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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세록 남천제-309화 (309/463)

309화

콰차차창―! 챙강! 쩌저정―!

마른 비가 머무는 숙소는 밤이 깊도록 고요해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요란해졌다.

지칠 줄 모르고 싸워대는 두 사람 때문이었다.

“카아~하하하! 삐약아! 기세 좋게 덤비더니 고작 이것뿐이냐?! 이래 가지고 지렁이나 잡겠어? 누가 깡촌 아니랄까 봐 절강성 수준을 알 만하구나!”

철중구가 함윤에게 박치기를 날리며 외쳤다.

코에서 쌍코피가 터졌지만, 함윤은 물러서지 않았다.

두 눈 가득 독기를 담고 더욱 거세게 달려들었다.

“닥쳐! 싸움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야! 끝까지 가면 네 뚝배기 깨지는 소리가 얼마나 찰진 지 알 수 있을 거다!”

함윤의 투지는 칭찬할 만했지만, 철중구의 노련함은 그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쐐애애액―!

철중구는 함윤의 도를 가볍게 흘렸고, 또 한번 코를 들이받았다.

“크헉…!”

이번엔 꽤 충격을 받은 듯 함윤이 비틀거렸다.

철중구는 피를 철철 흘리는 그를 보며 킬킬댔다.

“삐약아. 너 같은 건 호남에 오면 술래잡기하는 애들한테도 처 맞는다. 살아 숨 쉬는 좟밥 찌끄래기라고! ‘아아, 내가 존나 허약하구나!’ 깨닫고서 바람에 휘날리는 먼지처럼 사라지는 거지!”

분통 터지는 도발이었다.

하지만 실력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었다.

함윤이 할 수 있는 건 의식이 날아갈 때까지 덤비는 것뿐이었다.

“뒈져어어어어!”

“싫어어어어어!”

철중구는 함윤의 필살초조차 간단히 피해버렸다.

그리고 광인처럼 웃으며 발차기를 날렸다.

“먼지처럼 날아가라! 카아하하!”

배를 걷어차인 함윤이 붕 떠올랐다가 나뒹굴었다.

그는 튕기듯이 일어났지만, 표정이 안 좋아지더니 먹은 걸 모조리 게워냈다.

“우, 우웨에에엑!”

“윽! 디러…! 병아리가 모이를 뿜네.”

벌써 몇 번은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얻어맞았다.

하지만 함윤은 피를 한 바가지 토하고도 쓰러지지 않으며 철중구를 노려봤다.

‘호오… 요 꼬마. 상당히 쓸 만한데?’

다른 이들이 자신을 볼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제대로 된 사문이나 사부가 없는 길거리 출신이 강해지려면 이런 깡다구라도 있어야 한다.

십중팔구는 싸움판에서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지만, 살아남으면 강해진다.

바로 자신처럼.

철중구는 함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더, 더해…!”

만신창이지만 눈빛 하나만은 기가 막히다.

제대로 다듬으면 굉장한 싸움꾼이 될 기질이 다분했다.

지금이라도 야투에 내보내면 당장 상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리라.

함윤을 보는 철중구의 눈은 원석을 발견한 채공(採工)의 그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투도……. 엄청나군. 대장, 빨리 뻗으쇼. 안타깝지만 아직은 못 이겨. 다음은 우리 차례요.”

함윤이 데리고 다니는 놈들도 똑같았다.

자신들의 대장이 쪽도 못 쓰고 깨지는 걸 봤으면서 투지를 불태운다.

이런 놈들이 한데 몰려다니는 건 정말 희귀한 일이었다.

철중구는 함윤 패거리를 만난 게 하늘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야. 너네 나랑 내기 하나 하자.”

“내기? 무슨 내기?”

철중구는 도를 어깨에 걸치고 씨익 웃었다.

“나랑 너희 중에 누가 먼저 뻗는지. 나 혼자 상대해줄 테니까 너네가 먼저 뻗으면 전부 내 밑으로 들어와라. 그 반대면 내가 너희 막내로 들어가지.”

함윤 패거리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그들은 전원이 크고 작은 거리의 대장노릇을 하던 싸움꾼들이었다.

