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3화 (3/167)

< 3. 훈련 >

두 명의 교관이 각각 열 명 정도의 인원들을 데리고 너른 연무장 곳곳으로 흩어져 갔다.

"너희들은 나를 따라와!"

북리준이 서 있는 곳 주위의 열 명 정도를 들고 있는 검집으로 툭툭 치고는 왼 발목에 쇠 막대기가 박혀 있는 교관이 앞장을 섰다.

"따라 오라는 말 안 들리나? 엉?"

휑한 왼손의 무인이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북리준이 앞장을 서 교관의 뒤를 따르자 나머지 생존자들이 허겁지겁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고패다. 보다시피 발 모가지와 목숨을 바꿔서 이 자리에 섰다."

"킥킥, 난 손 모가지...."

옆에 서 있던 묵직한 쇠로 만든 곤에 기대 삐딱하게 서 있던 무인이 킥킥 거렸다.

"이 옆에 서 있는 병신 새끼는 경삼이라고 한다."

십여 명의 생존자들이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교관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 보았다.

"질문 하나! 여기서 검이나 도, 기타 병기를 다루어 본 적이 있는 놈 거수."

고패가 매서운 눈으로 엉거주툼 서 있는 생존자들을 쏘아 보다 느릿하게 올라 오는 한 손을 보았다.

"호오, 너, 어떤 병기를 다루었나?"

북리준이 자신에게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고패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삼재검을 배웠소... 부친에게...."

북리준의 망막에 자신에게 삼재검을 가르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좋아! 나머지는?"

서로 눈치를 보며 우물쩍 거리는 모습에 경삼이 빽 소리를 질렀다.

"있어 없어? 대답 안해?"

"어, 없어요."

"없습니다."

여기 저기 우후죽순 대답이 터져 나오자 경삼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예비대에서는 네 놈들에게 검의 가장 기초인 삼재검법을 가르칠 것이다. 한 달 동안 죽어라고 익혀라.

본대에 올라가 왜놈들과 조우 했을 때 살아 돌아오려면 말이다."

경삼 교관이 한 편에 쌓여 있는 목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고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검을 배우기 전에 기초체력이 우선 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연무장을 스무 바퀴 돌아 온다.

뒤에 들어오는 다섯 놈은 오늘 점심 없다."

고패의 밥이 없다는 말에 이십대 청년들이 먼저 뛰자 그 뒤를 우루루 따라 뛰기 시작했다.

"저 놈, 오래 가겠네."

다섯 바퀴를 돌아 나오는 길에 흐트러짐 없이 앞으로 치고 나오는 북리준을 보며 고패가 중얼 거렸다.

"전투에 투입 돼야 알지.... 저런 놈이 먼저 비명횡사 할 수도 있잖아?"

"왕일이를 한 방에 보낸 놈이 저 놈이지?"

"그렇다고 하더라. 큭큭!"

훅훅 더운 입김을 내뿜으며 말없이 연무장을 돌고 있는 북리준의 옆에 하승진이 붙었다.

"헉헉, 제법 달리네..."

승진이 뒤를 돌아 보니 자신과 북리준의 저 뒤에 나머지 생존자들이 거친 숨을 내 쉬며 겨우 겨우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스무바퀴를 다 돌고 난 북리준과 하승진이 땀을 비오듯 흘리며 고패의 앞에 섰다.

"좋아, 너희 둘은 나머지 놈들이 다 돌 때 까지 쉬어라."

두 바퀴 이상을 앞질러 들어온 북리준과 하승진이 연무장 구석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었다.

"너까지 통과다. 나머지 놈들은 굶는다."

고패의 말에 뒤에 다리를 끌다시피 들어온 열 두어살 정도의 소년들이 절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죽을 상 짓지 말고 여기 검 하나씩 들고 저 앞에 선다."

경삼의 고함 소리에 북리준과 하승진이 목검을 집어 들고 움직이자 흐느적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나머지 생존자들이 검을 집어 들었다.

"지금부터 내가 보여 주는 검을 잘 보고 죽어라고 익혀라. 저 햇빛을 계속 보고 싶다면..."

고패가 목검 하나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삼재검법은 들으면 누구나 아는 남존무당, 무당파에서 만든 검법이다.

