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6화 (6/167)

< 6. 본대 배속 >

거대한 연무장에 백 여 명의 신병들이 오열 종대로 엉거주춤 서 있는 가운데 연무장 지휘대에 다섯 사람이 올라섰다.

"휴우, 정말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기린대주의 말에 백호대주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냥 흘러 가자구."

"저런 생떼 같은 목숨이 그냥 스러지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개소리 그만 하고 신병이나 나눠. 난 왼쪽 일렬 데려간다."

현무대주 가겸이 지휘대에서 내려가 신병들이 서 있는 맨 왼쪽의 일렬 앞에 서서 고함을 질렀다.

"네 놈들은 오늘부터 현무대 소속이다. 여기 있는 부대주를 따라 오도록."

어느새 따라 붙은 부대주가 스물 다섯 정도 되는 인원을 인솔해서 연무장을 벗어 났다.

각 부대주들이 각 줄 앞에 서서 자신들의 대로 인솔하기 시작했다.

"대주님! 저희는 가운데로 하시죠."

청룡대 부대주인 왕일이 자신의 대주에게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음대로 해라."

청룡대주가 손을 훼훼 저으며 자신의 숙소로 이동하자 왕일이 눈을 빛냈다.

"너희들은 앞으로 청룡대 소속 이다."

줄의 중간에 서 있던 북리준과 하승진이 서로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주억 거렸다.

"모두 나를 따라 이동한다."

왕일이 새파랗게 눈에 독기를 떠올리며 자신을 쏘아 보자 북리준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왕일이라는 부대주가 왜 너를 저런 살벌한 눈으로 보는데?"

"이 곳에 오자 마자 나하고 드잡이질을 한 번 했거든."

짤막하게 설명을 한 북리준의 말에 승진이 혀를 찼다.

"하아, 엿 같은 상황일세....."

저 앞에 앞서 가는 왕일의 뒷모습을 보며 승진이 말을 이어갔다.

"왜구놈들 보다 저 새끼를 더 조심해야 겠다."

연무장을 벗어나 서편에 위치한 거대한 천막촌에 들어서자 여기 저기에서 무인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신병들인가?"

어기적 거리는 걸음으로 자신들을 쳐다 보는 무인들을 보며 승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째 눈들이 다 썩은 동태 눈깔들이네..."

약 칠 십 여명의 청룡대 무인들이 신병들을 구경하러 모이자 청룡대주 뇌호가 우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청룡대에 오게 된 것을 환영한다. 현재 상황이 한 마디로 아주 개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아 남거라. 내가 할 말은 이것 뿐이다."

뇌호가 말을 끝내고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서자 왕일이 앞으로 나섰다.

"보급품을 지급 할테니 다들 따라 오너라."

자신들을 구경하는 무인들을 헤치고 중간 크기의 천막 안으로 다들 들어섰다.

"저기서 각자 맞는 옷들을 찾아 입거라."

청룡대를 나타내는 청룡의 모습이 희미해지다 못해 자국만 남은, 여기 저기를 기운 무복 더미를 가리켰다.

"너희들이 입고 있다 뒤지면 벗겨서 여기다 다시 갖다 놓을 테니까 죽어도 후배를 위해 옷을 덜 상하게 하고 죽어라, 낄낄낄!"

북리준과 하승진이 뒤적 거리며 자신의 몸에 맞을 만한 무복을 집어 들고 탁탁 털었다.

"이 놈은 가슴이 이렇게 베어 져서 죽었네."

무복의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사선으로 길게 꿰매어진 모양 그대로 희미해진 핏자국이 보였다.

북리준이 집어든 무복은 복부 쪽에 길게 꿰매어진 길로 희미한 혈향이 피어 올랐다.

"다들 옷을 잡았으면 여기를 봐라."

왕일이 가리키는 곳에 먼지를 가뜩 뒤집어쓴 검, 도, 창 등이 쌓여 있었다.

"이 무기들도 네 놈들의 선배가 쓰다 죽어서 남긴 것들이다. 각자 원하는 무기를 고르도록."

여기 저기 무질서 하게 쌓여 있는 무기더미를 뒤적이던 북리준이 피에 절어 손잡이가 삐죽 나와 있는 검을 빼 들었다.

이어 옆에 있던 승진도 그나마 날이 어느 정도 서 있는 검을 하나 집어 들었다.

"검집은 따로 있네. 준, 이게 그거랑 맞겠다."

승진이 시커멓게 피와 먼지가 엉켜 말라 붙은 검집 두 개를 들고 하나를 던졌다.

