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쌍괴동 >
"마실 물은 되었고 잠자리도 저 정도면 충분하고.... 먹을 것이 문제네."
북리준의 중얼거림에 금아가 번쩍 고개를 들더니 느릿한 걸음으로 진법을 뚫고 나갔다.
"어디가?"
진법 너머로 사라져 버린 금아를 보며 입맛을 다신 북리준이 두 구의 좌화한 시신을 쳐다 보았다.
"일단 두 분이 영면하실 수 있도록 합장해 드리는 것이 맞겠지."
너른 동굴 안을 둘러보기 시작 하다 저 편 벽에 또다른 동굴이 이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어, 또 다른 공간이 있네."
조심스럽게 다른 곳으로 뚫린 동굴을 통과하다 감탄을 터뜨렸다.
"와우!"
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넓디 넓은 공동의 초입에 선 북리준이 사방을 둘러 보았다.
"여기서 연공을 하면 되겠네. 저 쪽은 좁아서 무공을 어떻게 수련하나 했는데...."
그 끝이 저 멀리 아련히 보이는 천장과 양 쪽 족히 천장을 될 듯한 공동 중앙에서 북리준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메아리치는 자신의 목소리에 북리준이 흡족한 표정을 짓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두 분을 어디에 모시는 것이 좋을까?"
광장의 건너편에 주먹만한 돌들이 어지러히 펼쳐져 있는 곳 끝에 오목하게 들어간 아늑해 보이는 자리를 발견했다.
"여기가 명당이구나. 이 곳에 모셔야 겠다."
북리준이 돌들을 주워 한 군데 모아 무덤을 만들기 충분한 양을 가늠해 보았다.
"이 정도면 되겠네. 그나 저나 배가 고파 죽겠구나."
북리준이 처음 들어왔던 곳으로 돌아가다 자신을 기다리는 금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거 나 먹으라고 잡아 온거야?"
금구의 앞에 어른 팔뚝 보다 큰 문어와 물고기, 조개, 멍게, 해삼류등이 놓여 있었다.
"고맙다! 그렇잖아도 시장 해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북리준이 동굴 한 켠에 놓여 있던 단도로 능숙하게 문어와 물고기를 다듬어 뼈와 내장을 분리하고는 입에 넣었다.
어느 정도 허기를 메운 북리준이 진법에 의해 일렁이는 저 편 벽을 보고는 금아를 바라보았다.
"금아야! 내가 제일 먼저 저 진법을 드나들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테니까 그 동안만 이렇게 먹을 것을 부탁해."
북리준의 말에 금아가 고개를 주억 거리자 천산쌍괴의 좌화한 시신에 시선을 던졌다.
"금아야! 쌍괴 어르신 두 분을 합장해서 무덤을 만들어 드리려고 하는데 좀 도와 줬으면 좋겠어."
북리준이 금아와 함께 쌍괴의 좌화한 시신 앞에 섰다.
"두 분을 합장해서 좋은 곳으로 모시려고 합니다. 존체에 손을 대려 하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
북리준이 조심스럽게 두 구의 시신을 들어 금아의 등에 실었다.
"가자!"
금아가 앞장선 북리준의 뒤를 느릿한 걸음으로 따르기 시작했다.
약 반 시진 후 북리준이 봐 둔 자리에 주먹만한 돌들이 소복하게 쌓인 무덤 하나가 생겨났다.
"나중에 제대로 음식을 차려 인사 올리겠습니다."
정중하게 절을 하고 일어나 다시 천산쌍괴가 생활했던 공간으로 이동했다.
"오랫동안 이 곳에서 생활해야 할테니 천천히 살펴 봐야겠군."
두 사람이 오랜 기간을 지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불을 피울 수 있는 부싯돌, 벽 한 켠에 산처럼 쌓여 있는 잘 구워진 숯, 쉴 새 없이 떨어 지는 맑은 물이 고인 샘, 돌로 만든 침상, 탁자, 의자 등을 확인 하고는 자신을 바라 보는 금아 앞에 섰다.
"당분간 네 신세를 져야 겠다. 문어나 물고기, 해삼 등을 가져다 주면 훈제를 해서 오랜 기간 동안 먹을 수 있게 준비를 할게. 부탁 한다."
숯이 쌓여 있는 한 켠에 벽을 뚫어 만든 화덕에 숯을 채우고는 부싯돌로 불을 지피고는 먹다 남은 문어와 물고기 등을 다듬어 훈제를 하기 시작했다.
