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화
“웬 미친놈이…?”
경휘염은 철중구를 알아보지 못했다.
막강한 투기를 뿜는 사내들이 늘어선 뒤에야 상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투견대?!”
경휘염의 눈이 커졌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놈들이기 때문이다.
투견대는 정사대전 중에 정파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전투단 중 하나였다.
신생 집단인 그들이 사도련의 전통적인 무력 단체보다 유명해진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호전성.
어떻게 이런 인간들을 모아놓은 건지 궁금할 정도로 투견대원은 하나같이 싸움에 미친 자들이었다.
거칠고 공격적인 데다 싸움 자체를 즐긴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걸 알면서도 거침없이 달려든다.
그래서 투견대는 정사대전 초기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멍청한 놈들이라고 비웃던 세간의 시선이 바뀐 건 전선 하나를 밀어버리면서부터였다.
사지에 뛰어들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투견대는 점차 강해졌고, 전장의 사기를 좌우할 정도의 존재가 됐다.
팔다리가 날아가도 상대를 죽일 수 있으면 주저 없이 달려드니, 공격받는 쪽은 기가 질릴 수밖에 없다.
결국 최중요 전선으로 꼽히던 호남 북부 지역을 탈환한 뒤, 투견대는 사도련을 대표하는 전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투도…! 투견대가 이름을 떨치게 된 진짜 이유는 대주 때문이라고 했다…!’
경휘염의 눈이 철중구를 향했다.
투견대가 유명해진 결정적인 이유.
바로 대주의 걸출함 때문이다.
투견대주는 탐나는 싸움꾼이 보이면 다짜고짜 시비를 거는 걸로 유명하다.
철저히 때려눕히고, 수하로 받아들인 다음 육성한다.
소문에 따르면 투견대주는 그때마다 내기를 건다고 했다.
자신을 이기면 투견대 전체가 밑으로 들어가겠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거는 데도 투견대는 가만히 있었다.
자신들의 대장이 지지 않는다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투견대주는 지금껏 내기 비무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 저런 뒷골목 양아치 같은 놈이 고수라니?’
철중구는 도를 어깨에 걸친 채 삐딱하게 서 있었다.
고수의 품격?
그런 건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저건 그냥 백수건달이 아닌가.
홍등가에서 만취한 채 배를 벅벅 긁고 있는 게 딱 어울리는 모습이다.
경휘염은 철중구가 강하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야! 왜 말이 없어? 븅신이 서서 자냐? 이리 오라니까?”
철중구는 도발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아!’ 하며 입을 벌렸다.
“새끼, 쫄았구만? 사나이의 패기에 압도당한 거야! 하긴 그럴 만하지. 난 개 쩌는 남자니까!”
쩐다?
난생처음 듣는 말이다.
뒷골목 비속어 같은데 대략적인 어감으로 이해할 뿐.
경휘염은 철중구를 보면 볼수록 경멸만 짙어졌다.
그리고 얼토당토않은 헛소리에 화가 났다.
“겁을 먹었다고? 내가? 웃기지 마라! 어디서 씨알도 안 먹힐 소릴…!”
“중구?! 네가 왜 여기 있어?”
마른 비가 소리치는 바람에 경휘염의 말은 끊겨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왜긴! 도와주러 왔다! 친구잖아!”
철중구는 ‘사나이다운’ 표정을 지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러곤 오른손 엄지를 척 올렸다.
굉장히 구리지만, 스스로는 그걸 멋지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아아… 맞다! 비아야!”
갑자기 철중구의 눈이 몽롱해졌다.
“네 덕분에 운남에 와서 평생의 짝을 찾았다…! 지금껏 그렇게 멋진 여자를 본 적이 없어! 너희 식구니까 나중에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여자? 우리 부족의?”
마른 비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경휘염은 기가 막혀서 말을 더듬었다.
“이, 이놈이 날 앞에 두고 여자 이야기를…! 나를 봐라, 투도! 내가 바로 정도맹 백호대주 경휘…!”
“으엉? 어디서 찐따 새끼가 형님들 말씀하시는데 끼어들어, 끼어들길? 야, 좆밥. 봐줄 테니까 얼른 짐 싸서 도망가라. 운 좋은 줄 알아! 내가 지금 사랑에 빠지면서 관대함에 눈을 떴거든!”
철중구가 등장한 순간, 추격전의 긴박함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투견대는 철중구의 뒤에서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차마 대주로 모시는 분께 ‘형님, 얄짤없이 차였으니 정신 좀 차리쇼!’라고 말할 수 없었다.
