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세록 남천제-322화 (322/463)

322화

* * *

“이, 이것들이 살아 있는 게냐?”

금복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흙으로 만든 인형이 움직이는 것도 기가 막힌데, 살아 숨 쉬는 생물처럼 안광을 번쩍이다니…….

장수를 위해 양생술 몇 가지 수련한 게 전부인 그로서는 살기 어린 일만 쌍의 눈빛 앞에서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는 게 아냐. 술법 때문에 움직일 뿐이지. 흙 인형에게 생명이 있을 리 없잖아.”

마른 비는 그렇게 대꾸했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살기.

무생물은 살기를 흘릴 수 없다.

‘살기’란 결국 살의로부터 발원하며, 무생물이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소름이 돋을 만큼 지독한 원한과 증오가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의문을 풀어준 건 미카엘이었다.

“진시황이라는 자……. 끔찍한 인간이군요.”

대검을 쥔 미카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시종일관 부드러운 모습만 보여주었던 그는 진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혼……. 인간의 영혼을 깃들였습니다. 일만 구의 인형에 모두. 이 지독한 사기……. 망자의 절규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입니다.”

미카엘은 다른 이들이 감지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활동을 시작한 인형들을 둘러보며 이를 깨물었다.

“죽음과 함께 혼백은 육체를 떠나기 마련입니다. 진시황이 죽은 게 천오백 년 전이라고 하셨지요? 인간의 혼은 절대로 그 긴 시간 동안 한자리에 머물 수 없습니다. 이건… 억지로 붙잡아둔 거예요.”

“억지로 붙잡았다고?”

마른 비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술법이 상식을 초월한 일들을 벌일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런 것까지 가능하단 말인가.

이어지는 미카엘의 설명에, 일행은 아연실색했다.

“네.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고, 혼이 육신을 벗어나는 순간, 강제로 붙잡아서 봉인한 겁니다. 마치 망으로 곤충을 채집하듯이. 목적은 하나뿐이겠죠. 침입자가 여기까지 당도했을 때, 저지하기 위해서. 바로 이 인형들을 움직이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탐사대 모두가 알아챘다.

진시황이 벌인 짓을.

“네. 짐작하시는 게 맞습니다. 채집통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곤충을 잡듯이 영혼을 수거할 수는 없겠죠. 이건 일시에 봉인한 겁니다. 그러려면….”

“……죽인 거군. 친위대 일만 명을, 한자리에서.”

설지굉이 아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미카엘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육신에서 빠져나온 일만 개의 영혼을 술법으로 붙든 거죠. 투망을 펼쳐서 고기를 잡듯이. 그리고 봉인한 겁니다. 누군가가 침입하는 순간까지.”

미카엘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에겐 들립니다. 천오백 년간 승천하지 못하고 붙잡혔던 영혼들의 절규가. 더욱 참담한 건… 저들은 지금도 조종받고 있다는 거예요.”

여전히 친위대를 묶은 술법은 유효했다.

술법은 영혼들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침입자를 죽이라고.

황제의 무덤을 침범한 도적들을 참살하라고.

그때까지 너희에게 안식은 없다고.

“인형의 생김새가 제각각인 이유가 이거였습니다. 군사들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구현해놓은 게 틀림없어요. 그래야 최대치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겠죠. 고인의 육신과 신체적 특징, 애용하는 병기와 훈련한 진형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다니…….”

미카엘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는 눈을 꾹 감았다 뜨더니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이제 알겠습니다. 제가 금 노야와 만나 여기까지 이르게 된 이유를. 저는 이 불쌍한 영혼들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미카엘은 대검을 움켜쥐며 금복인을 돌아봤다.

그건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평생을 염원했던 결과물.

금복인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증거를 부숴도 되겠냐고 묻는 것이다.

설령 안 된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그렇게 할 생각이지만, 미카엘은 허락을 구했다.

“……만금당의 적손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살며 인간의 추악함을 밑바닥까지 보았다고 여겼네. 내 생각이 짧았어. 인간의 욕심은 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삭아 빠진 무덤을 지키기 위해 이런 끔찍한 짓을…….”

금복인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말했다.

“평생 가문에 민폐만 끼치다가 죽은 미치광이란 소릴 들어도 좋네.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좋아. 이 불쌍한 영혼들을 성불시키고, 이들에게 안식을 주게.”

설지굉이 피식 웃더니 엄지로 검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내가 이래서 금 형이 마음에 드는 거요. 맛이 갔지만, 제정신은 박혀 있거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우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왠지 억울하구먼.”

일행이 싸울 준비를 갖췄을 때였다.

천오백 년의 잠에서 깨어난 영혼들이 새로운 육신과의 동조를 마쳤다.