북리준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일별한 금아가 느릿 하게 진법 밖으로 나선 후 기기괴괴하게 생긴 물고기며 문어, 낙지 등 각종 해산물들로 작은 산을 하나 만들고는 피곤한 듯 두 발 위에 고개를 얹었다.
"날이 어두워지는 구나!"
저 위 까마득히 높은 뚫린 작은 구멍들에서 쏟아져 들어오던 햇빛이 서서히 줄어 들자 북리준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야명주인가?"
햇빛이 비춰 들었을 때 보지 못했던 신비로운 광경에 장탄식을 터뜨렸다.
동공 안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벽에 박힌 야명주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생성된 몽환적인 분위기에 금아가 기쁜 듯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저거 팔면 웬만한 주루 하나는 사겠다..."
돌로 만든 침상 주변은 야명주가 없어 숙면을 취하기에 알맞은 어둠이 고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세심하신 지괴 어르신의 작품이겠네."
책자를 읽기에 부족함이 없는 밝기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북리준이 걸음을 옮겼다.
"일단 이 곳을 드나들기 위해 진법을 먼저 익혀야 되겠군."
수어피로 만들어진 책들이 꽂혀 있는 곳으로 가 맨 첫 번째 책을 뽑아 들었다.
"환환미진이라...."
돌로 만든 탁자 위에 책을 올려 놓고는 돌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
오랜만에 충분한 휴식을 취한 북리준이 탁자 위에 올려 놓은 일월혈륜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아주 까다로운 놈일세...."
탁자 위에 펴 놓은 ’일원천뢰륜법‘의 무공서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년 동안 매일 같이 번갈아 내 피를 먹여야 하고 자유로운 수발을 위해서 최소 이갑자의 내공이 필요하다?"
’연자가 일년 동안 정성스럽게 자신의 피를 륜에 먹여야 비로소 일월혈륜을 다룰 수 있네.
이렇게 일월혈륜에 연자의 피로 서로의 교감을 완성한 후 일월천뢰륜법의 연공을 시작해야 한다네.‘
지괴 냉가려의 세심한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만일 연자의 내공이 부족하다면 임시방편으로 일월혈륜을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겠네.‘
"오! 이갑자의 내공이 없어도 운용할 수 있네."
북리준이 낙심한 마음으로 글을 읽다 희망을 주는 말에 밝은 표정을 지었다.
"엉? 날이 있네...."
일월혈륜의 모습을 유려한 그림솜씨로 그려 놓은 것을 보고는 책의 그림과 자신의 손에 들린 밋밋한 쟁반 모양의 륜을 번갈아 쳐다 보았다.
일월천뢰륜법의 초반부에 쓰여진 내용대로 륜을 만지자 ’스르르륵‘ 미세한 소리와 함께 륜 안에 감추어진 예리하기 그지 없는 투명한 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월혈륜의 중심부에 연자의 피를 일년간 흘려 넣으면 날의 색이 변할 것이네. 이 후 두 륜이 자네의 수족이 되어 창공을 날아 다닐 수 있을 것이네.‘
다음 장으로 넘기니 일월혈륜이 내공을 사용한 운용법이 아닌 임시운용법이 눈에 들어왔다.
약 일다경 정도를 집중하여 책을 읽고는 고개를 들더니 일륜을 잡아갔다.
"찾았다!"
일륜을 뒤집어 세심히 살피다 ’딸깍‘ 소리와 함께 고리 모양의 실이 툭 튀어 나왔다.
"이 실을 이용해서 륜을 조정 한다는 말이네."
약 반자 정도 투명한 재질의 실을 꺼내고는 옆에 놓인 단도를 들었다.
"진짜네.... 안 끊어져....."
책의 내용에 의하면 일월혈륜 안에 내장된 실은 천잠사 중 가장 강력하다는 만년 천잠사 위에 금강석을 가루 내어 십 년간 먹여 무엇이든 잘라내는 살인병기라 했다.
"어디 있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선 북리준이 책들이 꽂힌 서가로 다가가 맨 오른쪽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재질을 알 수 없는 묵빛의 팔찌 한 쌍을 찾아내었다.
"일월수갑이라...."
두 팔목에 찰 수 있는 형태의 수갑을 들고 다시 책자가 펼쳐져 있는 탁자로 돌아왔다.
