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그 수밖에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밖에 없다.
당장이라도 얼어 죽는 걸 모면할 길은…!
노을이 부러진 다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
그러자 옹개와 마주 보며 그의 가슴에 바짝 밀착한 상태가 됐다.
단매에 때려죽여도 모자랄 악인의 품.
깊게 심호흡을 한 뒤, 노을이 중얼댔다.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어. 난 여기서 죽을 수 없거든.”
그건 옹개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지금부터 할 행동은 단순히 적을 죽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었다.
노을이 눈꺼풀에 가려진 옹개의 눈을 올려다봤다.
“미안.”
부아아악―!
자연기를 흘려 넣은 손날.
예리하게 가다듬은 수도(手刀)가 옹개의 뱃가죽을 갈랐다.
철철 흐르는 피가 뜨거운 김을 피워 올렸다.
“우욱…!”
짐승이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죽여 봤다.
먹기 위해서, 강해지기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 혹은 살기 위해서.
하지만 살인에는 익숙지 않다.
성년식 내내 칼바람과 싸우느라 전쟁에 참전하지 못했고, 이번 사태가 터지고서야 처음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래서일까?
짙붉은 피가 온몸을 뒤덮자 구역질이 치밀었다.
‘짐승이야. 이건 짐승이야….’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옹개는 변이를 겪으며 우둔한 땅만큼이나 커졌고, 그의 외형은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까웠다.
심지어 하는 짓까지도.
그래도 인간의 몸을 해체한다는 게 절대 쉬울 리 없었다.
꾸드득, 꾸득.
그나마 다행인 건 어둠 때문에 색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을은 아예 눈을 감은 채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만으로 옹개의 뱃속을 더듬었다.
그리고 잡히는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욱! 우웩…!”
아무리 적이고 악인이라지만 욕지기가 치미는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할까?’하는 회의도 들었다.
그때마다 노을은 식구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야속하게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너무나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그렸다.
‘어딜 헤매고 있을까? 이 난리가 났는데도 비아 넌 돌아오지 않는 거야?’
마른 비를 생각하니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와 내장의 역한 냄새가 가시는 듯했다.
바삐 손을 놀린 끝에, 노을은 옹개의 뱃속에 든 것들을 전부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러자 딱 그녀가 웅크릴 만한 공간이 생겼다.
“컥… 쿠헉, 커걱…!”
손끝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차단한 탓일까?
노을은 그제야 옹개의 신음을 들었다.
심장을 포함한 주요 장기가 남아 있기 때문인지 그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아…!”
생각이 짧았다.
아무리 악인이라도 이런 고통을 주는 건 못 할 짓이다.
미리 숨통을 끊었어야 했는데…!
끔찍한 통증 때문에 옹개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눈을 찢어져라 부릅뜨며 괴로워했고, 울컥울컥 피를 쏟았다.
몸이 멀쩡했다면 가만있지 않았겠지만, 주술이 풀리고 온몸이 박살 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맨정신인 상태에서 산 채로 장기가 꺼내지는 형벌을 당한 것이다.
“커, 커컥… 주, 죽여…!”
옹개에게 목숨을 잃고, 그에게 농락당한 자들이 저승에서 봤다면 어땠을까?
통쾌했을까? 아니면 너무하다고 느꼈을까?
어찌 됐든 노을은 이 순간만큼은 옹개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꼈다.
“미안. 넌 죽어 마땅한 놈이지만, 이건 내 실수야. 바로 보내줄게.”
푸욱!
노을이 수도로 옹개의 목을 찔렀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부르르 떨다가 고개를 떨궜다.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서 해방된 그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서둘러야 해.’
옹개의 피는 벌써 얼어붙고 있었다.
노을이 부러진 다리를 붙잡고, 이를 악물었다.
꽈드득―!
“크윽…!”
그녀는 어긋난 다리뼈를 제 위치에 맞췄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옹개의 갈비뼈 하나를 부러뜨렸다.
