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진시황릉이 없었다니? 발굴 사실을 묻어 버리시려는 거요?”
왕문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금복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불분명한 소문만으로 이토록 많은 사람이 꼬였고, 참변이 벌어졌어. 황릉이 실재한다는 걸 알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 자들이 부지기수겠지. 그럼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일어날 거야. 난 그런 걸 바라지 않네.”
금복인은 단호했다.
하지만 곧바로 날카로운 외침이 튀어나왔다.
“안 됩니다! 노야! 그럼 노야의 입장이…!”
소리를 지른 건 거의 입을 여는 일이 없는 금벽파라였다.
금복인과 가장 가까운 사이이자 그의 모든 걸 물려받은 청년은 절박한 표정이었다.
“마지막 기회지 않습니까! 이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더 이상 이 일을 하지 못할 겁니다! 가뜩이나 노야를 곱지 않은 눈초리로 보는 자들이 많은데, 빈손으로 돌아가면…!”
막대한 인력과 비용이 들어간 발굴이다.
고고학의 가치를 아는 자들은 드물었고, 만금당은 물론이요 금가에서조차 금복인이 쓸데없는 일에 돈을 낭비한다고 불만이 많았다.
그가 지금껏 이 일에 착수할 수 있었던 건 현 당주 덕분이었다.
만금당의 당주이자 금가의 가주이며, 금복인의 형인 그가 뒤를 밀어주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금복인은 약속했다.
이번에야말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성과를 들고 오겠다고.
그래서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걷지 않았음을, 큰 부담을 감수하며 뒤를 밀어준 당주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겠다고.
한데 수년을 매달린 일을 허탕을 치고 빈손으로 돌아간다?
난리가 날 것이다.
비난도 비난이지만, 다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금벽파라는 금복인에게 쏟아질 냉소와 손가락질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한데 그런 상황 속에서 금복인이 미소를 띠었다.
“걱정해줘서 고맙구나, 아우야. 허나 내 입장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허풍쟁이에 무능력자, 정신 나간 늙은이라고 불리면 어떠랴. 황릉을 내 눈으로 확인했고, 날 믿어주는 이들이 있다. 그거면 충분해.”
금복인은 열기에 그을린 육편 조각들을 보며 말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 이 늙은이의 입장과 위신 따위보다 더 이상 사람이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해. 황릉이 실재하고, 저 밑에 막대한 보물이 묻혀 있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
“…….”
그 뒤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대의 제왕이 남긴,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재보.
만금당은 총력을 동원해 여산을 파헤칠 것이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발굴 실력을 지닌 우리들이 입구를 찾는 데만 삼 년이 걸렸다. 산 전체가 내려앉았지만, 대략적인 위치는 아니까 언젠가는 진시황의 방에 도달할 수 있겠지. 허나 당의 금력과 인력을 쏟아부어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거야.”
금복인은 뒷일이 훤히 보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이 본격적인 발굴에 착수하면 무림 세력들이 가만있을까? 온 천하의 이목이 집중되겠지. 과정도 어렵겠지만, 발굴에 성공해도 문제다. 진시황의 재보가 드러나는 순간, 혈겁이 벌어질 테니까.”
만금당의 핏줄이 경악할 정도의 금은보화.
무림 세력은 만금당이 그걸 가져가는 걸 절대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특정 세력과 손을 잡고 일을 추진해도 마찬가지다.
다른 자들이 눈이 벌게져서 달려들 테니까.
그리고 일이 그렇게까지 커진다면 황실이 개입할 가능성도 농후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여기까지 온 이상 저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야.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달려드는 자들이 허다하겠지. 그렇다면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게 나아. 그럼 믿지 못하고 뒤적거리던 자들도 결국은 포기하고 돌아갈 테니까.”
피가 흐르는 걸 막기 위해 오욕을 감내하겠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일생이 부정당할 걸 감수하고도 인명을 우선시하는 금복인의 결정에 일행은 뭉클해졌다.
특히 화산의 매화검수들은 감탄한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솔직히 지금까지 선배님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들은 전부 부정적인 것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진정한 의(義)가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강유는 금복인과 눈을 맞추며 진솔한 심정을 내보였다.
“선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번에 화산이 행한 일은 도적 떼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문의 명을 거부하지 못한 점, 그걸 핑계로 구차한 변명을 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강유의 얼굴에선 부끄러움이 묻어났다.