낑낑 거리며 두 개의 혈륜과 수갑을 들고 씨름 하던 북리준이 환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됐다!"
열린 수갑 안에 일월혈륜 하나씩을 만년천잠사를 꺼내 연결 후 수납한 북리준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이갑자의 내공을 쌓을 때 까지 운용할 수 있게 연습을 해야겠군."
일월수갑을 옆으로 잘 치워 두고는 다시 책자를 집어든 북리준이 밤이 새도록 책자를 탐독했다.
"후우, 이 일월혈륜을 제대로 수련 한다면 내 앞에 남아나는 것이 없겠네...."
일월혈륜을 이용한 천뢰륜법은 총 네 개의 초식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
일월단혼!
일월혈륜이 창공을 가르니 혼마저 두 조각으로 가르리라.
일월벽력!
창공을 찢고 떨어지는 두 개의 번개에 그 무엇이든 남아나지 않으리라.
일월파천!
땅 위에 존재 하는 그 어떤 것도 하늘을 깨뜨리는 일월의 힘에 무릎을 꿇으리라.
일월파황!
하늘과 땅을 부수어 내는 미증유의 거력에 경배할지어다.
"이갑자의 내공이 뒷받침 되어야 진정한 천뢰륜법을 완성 할 수 있다라....
천잠사를 이용한 륜법은 삼할 정도의 힘 밖에끌어 낼 수 없군. 삼할이라도 굉장한 무공이네...."
일월천뢰륜법의 책자를 덮어 탁자 위에 잘 치워둔 후 천괴의 책자를 집어 들었다.
’내자의 무공을 잘 보았냐?‘
"어, 어떻게 내가 일월천뢰륜법을 먼저 볼 줄 알았지?"
’내 글씨가 워낙 개발 새발 이어서 분명히 네 놈이 달필인 일월천뢰륜법부터 볼 것이라고 안사람이 이야기 했다. 아님 말고.....‘
웃음을 지으며 북리준이 다시 책자에 눈을 돌렸다.
’내가 천산파의 사람인데 네 놈은 왜 천산파의 무공을 알려 주지 않는지 의구심이 들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모든 무공은 하나로 귀일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것 저것 잡다한 무공을 익히는 것 보다 한 가지에 정통 한 것이 장땡이라는 말이지.‘
천괴의 괴이한 논리에 고개를 주억 거린 북리준이 다시 다음 글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창안한.... 물론 내자가 도움을 주긴 했지만 남해무극칠절은 나와 내자의 모든 무공의 정수가 녹아 있는 절대검공이다.
이 안에는 당연히 천산의 무공도 녹아 있지. 나중에 네 놈이 천산파 후인의 무공을 보면 내가 말하는 뜻이 뭔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어 개발새발 써 내려간 책자의 내용을 일독 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너무 광오하군. 이 책자의 내용대로라면 이 검법이 천하제일검법이 되겠어....."
****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쌍괴동 안에 있는 책자를 어느 정도 일독을 한 북리준이 단 한 권의 책자를 앞에 두고 눈을 빛냈다.
"남해무극칠절과 일월천뢰륜법을 익힐 수 있는 심법이 먼저다."
책자의 겉면에 씌여 있는 ’건곤무극신공‘ 이라는 글에 눈길을 고정 한 채 심호흡을 했다.
"건공무극신공으로 내 전신세맥에 녹아 있는 약력을 내공으로 전환하고 남해무극칠절과 일월천뢰륜법을 익히고 출도 하는 기간을 오년으로 한다."
오년 후면 북리준의 나이가 스물다섯이 되는 해 이고 그 이후의 행보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한 천괴의 충고가 머리에 떠올랐다.
’내 무공과 내자의 무공을 얻으면 천하제일이 될 것 같지?
아서라! 네 놈이 이 동굴에서 무공을 익힌 것은 한마디로 혼자 지랄발광을 한 것이다.
한 마디로 경험이 전무하다는 뜻이다. 네 놈이 아무리 높은 무공을 혼자 연습 했다고 해도 밖에 나가서 네 놈 보다 무공이 낮은 경험 많은 낭인의 눈 먼 칼에 비명 횡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망 떨지 말고 실력을 오할 정도 숨기고 최대한 많은 실전을 쌓아라.
이게 내가 네 놈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니라.‘
< 13. 쌍괴동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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