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화 (1/167)

< 1. 생존자 >

“에이, 지금 가 봐야 썩어 가는 시체들과 독수리, 까마귀밖에 없을 텐데....”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겠나?”

약 십여명의 관병이 각자의 창을 어깨에 걸치고는 느릿한 걸음으로 광동성 서쪽 해안가 어촌인 선풍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요새 왜구놈의 새끼들이 더 지랄병을 하는 이유가 뭘까?”

“낸들 알겠나? 남해검문의 내부 사정 때문에 왜구 토벌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

터덜거리는 걸음을 옮기는 관병들의 눈앞에 마을 이었던 폐허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되었다고?”

십인장의 물음에 투덜대던 관병이 툭 말을 던졌다.

“사흘이 넘었다고 합디다.”

“다 타고 남은 것도 없을 텐데 뭐 하러 갑니까?”

“야, 가서 피해 상황 조사해서 보고 하라잖아.”

광동성 내 청풍현 소속 관병이 연신 투덜거렸다.

“남해검문 놈들은 꼬박 꼬박 관에서 돈을 받아 처 먹으면서 이 난리를 막지 못한답니까?”

“미친놈! 그 놈들이 돈 만 먹고 왜구를 막는 시늉만 하는 걸 네 놈만 모르냐?”

“알지요. 아니까 더 화가 난다는 거 아닙니까?”

선풍촌의 황폐한 정경이 눈에 들어오자 관병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매 번 보는 거지만 참 적응이 안되네...”

“지옥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지.”

“어, 까마귀하고 독수리가 안 보이네. 벌써 다 파 먹었나?”

관병들이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반 쯤 타버린 마을 안으로 진입했다.

“몇 호 정도가 살았다고?”

“오십 호가 조금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체 비슷한 것만 세고 돌아 가자. 왜구놈들이 다 쓸어 가서 건질 건 없겠지.”

마을로 들어서 각 집을 기웃 거리던 관병들이 의아한 얼굴로 마을 중앙으로 모여 들었다.

“시체가 없는뎁쇼?”

“거기도? 여기도 없어.”

“뭐여, 왜구놈들이 시체도 실어 갔나?”

“뭐하러? 말도 안되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흩어져서 다시 잘 찾아봐!”

십인장의 고함소리에 관병들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느릿한 걸음으로 마을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어, 이게 뭐여?”

뭔가 질질 끈 흔적이 저 뒤편 산으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관병 하나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히이이익”

관병이 뭔가 끌고 간 자국을 따라 마을 뒤편의 자그마한 산을 오르다 웅크리고 있는 무엇인가에서 떠오른 귀화 두 개를 마주하고는 뒷걸음질 치다 넘어졌다.

“뭐야? 뭐 찾았어?”

넘어진 관병이 급히 일어서 창을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누, 누구냐? 귀신이라면 썩 물렀거라.”

무릎을 세운 채 웅크리고 앉은 한 소년의 눈에서 피어오른 귀화를 보고 관병들이 모여 들었다.

“생존자 인거 같은디....”

십인장이 앞으로 나서며 검집 채로 소년을 툭툭 건드렸다.

“이봐, 너만 살아 남은 거냐?”

순간 웅크린 소년의 신형이 스르륵 옆으로 넘어갔다.

“뭐야? 죽은 거야?”

한 관병이 소년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기절했는데요?”

“와, 이, 이게 뭐야?”

기절한 소년의 뒤를 살피던 관병이 고함을 질렀다.

“뭔데? 어, 이, 이게....”

막 만든 듯한 삼 장 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봉분을 발견하고는 다들 쓰러진 소년을 쳐다 보았다.

“이 놈이 혼자 다 묻은 거야?”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양손이 부르트고 터져 피범벅이 되고 입술 또한 터지고 물집이 잡히고 온 몸에 피갑칠을 한 소년을 둘러싸고는 관병들이 혀를 찼다.

“독한 놈 하나 나왔네.”

“물이나 멕이고 마삼이가 들쳐 업어. 정신 차리면 해남검단에 데려다 주고.”

