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여긴 어디? >
’이대로 죽는 건가?‘
가슴이 갈라진 통증은 애초에 무감각 해졌고 거친 소용돌이에 따라 휘돌아 가는 중에 만감이 교차했다.
’결국 부모님 원수도 못 갚고.... 왕일 형님과 승진, 청룡대원들의 목숨 빚 까지..... 못났구나, 못났어....‘
자신의 몸을 산산 조각 낼 듯 다가 오던 암초가 기이한 해류의 흐름에 스치듯 지나 가기를 십 여회.
’벌써 소용돌이에 의해 암초에 부딪쳐 육편이 되었어야 될텐데 기이하군....‘
흐려져 가는 눈에 저 멀리 금빛 무엇인가가 다가 오는 것이 들어 왔다.
’죽는 건가 보군....‘
”똑 똑 똑 똑!“
무엇인가 일정하게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저 멀리에서 점차 다가 오는 것을 느끼고 힘겹게 눈을 떴다.
겨우 뜬 눈에 자신의 가슴을 오르 내리는 금빛 머리가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모양에 다시 눈을 감았다.
’죽었는데 왜 이리 아프지....?‘
자신의 갈라진 가슴에서 아리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다시 눈을 떠 보니 어디에서 본 듯한 머리가 보였다.
”금, 금구냐?“
만년금구가 자신의 입에서 뿜어낸 영롱한 빛깔의 침을 연신 갈라진 북리준의 가슴에 흘려 내자 쩌억 벌어진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져 갔다.
극심한 두통과 탈수 현상에 북리준의 의식이 다시금 흐려져 갔다.
”크윽!“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타는 목마름에 눈을 뜬 북리준의 눈 앞에 만년금구가 잠이 들어 있었다.
”네가 나를 구했구나.....“
북리준의 목소리에 잠에서 깬 금구가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도저히 회복이 힘들 거라 예상 했던 가슴의 자상과 양팔, 복부의 베인 상처들이 뭔가 찐득한 액체에 덮여 아물어 가는 모습에 다시 금구를 바라 보았다.
”고맙다. 내 생명을 구해 줘서.“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세운 북리준이 주위를 둘러 보기 시작했다.
커다란 동굴 안에 사람이 산 듯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고 만년금구 뒤 동굴 입구에 바닷물이 넘실 거리고 있었다.
”해저동굴이구나.“
천장과 벽에 종유석과 기암괴석이 난립해 있는 곳 한 켠에 천장 어림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모여 있는 옹달샘이 보였다.
”마셔도 될까?“
내장까지 타들어 가는 갈증에 조심스럽게 옹달샘에 다가가 손가락을 샘에 찍어 혀에 가져다 대었다.
”어, 안 짜네.“
옹달샘 바로 옆에 돌로 만든 듯한 표주박이 보이고 조심스럽게 들어 물을 담아 입에 가져다 대었다.
”벌컥 벌컥 벌컥!“
십 여차례 연신 물을 들이킨 북리준이 표주박을 내려 놓고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 보았다.
”누가 살고 있는 곳인가 보구나.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겠다.“
어느새 물을 마시는 북리준의 뒤에 다가온 금구가 머리로 엉덩이를 밀었다.
”왜? 주인에게 인사를 해야지.“
금구가 북리준의 엉덩이를 머리로 밀다 입을 벌려 피에 절은 팔소매를 덥석 물고는 끌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자구?“
만년금구가 소매를 문 채 고개를 주억 거리고는 동굴 안쪽으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주인과 네가 아는 사이인가 보구나.“
갈증을 해소하고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한 북리준이 동굴 안 쪽으로 금구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떼었다.
구불 구불한 길을 걷다 보니 정면에 깎아 지른 듯한 희디흰 벽이 나타났다.
”막혔네. 금구야, 여기 주인은 어디 있는데?“
북리준이 막힌 벽을 손으로 두드리며 금구를 돌아 보았다.
”타라고?“
만년금구가 자신의 등을 가리키며 고개짓을 하고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많이 좋아졌어. 괜찮다고.“
다시 도리질을 하고는 자신의 등을 가리키는 금구의 성화에 할 수 없이 북리준이 올라탔다.