홍진설 또한 말을 보탰다.
“매화검수라는 자부심과 화산의 이름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눈은 처음 검을 쥐었을 때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홍진설은 사형이자 연인인 강유를 보며 말했다.
“사문엔 ‘진시황릉은 없었다.’고 보고를 올릴 거예요. 환희문의 간계에 휩쓸려 사파와 다투었을 뿐이라고. 그렇죠, 사형?”
“물론이다. 사문의 어른들께서 추궁을 하겠지만, 그건 저희가 감당하겠습니다. 의의 측면뿐만 아니라 그게 구명지은을 입은 자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강유가 몸을 돌려서 마른 비에게 포권했다.
“덕분에 살아서 빛을 볼 수 있었소. 고맙소. 오늘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에이, 은혜는 무슨. 같이 힘을 합친 결과잖아. 잊어버려.”
마른 비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강유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대는… 여러모로 놀라운 사람이오. 황제가 그대를 인정한 이유를, 최근 수왕의 이름이 천하를 진동시키는 까닭을 확실히 알겠소.”
“같은 생각이다.”
침묵을 지키던 초패가 입술을 뗐다.
“수왕……. 숱하게 들었지만 솔직히 얕잡아 본 게 사실이다. 이십 대 초반의 애송이가 강해봐야 얼마나 강할까 생각했었지. 게다가 권각을 사용한다니 기회가 되면 한번 붙어보려고 벼르고 있었어.”
“하하! 왜? 혼내주려고?”
마른 비가 농담을 건네자 초패가 웃었다.
“그래. 이길 자신이 있었거든. 한데 도저히 안 되겠다. 총타로 돌아가서 술이나 마셔야겠어.”
그는 금복인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내가 여기에 온 건 총채주와 유림채의 형제들 말고는 모르오. 그 외에 날 본 자들은 모두 죽었지. 난 아예 여기에 온 적이 없는 걸로 하겠소.”
“온 적이 없다고?”
초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총채주께는 ‘그런 거 없었다.’고 보고하고, 유림채는 입단속을 시키지. 여길 왔다고 하면 온갖 놈들이 지긋지긋하게 물어볼 텐데, 잘하지도 못하는 변명을 늘어놓느니 그게 더 깔끔할 것 같구려.”
하지만 초패는 잊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을 빛냈다.
“환희문……. 난 총타로 돌아가 그 미친놈들을 추적할 것이오. 함께 온 식구들이 모두 목숨을 잃었어……. 놈들을 박살 내지 못하면 호살권이란 별호를 버려야겠지.”
강유도 이를 깨물었다.
“저 역시 그놈들을 잡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감히 화산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야죠.”
“어? 그럼 둘이 같이 움직이면 되겠다. 만만찮은 놈들 같던데 그게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마른 비의 말에 초패와 강유는 동시에 피식 웃었다.
“애송이가 맞긴 맞군. 사파와 정파간의 알력을 이리도 모를 줄이야.”
“백 년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정파와 사파가 손을 합칠 만한 세력은 마교밖에 없소. 화산만으로도 충분하오. 도적들의 힘 따윈 필요 없지.”
초패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강유를 노려봤다.
“도적? 도인 흉내나 내는 깡패 놈들이 어디서 감히…. 무덤에서 다짜고짜 칼부터 휘두른 걸 잊었을 것 같나? 또 처 맞고 싶은가?”
“웃기는군. 도적에게 도적이라고 한 게 신경에 거슬렸소? 흉사방주와 대혈문주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온몸에 매화 문신을 새겨줬을 텐데. ‘또’라니, 누가 들으면 내가 밀린 줄 알겠군. 못다 한 승부를 지금 내보겠소?”
마른 비는 으르렁대는 둘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뭐야. 둘이 친하네.”
“아니다! 어딜 봐서 내가 정파 놈과…!”
“절대 아니오! 사파와 친하다니 그 무슨 망발을…!”
마른 비는 시시덕거리며 웃었다.
“그래? 둘이 좀 더 같이 지내면 규랑 중구처럼 될 거 같은데?”
강유와 초패는 눈을 번뜩이며 마른 비를 노려봤다.
“뭐, 아님 말고.”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겨서일까?
아니면 마른 비의 친화력이 둘 사이를 부드럽게 만든 걸까.
