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엄청난 소리가 났지만, 별비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태연한 표정으로 만금당 인부들에게 걸어갔다.
‘땅이 움푹 파였어!’
‘엄청 아플 텐데…….’
‘내장이 터지고도 남을 충격이었어. 멀쩡한가?’
그럴 리가.
쪽팔림이 통증을 넘어선 게 분명했다.
별비는 입에서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쿨룩!’ 하며 피가 튄 것 같은데, 녀석은 끝까지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당당하게 걸어왔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별비는 끝까지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벼, 별비 님? 괜찮으신….”
염려가 된 인부 한 명이 다가올 때였다.
투두둑―.
그의 발밑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별비가 움찔하더니 곧장 달려들었다.
“크항!”
별비는 몸으로 그를 밀쳐내며 앞발을 휘둘렀다.
뿌드득―!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둥근 물체가 바닥을 굴렀다.
데굴데굴 굴러간 물체는 정파와 사파 어느 진형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곽에 서 있던 무인의 발치에서 멈췄다.
“응? 히, 히이익―!”
날아온 물체를 확인한 무인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별비가 쳐낸 건 썩어 문드러진 인간의 두개골이었다.
후드득- 투둑. 투드득―.
무언가가 땅 밑에서 흙을 헤치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번지기 시작했다.
“히익! 시, 시체가…!”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땅을 뚫고 나온 건 시체들이었다.
살점이 썩어서 뼈만 남은 것도 있었지만, 부패가 진행 중인 것들도 존재했다.
끔찍한 광경에 무인들이 물러날 무렵, 또 한번 소리가 들렸다.
투드드득― 투둑, 투두둑―.
무슨 소리인지는 뻔했다.
이번에 나온 건 부패가 끝난 백골들이었는데, 척 봐도 단단해 보였고, 공들여 닦은 것처럼 표면이 새하얬다.
앞서 나온 시체들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으니, 인간을 공격한다는 점이었다.
시체와 해골들은 땅을 뚫고 나오자마자 경악해서 눈을 비비는 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으지직―!
“끄, 끄아아아!”
넋을 놓고 있던 무인 하나가 시체에게 물렸다.
어깨를 물린 그는 팔을 허우적대다가 정신을 차리고 송장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러자 그것은 맥없이 바스라졌는데, 끔찍한 건 머리가 부서지고도 계속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피……. 살점…!』
머리의 반이 박살 난 그것은 엎어져서도 계속 꿈틀댔다.
그리고 언령과 유사한 것을 끊임없이 뱉어냈다.
뇌리로 직접 파고드는 시체의 목소리에 무인들은 혼비백산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종남파 장로 오무양이 입술을 떨었다.
육십이 넘도록 강호를 전전하며 갖은 기이한 일을 겪었지만, 이런 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저 백골…!’
먼저 튀어나온 시체들은 비척대며 제 몸도 가누지 못했지만, 뒤에 올라온 것들은 달랐다.
그것들은 마치 건강한 인간이 움직이듯 날렵한 몸놀림을 보였다.
무공이 고강한 자들은 어렵지 않게 물리쳤지만, 실전 경험이 떨어지거나 경지가 얕은 무인들은 당황해서 물리거나 해를 입었다.
더 난감한 건 뼈를 부수거나 갈라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도로 붙는다는 점이었다.
완전히 가루를 내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재생하는 백골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광경이었다.
“자, 장로님…!”
더 기가 막힌 건 따로 있었다.
시체와 백골들은 기를 쓰고 달려들며 살아 있는 인간을 물었는데, 그건 단순히 해를 입히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콰직! 꿀꺽.
물고, 삼켰다.
그러면 씹어 삼킨 인간의 피와 살이 해당 개체의 것이 되었다.
휘루루룩―
뜯겨 나간 살점이 허공에 뜬 채 가상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고, 가상의 위(胃)에 이르자 기묘한 소리를 내며 흡착됐다.
살점을 물어뜯은 백골들은 그런 식으로 뼈뿐인 자신의 몸에 살을 더해갔다.
꿀꺽, 꿀꺽,
피도 마찬가지였다.
백골들이 마신 생혈은 가상의 위에 이르자 흡수됐고, 인간의 몸을 휘돌 듯이 뼈 주위를 순환했다.