피 끓는 사내들이었고,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남자들이었다.

눈이 돌아간 장정들이 여기저기서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 전부를 너 혼자 상대하겠다고? 미친 새끼가 어디서 허세를…!”

“내가 먼저 한다! 저 새끼 모가지를 날려버리겠어!”

“곱게 자란 호남의 도련님이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덤벼라, 이 새끼야! 단칼에 죽여주마!”

마른 비의 밑에 들어간다는 계획 따윈 뇌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들은 당장 철중구를 죽여 놓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걸렸어! 니들은 내 꺼다, 자식들아!’

철중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야! 규야! 네가 증인 겸 심판이다! 거기서 똑똑히 보고 있어!”

밤이 깊어서 다른 이들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고, 구경꾼은 여규뿐이었다.

부친을 잃고 잠들지 못하던 그는 얼떨결에 관전자가 되었고, 그들의 열기에 감화되어 슬픔을 이겨내는 중이었다.

상황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그 와중에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천하의 꼴통 집단이 하나 탄생하겠네…….’

여규가 슬픈 눈으로 끄덕이자, 철중구는 아차 싶었는지 움찔댔다.

하지만 곧 일부러 더 힘차게 외쳤다.

슬픔을 어서 이겨내라는 듯이.

“조오오~았어! 덤벼라! 새끼들아! 니들은 오늘부로 내 꺼다!”

거친 함성과 육두문자, 피 끓는 투기가 뒤엉켰다.

사내들의 피와 땀이 어우러지며 황성의 밤을 수놓았다.

사도련 최강의 무투파 집단이 결성된 날이었다.

마른 비는 밖의 소란과 동떨어져 방안에 홀로 누워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과 옥예린의 안위, 영령의 거취,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 등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가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상념을 깼다.

“여긴 활기차네요.”

마른 비는 눈을 부릅뜨며 튕기듯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먹을 움켜쥐고 목소리가 들린 창가 쪽을 바라봤다.

‘방안에 침투할 때까지 감지하지 못했다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자신은 전보다 월등히 강해졌는데 최근 들어 탐지를 벗어나는 존재들이 속속 출현한다.

천하가 넓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눈길이 향한 곳엔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 있었다.

“……후개?”

마른 비는 지금 제대로 본 게 맞는지 눈을 껌벅였다.

구칠은 후개가 사고의 후유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만, 능력은 여전하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이토록 은밀한 침투를….

‘아니, 잠깐만. 낮에는 말을 더듬었는데?’

마른 비가 혼란스러워하자 후개가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를 낮춰주시면 좋겠네요. 걸리면 시끄러운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어요.”

여전히 말투는 묘하다.

하지만 더듬거나 어눌하진 않았다.

한순간 스쳐 지나갔던 눈빛.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궁금한 게 많을 거라고 생각되어요.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간략하게 말할래요. 수왕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왔네요.”

“말투가 미묘하게 이상한데?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

후개는 무슨 말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사고의 후유증이어요.”

“……별로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아무튼 괜찮다는 거지?”

후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어요. 그보다 깜짝 놀라거나 다짜고짜 달려들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별로 놀라진 않네요.”

“낮에 순간적으로 눈빛이 번쩍이는 걸 봤어. 지금 보니 그런 실수를 할 것 같진 않은데. 날 살피느라 그런 건가?”

이번엔 후개가 놀랄 차례였다.

“그 짧은 순간을 포착했어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예리하네요. 엄청 둔할 것 같이 생겨 가지구선.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힘만 센 멍청이가 아닐까 걱정했네요.”

“……이봐. 지금 무지 실례되는 말을 하고 있는 거 알아?”

마른 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보 집단이라더니 은신에 통달했구나. 내가 기척을 놓치는 경우는 드문데. 적당한 지점에서 잘 멈췄어. 더 들어왔으면 적이라고 생각하고 반사적으로 반응했을 거야.”

“그럴까 말까 고민했네요. 전 수왕이 싸우는 걸 보지 못했고, 조금 전 반응으론 생각보다 만만해 보였어요.”

