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첫 전투 >
”왕일이, 나 좀 보자!“
청룡대주인 뇌호의 부름에 왕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왜요?“
”네 놈이 북리준 놈에게 망신을 당해서 벼르고 있는 것은 아는데 좀 참아라.“
”싫은데요?“
왕일의 삐딱한 말에 뇌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북리준 저 놈을 지금 청룡대원 중에 싫어하는 놈이 있냐? 저 놈이 온 보름 동안 훈련은 훈련대로 남 보다 배는 더 뛰지, 우리가 먹는 해산물과 고기의 절반을 저 놈과 승진이 놈이 다 잡아 오잖냐?
네가 저 놈에게 해꼬지 할까 봐 다른 대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 보고 있는 거 알지?“
뇌호의 말에 왕일이 더욱더 인상을 썼다.
”네 놈도 그리 잘 한 거 없으니까 그만 해라. 만일 네 놈이 준이 놈에게 해꼬지를 하면 나도 그냥 넘어 갈 수가 없으니까 그리 알아.“
”에이! 썅.“
왕일이 쌍욕을 내뱉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뇌호가 혀를 찼다.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새끼....“
청룡대주인 뇌호가 백여명의 청룡대를 앞에 두고 자신의 애도를 든 채 우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우리 관할 구역의 마을들 순찰을 나선다. 언제 어디서 왜구놈들과 맞닥뜨릴 수 있으니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마라.
그리고.... 마을에서 너무 많이 가져 오지는 말아라.“
오십명씩 둘로 나누어 청룡대 관할인 열 개 어촌 마을을 순찰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나는 검단주님과 대주들 회의가 있어 못 나가니 왕일, 만삼 부대주 둘이 잘 하고 와라.“
뇌호 대주가 회의를 위해 검단주를 만나러 가고 나자 두 개로 나뉜 청룡대를 보고 왕일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난 왼쪽을 맡지.“
”이봐, 개인적인 원한을 접어 두라고. 괜히 말썽 일으키지 말고.“
만삼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왼편에 서 있는 북리준을 쏘아보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은 나를 따라 오너라.“
만삼이 오른편 무인들을 데리고 먼저 장내를 떠나자 왕일이 자신의 검을 든 채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이쪽이다.“
여기 저기 기우고 혈흔이 흐릿한 무복을 입고 자신들이 고른 검을 든 북리준과 하승진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저 새끼 눈빛 봤냐?“
승진의 말에 북리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저 새끼가 근처에 오면 긴장 해야 되겠다. 왜구놈 칼보다 저 새끼 칼이 먼저 네 놈한테 떨어 지겠다.“
해남검단을 나서 바닷가 해변을 따라 이동을 하던 북리준이 속한 대원들 중 척후로 나섰던 무인이 급하게 돌아 왔다.
”저 앞에 해신촌에 왜구들이 들이 닥쳐 있습니다.“
”몇 명 정도 되냐?“
”스물 안팎 정도 되어 보입니다.“
척후의 보고에 왕일이 이를 꽉 물고는 뒤를 돌아 보았다.
”들었지? 신병들 정신 바짝 차리고 꼭 살아 남거라.“
왕일이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치고 나가자 그 뒤를 대원들이 따라 뛰기 시작했다.
”クハハハ 、殺す、バーン!“
(크하하하, 죽여라, 태워라!)
꿈에서라도 듣고 싶지 않은 왜구어가 가까이 들려 오기 시작 하고 시퍼런 왜도로 마을 주민을 내리치는 훈도시 차림의 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개새씨들아~~~!“
왕일이 고함을 지르며 등을 돌린 채 주민에게 칼을 내리치는 왜구의 등을 갈랐다.
”劍團 奴ら だ. 全圓 戦闘準備!“
(검단 놈들이다. 전원 전투 준비!)
주위에 양민들을 도륙 하던 왜구와 초가에서 바지춤을 추스르며 뛰어 나오던 왜구들이 달려 드는 청룡대원들을 보며 왜도를 치켜 들었다.
순식간에 마을로 짓쳐 들던 청룡대원들을 맞이 하는 왜구들의 예리한 칼이 사정 없이 내리쳐 졌다.
”크아아악 아아악 내, 내 팔....“
사납게 한번 부딪친 결과 선혈과 팔 다리가 난무하는 와중에 북리준에게 달려 드는 왜구가 눈에 들어 왔다.