내공이 없어도 검의 기본을 수련 할 수 있는 검법으로 너희 같이 한번도 무공을 수련한 적이 없는 놈들에게 제격인 무공이지."

고패가 목검은 왼손으로 거꾸로 쥐고 직립부동자세로 전방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검결지로 해서 팔을 뻗어 몸의 측면에 자연스럽게 두었다.

"소진배검이다. 천천히 할테니 따라해라."

소진배검에서 선인지로, 금침암도, 나탁탐해로 이어진 삼재검이 마지막 경기옥주까지 끝나고 긴 숨을 내쉰 고패가 검을 내려 뜨렸다.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삼재검은 단 세 가지 동작을 풀어 놓은 것이다.

천, 세로베기다.

지, 가로베기다.

인, 찌르기다.

그래서 삼재검이다. 즉, 검은 베고 찌르고 막는 것이 다라는 것이다.

오늘부터 이 삼재검을 한 달 동안 수련 할 것이다. 이 후 본대로 올라가 네 놈들이 그렇게 갈아 마시고 싶은 왜구들과 만날 것이다.

저 쪽이 죽어야 내가 사는 지옥에서 오래 살아 남으려면 죽도록 검을 휘둘러라."

북리준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가르쳐 준 삼재심법을 운용하며 느릿하게 삼재검법을 처음부터 무겁게 펼치기 시작했다.

"저 놈, 너보다 낫다, 킬킬킬!"

경삼이 진중하게 삼재검을 펼치는 북리준을 가리키자 고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삼재검일 뿐이야. 문제는 검법이 아니라 왜구새끼들이 뿜어내는 살기를 견디느냐가 관건이지."

고패와 경삼이 열명의 신병들이 펼치는 삼재검을 잡아 주고 하루 해가 뉘엿 뉘엿 넘어갔다.

"내일도 같은 시각 기상이다. 질문 있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고패가 경삼을 돌아 보았다.

"모두들 날 따라 와라."

신병들이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경삼을 따르자 고패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교관님!"

맨 뒤에 미적 거리며 남아있던 북리준이 자신을 부르자 고패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느냐?"

자신이 봐도 완벽하게 삼재검을 펼치던 북리준이 연무장 구석이 쌓여 있는 무엇인가를 가리켰다.

"저거, 제가 좀 써도 됩니까?"

고패가 북리준이 가리킨 곳을 보니 군기가 빠진 병사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양 팔과 발목에 채우는 모래 주머니가 쌓여 있었다.

"군기 빠진 놈들 벌 줄 때 쓰는 건데.... 뭐 쓰고 싶으면 써라."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이내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별난 놈일세...."

쌓여 있는 모래 주머니들 중에 튼실하고 묵직한 놈으로 네 개를 챙겨든 북리준이 앞에서 나아가는 일행들을 따랐다.

"아이구, 아구구"

"엄니, 흐흐흑..."

주먹밥으로 저녁을 때운 신병들이 고된 훈련에 앓는 소리와 흐느끼는 울음이 천막 안을 떠돌았다.

"그만 닥치고 안 자? 잠이 안 오면 다시 훈련 시작 한다."

경삼의 버럭 소리에 신음과 흐느낌이 잦아 들자 북리준이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소피 보러 가?"

승진이 잠결에 일어서는 북리준을 보며 중얼 거렸다.

"그만 자라. 금방 올테니...."

북리준이 챙겨온 모래 주머니를 들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안 자고 어디가?"

신병들이 잠든 천막 앞에 육포와 탁주로 술자리를 가지던 고패와 경삼이 고개를 들었다.

"조금 뛰다 오겠습니다."

두 사람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 보다 피식 웃음을 지었다.

"살살해. 그러다 일주일도 못 가서 퍼져!"

고즈넉한 달빛이 가득한 빈 연무장에 선 북리준이 팔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서서히 연무장을 뛰기 시작했다.

"헉 헉 헉"

북리준이 만든 긴 그림자가 연무장의 저 끝에서 이 끝으로 바쁘게 왕복을 했다.

‘금구가 준 해삼 때문인지 몸을 혹사 할수록 더 단단해지고 있어.’

모래 주머니를 찬 채 연무장을 삼십바퀴를 돌며 자리에 앉아 고혹한 빛을 뿌리는 달을 바라 보았다.

