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2화 (2/167)

< 2. 해남검단 >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말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던 북리준을 향해 승진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잘 들어. 해남검단은 우리같이 왜구의 습격에 살아 남은 생존자들을 모아 놓고 왜구 토벌에 맨 앞에 서는 전단이야."

하승진의 진지한 말에 주위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아재 한 명이 관아에 서리로 있어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

승진이 저 앞에 말을 몰며 자신들의 이야기에 몰두해 있는 두 무사를 힐끗 쳐다 보았다.

"해남검단은 남해검문에서 관할 하고 있는데 문제는 현재 남해검문이 내분에 휩싸여 있다는 거야."

마른 입술을 혀를 내밀어 축인 승진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문주가 갑자기 주화입마가 와서 사경을 헤매고 있고 문주 자리를 놓고 대공자와 이공자, 삼공자가 피 튀기며 싸우고 있대."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앞에 앉아 있던 청년 하나가 툭 하니 말을 내뱉었다.

"상관이 많이 있어."

"어린 놈의 새끼가.... 말이 짧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인상을 쓰자 하승진이 이를 악다문 채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나이가 있다고 대접 받는 곳이 아니야. 센 놈이 장땡인 곳이라고."

"계속 해 봐!"

북리준의 독기 어린 얼굴을 보며 청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가 지금 가는 해남검단은 남해검문에서 관리하는 무투조직이야. 물론 그 비용은 청 조정에서 지원 받고 있고."

"조정에서?

자신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북리준의 물음에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갔다.

"광동, 광서 지역에 창궐하는 왜구 놈들을 군대를 동원해서 막는 것은 한계가 있어.

많아야 오십명 이하 정도 몰려 다니는 소규모 단위의 왜구놈들이 수시로 출몰 하는 넓은 해안가를 다 방비 할 수가 없는 거지."

"그래서 남해검문에 의뢰를 한다?'

'맞아! 조정에서 왜구들과 항상 부대끼는 남해검문에게 돈을 주고 맡긴 거야."

어느새 마차에 타고 있던 모든 이들이 북리준과 하승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문제는 아까 이야기 했듯이 남해검문의 문주 자리가 공석 비슷하게 되면서 해남검단을 챙기는 이가 없어진거야. 다시 말하면 무법천지가 된거지."

"바, 바로 왜구들과 싸우게 되는 거야?"

건너편에 앉아 있는 약 열두어살 되어 보이는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개판이라지만 너희 같은 촌무지렁이들을 그냥 개죽음 시키겠냐?"

묵묵히 말을 몰던 머리가 하얗게 센 마부가 끼어 들었다.

"나도 해남검단 소속이고 너희들 같은 놈들을 실어 나르며 잡일을 하는 공칠이라고 한다."

오른 손목이 날아간 늙은 마부가 해남검단 소속이라는 말에 하승진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긴장하지 마라.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네 놈 말대로 지옥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북리준의 말에 공칠이라 자신을 소개한 마부가 뒤를 돌아 보았다.

"너로구나. 눈빛이 살아 있는 놈! 잘 들어라. 해남검단을 총 다섯개의 대로 이루어져 있고 일개대는 백 명의 병사들로 구성된다.

너희들 같은 초짜들은 한 달 동안 예비대라 불리우는 곳에서 한 달간 기초검술과 전투방법을 배운다.

예비대에 머물면서 훈련을 하다 다섯개의 대에 결원이 생기면 그 곳으로 배치 되는 거다. 문제는 결원이 거의 매일 생긴다는 거지, 크크."

목이 타는 지 옆에 매달아 놓은 호리병을 입에 물자 독한 화주 냄새가 퍼져 나왔다.

그 때 저 앞에 커다란 목책이 보이고 앞장서 가던 두 무인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신병을 데리고 왔다."

굳게 닫혀 있는 목책 위에 활을 든 병사들 사이에서 남해검문 무인의 복장을 한 검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문을 열어라!"

아래를 내려다 보며 동료의 얼굴을 확인한 무인의 말에 거대한 목책이 서서히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예비대에서 가르쳐 주는 것들을 죽어라고 익히거라. 조금 이라도 더 살려면 말이다...."

