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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세록 남천제-345화 (345/463)

345화

“이젠 내 차례야.”

푸르른 자연기가 빛을 뿜고, 전사의 안광이 궤적을 가늠한다.

맥동하는 심장소리와 함께 전광이 달음박질쳤다.

“뢰창.”

콰르르릉―!

천공의 창이 대지를 달구니, 뇌성벽력에 장성 일대가 요동쳤다.

수왕을 상징하는 희대의 절기가 북벽에 작렬했다.

쩌저저저정―!

북벽.

그것은 세상 어떤 것도 정면에서 깨부수는 남자의 별호였다.

패문강은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 이까짓 것쯤 산산이 부숴주겠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크, 우오오…!

패문강은 밀릴 듯 밀리지 않았다.

뢰창이 상대를 꿰뚫기는커녕 밀어내지도 못한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패문강 또한 나아가지 못했으니, 푸른 창과 검은 방패가 맞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크아아아!”

투콰캉―!

내력의 우위.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낸 패문강은 끝내 뢰창의 파괴력을 걷어냈다.

하지만 그로선 예상할 수 없는 일격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방패가 열린 순간, 음파가 터졌다.

꽈르르릉―!

“컥…!”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은 패문강이 휘청거렸다.

그는 주르륵 밀려났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사납게 뜨며 방패를 끌어당겼다.

“그걸 맞고도 버틴다고?!”

마른 비가 패문강의 맷집에 놀랄 때였다.

방패에 진기가 주입되는 순간, 기괴한 변화가 일어났다.

마른 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이 제대로 본 게 맞는지 확인했다.

“……뭐지? 잘못 본 건가?”

패문강의 손에 들린 방패.

거기에 조각된 마귀의 형상이 살아 숨 쉬듯 꿈틀대고 있었다.

흉측한 얼굴이 생명을 얻은 것처럼 부르르 떨더니 동공에서 붉은빛을 번쩍였다.

그리고 쩍 벌린 입으로 소름 끼치는 울음을 토했다.

끼아아아아악―!

“윽…! 이게 뭐야?!”

비명처럼 들리지만 그건 울음이었다.

마귀의 절규는 인간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한 근원적인 공포를 건드렸다.

가슴이 울렁이고, 오한이 들며, 식은땀이 났다.

부족 식구들의 얼굴이 스치는 한편, 어서 가라고 외치던 은빛여우의 처참한 모습이 떠올랐다.

마른 비는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정신을 침식하는 마기(魔氣)에 저항하기 위해 자연기를 끌어올렸다.

푸른 기운이 호위하듯 일어나서 마른 비를 감싸자, 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군일이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중얼댔다.

“이럴 수가…! 마령벽(魔靈壁)의 귀곡성에 노출되고도 저 정도로 그친다고? 심지어 방어를 해? 저 꼬마, 진짜 뭐 하는 놈이냐?”

요섭도 입을 쩍 벌린 채 놀라워 하다가, 정정하고 싶은 게 있는지 군일을 힐끔거렸다.

“스물을 넘겼으면 꼬마는 아니죠, 부장. 저렇게 커다란 꼬마 봤습니까?”

“…….”

두 사람이 서로를 불만스러운 눈으로 쳐다볼 때, 소리와 소리가 충돌했다.

꽈르르릉!

끼아아아악―!

뢰창의 음파와 귀곡성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소리를 높였다.

용과 호랑이가 겨루는 것처럼 격렬히 부딪치던 둘은 힘이 다했는지 한순간에 소멸해 버렸다.

패문강이 방패를 내리며 감탄했다.

“물리적 타격에 음공을 곁들이다니……. 발상은 둘째치고 이런 게 실제로 가능할 줄이야. 직접 받아내고도 믿기지가 않는군.”

패문강은 우위에 선 내력과 마령벽의 활용으로 뢰창을 완전히 상쇄해 버렸다.

그가 참마도를 역수로 쥐며 자세를 낮췄다.

“정말 애먹이는구나. 그럼 이제….”

돌진하려던 패문강이 눈썹을 꿈틀댔다.

뢰창의 기운이 걷히고 시야가 트이자 깨달은 것이다.

마른 비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가슴 앞에 모은 두 주먹에 무시무시한 힘이 집중되고 있었다.

