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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세록 남천제-348화 (348/463)

348화

“유명을 달리하다니……. 상 아저씨가 죽었다는 말이야?!”

마른 비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패문강과 군일도 눈을 부릅떴다.

갑작스런 부고를 들은 그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여기로 오는 중에 상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었어. 작년에 엄청난 전공을 올렸다고. 원의 이름난 장수를 물리치고 승상이란 사람을 패퇴시켜서 장성 너머로 밀어냈다면서? 펄펄 날아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왜….”

서달은 목소리를 낮추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질병. 원인불명의 질병 때문이네.”

“질벼엉?”

마른 비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표정이었다.

무공의 고수라고 병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다.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이 강건하고 면역력이 강할 뿐, 인간인 이상 이겨낼 수 없는 병은 무수히 존재한다.

하지만 평범한 무인도 아니고, 십좌급의 무장이 질병에 걸려서 죽었다?

심지어 일 년도 안 되는 기간을 못 버티고?

세 사람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자, 서달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안 되지. 그렇고말고. 하지만 사실이네. 아니, 사실이어야 해.”

개운치 못한 여운을 남기는 말이었다.

그리고 마른 비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자연기를 일으켰고, 주위에 소리를 차단하는 무형의 막을 둘렀다.

“아저씨. 이야기하지 않은 게 있지? 솔직히 말해줘. 여기 있는 사람들이 섣불리 말을 옮기지 않을 거라는 거 알잖아.”

웬만하면 입을 열 만한데도, 서달은 침묵했다.

마른 비는 좀 더 차분한 어조로 또 한번 그를 설득했다.

“난 상 아저씨와 함께 싸운 전우야. 여기 있는 두 사람은 이제 아저씨를 대신해서 이십만 대군의 우익을 맡게 될 거고. 그 정도면 들을 자격이 있지 않아?”

서달은 눈을 꾹 감았다 뜨더니 입술을 뗐다.

“그래… 그 말이 맞네. 자네들이라면 들을 자격이 있지. 다른 이들에게는 말 못 할 이야기이기도 하고.”

서달은 과거를 떠올리듯 눈을 가늘게 떴다.

“난 비보를 듣자마자 상 장군이 쓰러진 유하천(柳河川)으로 달려갔네. 그리고 그의 주검을 살폈어. 질병……. 얼핏 보기에는 그래 보였지. 하지만… 아니야. 그건 위장이었어.”

“……!”

혼자 짐작할 뿐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럴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말하기가 쉽지 않은지 몇 번이나 주저하던 서달은 결심한 듯 말했다.

“독살. 주검을 면밀히 살핀 내 결론일세. 상 장군은 피살된 거야.”

“독살이라니…….”

마른 비와 패문강이 이맛살을 찌푸렸고, 군일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댔다.

군부 서열 2위의 실력자이며, 명을 대표하는 핵심 인물.

대체 누가 있어 상우춘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서달은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 사람의 머리를 말끔히 정리해 주었다.

“외부의 인물이 상 장군을 죽일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는 철두철미한 성격이었네. 믿을 수 없는 음식은 일절 입에 대지도 않지. 설령 독이 든 무언가를 흡입했더라도 어지간한 독 따위에 쓰러질 리 없네.”

당연한 이야기다.

십좌급의 무장을 살해할 수 있는 독이 천하에 얼마나 될까.

상우춘의 이목을 속일 만큼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맹독.

그걸 그의 의심을 사지 않고 먹일 수 있는 사람.

또한, 상우춘의 시체에 조작을 가할 수 있는 사람.

“그럴 수 있는 건 천하에 둘 뿐이네. 나, 그리고….”

“맙소사…….”

군일이 신음을 흘렸다.

숨소리도 잦아든 침묵 끝에 패문강이 물었다.

“숙청… 입니까?”

서달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도 믿기 힘든 일이었고, 부정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리 내어 답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모두의 심중에 있는 말을 거리낌 없이 꺼낸 건 마른 비였다.

“아저씨가 자신의 신하를 죽인 거야?”

“…….”

무서우리만치 날카로운 정적이 흘렀다.

추측일 뿐이지만 그건 한없이 진실에 가까웠으며, 그렇기에 침묵은 무언의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마른 비는 왜냐고 묻지 않았다.

