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 * *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미카엘이 파편만 남아 꿈틀대는 기병대장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껍데기 속에 깃든 술사의 혼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진시황의 명이라 해도 당신은 술법을 풀 수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병사들은 성불할 수 있었겠죠.”
미카엘은 거기까지 말하고 고장 난 인형처럼 삐걱대는 병마용을 돌아봤다.
술사가 심대한 타격을 입자 영혼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미카엘은 슬픈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술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발적으로 일 만의 영혼을 묶어둔 죄. 당신은 내세에서도 안식을 취하지 못할 겁니다. 신의 지엄한 심판 아래 타오르는 지옥 불에서 영원히 고통받겠죠.”
『큭, 큭큭, 크크큭….』
술사는 혼이 갈가리 찢긴 상황에서도 미카엘을 비웃었다.
『이제야… 알겠구나. 잡스런 서방신의… 종복! 하찮고도 하찮도다. 신생아에 불과한 그따위 영이… 감히 신을 자처하다니.』
용납할 수 없는 모독이었다.
미카엘은 이를 깨물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잠자코 술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믿음이 깨어진 자. 그리고 또 다른 신의 증거를 목격한 자.
미카엘은 모욕감에 속이 뒤집힐 것 같으면서도 술사의 말에 흔들리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느껴진다……. 뿌리 뽑힌 너의 신앙심이……. 너의 주인은 어찌하여 믿음을 잃은 개에게 힘을 허락하는가……. 과연 근본 없는 영다운 행동이구나.』
더 이상은 들어주기 힘들었다.
번뇌의 근원을 건드리는 독설이기에 참을 수 없는 것일지도.
미카엘은 그답지 않게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성력을 개방했다.
“빈말이라도 축복을 빌어줄 순 없겠구나. 그만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거라.”
『카하하! ……보인다! 표류하는 너의 미래가…! 지옥 불이라 했나? 달갑게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그곳에서 만나자꾸나!』
술사는 끝까지 표독한 저주를 남기며 스러졌다.
미카엘의 손에서 방출된 빛이 술사를 태우자 광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그것은 울음이었다.
수천의 영혼이 일제히 성불하며 토해 내는 울음.
얼핏 들으면 귀곡성(鬼哭聲) 같지만, 그것은 환희이며 희열이었다.
천오백 년 만에 술법에서 해방된 영혼들이 자유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왜… 가슴이 벅차오르죠? 어? 눈물이….”
차유람이 손을 들어서 눈가를 훔쳤다.
수천의 영혼이 뿜어내는 환희는 산 사람의 감정마저 흔들었다.
태어날 때도 울지 않았을 것 같은 설지굉마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편히 쉬길 바라. 고생 많았어.”
마른 비의 눈시울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한곳에 밀집된 영혼들은 유형화되어 하얗게 보일 정도였고, 그것들은 마른 비의 머리 위를 맴돌다가 천장을 투과하여 사라졌다.
미카엘에게 전해 듣지 않아도 그들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른 비는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며 마지막 한 명이 떠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술법……. 영혼……. 정말로 이런 것들이 존재할 줄이야.”
왕문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댔다.
이 광경을 지켜본 자라면 누구도 그것이 실존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리라.
영혼들이 승천하는 모습은 새하얀 운무(雲霧)가 하늘로 딸려 올라가는 것처럼 장엄하기만 했다.
“괜찮으십니까?”
미카엘이 금복인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 순간, 가장 심정이 복잡한 건 그일 것이다.
노인은 엉망으로 부서지고 깨진 병마용과 그 위로 솟아오르는 영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허나 과거의 유물보다는 산 사람과 억울한 영혼들이 먼저가 아니겠나. 내 눈으로 보았고, 자네들이 함께했네. 그리고 아직 많은 증거가 남아 있어. 난 흡족하다네.”
금복인은 진심으로 그래 보였다.
일행이 전투의 현장을 훑을 때, 떨리는 외침이 들렸다.
“이럴 수가! 남아 있었어! 오오…! 간장검! 간장검의 파편이…!”
왕문이었다.
그는 서리불꽃이 훑고 지나간 궤도 끝에서 검 조각을 발견하고 기뻐했다.
“그게 간장검이라고? 찾아낸 게 용하구만. 근데 그걸 뭐에 쓰려고? 식후에 이빨 쑤시는 데는 딱이겠네.”