“저게… 무엇이냐? 이토록 위험한 기운이라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관통하는 전율.

서로 다른 두 가지 힘이 융합하며 새로운 힘을 창조하고 있었다.

패문강은 위기를 감지했고, 다급하게 날아올랐다.

하지만 마른 비는 혼자가 아니었다.

“크아아앙!”

별비의 앞발이 하늘을 가리며 날아들었다.

그 어떤 신병이기보다도 날카로운 발톱 앞에서, 패문강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큭…!”

방패로 막고, 옆으로 흘린다.

패문강은 별비가 다른 쪽 발톱을 휘두르기 전에 빈틈을 찔렀다.

“비켜라! 이 녀석!”

쩌정―!

패문강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별비가 발톱을 겹쳐서 참마도를 막아낸 것이다.

그때, 더욱 놀랄 일이 벌어졌다.

휘리릭―

별비는 도를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앞발을 놀려서 참마도의 궤도를 비틀어 버렸다.

그건 마치 노련한 검사가 상대의 무기를 제치며 중심을 흐트러뜨리는 것 같았다.

패문강이 휘청하는 순간, 백호의 송곳니가 날아들었다.

“크아앙!”

우지직―!

별비는 기어코 한 방을 먹이고야 말았다.

견갑을 부수고, 패문강의 어깨를 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엄청난 충격이 별비의 뇌를 흔들었다.

“커흥…!”

패문강은 이빨이 완전히 파고들기 전에 방패로 별비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고 마른 비 쪽으로 돌아서며 도를 냅다 집어 던졌다.

“멈춰라! 야금야금 무엇을 준비하는가!”

참마도가 풍차처럼 회전하며 마른 비를 덮쳤다.

“윽…!”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기술을 완성했을 텐데…!

지금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다간 목이 날아갈 테니까.

허리를 숙여서 피한 순간, 검은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얕보였군. 그런 큰 기술을 쓰게 놔둘 것 같으냐?”

정말이지 진저리나게 강한 사내였다.

그리고 힘 못지않게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패문강은 어깨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실패야…!’

뢰창과 별비의 저지력을 믿고 서리불꽃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건 시간이 필요한 기예였고, 패문강은 마른 비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후아아악―!

엄습하는 주먹 앞에서, 마른 비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이대로…!’

화기와 냉기의 속성을 담은 양손.

마른 비는 화기가 응집된 오른손을 움켜쥐었고, 뻗었다.

꽈아앙!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고, 양쪽이 동시에 튕겨 나갔다.

패문강이 어깨를 다치기도 했지만, 충돌하는 순간에 화기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불벼락을 주먹에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어?! 이거 괜찮은데?’

‘기술 이름을 불주먹으로 해야겠다!’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이번엔 왼손을 뻗었다.

날카롭게 모은 손칼.

냉기를 담은 뼈창이 패문강을 위협했다.

“이럴 수가! 뇌기에 이어 화기와 한기까지 다룬단 말이냐?!”

도대체 이 청년이 지닌 능력의 끝은 어디인가.

패문강은 진심으로 놀랐고, 반격을 준비했다.

마른 비의 힘을 확인한 그는 기가 질리기는커녕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패문강이 진기를 끌어올리며 호쾌하게 외쳤다.

“수왕이라 불릴 만하구나! 좋다!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방패술과 체술이 부딪친다.

권각이 교차하고, 화염과 얼음의 속성을 띤 자연기가 백색의 강기와 격돌하며 대지에 균열을 일으켰다.

투쾅―!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두 사람이 굉음과 함께 튕겨 나갔다.

패문강은 일부러 참마도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고, 바닥에 떨어진 애병을 회수했다.

그리고 냉기에 가격당한 상처를 확인한 후에 마른 비를 살폈다.

자신은 움직임이 둔화되는데 반해 그는 통증 말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듯했다.

“어이가 없군. 강기로 두드려도 쓰러지지를 않다니……. 인간의 몸뚱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야. 잔기술로는 승부가 안 나겠어.”

패문강이 방패를 팔뚝에 끼며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도를 양손으로 잡으며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는 남아 있는 내력을 도 한 자루에 전부 때려 부었다.

후아아악―!

