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1화 (11/167)

< 11. 사면초가 >

평소에 적들에게 둘러 싸였을 때 뚫고 나가는 일자진을 취하는 청룡대원들을 보며 마사히로가 한껏 비웃음을 지었다.

“너희 중 한 놈도 이 곳을 살아 나가지 못하는 것이 이번 의뢰의 조건이다. 한 달 간 약탈을 멈추는 대신 금자 오십냥을 받았으니 네 놈의 목이 꽤나 비싸다는 것을 알고 가거라.”

“차핫”

북리준의 입에서 기합성이 터져 나오며 바닷가 쪽 입구를 방비하고 있는 왜구들의 방진에 검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카아악”

내지른 북리준의 검에 세 명의 팔다리가 날아 오르고 그 뒤를 왕일과 승진이 받치며 왜구의 방진을 뚫기 시작했다.

“카가가각 카각, 채앵, 크악 커허헉”

앞길을 뚫는 북리준과 왕일, 승진의 뒤를 따르는 청룡대원들의 전신에 왜구의 검들이 떨어 지며 비명성과 피보라가 솟구치는 모습을 마사히로가 웃으며 바라 보고 있었다.

“후후후! 맥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놈은 베는 맛이 없지.”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가는 북리준의 뒷모습을 보며 마사히로가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가거라!”

마사히로 뒤에 시립 해 있던 두 명의 사무라이 복장의 무사가 허리를 숙이고는 땅을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후욱 훅, 후욱, 이 놈들 우리를 몰고 있어...”

왕일이 연신 검을 휘둘러 주위의 왜구들을 베어 넘기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형님 말이 맞네요, 헉 헉!”

마을을 벗어 나기가 무섭게 두터워진 방진을 뚫다 보니 해룡촌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해안가 절벽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로 가면 갈 곳이 없어. 절벽 밑에 광룡소가 있다고.”

왕일의 말에 북리준이 몸을 날리는 왜구의 목을 날리고는 뒤를 돌아 보았다.

“아아악 크악”

저 뒤에서 두 명의 사무라이 복장의 왜구가 거침없이 청룡대원들의 목을 날리는 것을 보고는 왕일과 승진을 앞으로 보냈다.

“앞을 뚫어라. 저 놈들을 베고 따르겠다.”

왕일과 승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신형을 날린 북리준의 뒷모습을 보고는 왕일과 승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명대로 움직이자구.”

왕일과 승진이 그나마 방진이 약한 곳을 향해 몸을 부딪자 그 뒤를 청룡대원들이 받쳐 뛰어 나갔다.

“笑止千万な 奴!”

(가소로운 놈들 )

자신의 주군인 마사히로의 명으로 앞에 걸리적 거리는 청룡대 무인들을 순식간에 베어 넘기던 두 무사 중 하나가 자신의 머리를 갈라오는 검을 급히 흘러 내었다.

“奴だ.”

(놈이다.)

“부대주들을 따라가!”

북리준이 사신들의 검에 목이 베어 지려는 찰나 자신들을 구해준 대주의 명에 급히 앞으로 내달렸다.

두 무사가 신중히 자신들의 왜도를 두 손으로 그러쥐고는 ‘끼요옷’ 괴성과 함께 북리준의 상단과 하단을 동시에 베어 들어 왔다.

‘둘 다 나 보다 아래가 아니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북리준이 침중한 표정으로 하단을 베어오는 왜도를 향해 자신의 검을 마주 대어 나가자 상단을 점하여 도를 내 뻗은 무사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떠올랐다.

“크가가가가가칵, 커허어억”

하단을 베어 오는 왜도와 부딪친 북리준의 검이 급격히 위로 솟구쳐 오르며 한 가닥의 파도 같은 검기를 앞으로 쏘아 내었다.

자신의 도가 검귀의 가슴을 갈라 버릴 것을 의심치 않던 무사가 순식간에 두 조각으로 갈라져 버렸다.

“큭!”

상단을 베어 오는 왜도를 가슴으로 흘려 베어진 상처에서 피가 솟구쳐 나왔다.

“このような ドウグ ....”

(이런 개 같은....)

자신의 사제가 검귀의 검에서 일어난 파도에 두 조각이 난 것을 보고는 이를 꽉 깨문 무사가 왜도에 진기를 주입하고는 땅을 박차 날아 올랐다.

'부딪치면 죽는다!’

북리준이 신검합일의 자세로 자신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날아오는 도를 향해 자신의 검에 모든 진기를 몰아 넣고는 원을 그리며 회오리를 일으켰다.

