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세록 남천제-260화 (260/463)

260화

“크아아앙!”

별비는 고통에 찬 울음을 토하며 씹던 걸 뱉었다.

여느 다람쥐보다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있어서 살 오른 녀석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람쥐의 배 속엔 철로 된 구슬이 들어 있었고, 그걸 씹는 순간 날카로운 강침이 튀어나왔다.

수많은 철 바늘이 부드러운 입속을 헤집었고, 끔찍한 통증을 안겼다.

상상도 못 한 급습을 당한 별비는 컥컥대며 구슬을 토해냈다.

철 구슬에 달린 가시에선 피와 함께 녹색의 액체가 진득하게 묻어났다.

“싱겁군. 한 방에 끝인가?”

나무 꼭대기였다.

붉은색의 어피를 두른 인간이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이 정도로 가까워질 때까지 눈치채지 못하다니?

기척을 지우는 데 통달한 인간이었다.

자신을 공격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별비는 함정을 판 게 저놈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놈의 대갈통을 부수기 위해 날아오르려는 찰나, 별비는 앞발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크랑…?!”

앞쪽으로 휘청인 별비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지독한 비린내와 함께 시야가 흔들린다.

매우 익숙한 느낌.

독이었다.

“기를 다룰 정도의 영수니까 말도 알아들으려나? 네가 씹은 건 내가 특별히 제작한 구슬이다. 냄새에 예민한 놈들을 잡기 위해 지금처럼 먹잇감에 먹여서 던져두지. 짐승들이 이상 증세를 보이는 통에 일이 훨씬 쉬워졌어.”

진청은 희희낙락한 표정이었다.

그의 어조에선 너무 쉽게 사냥이 끝나서 싱겁다는 느낌이 묻어났다.

“광동성 청원(淸遠) 지역에만 서식하는 맹독 개구리에게 추출한 독이다. 코끼리도 단번에 허물어뜨리지. 뭐에 죽는지는 알고 가라고.”

진청은 손가락을 들어서 숫자를 셌다.

“자, 얼마나 버티는지 볼까? 셋 세면 뒈집니다. 하나.”

손가락 하나가 접혔다.

“둘.”

그때였다.

머리를 흔든 별비가 걸쭉한 무언가를 뱉었다.

“세….”

번쩍 올라온 대호의 머리에서 번쩍이는 눈빛.

진청은 무언가 잘못 됐단 걸 느꼈다.

‘위, 위험하다!’

진청은 본능적으로 다른 나무를 향해 뛰었다.

“커허헝!”

맹독 개구리의 독?

주절대는 꼴을 보니 나름 엄선한 모양인데, 이 정도 독기는 독림에서 널리고 널린 수준이다.

별비는 침 한번 뱉는 걸로 독을 말끔히 해소했고, 거세게 날아올랐다.

꽈아아앙!

앞발 한 방에 진청이 자리 잡았던 거목은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커흥!”

감히 피해?

기척을 지우는 능력만큼이나 감각은 제법 있는 놈이다.

별비는 공중에서 몸을 뒤틀었고, 자연기를 뒷발에 응집하여 터뜨리듯 박찼다.

수직으로 솟구쳤던 대호가 허공에서 궤도를 수정하여 달려드는 모습은 심장이 오그라들 만큼 전율적인 광경이었다.

“마, 마, 막아라!”

너무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진청은 언청이처럼 더듬으며 외쳤다.

“카핫!”

나무 꼭대기에 포진해 있던 사냥꾼 네 명이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검, 도끼, 창, 낫…….

다양한 무기들은 제각각의 묘용을 지니고 있었고, 사냥감으로 하여금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지금까지는.

퍼퍼퍼펑!

‘뭐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가지 위에 안착한 진청은 눈을 끔벅였다.

대호의 주변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핏물.

고르고 고른 수천의 상위 엽사 네 명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새하얀 대호는 방해꾼들을 일격에 쳐 죽이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크헝!”

인간 머리통의 세 배는 될 법한 앞발이 하늘을 가렸다.

진청은 이를 악물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꽈아아아앙!

‘이런 미친…! 내가 꿈이라도 꾸는 건가?!’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는 길짐승이라니?

백호의 움직임은 절정의 무인이 펼치는 경공과 같았다.

힘? 그건 더 끔찍하다.

앞발에 맞은 거목이 가루가 돼서 흩날리고 있었다.