설지굉이 왕문을 비웃었다.
그의 말처럼, 손가락 하나 길이밖에 남지 않은 그것은 도저히 검이라고 부르긴 어려웠다.
허나 왕문은 모르는 소리하지 말라는 듯 진지하게 대꾸했다.
“이거면 충분하오. 처음부터 내가 원한 건 무기 자체보다는 그것을 만든 제련과 정련 기술이었으니까.”
작은 철 조각만으로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걸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는 투였다.
전국시대는 철기가 막 보급되던 때였고, 당시의 야금술이 지금의 것보다 뛰어날 리 만무했다.
하지만 언제나 시대를 앞서간 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왕문은 당대 명장의 걸작을 확인하는 것으로 자신의 실력이 현재에만 통용되는 것인지, 시대를 아우르는 것인지를 가늠하고자 했다.
그가 검편을 들여다보며 감탄을 뱉을 때, 마른 비가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한 조각의 영혼이 승천한 걸 확인한 뒤였다.
“가자. 여기까지 왔으니 뭐가 있는지는 봐야지.”
마른 비는 일행과 함께 서리불꽃이 부숴놓은 출구로 향했다.
마지막 방으로 향하는 입구이기도 한 그곳에 가까워지자, 금복인과 금벽파라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아, 아아……!”
“맙소사……. 노야, 이걸 어쩌죠?”
문이 자리한 벽면 전체에는 문자들이 빼곡히 각인돼 있었다.
문제는 핵심적인 내용이 새겨져 있었을 문이 통째로 증발해 버렸다는 것이다.
둘의 얼굴을 확인한 마른 비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음…… 미안.”
마른 비는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고, 금복인은 온몸을 경련하며 대꾸했다.
“괘, 괜찮… 다.”
문을 넘은 금복인은 기어이 말을 잃고야 말았다.
기다란 통로와 벽면 전체에 새겨진 문자와 그림들.
대부분이 진시황의 업적과 그에 대한 찬양이었지만, 당대의 문화와 예술,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있었다.
문제는 통로의 절반 이상이 완파되어 박살 나 있다는 점이었다.
힘이 다한 서리불꽃이 이곳에서 폭발한 게 틀림없었다.
마치 거대한 괴조가 발톱으로 통로를 짓이겨 놓은 것 같은 형상이었다.
마른 비는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금복인을 곁눈질했다.
“으음…… 할아버지, 진짜 미안.”
“…….”
침중한 분위기 속에서 일행은 통로를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를 수 있었다.
천오백 년 전 중화를 통일했던 최초의 황제에게.
“뭐야, 저거? 앉아 있는 거야?”
마른 비가 눈을 비비며 물었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들 역시 놀라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 금빛 옥좌에 앉은 사내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풍당당하게 허리를 세운 그는 두 마리 용이 그려진 황포(黃袍)를 입고 있었는데,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그건 마치 ‘누가 감히 짐의 허락 없이 이곳에 침입했느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유리관……. 저것 역시 기관 장치와 술법입니다. 유리로 사방을 뒤덮고 술법으로 내부를 밀폐했군요. 부패를 막고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함이겠지요.”
미카엘은 질린다는 어투였다.
서방에서 난다 긴다 하는 고대 제왕의 무덤을 여럿 목격했지만, 이런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진시황이란 자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독보적인 측면이 있었다.
“단순한 유지가 아니야. 복원까지 해놓은 게 틀림없다.”
금복인이었다.
그는 서적에서 읽은 진시황의 최후를 떠올렸다.
“이백칠십 개의 궁전과 호화로움의 극치라는 아방궁(阿房宮). 그리고 불사에 대한 탐닉. 하지만 수은에 중독된 그는 천하를 순행하는 와중에 허무하게 죽고 말았지.”
금복인은 진시황이 눈을 감는 순간을 상상하듯 아련한 눈으로 덧붙였다.
“불멸은커녕 수도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시신은 심하게 썩었다고 해. 냄새를 숨기느라 절인 생선을 실은 마차로 은폐할 만큼. 그걸 복원해서 저렇게 안치해놓은 거다.”
권세와 위신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었다.
거의 입을 열지 않는 금벽파라가 일행을 위해 설명을 보탰다.
