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천년자패 >
"내공의 속성이 양강쪽에 너무 치우쳐 있구나...."
일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건곤무극신공을 익혀 전신세맥에 녹아 있는 백령해왕삼의 약력을 내공으로 전환 시켰으나 너무 강한 양강지기로 인해 일륜과 월륜의 운용이 기형적이 된 것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일륜이 양이고 월륜이 음인데 내 몸에는 양강지기만 흘러 넘치니....."
지괴 냉가려의 경우 원체 음기가 강한 음한지체의 소유자로 삼십을 넘길 수 없었으나 천괴가 목숨을 걸고 구해온 만년화령과로 체내의 양기와 음기의 균형을 맞추어 일월혈륜을 극성으로 수련할 수 있었다.
"음양의 균형이 맞으면 일월혈륜의 수발이 더 자유로울 수 있을 텐데...."
백령해왕삼의 약력을 녹여 약 일갑자 정도의 내공이 일륜쪽에만 힘이 실리는 현상을 북리준이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꾸오?"
옆에 고개를 파묻고 잠을 자던 금아가 고개를 들더니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어디가려고?"
환환미진을 완전히 습득 하여 쌍괴동을 마음 먹은 대로 드나들 수 있게 되어 북리준이 자신이 원하는 해산물을 마음대로 잡게 된 후 항상 무료한 얼굴로 무공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 보던 금아가 모처럼 신난 얼굴로 쌍괴동을 나섰다.
"녀석....."
자신을 어떻게든 도와 주려는 마음을 알기에 항상 금아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진 북리준이 다시 양 팔에 일월수갑을 찬 채 연무장으로 향했다.
약 한 시진을 무아지경의 상태로 검을 휘두르던 북리준의 눈에 금아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자신을 부르는 모양에 검을 늘어 뜨렸다.
"왜?"
"꾸우우우"
이쪽으로 오라는 고갯짓에 북리준이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을 벗어났다.
"어, 그게 뭐야?"
금아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앞에 놓인 물건을 연신 짧은 발로 가리켰다.
영롱한 빛을 한가득 머금고 그 안이 훤히 비쳐 보이는 투명한 어른 손바닥 만한 조개 앞에 북리준이 쪼그려 앉았다.
"아름답다...."
오색빛깔의 영롱한 빛을 한껏 머금고 숨을 내쉴 때 마다 투명한 내장이 부피를 키웠다 줄였다 하는 모습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윽, 차가워...."
손을 에일듯한 냉기에 급히 손을 거둔 북리준이 금아를 바라 보았다.
"이걸 먹으라고?"
크게 웃으면서 고개를 주억 거리는 금아를 보며 북리준의 머리에 예전 금아가 가져다 준 검은색 해삼이 떠올랐다.
"아, 그때 준 해삼이 양강의 기운 이었지. 그럼 이건 극음의 기운을 주는 것 인가 보구나."
북리준의 말에 금아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을 듣고 구해 온 거야? 정말 고맙다."
북리준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개를 유심히 바라 보았다.
금아가 가져온 것은 천년자패라는 심해에 몇 백년을 묵은 영물로 극음의 기운을 품고 있는 영약이었다.
북리준이 손에 진기를 두른 채 천년자패에 잡으려 하자 금아가 북리준의 소매를 입으로 물었다.
"네 등 위에서 먹으라고?"
자신의 등을 목으로 연신 가리키는 금아가 다시금 고개를 주억 거렸다.
"알겠다."
금아가 자신에게 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천년자패를 손에 든 채 금아의 등껍질 위에 좌정했다.
네 발로 굳건하게 땅을 내디디고 고개를 쭉 빼어 자신의 등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북리준에게 연신 고개짓을 했다.
"알았어. 지금 바로 먹을께."
심호흡을 하고 건곤무극신공의 요결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천년자패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크으윽"
천년자패가 북리준의 입김에 닿자 ’스스스슥‘ 녹아 목구멍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크으으으윽 커허어어어억"
순식간에 북리준의 전신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 하더니 ’쩌저정 쩌적‘ 얼음으로 뒤덮여 가는 몸에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크, 큰일 났다. 진기를 도, 돌릴 수가 없어...'
느려지는 심장 박동과 혼미해지는 와중에 갑자기 가부좌를 튼 하체에서부터 온몸을 엄습하는 냉기를 밀어내는 온기가 뻗어 올랐다.