"무복과 무기를 골랐으면 모두 밖으로 나간다."

왕일 부대주의 말에 신병들이 우루루 천막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서니 다섯명의 청룡대 복장을 한 무인들이 서 있었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다들 각자의 지정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해라. 내일부터 본대의 죽여주는 생활이 시작 될 것이다."

왕일이 말을 마치자 다섯 무인들이 다섯명의 신병들을 추슬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왔느냐, 애송이!"

어느새 북리준의 옆에 따라 붙은 왕일이 히죽 앞니가 휑한 웃음을 지었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크크크크."

왕일의 나지막한 속삭임에 북리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바로 보고 걸음을 옮겼다.

"야, 저 새끼가 하필 부대주네....."

"상관없어. 날 건드리면 건드린 만큼 갚아주면되니까."

북리준과 하승진, 세 명의 신병과 함께 다섯 명 정도가 겨우 누울 정도의 천막 앞에 섰다.

"잘 봐둬라. 여기가 너희들이 앞으로 먹고 잘 숙소다. 괜히 다른 곳을 기웃거리다 얻어 터지지 말고 잘 기억해라.

저녁을 먹으라는 소리가 들리면 아까 연무장으로 모이면 된다."

무인이 돌아가고 다섯 명이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창을 들고 서 있던 큰 체구의 사내가 맨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난 여기야. 불만 있는 놈은 한판 붙어."

"나, 난 여기 문가가 좋아."

뼈에 살만 붙어 있는 듯 바짝 마른 소년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아니! 나하고 여기 승진이 문가에서 잔다. 나머지는 알아서 자리를 잡아라."

북리준의 말에 나머지 두 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허여멀건한 죽과 딱딱한 주먹밥 하나로 저녁을 떼운 신병들이 각자의 처소로 돌아와 고단한 몸을 뉘였다.

북리준과 승진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신형을 일으켰다.

"어, 어디가려고?"

바로 옆 바짝 마른 소년이 겁먹은 목소리로 준과 승진을 바라 보았다.

"신경쓰지 말고 자라. 우리는 한바퀴 돌아 보고 올거니까."

천막 사이에 군데 군데 경비를 서고 있던 무인 중 하나가 천막을 나서는 두 신병에게 다가가려 하자 다른 사람이 저지했다.

"저 놈들 밤마다 뛰고 검을 휘두른대. 예비대의 강구대주와 고패가 저 놈들 밤에 연무장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대."

"미친놈들.... 아직 힘이 남아 도는가 보네."

"놔둬라. 한번 왜구놈들과 칼을 섞어 보고 나면 정신 차릴테니까."

두 무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북리준과 하승진이 연무장으로 향했다.

"끙차, 여기 모래 주머니가 더 무거운 것 같은데?"

하승진이 두 팔목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며 중얼 거렸다.

"비슷해."

북리준이 각 팔목과 다리에 두 개씩 모래주머리는 차고는 천천히 연무장을 뛰기 시작했다.

교교로운 달빛이 가득한 연무장을 헤치고 뜀발질을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누군가가 다가 왔다.

"아주 지랄들을 하는구나."

청룡 부대주인 왕일이 히죽 웃음을 지으며 뛰고 있는 두 사람을 따라 붙었다.

"그래, 발악을 해 보거라. 나 한테 한번 찍혀서 한 달을 넘긴 놈이 없으니까."

왕일이 이죽거리던 말던 북리준은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첫 출행을 기대 하거라. 아마 이승에서 보는 마지막이 될테니까...."

****

날이 밝자 신병들이 연무장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훈련인가?"

"언제 왜구놈들과 붙을 수 있지?"

"아주 갈아 마셔버릴 거야."

어서 빨리 자신들의 원수인 왜구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신병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주목!"

신병들 앞에 선 세 명의 무인들을 신병들이 바라 보았다.

"여기서 자맥질 좀 할 줄 아는 놈?"

백 여 명의 신병들 중 삼분의 이 정도가 손을 들었다.

"나머지는 열외!"

손을 들지 않은 신병들을 옆으로 빼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우리 청룡대 선배들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해삼이나 멍게, 조개, 고기 등 닥치는 대로 잡아야 한다."

열외 된 신병들이 작살 이나 어망 등을 잔뜩 짊어진 채 앞장서고 나머지 병력들이 그 뒤를 따랐다.

"야, 나 자맥질 잘 못해. 네놈이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들키면 어떻게 해?"

하승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속삭였다.

"나만 믿어."

바닷가에 도착한 청룡대원들이 자맥질을 할 줄 안다는 신병들에게 각자 어물망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다.