새하얀 뼈 위로 살점이 붙고, 피들이 허공을 맴도는 광경은 전율적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으, 으아아아!”
공포로 이성을 상실한 종남파의 제자 하나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다행히도 구파의 제자답게 그 와중에도 힘이 실려 있었고, 다섯 번째 휘두른 검격으로 백골의 목을 잘라낼 수 있었다.
『킥, 킥킥, 킥.』
그가 까무러친 건 웃음소리 때문이었다.
그새 얼마나 인간을 물어뜯었는지 얼굴의 절반까지 살점으로 덮인 ‘그것’은 목이 잘린 채로 웃었다.
“으, 으으…….”
너무도 끔찍한 광경에 어린 제자의 무릎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백골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카아아아!』
목이 날아간 몸통이 달려들어 제자를 갈가리 찢고, 머리는 그것을 삼켰다.
머리와 몸이 연결돼 있지 않음에도 마치 공간이동을 하듯 피와 살은 위장으로 넘어갔고, 곧 흡수되어 백골의 것이 되었다.
“마, 막내야!”
종남의 제자들이 비명을 지를 때였다.
『하아아…….』
처음으로 하나의 개체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뼈의 표면을 완전히 살점으로 뒤덮는 데 성공한 괴물.
녀석은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몸이 완성되자 머리를 들어 제자리에 이어 붙였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켜며 물었다.
『나, 예뻐요?』
동공은 비어 있고, 머리카락도 없다.
손톱이나 발톱, 입술 따위가 없는 것도 당연했으며, 여러 명의 살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부위마다 색이 달랐다.
살점을 누더기처럼 이어 붙여 겨우 인간의 형상을 띤 그것은 꿈에 나올까 끔찍한 괴물이었다.
『왜 대답이 없어요? 나 예쁘냐고요?』
그렇지 않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근처에 있다가 얼떨결에 질문을 받은 사파의 무인 하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씨, 씨팔……. 이걸 뭐라고 해야…….”
『나… 안 예뻐요?』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사파의 무인은 눈가를 경련하며 고민하다가 겨우 대꾸했다.
“예, 예뻐…! 무지하게 예쁘다! 씨팔, 세상에서 제일 예뻐!”
괴물은 고개를 모로 꺾었다.
사내의 표정을 관찰하는 듯했다.
한동안 그렇게 있던 괴물은 동공이 빈 얼굴을 찌그러뜨리며 외쳤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그러면 처소로 들였어야지! 내가 앵앵이 그년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오오오!!!』
전후사정을 짐작하기 힘든 괴성이 난무한다.
아니, 여기가 진시황의 무덤이란 점과 이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안다면 이해할 법한 말이었다.
『한 번을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평생을 잡일만 시키다가 뒈질 때가 되니 같이 죽자고?!』
순장(殉葬).
그녀는 생전에 황궁에서 일하던 시녀였으며, 진시황의 간택을 받지 못한 채 평생을 살다가 그가 죽자 생매장당했다.
첩, 신하, 종 등도 있었으나 백골들 대부분은 산 채로 파묻힌 황궁의 시녀들이었다.
『널 저주한다! 지금이라도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
몸을 완성한 백골들은 생전의 기억을 떠올렸고, 산 채로 파묻힐 때의 공포를 되새겼다.
그리고 그건 고스란히 진시황에 대한 원한과 증오로 이어졌다.
술법은 백골들에게 침입자를 진시황으로 보이게끔 했고, 시녀들은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자신을 저주하는 자들로 하여금 무덤의 외부를 지키게 하는 역발상.
진시황은 죽어서까지 시녀들의 영면을 허락지 않았고, 그들의 영혼을 농락하며 자신을 위한 소모품으로 활용했다.
“초, 초 호법님!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습니다! 이러다 지쳐서 쓰러지고 말겠습니다요!”
위기가 닥치자 정파와 사파의 무인들은 칼로 자른 듯 나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믿을 수 있는 자파의 무인들끼리 갈라져서 등을 맞댔다.
근래에 여산에 묻힌 시체들부터 천오백 년 전에 순장된 진시황의 시녀들까지.
지하 무덤에서 술사의 영혼이 펼친 술법은 여산 일대에 묻힌 자들을 모조리 일으켜 세웠고, 인간의 피와 살을 탐하는 악귀로 만들었다.