그도 이제는 권력의 생리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른 비는 황제의 신하들이 뱉기 힘든 말들을 거침없이 꺼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상 아저씨는 군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고, 굉장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잖아. 제국이 안정세에 접어드니 이제 개국공신들의 힘이 거슬리는 건가?”

사냥이 끝났으니 쓸모없어진 사냥개를 잡는다.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그리고 앞으로 더욱 덩치가 커질 사냥개부터 차례로 도륙될 터였다.

그리고 주원장의 성향으로 보아 칼을 빼든 이상 누구도 살려두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생각보다 훨씬 잔인한 사람이네. 냉혹한 사람이고.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욕망에 충실해. 스스로 말한 대로 욕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돼 있구나.”

마른 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서달을 바라봤다.

그의 눈엔 염려가 깃들어 있었다.

“아저씨. 이대로 괜찮겠어? 상 아저씨를 쳐낼 정도라면 아저씨도 위험한 거 아니야?”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왜 서달을 먼저 죽이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실력, 권력, 명망 모든 면에서 가장 위협적인 사람을 꼽으라면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서달이었으니까.

“곰곰이 생각해봤네. 왜 내가 아니었는지.”

서달은 이제 주원장이 숙청의 칼을 빼들었다는 걸 인정하고 대화에 임했다.

진심을 드러낸 그의 얼굴엔 다른 이들이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고민의 흔적이 묻어났다.

“우선 초원 정벌. 군 전체를 통솔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겠지. 상 장군의 무력은 나보다 뛰어나지만, 군의 단위가 십만을 넘어가면 통솔에 어려움을 드러냈네.”

두 번째 이유는 군의 사기였다.

총사령관은 언제나 서달이었으며, 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원의 명장들은 건재하지만, 그들이 부릴 병사가 모자란 상황입니다. 심지어 지금 저들은 극심한 내전을 겪고 있죠. 원이 무너지자 카안에게 고개를 숙였던 대족장들까지 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군일의 말이었다.

대족장들의 반란은 북벌 이전부터 착수한 공작의 결과였으며, 제국이 무너지자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추세였다.

“대장군 홀로 충분히 정벌을 해낼 수 있는 상황……. 상우춘 대장군을 숙청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시점이군요.”

군일이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서달은 동의한다는 듯 끄덕였다.

“세 번째 이유는 글쎄……. 인간적인 정리(情理)가 아닐까 싶네. 폐하와 나는 처음부터 함께한 사이니까. 그리고 내가 본인은 물론이고 황자들의 지위를 위협하진 않을 거라고 여긴 게 아닐까…….”

마른 비는 듣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말은 서달의 미련이자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저씨답지 않게 왜 그래? 아닌 걸 알잖아. 그런 거에 연연할 사람이 아니야. 과거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위협이 된다면 가차없이 손을 쓸걸?”

부정할 수 없는 판단이었다.

서달이 말을 잃자, 마른 비가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많은 의미가 함축된 질문이었다.

서달은 그답지 않은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다가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뭘 할 수 있겠나. 자네도 폐하를 잘 알 것이야. 그분이 칼을 빼들었다는 건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지. 무슨 짓을 해도 벗어날 수 없네.”

서달이라면 상우춘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아낼 거라는 걸 주원장이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그건 숙청의 시작이자 경고였다.

허튼 생각하지 말라는.

얌전히 엎드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라는.

설령 여기서 군대를 돌려 북경으로 진군하더라도 주원장은 그에 대한 대비를 끝내놓았으리라.

진군은커녕 반역의 칼날을 뽑는 순간, 십중팔구 여기서 참살당할 게 분명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도 폐하께 보고가 되겠군요.”

군일이 심란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대장군이 수왕과 북벽을 대동한 채 밀담을 나누는 건 모든 병사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가만히 살피니 유독 날카로운 눈초리들이 번뜩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십이나 백 단위의 숫자가 아니었다.

“자네들은 믿지 않겠지만, 설령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난 폐하를 등질 생각이 없네. 그분을 대체할 존재도 없을뿐더러 겨우 이룩한 제국을 무너뜨릴 순 없어.”

서달은 아련한 눈으로 지평선 너머까지 뻗은 장성을 훑었다.

주원장과 호형호제하며 지낸 세월이 그리운 듯했다.