십인장의 말에 마삼이라 불리운 관병이 툭 하니 말을 내뱉었다.

“에구, 이 독한 놈도 거기에 가면 죽은 목숨일 텐데....”

“왜 네 놈이 데려다 키우게?”

“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해남검단!

남해검문에서 관리하는 무투조직으로 왜구들의 습격에서 살아 남은 생존자로 구성된, 왜구들만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전투단이다.

청조에서 계속되는 왜구의 습격에 백성들을 보호 한다는 취지에서 남해검문에 매년 거액의 군자금을 보내고 있지만 이 돈은 남해검문의 배만 불리울 뿐이었다.

왜구의 살행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해남검단에 들어가 왜구와의 싸움에서 방패막이로 죽어간다는 것은 이 곳에서의 공공연한 비밀 이었다.

살아남은 소년에게 청풍현 관아에서 최소한 몸을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봐, 먹어야 돼. 힘이 있어야 복수도 하는 거라고.”

자신을 마삼이라고 소개한 관병이 주먹밥 두 개와 물을 건네 주었다.

“우걱 우걱 커억 컥 꿀꺽, 우걱”

“이름이 뭐여?”

쉬어터진 주먹밥을 입에 우겨 넣던 소년이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북, 리, 준.”

“북리준이라....”

새파랗게 타오른 귀화를 눈에 떠올린 채 주먹밥을 입에 다시 우겨 넣는 북리준의 귀로 춘삼의 말이 들려 왔다.

“다 처음에는 너 같이 왜구놈들을 때려 잡지 못해 안달을 해.

하지만 말이야, 해남검단에 들어가서 왜구놈들 방패막이가 몇 번 되고 눈 앞에서 동료들이 난도질이 된 시체가 되어 땅에 몸을 눕히는 것을 보고 나면 복수가 아니라 내 한 목숨 살기가 급급해지지.”

연초 한 모금을 뿜어낸 마삼이 말을 이어갔다.

“복수는 접고 네 한 목숨 살 궁리를 하라고. 내 아들 놈이 네 또래여서 하는 말이야. 일단 살고 봐.”

우걱 거리며 입에 쉰 주먹밥을 밀어 넣는 북리준의 눈의 귀화가 더욱 맹렬해져 갔다.

청풍현 관아 관병들이 묵는 숙소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든 북리준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학당을 마치고 천씨네 대장간에 들러 아버지가 주문 맡긴 것 좀 찾아 오너라.”

“네, 아버지!”

묘시 초(새벽 5~6시)에 집을 나서는 북리준의 눈에 뿌옇게 차 오르는 피 같이 붉은 여명이 들어 왔다.

“오늘은 할 일이 많네. 자, 오늘 하루도 즐겁게 시작 하자구.”

북리준이 읍내에 있는 학당을 향해 땅을 박차며 뜀박질을 시작 했다.

신시 초(오후 5~6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

북리준이 천씨네 대장간에서 찾은 보퉁이를 등에 메고는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어, 저게 뭐야?”

선풍촌에 다가 갈 수로 매캐한 타는 냄새와 함께 하늘로 뻗어 올라오는 검은 연기를 보고는 북리준이 뛰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아아악, 사, 살려줘!”

“殺せ!略奪しろ!”

(죽여라, 약탈해라!“)

사람들의 비명 소리 사이에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상한 말이 울려 퍼지고 있는 마을 초입에 들어선 순간 하의만 간신히 가린 작은 체구의 사람들과 그 들의 손에 들린 커다란 칼을 보았다.

“이, 이게 무슨....?”

순간 마을 초입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뛰어 들어간 북리준의 눈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 아버지......”

햇빛에 말리기 위해 널어 놓은 해산물 위에 피범벅인 채 엎어져 있는 북리문성과 열린 방문 안에 혀를 깨물고 앞섶이 풀어 헤쳐진 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주, 준아...”

“아버지!”

자신을 부르는 꺼져 가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한달음에 달려 갔다.

“아, 아버지....”