“크가가가가칵 카칵 카가각”

날아오는 왜도를 남해회류의 검형으로 흘러 내다 미처 흘려 내지 못한 검기에 가슴과 양팔에서 피가 터져 올랐다.

“크윽”

날아오는 왜도를 어느 정도 해소한 북리준의 오른다리가 뒤로 빠지며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무사의 목이 눈에 들어 왔다.

‘둥실’ 무사의 목이 떠오르고 목 없는 시신은 저 만치 뛰어 가다 그 자리에서 허물어져 갔다.

저 뒤에 느릿한 걸음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마사히로를 일별 하고는 신형을 돌려 땅을 박찼다.

“이익, 카각, 퍼억.... 대주는 언제 오는 거야?”

“나도 바빠요.”

왕일과 승진이 자신들의 앞을 가로 막는 왜구들을 베어 넘기는 중에 뒤가 소란스러워는 듯 하더니 가슴과 팔에 피가 흥건한 북리준이 앞으로 나섰다.

“괜찮아?”

“아직까지는....”

“얼마나 남았어?”

왕일이 뒤를 바라 보며 묻자 북리준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포함 삼십 남짓....”

“젠장할! 결국 여기가 끝이구만.”

“형님, 갈 땐 가더라도 한 새끼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자구요.”

온 몸에 자신의 피인지 적의 피인지 알 수 없이 흠뻑 젖은 승진이 씨근덕 거렸다.

“미안하오...”

”지랄하네. 이게 어디 너 때문이냐? 우리를 팔아 넘긴 대공자 그 씹새끼 때문이지.“

왕일이 피범벅이된 왼팔을 옷을 찢어 묶으며 으르렁 거렸다.

”준아, 형님! 혹시 우리 중 누가 살아 남는 다면 그 개새끼 멱을 꼭 따는 것으로 약속합시다.“

승진의 말에 왕일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살아 나면 말이지....“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저 새끼의 목표는 나야. 형님과 너는 들러리일 뿐이라고.

각 자 열 다섯씩 데리고 두 방향으로 흩어져. 저 마사히로란 놈만 피하면 살 가능성이 있어.”

북리준의 말에 왕일이 희번덕한 눈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럼 넌 죽어 새꺄!”

“난 안 죽어. 왜구 새끼들 씨를 말릴 때 까지 절대 안 죽으니까 내 말대로 움직여.

나 혼자 움직이는 것이 더 살 확률이 높아.”

북리준이 저 뒤에서 느릿하게 다가 오는 마사히로를 보며 다급하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제발 말 좀 들어.”

“형님, 이 놈의 말이 맞아요. 우리가 혹이 될 수 없잖아요.”

승진의 말에 왕일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살아 남으면 검단에서 보자. 꼭 살아남아라.”

왕일과 승진이 살아 남은 청룡대원을 반으로 갈라 좌우로 갈라지기 직전 서로 눈을 마주쳤다.

“살아남아라. 꼭!”

한 곳으로 몰아 넣고 있던 청룡대가 순식간에 세 갈래로 갈라지자 왜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마사히로의 말에 왜구들이 두 갈래로 갈라진 왕일과 승진의 뒤를 따라 붙었다.

“크하하하악 카악”

북리준의 검이 한껏 푸른 검기를 머금은 채 왕일의 뒤를 따라 붙는 왜구들의 뒤를 쳐 베어 넘기고는 다시 신형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헉헉헉”

자신의 앞 옆에서 불쑥 튀어 나오는 검을 걷어 내고 그려지는 곡선에 왜구의 목이며 팔 다리가 비산했다.

북리준이 자신의 뒤를 따라 붙는 왜구들을 일별하고는 해룡촌과 맞닿은 절벽 끄트머리에 당도했다.

왜구들이 절벽 끝에 선 채 검을 늘어뜨리고 있는 북리준을 포위 한 채 노려 보자 슬그머니 자신이 서 있는 절벽 뒤를 바라 보았다.