이걸 솔직하다고 해야 하나, 무례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기척을 잡아내지 못한 건 사실이니 웃어넘겼다.

무엇보다 후개는 악의가 없어 보였다.

“조심해야 하네요. 더 들어갔으면 죽었을 거네요.”

“죽다니? 누가? 내가?”

후개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아니, 제가.”

“…….”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말투만 이상한 줄 알았더니 그냥 전반적으로 이상하다.

마른 비는 후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이 늦은 시간에 정체를 드러내면서 여기까지 온 이유는?”

“아까 말했어요. 도움을 청하려고 왔네요. 그새 까먹은 거면 머리가 나쁘네요.”

용건 외의 부분은 자르고 듣는 게 나을 것 같다.

마른 비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뭘 도와주면 되는데?”

“눈치챘을 거네요. 수왕은 구칠 장로님이 싫다고 했어요. 왜 싫어요?”

“그냥. 느낌이 별로야. 뭔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게 끝이어요? 느낌이 별로라서?”

마른 비는 그 이상 뭐가 필요하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역시 힘만 센 똥멍청이어요.”

후개는 인상을 찌푸렸고, 마른 비는 난감하게 웃었다.

“왜? 뭐가 더 필요한 거야?”

“당연하네요. 느낌이란 건 타당한 근거가 없는 감정에 불과하네요. 그런 걸 행동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건 어리석은 일이어요.”

“흠. 그래? 그걸로도 난 지금껏 잘해왔는데.”

후개는 힘주어 단언하듯 말했다.

“운이 좋았던 거네요. 합리와 이성만이 인간을 구원하네요. 그렇게 살면 언젠가 크게 실수할 수밖에 없네요.”

“이게 단순한 느낌만은 아니라서. 기가 막히게 잘 맞거든. 아무튼 그 부분은 나랑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알겠어. 그래도 구칠 그 사람이 이상하다는 점에 대해선 같은 생각인 거지?”

본론에 접어들자 후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맞어요. 수왕이 슬쩍 보고 눈치챈 게 놀라울 따름이네요. 개방의 식구들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네요. 일일이 설명할 시간은 없고, 결론만 말하자면 그 사람은 구칠 장로님이 아니어요.”

“당신이 제정신이 아닌 척한 게 그럼?”

후개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견인이자 사문의 큰 어른을 믿지 못해 정신이 나간 척 살아온 나날들.

그의 표정과 몸짓에선 오랜 시간 고뇌해온 자의 참담함이 묻어났다.

“그것도 맞어요. 증거는 없지만, 제가 당했던 사고는 그 사람이 저지른 거네요. 원래는 절 죽이려 했지만, 제가 폐인이 되자 생각을 바꾸었어요. 아마 저를 꼭두각시로 내세우고 자기가 방을 좌지우지할 생각이겠네요.”

입술을 축인 후개는 말을 이었다.

“제가 제정신이라면 죽여 없앴겠지만, 머리가 이상해져서 놔두기로 한 거네요. 저를 지지했던 사람이니까 제가 정신을 잃은 건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어요. 명분과 실리를 다 챙길 수 있으니.”

“그는 당신이 능력은 여전하다고 했어.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그럼 그것도 혹시 일부러?”

후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까지 잃었다면 후개에서 밀려났네요. 무공이 건재한 걸 보이고, 가끔씩 날카로운 통찰력도 내비쳤어요. 당신처럼 얼빠진 얼굴을 하고서. 능력은 건재하지만, 정신만 나간 후계자를 연기했네요.”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으며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고 폐인을 연기하는 것.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최소한 마른 비는 그런 걸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는 후개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언제부터야? 구칠이 이상해진 게?”

후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확신하는 얼굴로 말했다.

“육정마. 신강을 넘어 파융을 추격하여 그의 수급을 들고 온 다음부터네요.”

마른 비는 깜짝 놀란 얼굴로 외쳤다.

“육정마 추격전?! 나 그거 알아! 여규에게 들은 적 있어! 여인을 겁탈하려고 했던 놈을 홀로 추격하여 목을 베어온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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