백호는 자신이 있던 자리를 지나쳐 뒤편 나무에 수직으로 착지했고, 잔뜩 웅크린 채 떨어지는 자신을 노려봤다.

장대한 몸집 한가운데서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를 본 순간, 진청은 깨달았다.

저건 지금껏 자신이 보았던 생물과는 전혀 다른 무엇이라는걸.

‘저 짐승! 힘을 숨겼어?!’

단순히 기를 다루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고도로 훈련된 암살자가 진신전력을 숨기듯.

숙련된 무인이 의도적으로 내공의 일부만을 내비치듯, 백호는 외부로 흘러나가는 기를 조절했던 거였다.

순서를 정해서 사냥한다?

오판도 그런 오판이 없다.

저건 엽장 넷이 동시에 달려들어야 승산이 보일까 말까 한 괴물이었다.

“하앗!”

진청은 추락하며 품에 숨겼던 독분을 모조리 허공에 흩뿌렸다.

별비가 다가오는 걸 막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별비는 코웃음 치며 나무줄기를 박찼다.

번쩍! 하며 내리꽂히는 백색 섬광.

진청은 그제야 저 범에게는 어떤 독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촤라라락―!

“잡앗!”

별비의 거체가 엄습하기 직전, 진청은 자신에게 날아온 무언가를 붙들 수 있었다.

반사적으로 그걸 잡자, 진청의 몸이 곡선을 그리며 별비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사슬? 서유화…!’

멀리서 지켜보던 서유화가 진청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별비의 공격이 빗나가자마자 우렁찬 목소리가 숲을 울렸다.

“선창잡이! 투창!”

쾌애애애액―!

맹각의 목소리다.

수천 사냥꾼들 중 최고의 창잡이만으로 구성된 사냥조.

사냥감에게 최초의 일격을 날리는 선창잡이들이 창을 집어던지자, 그 궤도를 따라 본대의 창이 하늘을 날았다.

“오중첩! 투망!”

곧바로 창무군의 목소리가 바람을 가르고,

파라라락―!

다섯 겹으로 중첩된 쇠그물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퍼퍼퍼퍼퍽!

“크하앙!”

투창을 전문적으로 연마한 창잡이들의 공격이다.

스무 자루의 철창은 한 자루도 빗나가지 않고 별비의 몸에 꽂혔다.

“당겨라!”

별비가 고통에 울부짖는 순간, 특수 제작된 쇠그물이 별비의 몸을 덮었다.

창무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스무 명의 투망꾼들은 별비를 사이에 두고 빙글빙글 돌았고, 그물에 연결된 쇠줄이 단단하게 휘감겼다.

그리고 그들은 곧 전력으로 경공을 펼치며 뒤로 내달렸다.

콰아악!

거대한 곰조차 압살하는 포획법이다.

바짝 조여든 그물이 별비를 옭아맸다.

설상가상으로 그물은 몸에 꽂힌 창들을 건드렸고, 상처를 더욱 깊게 후벼 팠다.

“뭣들 하고 있나! 쏴라!”

아직도 남은 게 있는가.

이번엔 한숨 돌린 진청의 목소리였다.

별비의 급습을 받고 우왕좌왕했던 진청의 사냥조가 나무 꼭대기에서 활을 겨눴다.

한 번 박히면 살점을 통째로 뜯어내야만 뽑을 수 있도록 중간을 비우고 뾰족하게 갈아낸 화살촉이다.

엽사들이 활시위를 당기려는 순간, 별비가 분노에 찬 포효를 토했다.

“크아아앙!”

확실히 알겠다.

이놈들이 자신을 잡기 위해 작심하고 왔다는걸.

그렇다면 전력을 다해 몰살할 뿐.

별비는 그물의 압력을 이겨내며 뒷발만으로 버티고 일어섰고, 앞 발톱을 그물에 걸었다.

그리고 후려치듯 앞발을 좌우로 당겼다.

그물을 당기던 사냥꾼들이 맥없이 끌려가며 하늘을 날았다.

“크앙?”

안 찢겨?

좋다. 이래도 버티나 보자.

발톱에 자연기를 밀어 넣은 별비가 허공을 세로로 긁었다.

한철로 특수 제작한 다섯 겹의 그물이 종잇장처럼 찢기고, 허공으로 치솟았던 사냥꾼들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커허헝!”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과 그 아래 웅장하게 버티고 선 거수.