“쿠르르르릉 콰르릉 콰릉“

광룡소라 이름 붙여진 해류가 뒤엉켜 사시사철 광폭한 해류가 소용돌이치는 절벽 밑을 슬쩍 본 후 다시 정면을 바라 보았다. 거친 숨을 내 쉬며 저 멀리서 들리는 병장기 부딪는 소리와 비명 소리를 들으며 중얼거렸다

”꼭 살아 남아라. 꼭....“

그때 북리준을 포위한 왜구들이 양 옆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마사히로가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역시 검귀는 검귀구나.“

자신의 애제자 둘이 북리준의 검에 스러졌음에도 마사히로는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긴 왜도 하나와 단도 두 개를 허리춤에 찬 마사히로가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래, 갈 땐 가더라도 여한은 없어야지. 최선을 다해 덤비거라. 아무도 우리 싸움에 나서지 않을 테니...“

”사양하지 않으마! 차핫“

북리준이 있는 대로 온 몸의 진기를 다 짜내어 검과 다리에 뿌려 내고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검의 파도를 일으켰다.

”흥!“

마사히로가 자신의 몸을 난자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켜 달려 드는 검의 파도를 기이한 보법으로 유영을 하며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퍼어억, 커헉!“

진기가 실린 각을 가슴에 정통으로 얻어 맞은 북리준의 신형이 저 멀리 실 끊어진 인형처럼 떨어져 내렸다.

”커헉 이이익....“

다시 힘들게 신형을 일으킨 북리준이 날리는 검을 흘려 낸 마사히로의 우권이 북리준의 얼굴을 직격했다.

”퍽 퍼억, 퍼버벅 퍽 퍼벅“

어느새 검을 수납한 마사히로의 권장각이 쓰러지려는 북리준의 전신을 가격 하기 시작했다.

”날파리 같은 놈 하나가 그리 신경을 쓰이게 하더니 이제야 잡게 되었구나.“

마사히로의 권장각에 만신창이가 되게 두드려 맞으며 결코 놓지 않았던 검이 남해의 거친 해류의 길을 따라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런....“

급히 신형을 뒤로 물린 마사히로가 자신의 입으로 흘러 내리는 피를 맛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만 끝내자꾸나.“

자신의 오른뺨 두 치 정도의 베인 상처에 흘러내리는 피를 옆에 다가선 시동이 건네주는 천으로 닦아내고는 자신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쉬이익, 카앙!“

순식간에 공간을 가르는 장도를 힘겹게 받아낸 북리준이 정신 없이 뒤로 물러섰다.

”쉬이익, 카가각“

다시 자신을 양단하기 위해 떨어져 내리는 검을 힘겹게 받아낸 북리준이 다시 서너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뒤에 떨어지면 시체도 못 찾아. 네 놈 목을 검문의 대공자 놈에게 보내 주기로 했으니까 얌전히 목을 내밀어라.“

”카앙!“

장난치듯 휘두르는 검을 겨우 막아낸 북리준의 뒤꿈치에 절벽 끝이 밟혀졌다.

”놈, 목은 놓고 가거라!“

북리준이 뒤로 신형을 날리는 순간 마사히로의 검이 좌에서 우로 휘둘러졌다.

”푸화하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목이 아닌 가슴이 좌에서 우로 갈라지며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북리준에게 손을 뻗어 잡으려던 마사히로의 눈에 엿 먹으라는 손가락질을 하며 웃는 녀석의 얼굴이 들어왔다.

”칙쇼!“

저 아래 광폭한 파도가 소용돌이 치는 곳으로 표표히 떨어져 내리는 북리준의 신형이 사라져갔다.

”독한 놈!“

분한 듯 북리준의 신형을 삼켜 버린 광룡소를 노려 보던 마사히로가 미련 없이 신형을 돌렸다.

”봤지? 저 상태로는 살아 남을 수 없다. 이쪽에서 약속을 이행 했으니 네 놈들도 약속한 것을 내 놓거라.“

마사히로가 눈길을 던진 숲 한 켠에서 누군가가 신형을 일으켰다.

”여기 있소!“

기린대주 목대관이 품에서 묵직한 전낭 두 개를 꺼내어 마사히로에게 내밀었다.

”종종 이런 좋은 관계를 유지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대공자 한테 전해 주게.“

마사히로가 전낭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 한 후 자신들의 수하와 함께 물러갔다.

”죽었겠지?“

어느새 목대주 옆에 다가온 주작대주가 저 밑에 소용돌이 치는 광룡소를 내려다 보았다.

”가슴이 갈라지고 뿜어져 나온 피 봤잖아? 여기서 맨 몸으로 떨어져도 살아 남을 수 없는데 하물며 그 만신창이가 된 몸이면....“

”똥고집 부리다 뒤진거지. 수하들도 대주 잘 못 만나 저승길 동무가 된 거고.“

< 11. 사면초가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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