그걸 부목 삼고, 옹개의 뱃속에서 끄집어낸 창자를 둘러서 질끈 고정했다.
‘됐어…. 이제 버티기만 하면 돼!’
다친 다리를 먼저 밀어 넣고, 이어 몸을 들이민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 때문인지, 아니면 무뎌진 것인지, 더 이상 역겹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생존 그 하나만을 구하며 옹개의 뱃속에 들어앉았다.
‘분명히 구하러 올 거야. 그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해!’
두쿵, 두쿵―!
놀랍게도 옹개의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었다.
식지 않은 체온과 뜨거운 피.
꽁꽁 얼어붙었던 몸이 사르르 녹았다.
노을은 숨을 쉬기 위해 갈라놓은 뱃가죽 사이로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그러고는 서서히 잦아드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온몸을 찌르는 듯한 추위 때문에 노을은 잠에서 깼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을 뒤척였다.
쩌저적―!
“……?!”
그녀가 놀란 건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였다.
아니, 움직일 순 있는데 온몸이 결박된 것처럼 뻑뻑하다.
노을은 금세 이유를 알아챘다.
‘얼었어…!’
옹개가 통째로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피부는 물론이고, 장기와 몸속에 들어찬 피까지 얼어붙었다.
그나마 혈액이 완전히 빙결되기 전이라 망정이지, 좀 더 시간이 지났다면 무척이나 난감했을 터였다.
‘옹개가 없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거야….’
다리가 부러져서 위로 기어 올라갈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였다면 벌써 동사(凍死)했으리라.
어쩌면 추락한 시점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옹개 덕분에 어떻게든 연명할 수 있었는데, 이다음이 문제였다.
‘버틸 수 있을까?’
깜빡 졸은 사이에 옹개 같은 거구를 통째로 얼려버릴 정도의 기온이다.
머지않아 자신도 같은 꼴이 될 터.
비린내와 악취가 진동할 텐데, 코가 마비된 건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춥다는 생각뿐.
‘움직여. 움직여야 해!’
가만히 있다가는 이대로 얼어 죽는다.
노을은 옹개의 뱃속에서 꿈틀대며 몸을 움직였다.
열기를 피워서 몸을 데우고, 그걸로 얼어붙으려는 옹개의 피를 녹인다.
노을은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헉, 헉…!”
그러다가 깨달았다.
제한된 공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걸.
차라리 온몸을 쓰며 뛰어다니는 게 낫지,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자연기까지 써가며 움직였음에도 체력 소모가 엄청났다.
“빌어… 먹을! 젠장! 젠자앙!”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는 건가?
회의가 끊임없이 밀려왔지만, 노을은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설산은 노을을 외면했다.
‘힘들어…. 지쳐…. 토할 것만 같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자연기마저 고갈돼 버렸다.
노을은 옹개의 뱃속에서 태아처럼 꿈틀대다가 서서히 죽어갔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야? 남들도 다 이런가?’
극한 상황에 다다르니 별의별 생각이 떠오른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어두워. 무서워. 힘들고 외로워.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단 말이야…!’
새카만 어둠과 치명적인 부상.
극심한 추위와 뱃속을 긁는 허기.
그리고… 몸서리쳐질 만큼의 고요.
마음이 약해지자 두려움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그리고 공포는 의심을 불러왔다.
‘……정말 날 구하러 올까?’
깊이가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디딜 만한 곳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어디로 추락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떨어질 땐 싸움이 끝나기 전이었는데, 구하러 올 여유가 있을까?
설령 전투에서 이겼다 해도 여기까지 목숨을 걸고 내려올 사람이 있겠느냔 말이다.
‘끝났어……. 난 죽을 거야. 옹개의 뱃속에서 녀석과 함께…. 녹거나 부패하지 않고 영원히 이대로 보존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끔찍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절대 그런 최후를 맞고 싶지는 않았다.
“으, 으윽…!”
노을이 마지막 힘을 짜내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나가면 곧바로 얼어 죽겠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그게 백배 천배 나으니까.