“어찌 이런 일이…! 전원, 나를 따르라! 일단 이 끔찍한 곳을 벗어난다!”
초패는 선두에 서서 녹림도들을 탈출시키려 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멈출 수밖에 없었으니, 보이지 않는 막에 가로막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자들 때문이었다.
‘결계인가…!’
상황을 파악한 초패가 이를 악물었다.
“비켜라!”
쩌저엉―!
권갑을 맞부딪힌 그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크아아아아!”
초패는 현재 여산에 들어온 외부인 중 가장 강한 무인이었다.
구파의 장로를 상회하는 힘을 지닌 그가 손을 쓰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결계든 나발이든 힘으로 찢어주마!”
초패가 주먹을 번갈아 내뻗자 날카로운 두 줄기 권강이 빛을 뿜었다.
호살열아(虎殺裂牙).
녹림의 적들을 찢어 발겼던 맹호의 송곳니가 무형의 결계를 두드렸다.
투카아아앙―!
귀청을 찢는 폭음이 터졌지만, 결계는 멀쩡했다.
그건 여기 있는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확인시켜 준 꼴이었다.
“이, 이럴 수가…!”
초패는 결계의 강도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전력을 다했지만 흠집도 나지 않은 것이다.
정파의 무인, 그중에서도 화산파와 종남파는 초패가 실패한 걸 확인하자마자 움직였다.
“팔괘(八卦)를 점하라!”
둘은 도가 계열로써 전진교(全眞敎)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문파였다.
그리고 왕중양에 의해 개창된 전진교는 유·불·도 3교의 일치를 주장해왔다.
오무양의 입에서 역경(易經) 계사전(繫辭傳)의 문구가 흘러나왔고, 화산과 종남의 제자들이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역(易)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으며, 사상은 팔괘를 낳을지라.”
사이비 점술가들 때문에 허무맹랑하다고 비하 받는 유가의 사상이다.
하지만 팔괘는 음과 양의 대립과 순환을 통해 자연계의 본질을 파악하는 뛰어난 이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삿된 것들을 물리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었다.
화산과 종남의 제자들은 서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팔괘에서 사상, 사상에서 양의, 그리고 태극으로 이어지는 유가의 가르침을 역순으로 밟아 나갔다.
수십 명이 내공을 조율하며 태극의 문양을 대지 위에 완성한 순간, 붉고 푸른빛이 솟았다.
“사악한 것들은 태극의 영험함을 침범치 못하리니. 화산과 종남의 제자들은 위아래를 굳건히 지키며 진법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방비하라.”
화산과 종남이 백골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진법을 완성한 순간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정파와 정사지 간의 무인들을 태극 안으로 들였다.
이제 위험지대에 남은 건 별비와 만금당의 인부들, 그리고 사파의 무인들뿐이었다.
“저런 치사한 새끼들! 지들만 살면 장땡이냐!”
장삼이 이를 뿌드득 갈며 외쳤다.
같은 수단이 있었다면 그도 정파를 들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똥줄이 탄 장삼은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시체와 백골들 때문에 사파의 무인들이 계속 쓰러지고 있었다.
그 순간, 우렁찬 포효가 여산을 뒤흔들었다.
“커허허헝!”
별비는 무공을 모르는 만금당의 인부들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계를 느꼈고, 정파의 무인들이 진법을 펼치는 걸 봤다.
방법을 떠올린 별비는 뒷발로 버티고 서서 자연기를 담은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아앙!”
자연기가 악기와 상극이라는 건 수차례에 걸쳐 증명된 사실이다.
별비는 자연기를 발산했고, 좁은 원형의 공간을 자신의 존재감으로 꽉 채웠다.
푸른 기운이 일렁이는 그곳은 백골들이 침범할 수 없는 안전지대나 다름없었다.
인부들을 해치려고 달려들던 괴물들은 푸른 기운에 닿을 때마다 괴성을 지르며 물러났다.
“저, 저럴 수가…!”
홀로 방어형 결계 하나를 뚝딱 만들어낸 별비를 보며, 정사파의 무인들이 탄성을 흘렸다.
“가르릉, 그릉!”
자존심을 회복한 별비는 오만한 눈으로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