끼리리릭―

불길한 소음은 진형의 후방에서 들려왔다.

아득히 먼 동굴의 끝.

술법에 내몰린 병사들 중 가장 먼저 손을 쓴 건 궁노병이었다.

쾌애애애액―!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이천 개의 화살이 공기를 갈랐다.

정적만이 가득했던 동굴에 화살의 비가 쏟아졌다.

“제 뒤로…!”

이번에는 마른 비보다 미카엘이 빨랐다.

그는 전신갑을 걸쳤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쾌속했고, 일행의 앞에 서자마자 대검을 휘돌렸다.

부아아아앙―!

그건 마치 풍차와 같았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도 큰 대검이 회전하자 미카엘의 앞에 원형의 방벽이 생겼다.

은은한 금광을 뿌리는 검은 이천 개의 살의를 모조리 튕기거나 분질렀고, 일행은 그의 뒤에 서 있는 것만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머머! 듬직해라! 아이참,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드네. 미 공자, 당신도 내 꺼 할래요?”

차유람이 미카엘의 등에 살포시 기대며 말했다.

자신의 할 일은 끝났다는 듯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왕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괜히 칠대 기인으로 꼽힌 게 아냐. 이 여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맛이 갔어.”

왕문은 혀를 찼고, 화살을 전부 쳐낸 미카엘은 잠시 짬을 내 대꾸했다.

“성이 미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오.”

“그냥 앞으로는 미 공자해요. 아니면 카엘 낭군님이라고 부를까요?”

차유람이 멋대로 남의 이름을 개명할 때, 병마용의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폐하… 의 안식을 방해하는… 놈들.』

갑자기 울린 ‘목소리’에 탐사대는 깜짝 놀랐다.

“흙 인형이 말을 해?!”

“아, 아냐! 이건 차라리 전음에 가까운…!”

가장 놀란 건 마른 비였다.

“이, 이거 설마……. 언령?!”

정면에 포진한 병마용 중 가장 장대한 체구를 지닌 병사였다.

말 인형이 이끄는 전차에 올라탄 그는 척 보기에도 전차대를 이끄는 대장이 분명했다.

부리부리한 눈동자를 빛내는 그는 새로운 몸에 완전히 적응했는지 매끄럽게 움직였다.

『전차대… 돌격… 하라! 침입자를… 참하라!』

뚝뚝 끊기는 그것은 언령에 한없이 가까웠다.

의지를 기의 파동에 담아 전하는 방식.

뇌리에 직접 꽂히는 점도 같았다.

하지만 술력의 힘을 빌어 의지를 전하기에 비슷하게 느껴질 뿐, 와족의 언령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히… 히히히힝!』

장대한 전투마가 앞발을 들어 올렸다.

갈기까지 세밀하게 조각된 그것은 전차대장과 같은 방식으로 울음을 토했다.

왕문은 눈썹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빌어먹을. 하다하다 이젠 말까지 전음을….”

두두두두―!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이 쇄도했다.

천오백 년 전, 전국시대의 전장을 공포에 떨게 만든 진의 전차대는 생전과 같은 위용으로 일행을 질리게 만들었다.

“친구여. 일행을 부탁합니다. 여긴 제가.”

미카엘이 대검을 쥔 손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마른 비는 염려스런 얼굴로 말했다.

“이것들, 단순한 인형이 아냐. 느껴지는 기운이 원의 정예 기마대에 필적해. 혼자는 힘들지 않을까?”

미카엘은 뒤를 슬쩍 돌아보더니 투구 사이로 하얗게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기마대를 상대하는 건 익숙하니. 전차 역시 크게 다를 것 없습니다.”

푸르스름한 야광주가 비추는 어둠.

새카맣게 밀려오는 전차대를 향해 바티칸 교황청 제일 기사이자 신탁을 받은 신의 검이 돌진했다.

“오오오오!”

회피?

그따위 것은 필요치 않다.

사생아이자 저주받은 아이로 태어나 살아남기 위해 단련해왔다.

수많은 이교도의 군대를 베어 넘기며 서방 제일검의 칭호를 얻었다.

철탑 같은 육체와 이 시대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된 갑주.

미카엘은 왼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며 전차를 몸으로 들이받았다.

쿠콰아아앙―!

차징(Charging).

정면으로 충돌한 전차가 바윗덩이를 들이받은 것처럼 산산이 부서져 하늘을 날았다.

양옆에서 날아든 창들은 판금갑을 뚫지 못했다.

갑옷이 그리는 유려한 곡선은 엄습하는 검들을 흘려보냈다.

전차대의 전열이 혼란에 빠진 순간, 미카엘의 검이 그어졌다.

“클리빙(Cleaving).”

