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22화 (22/167)

< 22. 팔조삼재검진 >

“삼재검이 무엇인지는 다 알 것이지만 검진의 요체를 주지 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알려 주겠다.

삼재검은 천, 지, 인을 뜻하고 이 천지인을 검으로 풀면 어떻게 되지? 부조장?”

느닷없이 북리준의 지적을 받은 곡굉이 더듬 거리며 대답을 했다.

“하도 배운 지 오래 되어놔서... 천은 가로베기, 지는 세로베기, 인이 찌르기 아닌가?”

“부조장 답네!”

북리준의 칭찬에 주위를 쓱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부조장이 이야기 했듯이 검은 베고 찌르고 막기가 다 인 것이다. 상승의 검술은 이 세 가지 검로를 저 마다의 심법과 검술에 녹여 여러 가지 형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보면 된다.”

북리준이 자신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스물하나의 낭인들에게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무림인과 군영의 병사들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무림인들의 싸움은 주로 일대일로 겨루기에 여러 가지 기교와 상황이 변수로 작용한다.

하지만 군영의 병사는 잡다한 기술 보다 뛰어난 살상력을 지닌 절기 하나가 더 필요하다.”

조장의 말에 낭인들이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집중해서 듣고 있었더.

“전장에서 수천 수만명의 적을 상대 하는데 이것 저것 잡다하게 익힌 무공은 별무소용 이라는 말이다. 무공이 뛰어난 무림인도 전장에서 적들에게 휩싸이면 끝장이라는 것이다.”

“그럼 우리한테 그 뭐냐 뛰어난 살상력을 가르쳐 주겠다는 거요?”

한 낭인이 손을 든 채 북리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검진은 뛰어난 살상력을 줄 수는 없지만 저 전장에서 살아 돌아올 정도의 기술은 될 것이다.”

“살아 남는 게 최고지, 아무리 적을 많이 죽이면 뭐해?”

“암, 적을 안 죽여도 내 몸 하나 성히 돌아오면 성공이지.”

웅성 웅성 낭인들이 서로를 쳐다 보며 떠들기 시작했다.

“조용! 검진의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막고 베고 찌르는 것을 일초에 다 담는 것이다. 즉, 내 앞에 있는 적을 나 혼자 상대 하는 것이 아니라 세 명이 상대 하는 것이다.”

“적이 세 명 앞에 한명씩 딱딱 들어오나? 전장에서?”

누군가 불쑥 의문을 표하자 다른 낭인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삼재검진에 따른 보법을 가르치려 한다. 세 명이 일정한 보법 안에서 연합하여 움직인다면 적이 하나건 둘이건 합심하여 적을 주살할 수 있다.”

말을 마친 북리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의 한 켠에 내공을 이용하여 땅에 세 가지 다른 모양의 보법을 널찍하게 띄워 찍어 내었다.

“부조장과 같은 조, 이리 나오라.”

북리준의 말에 곡굉과 젊은 낭인 둘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모든 조에 중앙은 경험이 많은 낭인이 선다. 중앙의 낭인이 익혀야 할 보법은 이것이다.”

북리준의 가리키는 보법 앞에 곡굉이 섰다. 나머지 두 낭인도 다른 모양의 두 보법 앞에 서자 북리준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전장에서 돌아오면 큰 부상을 당하지 않는 한 이 곳에서 보법을 수련한다. 각자 따로 수련한 보법은 두 번째 날 저녁에 조별로 같이 수련한다.”

북리준이 천천히 가운데 위치한 스무개 정도의 보법을 밟아 보이고는 곡굉을 불렀다. 북리준이 보여준 보법에 따라 휘적 휘적 쓰러질 듯 발자국을 밟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쉽지 않은데....?”

곡굉이 잊을새라 막대기 하나를 들어 북리준이 밟은 순서대로 번호를 매겼다.

두 낭인에게도 양 옆에 난 보법을 가리키고 나머지 낭인들도 숫자를 써내려 갔다.

이어 북리준이 세 개의 보법 뒤로 똑같이 발자국을 새겨 일곱 개 씩 총 스물 한 개의 보법을 완성했다.

“단언컨대 이 보법에 맞추어 세 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면 저 전장에서 허망하게 죽어 못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북리준의 단호한 어조에 스물한명의 낭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보자구. 언제 조장 말 들어서 손해 본 적 없잖아.”