"여기 있는 작살이나 단도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 대로 가져가서 이 망을 하나 가득 채운 놈은 그 시간 이후로 자유시간을 주겠다."

청룡대원의 말에 승진이 다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야, 난 고기 못 잡아. 그쪽으로는 아주 젬병이라고."

"내가 다 할 거야. 걱정 하지마."

북리준이 작살 두 개와 단도 두 개를 챙기고는 승진을 이끌고 바닷가 절벽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넌 여기 바위 뒤에서 쉬고 있어. 내가 던져 주는 것을 어망에 담기만 해."

북리준이 단도를 입에 물고 작살 하나를 든 채 바위 위에서 바다로 뛰어 내렸다.

"뭐야? 이 놈 죽은거야?"

약 반다경이 다 되도록 수면에 얼굴 한번 내밀지 않는 북리준이 걱정되기 시작한 승진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추화하하악"

출렁이는 수면을 가르고 북리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죽은 줄 알았잖아."

"좀 깊은 곳에 금광을 찾느라 늦었다."

"금광?"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깊은 곳에 해산물이 널려 있는 곳을 그렇게 불러. 어물망을 던져 줘."

승진이 어물망을 하나 던지자 북리준이 받아 쥐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조금만 더 기다려. 금방 올라 올테니까."

한껏 숨을 삼킨 채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는 북리준이 다시 수면으로 가득찬 어물망을 들고 떠오른 것이 다시 반 다경이 지난 후 였다.

다시 한번 자맥질 끝에 어물망 두 개 째를 거의 다 채울 무렵 저 멀리 황금빛 무엇인가가 다가 오는 것을 보았다.

‘저게 뭐지?’

순간 미끄러지듯 자신에게 다가 오는 황금빛의 무엇인가를 보고 눈이 부릅떠졌다.

‘그, 금구야!’

영롱한 황금빛을 전신에 두른 만년금구가 히죽 웃음을 지으며 북리준에게 다가 왔다.

‘반갑다, 금구야!’

북리준이 자신의 가슴에 머리를 디밀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금구를 쓰다듬었다.

‘잡으라고?’

금구가 자신의 등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이자 북리준이 금구의 등껍질에 올라탔다.

‘슈아아아아아’

물살을 헤치며 빠른 속도로 더욱 깊숙이 잠수를 해 가는 북리준이 숨이 가빠옴을 느끼며 등껍질을 두드렸다.

그 때 거대한 절벽이 눈에 들어오고 그 앞에 자그마한 동굴 입구가 보였다.

"푸화아아학 하악 하악"

동굴 입구로 들어와 위로 솟구치니 거대한 동공이 눈 앞에 들어 왔다.

"히야, 멋진 걸!"

기기묘묘한 석순과 종유석이 가득한 거대한 동공의 모습에 북리준이 감탄을 내질렀다.

"예전의 금구동 보다 훨씬 넓네."

물 밖으로 나온 북리준이 거대한 수중 동공을 이리 저리 둘러 보다 손에 든 어망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아, 금구야. 오늘은 이 곳을 아는 것으로 만족 할게. 내가 지금 급하게 다시 가 봐야 하거든. 나중에 여기로 다시 올게."

만년금구가 고개를 주억 거리자 북리준이 금구의 머리를 감싸 안고는 다시 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야, 진짜 너 뒤진 줄 알았잖아."

바위 밑에서 오락 가락 초조하게 북리준을 기다리던 하승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안! 친구를 만나고 오느라...."

"미친놈, 물 속에서 용왕님하고 친구 먹었냐?"

북리준이 가득찬 어물망을 내려 놓자 승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와우, 정말 꽉 채워 왔네."

"이거 내고 넌 나하고 모래밭을 뛰어야 돼."

"으이구, 알았다 알았어!"

북리준과 하승진이 맨 처음 가득 찬 어망 두 개를 내려 놓자 청룡대 무인이 감탄을 했다.

"호오, 너희 둘은 통과다. 우리가 부를 때 까지 쉬고 있거라. 너무 멀리 가면 안된다."

북리준이 승진과 함께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뛰기 시작 하자 청룡대 무인들이 혀를 내둘렀다.

"저 새끼들, 정말 독종들이네."

"뚜껑을 열어 봐야 아는 거지. 연습과 실전이 얼마나 다른지는 직접 겪어봐야 아는 거라고."

모래밭을 숨이 턱이 차게 뛰고 있던 북리준의 눈에 저 멀리 파도 너머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자신을 바라 보는 금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 6. 본대 배속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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