"후우우우우웅 후우우웅"
금아의 전신이 쇠가 달구어진 듯 붉게 타오르며 극양의 기운을 얼어 붙은 북리준에게 흘려 보냈다.
'도, 돈다,..... 진기가 돌아....'
북리준이 금아의 등껍질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건곤무극신공으로 단전에 쌓인 백년해왕삼의 극양지기를 돌리기 시작 하자 ’푸시시시시시 푸스슷‘ 전신에 둘린 얼음이 수증기와 함께 녹아 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얼어버린 혈도로 백년해왕삼의 극양지기를 돌리자 치도는 극양지기와 수성을 하려는 극음지기가 힘겨루기를 하기 시작했다.
"크흐으으으윽 커허어어억"
회음, 기문, 혈해혈에서 부딪친 극양지기와 극음지기가 금아가 보내주는 황금빛 기운과 어울려한 몸으로 부드럽게 어울리며 휘돌기 시작했다.
고통에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졌던 북리준의 표정이 서서히 펴지며 평온한 얼굴로 극양과 극음이 조화된 진기를 도인하기 시작했다.
"후오오오오오오"
금아가 북리준의 전신에서 유입된 기운을 유형화된 냉기로 입으로 뿜어 내었다.
전신이 불타오르는 듯 달구어진 금아의 등껍질이 원래의 색을 되찾고 그 위에서 건곤무극신공으로 진기를 도인하는 북리준의 전신에서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 액체가 땀구멍을 통해 배출 되었다.
기존에 자리 잡은 백령해왕삼의 극양지기와 새로이 유입된 천년자패의 극음지기가 조화된 황금빛 진기가 건곤무극신공의 길을 따라 삼주천을 마치고는 북리준이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또 한번 신세를 졌구나....."
자신의 단전을 꽉 채운 조화로운 기운을 느끼며 북리준이 금아의 등에서 일어섰다.
"오랜만에 우리 같이 수영이나 하자."
북리준이 금아와 어울려 자신의 몸에서 흘러낸 악취 나는 액체를 뒤집어쓴 등껍질을 깊은 바닷물 속에서 정성스럽게 닦아 내주었다.
****
"”내공의 양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내공의 질이 정순해 졌구나."
일갑자로 가늠되는 정순한 진기를 전신에 돌려 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양 팔목에 찬 일월수갑을 내려다 보고는 천천히 진기를 주입해 보았다.
"지이이이잉 지이잉"
일월혈륜이 우는 소리를 느끼며 힘껏 팔을 떨치자 오른팔의 일륜은 뜨거운 양강지기를, 왼팔의 월륜은 차디찬 음한지기를 머금은 채 비행을시작했다.
두 개의 혈륜과 함께 한바탕 춤사위를 흐드러지게 춘 북리준이 전신의 진기를 두 팔목에 밀어 넣자 허공을 유영하던 일륜에서 희디흰 백염이 피어올랐고 붉은 월륜의 지나는 궤적에 공기 순식간에 ’쩌저정‘ 얼어붙었다.
'후우우우욱' 순간 탈진의 기운을 느낀 북리준이 두 팔을 떨치자 두 개의 륜이 수갑으로 수납 되었다.
"후욱, 두 번 정도가 한계구나."
일월혈륜이 알아서 자신의 상성에 맞는 기운을 끌어당기는 것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검이란 무엇인가? 검은 만병지왕이요 무공의 극의를 볼 수 있는 병기요...... 한 마디로 개소리다. 검은 남을 죽이고 나를 지키기 위한 병기의 한 종류일 따름이다.
검이 최고니 도가 최고니 창이니 극이니 다 개소리고 어떤 병기든 그 극의를 보는 자를 이길 병기는 없다.
그럼 검이 없는 검사는 죽은 목숨이냐? 검이 없다고 자신의 무공을 발휘 못하는 놈은 하수 중의 하수다.
검이니 도니 창이니 다 손발의 연장이 되는 신외지물일 뿐이다.
이 세상에 절대검공이니 하는 무공은 없다. 스스로 광오한 미친놈들이 그렇게 자기 위안을 삼는 거지.
나의 내자와 오십년 이상을 참오하여 만든 남해무극칠절은 어디에 내 놔도 꿇리지 않을 검공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너무 과신하지 말고 항상 서푼의 힘을 감추어라.