마부가 입을 닫고는 무심히 열린 목책 사이로 말을 몰아 들어갔다.

열려진 목책 사이로 들어 서니 저 멀리 커다란 성곽이 보이고 수 많은 무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칠이! 예비대에 이 놈들을 인계하고 와라."

남해검문인의 말에 공칠이 고개를 주억 거리고는 거대한 성 안 구석으로 말을 몰기 시작했다.

"모두 내려라!"

마차가 멈추고 얼굴에 왼편에서 가로지른 검상의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동작들 봐라!"

미적 거리며 일어서는 이십대 청년의 멱살을 잡더니 냅다 땅에 내리꽂았다.

"커헉"

땅에 얼굴을 갈려 피투성이가 된 청년의 옆구리를 다시 한번 걷어 찼다.

다짜고짜 휘둘러 지는 폭력에 미적 거리던 사람들의 행동이 빨라졌다.

그 때 북리준이 마차에서 뛰어 내리더니 얼굴에서 피를 흘린 채 꺽꺽 대고 있는 청년을 일으켜세웠다.

"고, 고마워..."

말없이 청년을 일으켜 세우는 북리준의 뒤통수에 휘둘러지던 주먹이 순식간에 북리준의 손에 잡혔다.

"이이이익....끄어어어어, 놔, 놔라!"

잡힌 손목에서 피어오르는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잡았던 손을 휙 뿌리치자 너댓걸음을 정신 없이 물러서 자신의 손목을 매만지던 검상의 사내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어, 어린 놈의 새끼가...."

그 때 북리준이 신형을 일으키며 어느새 주워든 돌멩이 하나가 ‘패액’ 공간을 가르며 날아갔다.

"퍼억, 크허억!"

자신에게 대든 건방진 놈의 팔 하나를 끊으려고 신형을 날리려던 놈이 순식간에 날아든 돌에 인중을 얻어 맞고 검을 떨어 뜨렸다.

얼굴 부위가 피투성이가 된 채 주춤 거리는 사내를 향해 북리준이 온 몸을 날려 오른 어깨로 사정 없이 들이받자 저 멀리 나동그라지며 큰 대자로 뻗어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같이 온 신병들이나 마부 공칠, 주위에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입을 벌린 채 땅에 널부러진 사내를 쳐다 보았다.

"왕일이 놈, 신병들 한테 항상 패악을 부리더니 임자 만났네, 크크크"

저 편 바위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 보던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옆에 세워 놓은 거치도를 질질 끌며 다가 왔다.

"나이, 이름?"

"열 다섯, 북리준."

"호오, 열 다섯인데 몸이 좋구나!"

북리준의 몸을 세세히 살펴 보던 거치도의 사내가 뒤를 돌아 보았다.

"무슨 구경 났냐? 빨리들 안 움직여?"

그제서야 주위의 사람들이 각자의 볼일을 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예비대주를 맡고 있는 강구라고 한다. 이번에 재미난 놈이 들어왔구나."

자신의 어깨에 거치도를 척 올린 강구라 자신을 소개한 대주가 북리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기 널부러진 놈은 본대 소속인 청룡대원 중 하나인데 꼴이 말이 아니구나. 모두들 따라 오너라!"

강구와 북리준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막들이 즐비하게 쳐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엥, 왜 대주가 신병들을 데리고 와?"

천막들이 즐비한 중앙 공터에 모여 앉아 히히덕 거리고 있던 다섯 무인들이 대주가 다가 오자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다섯 무인들 중 네 명이 팔 다리가 하나씩 모자라 보이는 모습을 보고 하승진이 중얼 거렸다.

"잔지방이야 뭐야?"

"왕일이는요?"

"신병들 한테 패악 부리다 된통 당했다, 크크크."

"이 놈한테?"

대주가 어깨동무를 한 채 데리고 온 북리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디 무관 출신인가 보네."

"아니, 무공을 배운 것 같지는 않은데 체력이 장난이 아니다. 돌팔매질도 좀 하는 것 같고."

"무공도 안 배운 촌녀석의 돌팔매에 왕일이가 당했다는 거야?"

그 때 저 편에 조용히 앉아 있던 사지가 멀쩡한 거구의 사내가 신형을 일으켰다.