푸르게 번쩍이는 안광과 발톱은 한계를 초월한 영수의 증거일지니.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절대적인 포식자의 위용은 겁대가리를 상실한 사냥꾼들을 사냥감의 위치로 끌어내렸다.

별비의 포효에 노출된 수천의 엽사들은 공격은커녕 후들거리는 다리를 바로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쏴… 쏴라….”

대호를 마주친 토끼처럼.

육신을 짓누르는 공포 앞에서 진청이 겨우겨우 입술을 뗐을 때였다.

후아아악―!

별비는 뒷발로 버티고 선 자세 그대로 한 쌍의 앞발을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휘둘렀다.

하얀 발톱.

열 줄기 무형의 발톱이 번쩍인 순간, 나무 위에서 활을 겨누던 사냥꾼들은 영문도 모르고 갈가리 찢겼다.

후두둑―.

비처럼 쏟아지는 핏물과 육편은 진청의 새하얀 꿈을 붉게 적셨다.

혼신을 다해 키운 엽사들이 장기를 펼쳐 보지도 못하고 전멸하자, 진청은 한순간 이성을 잃었다.

“아, 아아…….”

그는 손을 앞으로 뻗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아, 안 돼……. 이러면 수천을…. 그, 그분의 지령을…….”

모두가 넋을 놓은 상태라 아무도 그 말을 듣지 못한 게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맹각과 창무군이 버럭 소리쳤다.

“다들 정신 차려라! 당장 몸을 빼!”

“여기선 안 된다! 서유화! 네 사냥터로 이동한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서유화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품안에 손을 넣었다.

“이쪽으로 달려! 따로 싸우다간 전멸한다! 같이 움직여야 해!”

하지만 별비가 도주하려는 적들을 가만 놔둘 리 없었다.

기둥 같은 앞발이 투벅! 하며 땅에 닿자, 달리던 엽사들은 소름이 끼쳤다.

그 소리가 곧 시작될 살육의 전조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크르르…….”

마음껏 발버둥 쳐 봐라.

너희는 오늘 여기서 전부 몰살할 테니까.

별비가 엽사들을 쫓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줄 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야! 여길 봐! 이거나 먹어라! 괴물아!”

서유화는 무언가가 꽉 차 있는 구슬 세 개를 별비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구슬이 별비에게 접근한 순간, 그녀의 손에서 비도가 날았다.

“합!”

퍼퍼펑!

별비는 흩날리는 가루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뭘 뿌린 건지 안 봐도 훤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학습 능력이 없나?

독 따위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아직도….

“카항?!”

순간, 별비는 콧속을 훅 치고 들어오는 강렬한 향에 인상을 찡그렸다.

아릴 만큼 맵고, 달큼했다가, 시큼해지는가 하면,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다시 시원해진다.

후각이 받아들일 수 있는 냄새를 총망라한 그것은 향의 향연이었다.

인간이라면 인상 좀 찡그리고 말았겠지만, 인간의 수백 배에 달하는 후각을 지닌 별비에게 그건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만큼의 자극이었다.

“날 따라와! 우리가 준비한 사냥터로 간다! 거기가 아니면 승산이 없어!”

살아남은 육십여 명의 엽사들은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서유화는 맨 앞에서 그들을 인도하며 초조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마웅! 그 대머리는 저걸 상대로 살아남은 거야?! 고작 스무 명 남짓한 병력을 데리고?”

맹각도 연신 뒤를 힐끔거리며 대꾸했다.

“마웅이 상대한 건 붉은 늑대일 거다! 백호는 모습을 드러냈을 뿐 덤비진 않았다고 했어!”

“엽사들은 붉은 늑대의 기운이 더 컸다고 했지. 믿을 수가 없군! 저런 게 또 있다니…….”

창무군은 불신 어린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의뢰에 실패하고 되도 않는 변명이나 늘어놓는다고 생각했는데, 운남에 다녀온 엽사들의 증언은 진짜였다.

그들은 저것과 맞먹는 괴물의 새끼를 건드리고도 무사히 귀환한 마웅의 사냥조가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크허헝!”

숲을 쩌렁쩌렁 울리는 백호의 울음소리.

후방 저 멀리서 소름을 유발하는 맹수의 기척이 폭발적으로 쏘아졌다.

“빌어먹을! 온다!”

시퍼런 야수의 발톱이 머리통을 부수기 위해 당장이라도 날아들 것 같다.

수천의 엽사들은 중원 최고의 사냥꾼이란 칭호가 무색하게도 샛노래진 안색으로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