뿌드득, 뿌득!
그녀는 몸을 비틀어서 얼어붙은 피를 부쉈다.
그리고 뱃가죽을 연 뒤에 꿈틀대며 밖으로 나왔다.
“헉! 허억…!”
숨결조차 얼려버릴 한기.
추위가 칼날처럼 엄습했지만, 노을은 만족했다.
그리고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두자 또 한 가지 잘했다 싶은 게 있었다.
‘참길 잘했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건 아니야.’
식인.
누군가는 인간의 배를 열고 그 안에 들어가는 짓까지 저질렀으면서 웃기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이 뭐라던 노을의 기준에서 인간을 먹는 건 최후의 최후까지 넘지 말아야 할 선이었다.
성년식 시절엔 급하면 짐승의 생혈을 마시고, 생고기를 씹었다.
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지만, 이상하게 그것만은 극심한 거부감이 들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이게 지금 내가 맞을 수 있는 최선의 죽음이야.’
외롭고, 힘들고, 무서웠다가, 식구들을 의심하기까지 했지만, 마지막에 남은 건 그녀 특유의 낙천성이었다.
흔들리기도 많이 흔들렸지만, 누가 뭐래도 그녀가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란 걸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식구들의 사랑도 받아봤어. 족장이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도 이뤘잖아? 이 정도면 멋진 인생이지, 뭐. 죽음도 달게 받아들이자.’
짧은 생애를 그렇게 결론지었다.
노을은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서서히 죽어갔다.
“…! …! ……!”
이제는 아픔도, 배고픔도,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대로 잠들면 너무나 편안할 텐데.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그녀의 영면을 방해했다.
그리고 꽉 닫힌 눈꺼풀 너머로 빛이 일렁였다.
“……! …! ……!”
‘뭐라는 거야? 졸려 죽겠는데 왜 방해해? 대체 누구야?’
쩌적―.
살얼음이 깨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눈꺼풀이 열렸다.
있는 대로 인상을 쓰던 노을이 눈을 번쩍 떴다.
‘아아…!’
얼마나 보고 싶던 얼굴인가.
넓은 세상이 궁금하다며 자신과 식구를 버리고 떠난 바보 멍청이가 눈앞에 있었다.
‘비아, 이 망할 새끼! 이제야 돌아와? 넌 좀 맞아야 돼!’
있는 힘껏 얼굴을 후려갈기고 싶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건 마음과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왔… 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아픈 데는… 없지?”
그 말을 끝으로 노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툭 떨궜다.
“보고… 싶었다니…….”
노을의 앞에 선 사내가 놀란 듯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자신을 누구와 착각했는지 깨달았다.
‘내가 미쳤구나. 이런 상황에서 설레다니…….’
모두가 말리는 가운데 설산의 균열로 뛰어든 사내.
정신이 날아갈 듯한 추위를 뚫고, 빙판을 부수며 여기까지 내려왔다.
그는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고백을 했다.
“족장. 사 년 전 설산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당신을 알게 됐소. 그때부터 그대에게 향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지.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새벽 어스름이 자연기를 온몸에 퍼뜨렸다.
그리고 꽁꽁 얼어버린 노을의 몸을 끌어안았다.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않소이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
어스름이 겉옷을 벗어 노을을 감싼 뒤, 그녀를 업었다.
그리고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꽉 묶었다.
“날 보지 않아도 좋소. 그대가 웃는 걸 볼 수만 있다면 나 또한 행복할 것이니.”
설산의 균열, 천 길 낭떠러지 밑에서 꺼내놓는 진심이었다.
일렁이는 불빛 아래, 사내가 어둠을 올려다봤다.
“여기서 살아나갑시다. 반드시 당신을 살릴 것이오. 그리고 환히 웃는 걸 보고야 말겠어.”
어스름이 이를 깨물며 팔을 뻗었다.
그리고 얼음절벽을 기어오르며 말했다.
“내가… 꼭 그렇게 만들어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