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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세록 남천제-316화 (316/463)

316화

“칠십 명이 죽었다고? 실수하면 전멸? 안에 뭐가 있길래?”

비보를 접한 마른 비는 깜짝 놀랐다.

간단한 일일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오백 년 전에 죽은 이의 묘를 발굴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자신의 역할은 아마도 고대의 유품이나 보물을 노리는 외부인들로부터 금복인을 지키는 일일 터였다.

삼 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강해졌기에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룡에게 금방 북쪽으로 따라가겠다고 호언장담한 이유였다.

하지만 왕문의 말은 마른 비의 예상을 깼다.

“모른다. 안에 뭐가 있는지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기관 장치에서 화살이 쏟아졌어. 비무장으로 진입한 인부들이 몰살한 건 한순간이었지. 입구가 그 정도니 안에는 더 골치 아픈 게 기다리고 있지 않겠나.”

“화살? 무덤에 화살이라니? 묘가 맞는 거야? 누가 묘에 그런 장치를 해? 더군다나 천오백 년 전의 사람이라며? 기관이 여태 작동한다는 게 말이 돼?”

마른 비가 놀라서 묻자 왕문은 확신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 영감이 진시황의 무덤이 맞다는 걸 확인했고, 기관장치는 내가 직접 살펴봤다. 녹이 슬고 일부는 오작동을 일으켰지만, 대단히 튼튼하게 만든 장치였어. 척 봐도 묘를 발굴하려는 침입자를 죽이기 위한 거였지.”

그는 마른 비의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진시황은 처음으로 중화를 통일한 황제다. 일곱 개로 나뉘어 끊임없이 전쟁을 되풀이하던 전국시대를 끝냈어. 그는 최초의 황제이자 무소불위한 권력을 지닌 제왕이었다. 당대의 기술력과 자원이 전부 이 묘에 집약돼 있다고 보면 돼.”

진시황은 영원불멸을 꿈꾸었던 자이기도 했다.

천하를 뒤져 불로장생의 영약과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할 만큼 영생에 대한 그의 집착은 대단했다.

결국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진시황은 발상을 전환한 게 틀림없었다.

사후에도 거대한 지하궁전에서 생전에 못지않은 영화를 누리고 싶었던 그는 이 묘를 축조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묘를 건드리는 걸 용납할 수 없었기에 이런 대비를 해둔 모양이었다.

“진시황릉은 이 여산(驪山) 아래에 위치해 있다. 장소를 특정했음에도 입구를 찾는 데만 이 년이 걸렸다더군. 고대 문헌에 남은 실낱같은 단서로 방향을 잡고, 흙을 파 내려갔지. 그리고 결국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반년 전, 금복인이 이끄는 발굴단은 수많은 사람이 찾아 헤맸지만 누구도 발견할 수 없었던 진시황릉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성공했다.

그건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창안할 정도로 과거의 유산에 미쳐 있는 그의 집념이 이룬 쾌거였다.

위치를 잡고, 산기슭을 갈아엎다시피 하며 흙을 파 내려간 결과, 발굴단은 돌로 이루어진 웅장한 입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석주로 양옆을 받치고, 거대한 바위를 올려 천장으로 삼은 황릉의 입구가 천오백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축조 이후 입구를 발견할 수 없도록 일부러 파묻어 놓은 게 분명한데, 침입자를 막는 문도 없이 뻥 뚫려 있다는 게 특이했다.

일생일대의 업적을 코앞에 둔 금복인은 감격한 표정으로 돌기둥을 쓰다듬었다.

“드디어,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허나 감격은 금세 한탄으로 바뀌었다.

“이 규모와 크기……. 이런 걸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꼬……. 그냥 작은 구덩이나 파고 누울 것이지, 꼴에 황제라고 뒈질 때도 궁전에 드러눕고 싶었나 보지?”

황릉을 발견한 건 행복하지만, 이걸 짓느라 고통받았을 민초들을 생각하면 금복인은 웃을 수 없었다.

허나 이미 지나간 과거이며, 이 안에 있는 것들은 후손들에게 진(秦)의 시대를 공부하고 복원할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묵념을 마친 금복인은 황릉의 내부로 들어섰다.

안은 어둡고 퀴퀴했으며, 길고 거대한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엄청나구먼. 이토록 큰 무덤은 본 적이 없어. 뭘 꽁꽁 숨겨놨기에 이런 규모의….”

덜컥.

바닥이 내려앉은 건 그때였다.

내부에 진입한 발굴단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신기해할 때였다.

피이이익―!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무방비로 서 있던 인부들이 고슴도치가 되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꼼짝없이 죽을 뻔한 금복인을 살린 건 전흠이었다.

“노야!”

차차차창!

뒤를 따르던 그는 호위무사의 본분을 다했다.

금복인을 몸으로 감싼 전흠은 정신없이 검을 휘둘러서 화살을 쳐냈고, 간신히 그를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뒤따르던 인부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목숨을 잃었다.

“이, 이게 무슨? 무덤에 기관이라니?!”

금복인이 밟은 돌판은 성인 남성 한 명의 무게가 실리자마자 내려앉았고, 그게 기관을 발동하는 누름 쇠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평생을 함께한 식구들을 죽인 금복인은 절규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동시에 파 내려간 다른 세 곳의 입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금벽파라라는 아이를 알고 있겠지? 다른 쪽 입구를 맡은 그 녀석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더군. 성깔 더러운 회색 눈깔 노인네가 아니었으면 즉사했을 거야.”

“성깔 더러운? ……회색 눈깔?”