"고삼 부대주! 신병들 숙소에 데려다 주고 내일부터 훈련에 투입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고삼 부대주라는 사람을 따라 일행들이 걸음을 옮겼다.

"고삼이는 말이 억수로 적으니 그리들 알고... 내일 부터는 네 놈들의 원수인 왜구놈들의 숨통을 끊을 방법을 알려 줄테니 이 꽉 깨물어라."

강구 대주가 껄껄 거리며 무인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곳에 합석을 했다.

고삼 부대주를 따라 거대한 성 안 동편 구석에 자리한 예비대 천막 중 한 곳으로 들어섰다.

"내일 묘시 초, 집합!"

단 두 마디만 남기고 천막을 나서는 고삼의 뒷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하승진이 주위를 살피니 땅바닥에 거적 비슷한 것들이 대강 깔려 있는 것을 보고는 한 군데 자리를 잡고 벌렁 누웠다.

"내일부터 지옥을 보게 될거니까 빨랑 자자구."

북리준도 천막 구석에 자리를 잡자 나머지 인원들이 주섬 주섬 자리를 잡아 나갔다.

잠시 후 코 고는 소리와 훌쩍이는 소리가 천막 안을 떠돌고 눈을 감은 북리준의 옆에 누군가 다가왔다.

"이,이봐, 아까는 고마웠어."

도착 하자 마자 폭행을 당해 얼굴을 다친 청년이 헤벌죽 웃음을 지었다.

"빨리 자. 그리고, 겁 먹지마! 네가 겁 먹은 모습을 보면 더 괴롭힐 거야."

북리준이 눈을 감은 채 나직하게 입을 열자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

청년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눈을 감은 북리준의 눈앞에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 거렸다.

‘꼭 복수해 드릴께요.....’

****

"기상! 이것들아, 여기가 니들 집 인 줄 아나?"

천막을 열고 난입한 두 명의 무사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소년, 청년들을 걷어 차기 시작했다.

"이 개새.... 어, 이 놈은 일어 났네!"

욕지기를 내뱉으며 잠이 덜 깬 사람들을 걷어차던 외팔이 무사가 고요히 가부좌를 틀고 자신을 쏘아보는 북리준을 보며 주춤 거렸다.

"이놈인가 보네. 왕일이를 한방에 보낸 놈 말이야."

"눈빛은 살아 있네.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다들 밖으로 튀어 나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내몰린 사람들이 각 천막에서 쏟아져 나왔다.

"똑바로 안 서! 정신 안 차리네."

몽둥이를 든 십여명의 무인들이 천막에서 쏟아져 나온 오십여명에게 매질을 하며 공터에 줄을 세웠다.

"이게 무슨 개지랄이래?"

"말로 하지 왜 폭력을 쓰고 난리유...."

"다들 입 닥치고 줄 똑바로 안 서?"

몽둥이를 든 무인들이 오열 종대로 엉거주춤하게 열을 맞추자 강구 예비대주가 앞으로 나섰다.

"난 예비대를 맡고 있는 강구라고 한다. 여기 서 있는 너희들은 모두 같은 신세다. 한 마디로 왜구놈들에게 가족 친지를 다 잃은 불쌍한 처지라는 거다."

손에 든 호리병을 입에 물고 벌컥 거리던 강구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한 달간 이 곳 예비대에서 기초 훈련을 받고 나서 바로 왜구 토벌에 투입 될 예정이다.

너희들 주위에 팔 다리 하나씩 없는 병신 새끼들을 봐라."

강구의 말에 오십여명의 인원이 자신들 주위를 둘러싼 십여명의 교관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놈들같이 왜구 새끼들에게 팔 다리 하나씩 헌납 하고 목숨만 겨우 구한 병신 새끼들이 되고 싶지 않으면 정신 바짝 차려라."

"에이, 말이 쉽지, 크크크."

"우리야 팔 다리 손 발 모가지 내 주고 살아 돌아 왔지만 대부분 다 그 곳에서 모진 목숨을 묻고 못 돌아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신들을 병신 새끼라고 하는 말에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낄낄 대는 교관들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신병들의 머리 위로 강구의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원수를 갚고 싶나? 그러면 강해져라!"

< 2. 해남검단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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