“이제 알겠네요. 앞에서 본 천문도와 중화전도. 그건 하늘과 땅을 구현해 놓은 겁니다. 그리고 병마용……. 즉 천지인(天地人)이겠죠. 배치로 볼 때 셋 중 최고가 사람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존귀한 게 자신이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견의 여지가 없는 해석이었다.
설지굉이 거 보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역시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미친놈이야. 허세가 충만하다 못해 정신을 잠식했군. 저 새끼가 살아 있었으면 죽도록 두들겨 패서 인간을 만들어놓는 건데, 아쉽군.”
일행이 진시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우두커니 서 있던 마른 비가 걸음을 옮겼다.
비척대는 걸음걸이는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음? 수왕 님?”
“아우야! 왜 그러느냐?”
마른 비는 일행의 물음에도 대꾸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그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것… 계속해서 신경을 건드리던……. 이게 뭐지? ……자연기?’
마른 비가 방의 중앙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의 기운에 반응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 이렇게 되도록 설계한 것일까?
저 멀리 옥좌에 앉은 진시황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방에서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화르르륵―!
그건 극도로 집약되어 유형화한 기운이었다.
푸른 기운이 허공에서 타오른 순간, 방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좌우의 바닥이 열리며 숨겨져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그그긍―!
“세상에…!”
차유람이 입을 막으며 탄성을 흘렸다.
야광주의 빛을 반사하며 영롱한 광채를 뿜어내는 그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금은보화였다.
천하의 진귀한 광석과 보물을 망라한 그것은 만금당의 적손인 금복인조차 신음을 삼킬 정도였다.
“저, 저것…! 막야검?!”
보물의 산에는 척 봐도 범상치 않은 신병이기들이 꽂혀 있었는데, 왕문이 그중 한 자루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간장검과 한 쌍인 당대 최고의 명검.
왕문은 홀린 듯이 검을 향해 다가갔다.
“안 돼요!”
날카로운 외침에 왕문이 움찔거리며 멈췄다.
차유람은 다른 이들이 실수하기 전에 빠르게 말했다.
“절대 보물에 손대지 마요! 하나라도 건드리는 순간, 난리가 날 테니까!”
미카엘도 무언가를 깨달은 듯 덧붙였다.
“차 소저가 아니었다면 저도 놓칠 뻔했군요. 술법이 걸려 있습니다. 앞서 본 그것. 피에 반응하는 종류예요. 진시황의 후예가 아닌 자가 보물을 건드리는 순간, 기관이 작동할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추이를 볼 때, 진시황이 무얼 준비해 놨을지는 뻔했다.
“무너지겠군. 몽땅 다.”
설지굉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댔다.
입구에서라면 모를까,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천하제일 경공 고수의 할아비라도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진시황은 자신의 핏줄이 아닌 자에게는 한 점의 보물도 넘겨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허세는 고금 제일인 자식이 더럽게 쪼잔하군.”
설지굉이 툴툴거렸다.
여기 있는 것 중에 아무거나 하나만 들고 나가도 돈 걱정 없이 평생을 살 것이다.
그런데 그림의 떡이라니 욕이 나올 만했다.
그때, 차유람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운 좋은 줄 알아요, 다들. 일행 중에 제가 있다는걸.”
“설마…….”
차유람은 엄지로 스스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중원 최고의 해체 전문가. 시간이 엄청 걸리겠지만, 할 수 있어요. 정확히 인원수대로 나누죠. 불만 있는 사람?”
불만이 있을 리가.
돈이 싫은 사람은 없었고, 다들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서 희희낙락할 때였다.
미카엘이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엔 마른 비가 있었다.
“친구여. 무슨 일입니까?”
기관을 구동한 술력의 근원.
마른 비는 허공에서 타오르는 푸른 기운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는 무아지경에 빠진 듯 멍한 눈으로 몸을 흔들거렸다.
그의 상태를 확인한 미카엘이 눈을 좁혔다.
“……감응. 아니, 동조?”
일행이 하나둘 고개를 돌리고, 미카엘이 마른 비에게 다가갈 때였다.
그들이 지나온 뒤쪽에서 폭음이 들렸다.
꽈아아아앙!
그리고 이어진 금속성.
그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뭐냐? 침입자?!”
불청객들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