착각에 빠진 철중구는 혼자 신이 났고, 입이 있지만 말 못 하는 수하들은 쓴웃음만 지었다.
그래서 투견대는 명성과 달리 너무나 허술해 보였다.
“대주님. 언제까지 저런 헛소리를 듣고만 계실 겁니까?”
백호대가 도를 쥐며 나섰다.
그들은 투견대를 본 순간부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투견대가 사도련을 대표하는 것처럼, 정도맹을 대표하는 무투파 집단이 바로 백호대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무기가 ‘도’라는 것까지 똑같다.
호(虎) 대 견(犬).
백호대는 투견대를 눕혀서 이름 그대로 격의 차이가 난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맛이 간 놈에게 휘말려 버렸군. 너희가 졸개들을 맡아라. 그사이에….”
경휘염의 눈이 번쩍였다.
신형이 흔들린다 싶은 순간, 경휘염은 마른 비의 코앞까지 쇄도해 있었다.
“내가 수왕을 처리하마!”
허나 그의 생각대로 될 리가 없었다.
“누가 누굴 처리해?”
쩌엉―!
경휘염의 도가 하늘로 들렸다.
어느새 따라붙은 철중구가 가벼운 한 수로 그의 공격을 차단해 버렸다.
“카하하! 뒈져라! 우주의 먼지 같은 놈아!”
철중구식 ‘선빵’.
허술하기 짝이 없는 앞차기가 뻗어졌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경휘염은 그걸 피하지 못했다.
“컥…!”
배를 걷어차인 경휘염이 붕 떠올랐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왜 이런 허접한 공격을 피하지 못한 거지?
철중구는 너 같은 표정을 짓는 놈이 한둘이 아니라는 듯 외쳤다.
“왜 못 피했는지 궁금하냐? 당연히 궁금하겠지! 알려줄까?!”
붉은 기운이 도신을 타고 흐른다.
적사자기.
패군의 진신비기가 철중구의 손을 빌려 현신했다.
“왜냐면! 넌 좆밥 찌끄래기고, 난 사나이 중의 사나이기 때문이지!”
붉은 사자의 포효가 대기를 찢어발겼다.
경망스러운 언행과 달리 철중구의 실력은 진짜였다.
백호대의 부대주가 기겁을 하며 달려왔다.
“대주님…!”
투콰아앙―!
붉은 기운과 새하얀 기운이 충돌했다.
경휘염은 부대주의 지원을 받고서야 가까스로 철중구의 도강을 상쇄할 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확연한 열세.
도를 쥔 손이 파르르 떨린다.
놀랍게도 투견대주가 정도맹 사대 무력 단체의 대주보다 한 수 위라는 게 판가름 난 순간이었다.
“뭘 놀라? 당연한 걸 가지고.”
철중구는 도를 어깨에 척 올리더니 검지로 경휘염을 가리켰다.
“개.”
그런 다음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호랑이.”
‘카아하하!’ 하는 경박한 웃음은 백호대의 자존심을 뭉개는 도발이었다.
“얌마. 나보다도 약한 놈이 누구 목을 날린다고?”
철중구는 마른 비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비아는 나와 친구. 그러니까 얘도 호랑이. 똥개야, 뭔 말인지 알겠냐?”
“음……. 형님이 호랑이면 수왕 형님은 전설상의 용 정도는 되어야….”
함윤이 중얼거리자, 철중구가 닥치라고 소리 질렀다.
‘이놈들이 우릴 앞에 두고 농담 따먹기를…!’
백호대가 모욕감을 느끼고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철중구가 예상을 뛰어넘는 고수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창룡검대랬나? 먼발치서 본 적 있는데, 걔들은 좀 치더만? 용이랑 붙어보고 싶었는데 재수 없게 허연 고양이가 꼬여서는.”
철중구가 혀를 쯧쯧 찼다.
“아, 걔네 다 죽었다고 했지? 가만. 너네는 곧 우리에게 뒈질 거고, 맹주도 비아한테 죽을 텐데? 야, 정도맹 너네….”
철중구는 백호대를 슥 둘러보다가 이를 드러냈다.
“존나 위험한 거 아니냐? 괜히 운남에 기어들어 왔다가 전멸하는 거 아녀?”
“……!”
가슴이 서늘해지는 말이었다.
기세에서 밀리니 한마디 한마디가 무겁게 들린다.
철중구의 힘을 본 백호대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주눅이 들었다.
‘좋아.’