강유와 초패는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달리 보이지 않는 유대가 싹튼 것 같았다.
둘만 모를 뿐 다른 사람들은 그걸 느끼고 있었고, 홍진설은 놀랍다는 얼굴로 강유를 바라봤다.
“자, 그럼 결정됐군. 아우들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네.”
금복인이 손바닥을 부딪치며 말했다.
그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애써 쾌활한 척했고, 다른 사람들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무거운 표정으로 강유를 돌아봤다.
“강 아우, 종남에 소식을 전할 때 운가에 기별을 넣는 것도 부탁하네. 화산파가 그나마 그들과 가까운 것 같구먼. 슬픈 소식을 전하는 거라 쉽지 않겠지만, 부탁하이.”
“물론입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지요. 막주가 말한 맹주님에 관한 청부 건에 대해서도 알아볼 생각입니다. 한데 선배님, 아우라는 건….”
홍진설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우… 라고요? 사형, 금 선배님과 호형호제를 하기로 했어요?”
금복인은 너도 예외가 아니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사해는 동도고, 나보다 어리면 다 아우지. 홍 아우, 앞으로는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화산제일미를 동생 삼았다고 자랑할 생각이니까.”
“이 미친 늙은이……. 또 시작이군.”
금복인을 아는 자들은 킥킥거렸고, 강유와 홍진설, 초패는 기괴한 표정이 됐다.
설지굉의 욕설을 끝으로 일행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무너져 내려서 매몰돼 버린 입구.
그냥 둬도 찾기 힘든 그곳을 만금당의 인부들이 완벽하게 위장했다.
종국에는 싸움터의 흔적과 구별할 수 없게 돼서 나중에 오면 찾기 힘들 것 같았다.
“이제 거기만 손보면 끝나겠군.”
일행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마른 비 일행이 땅을 뚫고 나온 흔적.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해결되겠지만, 금복인은 흙을 뒤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음? 할아버지, 그건 뭐야?”
마른 비가 묻자, 금복인은 씁쓸히 웃었다.
“진시황릉에 들어갔었다는 증거. 차 아우가 보물을 챙겨 나왔듯이 난 이걸 가지고 나왔지.”
병마용이 걸치고 있던 갑주의 파편이었다.
땅을 뚫고 올라오기 전에 챙긴 것 같았다.
그건 진시황릉에 대한 한 조각 남은 미련이나 다름없었다.
마른 비는 금복인의 뒷모습을 보며 금귀진의 말을 떠올렸다.
‘난 숙부께서 하시는 일과 그분의 신념을 존중한다. 허나 그 때문에 본당의 식구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이 탕진되는 것도 사실이지. 그래서 난 비아, 너와 달리 그분의 일을 좋아하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난 당주께 숙부에 대한 지원을 끊으라고 여러 번 간언 드렸다.’
이어 금귀진은 덧붙였다.
‘하지만 아버님은, 아니, 당주께선 숙부를 지원하는 걸 중단치 않으셨지. 숙부께서 하시는 일에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저 철들지 않은 동생의 꿈을 지켜주고 싶은 것인지 난 아직도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역사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남기시길 바랄 뿐.’
금복인은 결국 해냈지만, 진시황릉은 그의 가슴 속에 묻힐 터였다.
마른 비가 본 금귀진은 당주가 될 역량이 충분한 자였고, 그가 그의 형제들을 제치고 당주가 되면 금복인에 대한 지원은 끊길 게 뻔했다.
“할아버지, 정말 이대로 괜찮겠어?”
착잡한 눈으로 파편을 내려다보던 금복인은 대답 대신 그걸 땅속 깊숙이 묻었다.
“괜찮고말고. 내 꿈은 여기서 끝이지만, 먼 미래에 누군가가 이걸 발견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언젠가는 진시황릉을 발굴할 수 있을 게야.”
씨앗을 묻듯 땅을 툭툭 다진 금복인이 몸을 일으켰다.
마른 비의 우려와 달리 그의 얼굴은 홀가분해 보였다.
“긴 꿈에서 깨어난 기분이구나. 이제 겨우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어!”
쾌활하게 말했지만, 노인의 눈시울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던 마른 비는 못 본 척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고생 많았어, 할아버지. 여러모로 정말 대단해. 할아버지 같은 사람은 또 없을 거야.”
밤을 지새운 그들의 머리 위로 찬란한 일출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