‘벌써 일년이 넘었구나....’

금구를 만나서 함께 한 시간이 달빛과 함께 북리준의 눈앞을 흘러 지나갔다.

살아 숨쉬는 듯한 파도가 연신 몸을 부대끼는 거대한 절벽 아래 바위에 올라선 북리준이 검푸른 파도를 보며 심호흡을 한 후 지체없이 몸을 던졌다.

능숙하게 자맥질을 하며 깊고 깊은 바다를 향해 약 반다경 정도를 헤엄치다 거대한 절벽 저 밑동에 뚫린 작은 구멍 안으로 신형을 밀어 넣었다.

‘푸하아아’ 참았던 숨을 가쁘게 내쉬고 고개를 내미니 바닷물이 저 위에서 희미하게 비추이는 햇빛에 아롱거리는 거대한 동공이 나타났다.

“언제와도 참 좋은 곳이야.”

삼년 전 우연히 문어를 쫓다 발견하게 된 해저 동굴을 자신의 은신처로 삼고 이것 저것 가져다 놓은 것을 보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눈에 보이는 종유석과 기기괴괴한 모양의 석순이 넓게 펼쳐진 거대한 동공 한 구석에 놓인 수어피를 갈아 입고는 다시 바다로 뛰어 들어가 연신 문어며 해삼이며 소라, 조개류를 따서 어망에 담았다.

“휴우, 오늘은 이 정도면 되겠네.”

다시 옷을 갈아 입은 북리준이 가부좌를 틀고는 아버지가 가르쳐 준 호흡법을 시작했다.

“준아! 이 호흡법은 몸에 탁한 기운을 배출하고 좋은 기운을 쌓게 해주는 양생법이다. 이 호흡법을 꾸준히 연습하면 아주 튼튼한 몸으로 오래 살 수 있단다.”

자신의 아버지인 북리문성이 가르쳐 준 호흡법의 영향인지 물 속에서 약 일다경 정도 숨을 참을 수 있고 작살을 던지는 손에 힘이 들어 가는 것을 느끼고는 틈만 나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오늘도 시작해 볼까?”

원래 돌팔매질에 일가견이 있어 가끔 파도 위로 뛰어 오르는 물고기를 맞추어 잡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던 북리준이 발 밑에 수북하게 쌓여 있던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약 오장 정도 앞에 돌로 높게 쌓은 돌탑을 노려 보고는 손목을 휘돌리며 돌을 날렸다.

“따아악”

돌 탑의 맨 위에 올려져 있던 자신의 주먹 반 정도의 돌만 휘익 날아갔다.

다시 집어든 돌을 들고 안력을 돋우어 손짓을 하니 바로 그 위에 돌이 저만치 날아갔다.

약 백회정도 돌을 날리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옮겨 다시 돌탑 위에 돌을 조심스럽게 올려 놓기 시작 했다.

“저 왔어요!”

고즈넉한 어촌 마을의 초가 굴뚝에 밥 짓는 연기가 피어 오를 즈음에 북리준이 집에 들어 섰다.

“왔느냐?”

“네, 아버지! 오늘은 꽤 많이 잡았네요.”

내미는 어망 안에 꿈틀 거리는 문어들과 해삼, 소라, 조개들을 보며 북리문성이 미소를 지었다.

“고생했다.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고 씻으려므나.”

십 오륙년 전에 이 마을로 들어선 북리문성과 아내 백시연을 보며 선풍촌 어민들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날 사람으로 생각하고는 정을 주지 않았다.

어민들의 예상과는 달리 먼저 마음을 열고 마을을 위해 물심양면 애를 쓰는 두 부부의 마음 씀씀이에 선풍촌 어민들이 마음을 연지 십 여년이 되었다.

군문에서 십년 넘게 오랑캐와 싸우며 겨우 살아 남은 아버지가 바닷가에 살고 싶다는 어머니의 청에 내려온 곳이 이 곳 이었다.

“공부는 잘 되고 있느냐?”

“네, 아버지!”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애비는 네가 공부에 더 전념 했으면 좋겠구나.”

“공부도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수 있어요. 운동도 할 겸 어머니도 도와 드릴 겸 하는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되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하는 저녁에 행복감을 느끼며 북리준이 잠자리에 들었다.

< 3. 훈련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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