혹시 네 놈이 세상에 나가 어느 정도 이름을 떨치게 된다면 우리 쌍괴의 전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도 된다. 그 전에 뒤지면 할 수 없고.'
"좌우지간 꼭 한번 뵈었으면 좋겠네. 참 재미있는 분이야."
북리준이 천괴의 개발새발 글에 연신 웃음을 지었다.
천괴의 남해무극칠절과 지괴의 일월천뢰륜법을 익히는 와중에 틈틈이 진법서를 보는 중 툭툭 튀어 나오는 천괴의 낙서 같은 충고에 꼭 웃음을 짓게 되었다.
'네 놈이 이 곳에 오는 때가 언제 인지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 천산파가 숨 쉬고 있다면 남해무극칠절을 전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 쌍괴를 모른다고 하면 현판을 부수어 버려라. 배은망덕한 후손들에게 왜 자신들의 현판이 부숴졌는지 이유를 절대 알려 주지 말고.'
'난 두주불사의 주당이다. 혹시 네 놈이 술을 못 한다면 절대 내 무공을 익히지 말아라.
술도 못 먹는 고자 같은 놈에게 내 무공이 이어 지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까....
술이란 것은 말이다. 아주 유용한 물건이다. 즐거울때나 슬플 때 기댈 수 있고 술을 통해 사람을 구분 할 수도 있고.....
술이 사람을 못된 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래 못된 놈이라는 것을 밝혀준다. 혹시 그 놈이 어떤 놈인지 알고 싶으면 같이 술잔을 기울여 봐라.
단, 술 먹고 내공으로 취기를 날려 버리는 개자식과는 절대 상종을 하지 말아라.'
'여기서 나갈 때 선배들의 물건에 손을 안 대고 감사한 마음으로 무공만 배우고 가겠다는 개수작은 집어치워라. 내 후인이 무림에 나가 개방놈들하고 같이 어울리는 꼴을 못 본다. 저 벽에 박아 놓은 야명주 몇 알 가지고 나가면 어디 가서 꿇리지는 않을거다.
혹시 천산파가 거지꼴을 하고 있다면 몇 알 던져 주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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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마사히로의 왜도를 피해 광룡소로 떨어져 내려 쌍괴동에서 지낸 지 만 오년이 다 되었구나."
머리는 산발에 자랄 때 마다 단도롤 끊어내고 옷은 다 해져 수어피로 만든 하의만 입고 전신에 물결치는 근육과 양 팔목의 수갑이 인상적인 북리준이 쌍괴동의 중앙에 섰다.
"남해무극칠절은 사성, 일월천뢰륜법은 오성 정도 깨우쳤구나."
찬찬히 오년을 지낸 쌍괴동을 둘러 본 북리준이 자신의 앞에 고개를 들고 서 있는 금아를 바라 보았다.
"여기서 무공을 대성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고 천괴 선배의 말대로 혼자 하는 무공 수련은 한계에 온 것 같다. 이제 세상에 나가 실전을 쌓고 내 가슴속 한 켠에 미뤄 두었던 원한의 불씨를 살려야겠다."
금아가 북리준의 말에 슬픈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나가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마치면 꼭 이 곳 남해로 돌아와 너와 함께 지낼 꺼야. 약속할께!"
"꾸오오"
이별을 이야기 하는 북리준의 다리에 자신의 머리를 비볐다.
"약속할게. 꼭 돌아 올 거야."
북리준이 천지쌍괴의 무덤에 절을 하고 무릎을 꿇었다.
"천지쌍괴 선배님! 두 분의 유진을 고이 받아 무림에 출도 합니다. 제 개인의 원한을 해결하는 중에 절대 두 분의 위명에 누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천산파를 찾아 두 분의 무공과 유진을 전하겠습니다. 나가서 제가 해야할 일을 마치고 다시 인사 드리러 오겠습니다."
북리준이 자신이 무극검이라 이름 붙인 검과 일월수갑, 동굴 곳곳에 박힌 야명주 중 열알을 수어피로 만든 주머니에 넣고는 동굴을 바라 보았다.
"배웅해 주려고?"
금아가 앞장을 서며 고개를 끄덕이자 북리준이 다시 뒤를 돌아 보고는 진법으로 발을 들이 밀었다.
< 14. 천년자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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