목숨을 노린다면 곱게 죽어주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와 싸울 생각도 없다.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 제국 최고의 권력자도 결국은 속세의 풍진에 휘말린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다.

“일단은 주어진 임무에 집중할 것이네. 그것이 나의 사명이니까. 그리고 제국의 후환을 제거하고 나면, 자리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아갈 생각이야.”

서달은 초원에 눈을 고정한 채 한참을 서 있었다.

마른 비는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북경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의 눈빛에서 더 이상 주원장에 대한 호감을 읽기는 어려웠다.

스스슥.

이십만 대군 사이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일었다.

병사들 속에 섞인 자들은 무언가를 적기도 하고, 수신호로 내용을 주고받기도 했다.

네 사람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밀담.

방금 한 말이 자신의 목숨을 살리는 계기가 됐다는 걸 서달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운남의 최북단, 매리설산.

그리고 매리설산을 상징하는 태자십삼봉.

그중에서도 장족들이 설산의 신이라고 경외하는 봉우리 가와격박(伽瓦格博)은 변함없는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휘이이잉―

살을 에는 칼바람도 여전했으며, 봉우리를 뒤덮은 만년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게 있었으니 설산의 제왕이 군림하는 그곳에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메아리쳤다.

“키아아아악!”

눈자위가 새빨갛게 물든 야수들이 맹렬한 공격성을 드러냈다.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든 짐승들은 날카롭게 솟은 바위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훌쩍 뛰어오르기도 하고,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타고 올라 그 위에 있는 무언가를 부수려 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저지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삐아아아악―!”

새하얀 깃털을 지닌 새들.

십여 마리의 독수리가 발톱을 세우고 하강했다.

그것들은 바위를 타고 오르는 야수들을 할퀴고, 부리로 쪼며 떨궈냈다.

압도적인 전투력.

날짐승을 당해내지 못한 길짐승들은 방법을 바꾸었다.

쿵! 쿵! 쿠웅―!

바위를 들이받기 시작한 것이다.

야수들은 기이할 정도로 몸집이 부풀었는데, 개중엔 도저히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기형종들도 섞여 있었다.

“키아악! 키악―!”

울음소리조차 정상이 아닌 그것들은 온몸을 날려 바위에 부딪쳤다.

마치 바위 자체를 무너뜨릴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비정상적으로 크고 강인한 짐승들은 그걸 해낼 것처럼 보였다.

푸스스스―.

높게 솟은 바위가 흔들리며 돌가루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익―!”

그 순간, 하얀 폭풍이 덮쳐왔다.

다른 독수리들의 몇 배는 됨직한 거조가 내리꽂히며 짐승들을 휩쓸었다.

설산의 눈처럼 새하얗게 빛나는 발톱은 적들을 찢어발겼고, 부리는 검사의 찌르기처럼 야수들을 관통했다.

홀로 수백 마리의 짐승을 몰살할 기세.

설산의 바람을 타고 날개를 편 하얀 깃 앞에서, 야수들은 두려운 듯 몸을 움츠렸다.

“삐아아아악―!”

-정신을 놓아도 절대 덤벼선 안 될 상대가 있거늘! 미친것들이 감히 누구의 알을 노리는 것이냐!

설산의 제왕이 진노하자 자연기가 뭉클대며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끔찍한 살의의 폭풍이 되어 야수들을 덮쳤다.

눈에 뵈는 것 없이 달려들던 짐승들이 부들부들 떨며 누런 오줌을 지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러나지 않았고, 그건 하얀 깃에게 결단을 강요했다.

―제정신이 아님을 알기에 가급적 죽이지 않으려 했거늘. 오냐, 내 오늘 설산을 피로 물들이리라.

만년설을 뒤집어엎을 듯한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하얀 깃은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고, 전력을 드러낸 제왕의 힘은 공포 그 자체였다.

원시림에서부터 기어 올라온 짐승들의 행렬이 주춤할 때, 이질적인 존재들이 나타났다.

“엄청나군! 수신의 가호를 받지 않은 짐승이 어떻게 저런 힘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중원의 동부, 운태산에 나타나 마른 비와 격돌했던 자.

뱀 가죽을 목에 두르고, 얼굴에 네 줄의 자묵을 새긴 수령사가 눈을 번쩍였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소체로다! 내 기필코 저 녀석을 잡아 수신께 바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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