단순한 횡참이었다.

하지만 위력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철퇴보다도 무거운 중병은 전차대의 중단을 절단했고, 대검이 가르고 지나간 궤적에 새하얀 공백이 생겼다.

“결?!”

미카엘의 검격을 본 마른 비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대기의 결을 찾아내어 절삭하는 검술.

동방이든 서방이든 극의를 향해 가는 무인의 깨달음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역시 인간의 반응이란 어디나 비슷하군요.”

내로라하는 기마군단의 초격을 짓뭉갰던 전투방식이다.

맨몸으로 최전선을 날려버리면, 적들은 언제나 당황하여 틈을 드러냈다.

강렬한 횡참으로 전선을 뭉갠 미카엘은 전차대의 중앙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버티컬 프래킹(Vertical fracking).”

도약이 정점에 달한 순간, 미카엘의 몸이 훅 떨어져 내렸다.

천근추를 시전한 것처럼 하강한 그가 검을 대지에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앙―!

갑옷과 대검의 무게에 미카엘 특유의 기운을 실은 기술이다.

중원의 심법과는 결이 다르지만, 내공처럼 힘을 증폭시킨다는 점은 동일했으며,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했다.

쩌저저저적!

대지에 균열이 일고, 충격파가 퍼져 나간다.

엄청난 위용을 선보였던 진시황의 전차대가 폭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완파됐다.

철저히 힘에 기반을 둔 전투기법.

패도로 유명한 하북팽가의 무예가 가소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강자……. 폐하의 영면을 방해하는… 커컥…! 처, 처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이변이 벌어진 건 그때였다.

미카엘의 무위로 인해 소강상태에 빠졌던 병사들이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명령을 내린 전차대장도 목을 좌우로 꺾으며 경련을 일으켰다.

거대한 의지가 병사들을 지배하는 느낌.

강제로 친위대의 영혼을 봉인하고 전투에 내몰았던 술력이 극단의 조치를 취한 듯한 형세였다.

『커, 커컥…! 저항하지… 말고… 기운을 받아들여…… 시, 싫다…! 나, 나는…!』

‘나’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건 흙 인형에 깃든 인간의 의지가 술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증거였다.

격렬히 몸을 떨던 전차대장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마라…! 그 괴물을 마주쳤을 때와 흡사한…!’

마른 비가 눈썹을 꿈틀했을 때, 병마용의 병사들은 경련을 멈춘 뒤였다.

그들은 고개를 들었고, 소리 없이 무기를 움켜쥐었다.

하나같이 새카만 눈을 한 그들은 술력에 잠식돼 버렸다.

“이 부정한 힘…! 사악하고도 악랄하구나! 인간의 영혼을 어디까지 농락해야 만족할 셈인가!”

미카엘의 분노도 짙어졌다.

척 보기에도 술력은 친위대의 힘을 배에 가까이 증폭시킨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게 평범한 방법으로 가능할 리 없었다.

영혼의 소멸을 대가로 한 비술.

살갗을 파고드는 듯한 악기(惡氣)에 탐사대가 몸을 움츠릴 때였다.

“주여! 전 당신을 부정하나이다! 당신은 오만하며, 당신의 백성에게 자비롭지 않습니다! 동방의 여정에서 저의 세계는 산산이 부서졌으며, 당신에 대한 의심은 열화처럼 타오릅니다!”

미카엘은 광장이 쩌렁쩌렁 울리게 외쳤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부르짖는 그것은 짐승의 울음처럼 난폭했다.

“허나 제게 부여한 힘을 거두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지금 허하소서! 이 불쌍한 영혼들을 정화할 수 있도록 당신의 기적을 보이소서!”

이단 심문관.

신의 선택을 받은 사내는 성력(聖力)을 부여받았고, 신의 사자로서 무수한 이교도들을 불태웠지만, 그 자신이 의심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믿음을 잃어버린 신의 검이었다.

허나 신은 그에게 내린 힘을 거두지 않았으니, 교단의 명을 받아 동방에 온 사내는 헤어날 길 없는 번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앗은 동족의 목숨을 떠올리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민족의 가엾은 영혼 앞에서 스스로 봉인한 힘을 개방한 순간, 서방에조차 설화로 치부되는 기사왕의 성검이 미카엘의 부름에 응답했다.

“성령의 불길이 악을 참할 지어다.”

쩌어엉―!

미카엘이 대지에 대검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손목에서 팔꿈치에 이르는 하박을 가져다 대자 열십자(十)의 형상이 그려졌다.

“홀리 크로스(Holy cross).”

화아아아악―!

서방 유일신의 권능을 담은 빛의 십자가가 머나먼 동방, 고대 폭군의 무덤에서 성스러운 빛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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