 검은 비마의 등을 긁었고, 비마가 주춤하는 순간 별비의 이빨이 어깨의 살점을 도려냈다.

“커헝!”

“크윽! 이… 이…!”

새파란 핏덩이들에게 이 무슨 수치란 말인가!

비마가 분노하자 그의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까불지 마라! 애새끼들아!”

후아아악―!

마기가 휘몰아치고, 새카만 기운이 응집된다.

양손을 단전 앞에 모은 비마가 울부짖었다.

“비천수라공(飛天修羅功)!”

비마가 양팔을 펼치는 순간, 강맹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절묘한 합공으로 비마를 몰아넣던 셋이 한꺼번에 튕겨 나갔다.

“컥!”

“크항…!”

그래, 진작 이랬어야 했다.

놈들은 기력이 부족하고, 그렇다면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된다.

급작스럽게 십성의 내공을 끌어올린 비마는 몸에 무리가 갔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다.

“아주 제법이야. 솔직히 놀랐다. 하지만 그 몸으로 나를 이기려 들다니 꿈도 야무지구나.”

모든 힘을 개방한 비마는 진정한 마인(魔人)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마교 서열 7위.

은퇴한 거마(巨魔)들을 제외한 현역 중에서 일곱 번째 서열을 차지한 노마는 무지막지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힘겹게 고개를 든 마른 비의 얼굴에 초조함이 어렸다.

‘힘이 부족해. 시간이 없어! 어떻게 하면 저자를 쓰러뜨릴 수 있지?’

그 순간, 마른 비는 잊고 있던 최후의 수단을 떠올렸다.

중원의 분위기에 젖어 와족 고유의 전투술을 잊고 있었는가.

그믐은 위급한 상황이 오면 쓰라고 ‘그걸’ 건넸었다.

몸을 일으킨 마른 비가 사영과 별비에게 말했다.

『오십. 오십을 셀 동안만 나를 지켜줘. 그럼 놈을 이길 수 있어.』

사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십? 무리한 주문이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영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몸을 추슬렀다.

마른 비의 의도를 짐작한 별비가 슬쩍 몸을 움직여 비마의 시선을 차단했다.

“커허허헝!”

별비가 우렁차게 포효하며 달려들고, 사영이 그림자를 움직여 비마를 묶었다.

비마는 코웃음을 치더니 내력을 개방해 힘으로 영술을 부수고, 별비의 발톱도 맨손으로 받아냈다.

“클클. 무슨 작당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힘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 몸으로 달려든 순간, 너희에겐 지옥문이 열린 거야.”

콰아악!

“크앙―!”

별비의 목을 붙잡은 비마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대로 목뼈를 부러뜨릴 작정이었다.

별비는 컥컥대며 발톱을 휘둘렀지만, 힘의 근원인 자연기가 부족했다.

“날 잊은 게 아니냐!”

사영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지만, 비마는 그의 검을 간단히 쳐냈고, 남은 손으로 그의 목도 낚아챘다.

“케케. 잊었을 리가. 넌 쉽게 죽이지 않아. 온몸에 칼집을 내서 소금에 절여주마. 땡볕 아래서 서서히 죽어가는 거야. 넌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우릴 배신한 걸 후회할 거다.”

“개… 소리.”

푸욱!

품에서 꺼낸 단도였다.

사영은 남은 힘을 끌어모아 심장을 찔렀지만, 비마의 피부에 생채기를 내는 데 그쳤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클클. 이 독기…. 끝까지 몸부림치는 처절함이 그분의 눈을 돌린 거겠지. 쓰레기지만, 확실히 아까운 놈이야. 한데 동료들이 죽어가는 데 야만인 놈은…?”

그 순간, 막대한 기운이 폭발했다.

자연기 특유의 청정한 느낌이 아닌, 강렬하고도 난폭한 기운.

고개를 든 마른 비의 얼굴에서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번쩍였다.

“무… 뭐냐! 저건?”

십성의 비천마공(飛天魔功)을 위압하는 기세.

와족 비전의 전투화장이 빛을 발하니, 광전사가 눈을 떴다.

“그들을 놔줘.”

콰앙!

번갯불.

극속의 기동은 평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비마의 코앞에서 나타난 마른 비는 일행을 붙잡은 팔을 후려쳤다.

뿌드득!

“카학…!”

비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사영과 별비를 놓쳤다.

마른 비는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하앗!”

받아봐라.

전투화장을 발동한 채 펼치는 그믐의 살상기!

일점에 집중한 중선오격이 빛을 뿜었다.

와지직!

‘막았어?!’

비마는 양팔을 들어 타격점을 방어했다.

다시는 팔을 쓸 수 없을 만큼 뼈가 산산조각 났지만, 그는 웃었다.

“크… 클클! 그게 최후의 발악이냐?”

후아아악―!

내력이 집중되고, 마교 제일의 각법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꿈틀댄다.

비마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 독문 각법, 비천수라각(飛天修羅脚)이 작렬의 순간을 염원하고 있었다.

‘죽는다…!’

마른 비의 눈이 커지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순간!

‘……어?’

시간이 느려졌다.

애뢰산에서 검치호에게 쫓겼을 때처럼 주변 모든 풍경이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전투화장이 촉발한 각성과, 사선의 경계에 선 감각은 마른 비를 한 차원 앞선 시간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막을 필요도 없어. 피하면 돼.’

비마의 다리에는 스쳐도 즉사할 만큼의 마기가 넘실거렸지만, 굼벵이도 아니고 저런 걸 맞아줄 리 없다.

‘슬쩍 옆으로 피하면… 얼레?’

이상하다.

만물이 정지한 듯 느리게 움직이는데, 그건 마른 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것들보다 빠를 뿐, 깊은 수중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마른 비는 육신을 짓누르는 압력에 저항하며 겨우 한 걸음을 뗐고, 그 위치는 비마의 코앞이었다.

‘주먹을 뻗기도 힘든데?’

느낌으로 알겠다.

곧 이 이상한 상태가 풀리리라는 걸.

마른 비는 그 전에 한 방을 먹여야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우! 답답해!’

겨우겨우 주먹을 뻗었지만, 거리가 나오지 않는다.

마른 비의 정권이 건드리듯 비마의 가슴에 닿았을 때, 마법이 풀렸다.

슈아아악―!

정지했던 시간이 흐르고,

덜컥!

강풍에 밀리듯 몸이 끌렸다.

퀴우우우웅―!

엄청난 고성이 귓전을 때렸을 때,

퍼어어억!

비마의 가슴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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