철중구는 백호대를 눌러놓고서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보이지 않게 입술을 달싹였다.
「이놈들은 됐다, 비아야. 뛸 준비해라. 슬슬 정도맹 본대가 올 때가 됐어.」
철중구는 와족에게 마른 비의 계획에 대해 들었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염려가 되는 건 마른 비의 부상이다.
「뛸 수 있겠냐? 애들 좀 붙여줄까?」
철중구가 묻자, 마른 비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혼자 갈 수 있어. 고마워, 중구. 네가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철중구는 피식 웃더니, 등 뒤를 곁눈질했다.
「우리가 끼어들었을 뿐 변경된 건 없다. 다들 지치고 부상을 입어서 우리만 먼저 온 거야. 이 길로 쭉 가라. 그러면 식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철중구는 고개를 들더니 육성으로 말했다.
“저것들은 걱정 말고. 우리가 책임지고 치워줄 테니까.”
“이놈이…!”
경휘염이 쌍심지를 켜며 철중구를 노려봤다.
이대로는 마른 비를 놓친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뒷감당이 불가능하다.
운종학의 진노를 떠올린 순간, 경휘염은 위축된 심신을 풀어낼 수 있었다.
“백호대! 파상진(波狀陣)을 펼쳐라! 패군의 개들을 쓸어버리고, 수왕을 잡는다!”
일대일에서 밀린다?
그게 무슨 상관이랴.
집단전으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다.
경휘염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백호대가 날아올랐다.
철중구 역시 내공을 실은 외침으로 투견대를 독려했다.
“파상진은 개뿔! 얘들아! 남자는 힘이다! 힘으로 밀어버려!”
경휘염이 헛웃음을 흘렸다.
힘이라니? 지시는 저게 다인가?
저게 정녕 지휘자가 내릴 수 있는 명령이냔 말이다.
열 살짜리 애들의 골목 싸움에서도 저거보단 나은 전략을 구사할 거다.
엄밀한 돌격진을 짠 백호대와 달리 투견대는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투콰아앙―!
“크아악!”
“컥…!”
밀린 건 백호대였다.
어이없는 결과에 경휘염은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된다! 이게 무슨…!”
철중구는 특유의 웃음을 터뜨렸다.
“카하하! 봤냐? 진형은 약한 놈들이나 짜는 거다! 옘병, 그냥 다 부숴버려!”
투견대는 군진을 모른다.
대주가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무엇을 가르칠까.
하지만 진형 운운하는 놈들을 전부 때려눕혔다.
극도로 갈고 닦은 전투 감각.
거기에 의존한 본능적인 대처.
투견대만의 싸움법이자 생존법이다.
철중구가 한 건 개성 강한 싸움꾼들이 뭉칠 수 있게끔 연대의식을 불어넣은 것뿐이었다.
쩌저저정―!
백오십 대 이백.
도와 도가 맞부딪히며 폭음을 터뜨렸다.
투견대는 오십 명이나 적은 데도 적을 밀어붙였다.
치명상을 입은 투견대원은 몸을 날려서 적들의 시야를 막았고, 그 뒤를 폭풍 같은 도격이 휩쓸었다.
아군 한 명이 죽을 때, 적 두세 명의 목을 날린다.
투견대원은 양팔이 날아가면 이빨로 목을 물어뜯었고, 죽어가는 순간까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이, 이런 미친놈들이…!”
야차와 같은 모습은 백호대의 전의를 꺾기에 충분했다.
불과 대여섯 번의 공방이 오고간 사이 백호대의 숫자는 투견대 밑으로 떨어졌다.
극한의 전장에서 살아남고, 패군이 직접 단련시킨 투견대는 사도련 최정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존나 약하네! 우리랑 맞장 뜨려면 소림이나 무당을 데려와라! 니들로는 안 돼!”
붉은 도강이 꿈틀댄다.
철중구가 본격적으로 나서자, 피분수가 솟구쳤다.
‘강해! 꼭 중구가 백 명 있는 것 같네!’
어떻게 저런 인간들을 끌어모은 건지 궁금하다.
마른 비는 투견대의 힘을 보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군기! 본대가 다가오고 있어!’
사영과 철중구.
위험한 고비마다 친구들이 나타나 적을 막아줬다.
하지만 열세인 건 변함이 없으며, 최종적으로 끝을 내야 하는 건 자신이었다.
‘가자. 준비한 전장으로!’
‘거기’까지만 가면 이길 수 있다.
정도맹의 병력이 접근하는 걸 느끼며, 마른 비는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