돌풍이 부는 음향과 함께 새하얀 강기가 도신을 타고 흘렀다.

하늘을 향해 곧추세운 도가 무지막지한 패력을 뿜어냈다.

“이것도 받아낸다면 패배를 인정하겠다.”

먼저 태어난 자의 이점.

마른 비가 아직 서리불꽃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데 비해, 십 년의 시간이 주어진 패문강은 그만의 무공을 완성한 듯했다.

그는 숨 몇 번 들이켤 사이에 비기를 쏟아낼 준비를 마쳤다.

“참마(斬魔).”

참마(斬馬)에서 시작해 종국에는 참마(斬魔)에 다다른 절기다.

‘그것’들을 베어 넘기며 이룩한 무의 정수가 대도에 맺혔다.

스아악―!

시간과 공간, 영(靈)까지 끊어내는 절단음.

정지한 세상 속에서 백색의 가르기가 하늘을 양분하며 떨어져 내렸다.

그때, 하얀 섬광이 마른 비를 앞질렀다.

“커허헝!”

위험을 감지한 별비가 먼저 몸을 날린 것이다.

별비가 자신을 앞지르는 걸 본 순간, 마른 비의 사고가 멈췄다.

‘안 돼! 별비가 죽어…!’

저건 단순한 기의 응집체 따위가 아니다.

적중하는 순간, 절명할 수밖에 없는 필살초.

새하얀 죽음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움직여! 더 빨리 움직이라고…!’

몸은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느렸고, 별비가 위험했다.

‘안 돼! 제발…!’

강렬한 염원.

부단히 축적한 자연기.

그간 쌓아올린 전투 경험과 사선의 경계에 선 감각이 ‘그 영역’을 다시 열어 젖혔다.

비마를 쓰러뜨렸을 때 발 들였던 한 차원 앞선 시간의 영역이 속살을 드러냈다.

‘저건 평범한 기술로는 못 막아!’

인정해야 한다.

내가 그렇듯이 상대 또한 하늘이 내린 천재였고, 아직 내게 주어지지 않은 십 년의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다듬었다.

그는 지금의 나보다 강하다.

그리고 패문강의 비기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다.

정지된 시간 속 공간의 결을 가르며, 마른 비는 양손의 속성기(屬性氣)를 융합했다.

‘이것뿐이야!’

패문강이 자신보다 십 년을 앞섰다면, 그보다 십 년을 앞선 또 다른 천재가 있다.

아버지.

와족 역사상 최강이자, 여휘가 천하제일인이라 확신했던 남자.

그가 일생을 바쳐 만들어낸 기술만이 패문강의 절기를 상쇄할 수 있었다.

‘닿아라…!’

패문강의 가르기는 별비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천만다행이라면 모든 게 정지한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자신보다 빠른 건 없다는 점이었다.

수압에 짓눌린 듯한 감각은 전과 같았지만, 월등히 강해진 자연기가 그 압력을 헤쳤다.

“……!”

찰나의 순간, 마른 비가 움찔했다.

자신 말고도 이 영역에 들어선 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패문강이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더 빨라!’

그는 반응할 뿐, 자신처럼 움직이진 못했다.

마른 비는 최단거리를 돌파했고, 별비의 정수리를 쪼개려는 백색의 기운에 접근할 수 있었다.

‘십 년? 지금 따라잡아 주겠어!’

그러지 못하면 자신과 별비, 둘 다 죽는다.

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선 지금 이 자리에서 십 년의 격차를 좁혀야만 했다.

‘합쳐져!’

마른 비는 손이 터지든 말든 주먹을 맞댔다.

그리고 온 정신을 집중해 냉기와 화기가 조화되는 지점을 찾았다.

찰나지만 억겁과 같은 시간이 지나고, 뿔 난 망아지처럼 날뛰던 두 속성이 마침내 하나가 됐다.

‘해냈어!’

마른 비는 손을 뻗어 흉맹한 백색 기운에 서리불꽃을 가져다 댔다.

“……!”

마른 비가 마지막으로 본 건 패문강의 움직임이었다.

충돌의 순간, 그가 이를 악물며 도신을 비트는 게 보였다.

후아아악―!

멈췄던 시간이 제자리를 찾고,

투콰아아앙―!

빛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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