”오너라!“
모래주머니로 단련한 팔다리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달려 드는 왜구의 칼을 머리 위로 흘려 보냈다.
‘슈아아악‘ 압축된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왜구의 몸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왜구의 몸에서 터져나온 선혈을 흠뻑 뒤집어쓴 북리준의 눈에 왜구와 칼을 맞대고 있는 승진이 들어 왔다.
힘껏 땅을 박차고 신형을 띄운 북리준의 검이 깊숙이 왜구의 등을 갈랐다.
”크아아아아악“
승진의 검이 왜구의 목을 날리고는 북리준과 등을 맞대었다.
”다쳤냐?“
”내 피가 아니다.“
북리준과 승진이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전면에서 달려 드는 왜구 둘에게 검을 내질렀다.
모래주머니를 찬 채로 일반 무인들의 속도로 검을 휘두르던 두 사람의 검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한 박자 빠르게 뻗어 나갔다.
”꺼어어억 커억“
북리준과 하승진의 검이 왜구의 목과 심장을 관통 하고 빠져 나갔다.
검에서 흘러 내리는 피를 떨어내며 주위를 살피니 부대주인 왕일이 두 명의 왜구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냥 두고 가자. 다른 사람을 도와 주자고.“
승진의 말에 북리준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왕일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저 꼴통새끼....“
승진이 한숨을 내쉬며 검을 꼬아들고는 땅을 박찼다.
”까앙 깡 가가가각“
자신과 함께 왜구들을 도륙 하던 동료 넷이 앞의 두 놈의 왜구들의 도에 유명을 달리 하고 등과 팔에 검상을 입은 왕일이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이 새끼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일반 왜구들과 달리 체계적으로 무술을 배운 듯한 칼의 궤적에 동료들이 하나 둘 쓰러지는 모습에 자신도 곧 그 뒤를 따를 것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세상, 좇같네!“
자신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 드는 왜도를 쳐내는 순간 머리 위로 떨어 지는 칼을 보고 욕을 내뱉었다.
자신의 머리를 두 쪽을 내려 떨어지는 칼 너머에 왜구에게 돌을 날리며 검을 뻗어내는 북리준이 눈에 들어왔다.
’왜....?‘
”칙쇼!“
앞에 걸리적 거리던 놈의 머리를 갈라 버리려던 대주급 사무라이가 몸을 돌려 자신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 오는 돌을 검으로 걷어 내었다.
”까앙“
승진의 검을 막아낸 다른 왜구도 신형을 돌려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놈들, 제대로 배운 놈들이다. 조심해라.“
놈의 칼에 부딪쳤을 때 손아귀에 전해 지는 묵직함에 북리준이 승진에게 주의를 줬다.
이미 등과 팔에서 많은 피를 흘려 주저 앉은 왕일의 눈에 서로의 검을 들고 대치 중인 북리준과 승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이런 미친 새끼들이.... 너, 너희들이 상대할 놈들이 아니야.... 빨리 도망쳐.....“
주위의 병장기가 부딪고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고요히 자신의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자의 얼굴에 떠오른 가소로움을 보며 북리준의 검이 먼저 움직였다.
삼환투월과 맹호희산, 대붕전시에 이어 급격히 주저 앉아 찔러낸 독헐반미를 표정 없이 막아 가는 왜구 우두머리의 도를 보며 북리준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간다.
”삼재...검법....인가?“
서투른 중원어를 내뱉는 왜구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순간 왜구의 도가 뻗고 베고 가르는 손짓에 북리준의 전신에서 피가 솟구쳤다.
’얕은 상처지만 피가 너무 많이 흐른다.‘
전신에 선혈이 낭자한 북리준이 흘러내리는 피를 고개를 흔들어 털어 내고는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 잡았다.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을 뿐이다.‘
흐려지는 눈에 힘을 주고 왜구가 휘두르는 도의 궤적을 따라 힘겹게 막아 가는 북리준의 눈에 흔들리는 신형의 왕일이 자신의 검을 왜구의 등을 향해 날리는 모습이 들어 왔다.
"칙쇼!“
자신의 등을 향해 날아 오는 검을 신형을 돌려 순식간에 걷어내는 순간 북리준이 두 다리가 터져 나갈 듯 온 힘을 몰아 땅을 박차고 지남금침의 자세로 검을 뻗어내었다.