”괜찮다니까..... 어, 어?“
만년금구가 느릿한 걸음으로 거침없이 절벽을 향해 부딪쳐 가자 북리준이 경호성을 질렀다.
순간 ’쑤우욱‘ 만년금구의 머리가 흰 절벽 안으로 들이밀어지고 이어 북리준의 신형도 절벽 안으로 삼켜져 갔다.
”어어어어, 이게 뭐야?“
절벽 안에 들어선 북리준의 눈에 자욱한 하얀 안개가 들어 차더니 순식간에 너른 공간의 초입에 서 있게 되었다.
”여, 여기는 어디?“
커다란 동공 정면에 서로에게 기댄 듯 좌화한 두 개의 시신이 보였고 한 옆에는 벽을 파내 책장으로 만든 듯한 곳에 수어피로 만든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시체?“
만년금구가 느릿한 걸음으로 좌화한 두 개의 백골 앞에 서서 아련한 눈빛을 빛냈다.
”네 주인들이었구나.“
금구가 도리질을 치자 북리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친구?“
끄덕이고는 자신을 바라 보는 금구의 모습에 북리준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나와 같은 친구구나...“
북리준이 천천히 너른 동공 안을 둘러 보니 한켠에 서책이 꽂힌 서가와 반대편에 천장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맑은 물이 만든 샘과 돌로 만든 침상이 보였다,
”오래전에 돌아가셨나 보네....“
좌화한 두 구의 시신에게 다가가 보니 한 시신의 앞에 수어피로 만든 책 하나 위에 검이, 또 다른 시신 앞에 책 하나와 마치 방금 핏물에서 꺼낸 듯한 적륜과 희디흰 백륜이 놓여 있었다.
”보라고?“
만년금구가 다시 북리준을 뒤에서 밀자 피에 절고 누더기처럼 변한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고인분들의 영면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제 친구인 금구의 안내로 이 곳에 도달 했고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려고 합니다.“
북리준이 조심스레 절을 하고는 두 구의 시신을 유심히 보았다.
”어, 남녀구나.“
멀리서 보았을 때 구분이 되지 않았던 시신의 옷과 체구를 보니 왼편에 좌화한 시신은 여자가 분명했다.
먼저 남자 시신 앞에 놓인 검을 조심스럽게 들어 내려 놓고는 책자를 집어 들었다.
’네 놈이 우리 연자냐?‘
펼친 책자에 대뜸 튀어 나온 말에 북리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 무슨....?“
다짜고짜 반말에 도전적인 필체에 당황한 북리준이 다시 다음 글에 눈길을 주었다.
’난 천산쌍괴 중 천괴 도천학이고 옆에 내게 기대 있는 할망구는 지괴 냉가려라고 한다. 예쁘지?‘
북리준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미소짓는 금구를 바라 보았다.
”괴짜시네....“
백골로 화한 시신에 다시금 눈길을 주니 생전의 미모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눈깔아, 그만 쳐다 봐.‘
”푸웃!“
다시 이어지는 글에 북리준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다시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갔다.
’우리는 천상쌍괴라고 한다. 천산파 라고 조그만 동네 무관 하나 만들었지, 킬킬!‘
천산파!
북리준은 알 수가 없었지만 이백년 전 개파하여 최근 백년 전까지 최고의 성세를 구가 하다 지금으로부터 백년 전 정마대전에서 마교의 공격을 최일선에서 막다 거의 멸문지화를 당한 전설의 문파였다.
작금에도 무림에서 천산파를 기리며 천산에 영웅비를 세우고 매해 그 업적을 찬양하는 무림인들이 부지기수 였다.
”천산파? 무관?“
천산파에 대해 알 리가 없는 북리준이 고개를 주억 거리며 다시 책에 시선을 던졌다.
’나와 집사람을 어떤 놈들은 쌍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어떤 놈들은 쌍괴라고 하기도 했는데 난 쌍괴가 좋더라.
불문곡직하고 천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는 백 세가 되는 해에 산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개발새발 읽기 힘든 글씨체를 겨우 겨우 더듬어 계속 읽어 나가는 북리준을 만년금구가 흐뭇한 눈으로 바라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바닷가에서 생을 마치자고 약속하고 이 곳 남해로 왔느니라.‘
남해로 내려와 아내인 냉가려와 생활을 하다 우연히 만년금구를 만나게 되어 이 곳 쌍괴동에 정착을 하게 된 내용이 주구장창 쓰여 있었다.