떠올릴 수 있는 건 한 명밖에 없었다.

이야기에 몰입해 있던 마른 비가 탄성을 흘렸다.

“설 할아버지도 아직 만금당에 있었구나!”

“그 인간도 알고 있나? 어떻게 살면 그따위 성격이 되는지……. 볼 때마다 절대 저렇게 늙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다른 이들이 자신을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걸 왕문은 알지 못했다.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과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불친절함, 틱틱 내뱉는 말투까지, 설지굉과 왕문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썩 괜찮은 구석이 있다는 것과 확실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까지도.

마른 비는 악연으로 시작하여 인연으로 이어진 기억을 되새긴 뒤에 물었다.

“설 할아버지에 대해선 아주 잘 알고 있어. 이런저런 일이 많았거든.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다음에 금 할아버지가 아저씨를 초청한 거야?”

왕문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발굴 작업은 잠시 중단되었다고 한다. 칠십 명에 가까운 식구들이 목숨을 잃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들을 장사 지내고 추모하는 한편, 엄선된 자들이 내부를 탐사했지. 그리고 알게 됐다. 입구인 줄 알았던 그곳은 그저 앞마당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을.”

장비를 갖춘 무인들이 굴의 내부를 파고들었다.

비슷한 기관들이 줄줄이 나왔으나 위험에 대비한 무인들을 해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인은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절명할 수준이었고, 발굴단은 탐사대로 명칭을 바꾸어야 했다.

그들은 굴을 파고든 끝에 진짜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람 두 명이 드나들 크기. 무덤의 진짜 입구는 웅장한 규모에 비해 초라했지. 하지만 규모만 작을 뿐 가치까지 형편없진 않았어. 진시황의 업적이 음각된 석문을 발견한 순간, 금 영감은 소리를 질렀다.”

왕문이 당도하여 통로 초입의 기관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이게 단순한 발굴이 아니란 걸 깨달은 금복인은 만금당의 금력과 평생토록 쌓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탐사에 적합한 인재들을 초청했고, 그중엔 왕문뿐만 아니라 중원 칠대 기인에 속한 인물도 있었다.

“골 때리는 여자 하나가 따라 들어갔지. 금 영감과 함께 진입한 그녀는 문을 살피더니 탐사를 중지시켰어. 그 이후 우리는 지금껏 너를 기다리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랬구나. 돌아가는 상황을 알겠어. 근데 골 때리는 여자? 그게 누구야?”

왕문은 생각만 해도 두통이 치민다는 듯 인상을 썼다.

“색광신투(色狂神偸) 차유람.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중원 최고의 도적이다. 또한 의적이기도 해. 그릇된 방식으로 재물을 모은 부호들은 모조리 그녀에게 털렸거든. 원의 시대에도 고관대작들의 창고를 털어서 백성들에게 나눠주곤 했지. 중원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여자다.”

“와~ 그런 사람이 있어? 엄청 멋진데? 그런 사람을 왜 골 때린다고 표현한 거야?”

왕문은 인상을 팍 쓰며 말도 말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신투 앞에 붙은 게 뭐랬지? 색광. 나이를 불문하고 괜찮은 남자라면 모조리 들이대는 여자거든. 아주 끈적끈적하게. 물론 그래 놓고 막상 일(?)을 치를 때가 되면 쏙 빠져나가지만. 그냥 남자를 놀리는 재미에 사는 여자란 게 내 판단이다. 말만 들었지, 이번에 처음 봤는데 미친 여자인 줄 알았어. 괜히 칠대 기인에 속한 게 아니더군.”

마른 비는 고개를 모로 꺾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본 것치곤 꽤 상세하게 아는데? 아저씨 혹시….”

왕문은 갑자기 얼굴이 벌게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황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시끄럽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이상한 상상하지 마! 아무튼 그녀는 릉의 입구를 꼼꼼히 살피더니 섣불리 문을 열어선 안 된다고 했다. 고대의 주술이 걸려 있다더군. 동서남북의 입구에서 동시에 진입하지 않으면 입구가 무너져 영영 들어갈 수 없을 거라던가.”

“신투……. 도둑질을 하느라 이거저거 많이 연구한 모양이네. 술법까지 알아볼 정도면.”

마른 비의 짐작처럼 차유람은 술법은 물론이고 기관과 진법에도 해박한 사람이었다.

물론 도둑질이 목적이라 해체와 우회에만 능통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기관으로도 모자라서 고대의 술법이라….”

중화 전체를 제패했던 자의 무덤이니 그 정도 역량을 투입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겠지만, 점점 궁금해진다.

대체 안에 뭐가 있기에 이토록 철저히 방비를 해놓은 건지.

그리고 마른 비는 문득 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저씨는 이런 일을 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왜 할아버질 돕는 거야?”

마른 비의 안목은 정확했다.

많은 이들이 왕문의 손을 거친 병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는 아무에게나 물건을 만들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대인기피증이 있는 그는 중원을 돌아다니며 심산유곡에서 혼자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마른 비를 안내했던 사내의 표정에서 왕문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억만금을 줘도 안 왔을 거다. 금 영감은 과거의 유산이니 뭐니 하며 이 일을 의미 있게 여기지만, 내 생각은 다르거든. 고인의 무덤 따윌 헤집어서 좋을 게 뭐란 말이냐?”

“그럼 왜?”

왕문의 표정이 처음 봤을 때처럼 가라앉았다.

그리고 화로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고대 병기.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전설의 무구들. 난 이 안에 그것들이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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