”커허어억“
등 뒤로 날아 오늘 검을 쳐내고 충분히 앞에서 뻗어 오는 검을 받아 낼 줄 알았던 왜구의 눈에 한 박자 빠르게 공간을 가르며 날아오는 검이 자신의 심장을 꿰뚫는 섬짓한 느낌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발로 왜구의 머리를 차내고 검을 뽑아낸 북리준이 위태하게 뒤로 연신 물러나는 하승진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좌에서 우로 휘둘러진 검의 궤적에 왜구의 목이 걸리고 ’둥실‘ 머리가 떠올랐다.
”隊長が 死んだ, 隊長が 死んだ“
(대장이 죽었다. 대장이 죽었다!)
북리준의 검에 심장이 꿰뚫려 죽은 우두머리를 본 왜구들이 소리를 지르며 급격히 마을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헉 헉 허헉“
왜구들이 도망가기 시작 하는 것을 확인한 북리준이 그대로 땅에 주저 앉아 거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죽겠다....“
가슴과 팔, 다리에서 피를 흘리며 기어온 하승진이 그 옆에 큰 대자로 뻗었다.
왜구들이 빠져 나간 마을 여기 저기에서 살아남은 양민들이 조심스럽게 나와 부상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아이고, 감사 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여기, 붕대하고 지혈제 좀 가지고 와.“
북리준과 하승진에게 다가온 늘그수레한 영감이 투박한 손으로 지혈을 하기 시작 했다.
응급조치로 붕대를 여기 저기 감은 북리준의 옆에 누군가 털썩 주저 앉았다.
”아이고, 무사님도 많이 다치셨네. 잠시만 기둘리시오.“
붕대와 약을 가지러 영감이 자리를 뜨자 왕일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왜....?“
”같은 편이니까.“
”난 널 죽이려고 했어. 이 곳에서....“
”둘 다 살았잖아. 그러면 된거야!“
”미친 새끼....“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왕일이 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몇이나 뒤졌냐?“
모인 청룡대원들을 헤아린 대원이 대답을 했다.
”열 하나요....“
”많이도 뒤졌네.... 그 새끼 보통 왜구놈이 아니었어. 그 새끼 손에 다섯도 넘게 죽었어.“
북리준의 손에 심장이 꿰뚫린 채 죽은 왜구놈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죽은 왜구 새끼들 모으고 귀를 잘라라. 한 놈당 동전 오십문이다.“
약 열 다섯 정도의 왜구들의 귀를 잘라낸 왕일이 열 개를 북리준에게, 다섯 개를 하승진에게 건넸다.
”앞으로 너희들이 죽인 놈들은 직접 챙겨라. 이번만은 봐 주마.“
”너무 많소.“
”내 목숨 값이다....“
”고맙소!“
”내가 고맙다. 네 놈들 덕분에 내가 이리 숨 쉬고 있는 거니까...“
왜구들의 시체는 바다에 던져 버리고 사망한 동료들의 시신을 마을 뒷산에 묻어 애도를 표한 후 본대로 복귀를 시작했다.
”한바탕 했구나.“
자신과 갈라져 출발한 만삼 부대주가 피칠갑을 한 채 들어서는 왕일 일행을 맞이했다.
”네 놈의 재수 없는 상판대기를 못 볼 뻔했다. 대주는?“
”네 놈이 늦으니 한바탕 한 줄 알고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왜구놈들과 부딪칠 때 조심해라. 제대로 칼을 배운 놈들이 나타났다.“
청룡대주 뇌호가 온몸에서 혈향을 풍기며 천막 안으로 들어서는 왕일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제대로 당했네. 한 오십명 넘었나?“
”이십이오.“
”이십? 그런데 왜?“
”우리가 알던 여지껏 대충 칼을 휘두르던 놈들이 아니었소. 제대로 칼을 배운 놈이 둘 있었소.“
”둘이나? 그럼 우리쪽 피해는?“
”열 하나요.“
”휴우, 예상외로 덜 죽었구나.“
”그 두 놈 덕분이오.“
왕일의 말에 청룡대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두 놈? 어떤 두 놈?“
”북리준과 하승진.... 그 두 놈이오.“
왕일이 긴 한숨과 함께 북리준과 하승진이 왜구들의 대주급 우두머리를 베어 넘긴 상황을 설명 했다.
”하하! 네 놈이 죽을 뻔 한 걸 준이 놈이 구해 줬다는 거네.“
< 7. 첫 전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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