엎어져 있는 아버지를 똑바로 누인 순간 갈라진 배에서 쏟아져 나온 내장을 보며 북리준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아, 아버지....”

마당에 널부러진 왜인의 시신 두 구와 아버지의 손에 들린 단창을 보며 북리준이 옆에 세워둔 작살을 잡았다.

“이, 이런 개 같은 놈들을....”

순간 밖으로 뛰쳐 나가려는 북리준이 북리문성이 죽을 힘을 다해 휘두른 돌에 뒤통수를 맞고 기절을 했다.

“꼬, 꼬옥 살아야 한다....”

북리준의 얼굴과 온 몸에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바르고는 북리준의 몸 위에 내장이 흘러 나오는 자신의 몸을 포갰다.

“꼬옥, 꼬.....”

저 방문 안에 강간을 당하는 순간 혀를 물고 자진한 자신의 아내를 일별 하고는 툭 고개를 떨구었다.

“아악, 아버지!”

북리준이 소리를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키자 사방에서 욕지기가 튀어 나왔다.

“쓰벌, 깜짝 놀랐잖아.”

“그래서 옥에 처 넣자니까. 괜히 방까지 데려 와서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되지. 순식간에 부모와 이웃을 묻고 온 아이한테 그러지 말어.”

북리준 옆에 누워 잠을 자던 마삼이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저 지랄을 하는 것을 보니 또 병이 도졌구만.”

“정 주지 마라. 저 놈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잖여....”

그 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십인장의 얼굴이 쑥 들이밀어졌다.

“해남검단에 보낼 놈, 데리고 나와. 지금 출발 하닝께.”

십인장의 말에 관병들의 눈이 망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정신 차려. 이 아저씨가 한 말 명심하고!”

마삼이 북리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라 나와라. 갈 길이 멀다!”

북리준이 온몸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참고 신형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오니 북리준 또래의 사내 아이들 십여명과 이십대 초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서넛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이게 다냐?”

푸른 무복을 멋들어 지게 입고 검을 찬 무인 둘이 십인장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남해검문의 무인이 차가운 눈빛으로 서 있는 사람들을 일별 했다.

“오래 갈 놈이 두 놈 인가?”

다들 죽어버린 눈으로 힘없이 서 있는 와중에 눈에 귀화를 피어 올리며 이를 악물고 있는 북리준과 꼿꼿이 허리를 편 채 자신들을 쏘아 보는 한 소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 봐야 일주일도 못 갈걸?”

옆에 서 있던 얍삽한 인상의 남해검문인이 비아냥 거렸다.

십인장이 내미는 인계장에 남해검문의 무사가 수결을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차에 올라라.”

두 마리 말이 끄는 십 여명이 간신히 탈 수 있는 무개차에 몸을 구겨 넣으며 일행들이 자리를 잡았다.

덜컹 거리는 길을 나서는 마차의 바로 옆에 자신들이 탄 말을 붙이고는 무사들이 두런 거리며 대화를 시작했다.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검문에 반기를 든 게 맞나 보네.”

“우리 남해 검문이 개판이니 당연히 욕심이 나겠지.”

“이 참에 남해검문에서 진짜로 독립 하는 거 아냐?”

“남해검문이 지금 사분오열 되어 있다지만 문주만 정해 지면 손을 제대로 보겠지.”

“그게 언제냐고?”

죽어버린 눈으로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긴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 북리준의 옆에 털썩 앉았다.

“이름이 뭐야?"

관아를 출발 할 때 반항적인 눈으로 남해검문 무사들을 쏘아 보던 우락 부락한 체구의 소년이 물었다.

"북리준, 너는?"

"하승진. 난 광동성 해풍촌에서 왔어. 왜구새끼들에게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다 죽었어, 꼭 복수 할꺼야!"

"난 선풍촌...."

북리준의 활활 타오르는 눈을 보며 하승진이 나직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어디 가는지 알아? 해남검단이라는 곳이야."

말없이 하승진의 눈을 응시하던 북리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금 우리는 지옥으로 끌려 가고 있는 거야!"

< 1. 생존자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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