”네 친구들이로구나.“
북리준이 편안한 자세로 엎드려 있던 금구를 일별 하고는 다시 책자에 고개를 묻었다.
’여기 남해로 내려와 때로는 부드럽게 넘실 거리다 광폭한 폭풍이 되는 바다를 본 따 칠검을 만들었다.
혹시 네 놈인지 년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나가게 되면 천산에 한번 들러 천산파라는 곳이 남아 있으면 한번 도움을 주어라. 싫음 말고.‘
”천산파라....“
북리준이 천괴의 글에 나타난 천산파를 작게 읖조렸다.
’나 같이 무식하게 검만 휘두르다 뒤지지 말고 집사람이 남긴 것도 잘 익혀서 사람 답게 살아라.‘
마지막 말에 천괴의 성격을 그대로 느낀 북리준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알겠소이다, 선배!“
천산쌍괴가 이백년전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북리준은 두 사람을 선배로 대접하기로 했다.
책 뒤편에 ’남해무극칠절‘ 이라는 무공에 대한 내용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책을 내려 놓았다.
”스르르릉“
책 위에 놓인 검을 뽑아 드니 새파란 검신에 그 어떤 것이라도 능히 벨 듯한 예기를 머금은 모습을 보고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은 검이군.“
검이라고는 해남검단에서 피에 절고 무뎌진 검만 사용해 본 북리준에게 자신의 손에 들린 천산신검이 강호에서 기보 중에 기보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검을 다시 검집에 꽂아 땅에 내려 놓고는 지괴 냉가려의 시신 앞에 놓인 쟁반 모양의 륜 두 개를 집어 들었다.
”매일 닦고 관리한 줄 알겠네.“
한 점 티 없이 맑은 핏빛과 흰빛의 두 륜을 양손에 쥐고는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돌팔매에 능한 나한테 딱인 무기인가?“
책자를 집어 들어 첫 장을 넘기니 천괴의 악필에 피곤해진 눈이 정화되는 느낌의 달필이 눈에 들어 왔다.
’부군의 악필에 고생이 많았네.‘
따뜻한 첫 마디 글에 북리준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부군이 구구절절히 설명을 했을테니 난 할 말만 하겠네.
지금 그 쪽이 들고 있는 륜 두 개는 일월혈륜이라고 하네. 흰 것이 일륜이고 붉은 것이 월륜이라네.‘
”일월혈륜.... 멋지네!“
’우리 쌍선, 아니 부군은 쌍괴라고 우기니 나도 쌍괴라 하겠네. 자네가 이 곳에 들어와 이 글을 본다는 것은 우리 금아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우리 금아가 보고 싶네.....‘
”금구의 이름이 금아구나.“
금아라는 말에 금구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곳 쌍괴동의 입구는 내가 진법을 펼쳐 막아 두었네. 금아의 인도가 아니면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조치를 해 두었다네.
왜냐하면 우리의 무공이 악인의 손에 들어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을 막고 싶었을 따름이네.‘
지괴 냉가려는 부군과 자신의 무공, 유진이 악인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지극히 두려워했다.
’금아가 데려온 후인은 아마 선인일 것이라 믿고 싶네. 여기 일월혈륜의 운용법이 적인 무공서와 내 필생의 진법 관련 유진을 남기네.
부디 이 세상을 위해 우리 무공을 써주시게.‘
책 후반부에 ’일월천뢰륜법‘ 이라는 무공 관련 내용이 뒤를 이었다.
”저 책들이 진법에 관한 책인가 보구나.“
동공 한켠에 꽂혀 있는 책들을 일별 하고는 죽을 고비를 넘겨 기연을 만난 북리준의 얼굴에 비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천산쌍괴 선배님들의 무공이 어느 정도 수준 인지 모르겠지만 내 복수를 위해 도움이 되겠다.
선배님들, 절대로 선배들이 우려 하시는 대로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은 하지 않겠소.
내 부모님과 동료들의 원한을 갚고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 것을 약속 드리오.“
< 12. 여긴 어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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