“손해 뿐이야, 여지껏 이렇게 살아 숨쉬는 게 다 누구 덕인데....”

스물 한명의 낭인이 각자 위치대로의 보법을 열심히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저게 뭔 지랄들인지....”

“냅둬! 힘이 남아 도는 놈들이니까.”

혹시 뭔 특별한 것이 있나 구경 온 팔조의 다른 낭인들이 휘적 휘적 움직이다 제 풀에 넘어지는 놈들을 보고는 비웃음을 지었다.

“부조장!”

곡굉이 몇 번 넘어졌다 일어난 후 북리준에게 다가갔다.

“여기 있는 낭인들은 전장에서 내 양 옆에 포진 시켜 줘. 검진을 다 익힐 때 까지 내가 보호해 줄테니....

****

어느 날 전장에서 돌아온 팔조 낭인들중에 베이고 찔린 상처를 입어 군에서 지급해 준 금창약을 꺼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 바를 수도 없고 바를 수도 없고....”

재수 좋은 낭인은 어쩌다 제대로 된 금창약을 받아 희희낙락하며 자기만 몰래 발랐지만 대부분의 낭인들은 상할 대로 상한 약을 받고는 쌍욕을 내뱉었다.

“우리가 어디 제대로 된 목숨이냐? 저 새끼들 눈에는 적 하나만 죽이고 가도 남는 장사라 생각하니까 절대 죽지 말자구.”

그 때 곡굉이 부상자들이 모여 있던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 주목 해봐! 군에서 지급해준 금창약은 여기다 모아. 그리고, 이 거 하나씩 받아가서 바르고.”

엉거주춤 일어나 얼떨결에 자루에서 꺼내 주는 무언가를 받아든 낭인이 곡굉을 쳐다 보았다.

“이게 뭐요?”

“우리 조장이 사비 들여 구입한 사제 금창약이다. 군에서 주는 쓰레기 약은 여기다 버려.”

건네준 약을 뜯어본 낭인 중 하나가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이거 진짜 금창약이다. 내가 예전에 구입해서 쓴 적이 있어.”

낭인의 말에 다른 낭인들이 우루루 곡굉의 앞에 몰려 들었다.

“충분하니까 줄을 서. 소란 피우는 놈은 안 줄꺼다.”

곡굉의 말에 일렬로 일사분란하게 줄을 선 낭인들이 건네주는 약을 들고 한껏 웃음을 지었다.

“팔조에 들어온 것이 행운이네 그려.”

“맞아, 누가 자기 사비를 들여 이런 걸 나눠 주겠어? 돈은 빼앗았으면 빼앗았지....”

팔조 전체에 금창약을 하나씩 나누어 준 곡굉이 천막 한켠에 흐느적 거리며 누워 있는 낭인들에게 다가갔다.

“이거 하나씩 먹고 이따 저녁 자기 전에 하나 더 먹어. 지사제야, 그리고, 이거는 금창약!”

음식과 물이 맞지 않아 설사와 복통에 시달리던 낭인들이 곡굉이 건네주는 약을 받아 들었다.

“나중에 조장 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해라. 조장이 자신이 번 돈으로 산 거니까...”

“하이고, 이렇게 고마울 때가....”

곡굉이 금창약과 지사제등 응급 처치약을 필요한 낭인들에게 다 나눠 준 후 기분 좋은 얼굴로 북리준이 걸터 앉아 있는 바위로 다가갔다.

“다 나눠 줬네.”

“수고 했고 이제 보법 수련해야지요?”

“휴우, 알았네.”

곡굉이 바위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보법 수련을 하는 낭인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다시 전장에 열 번 정도 투입 되고 돌아온 어느 날!

낭인들이 피칠갑을 한 채 더러는 누워서 더러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네 봤어?”

“뭘?”

“그 검진 인가 뭔가 연습하던 놈들 말이야....”

“남 볼 새가 어디 있냐?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전장판에서 나도 볼 새가 어디 있다고.... 돌아 오는 길에 검진을 연습하던 놈들끼리 뭉쳐 오던데 아주 멀쩡 하더라구. 부상 당한 놈이 안 보이던데?”

“설마.... 뒤진 놈도 있겠지.”

“한번 알아 봐야 겠어. 그 검진이란 것이 효과가 있는지 말이야.”

“그러시든지... 난 잠이나 잘란다.”

곡굉이 전장에서 돌아오자 마자 북리준의 호출에 검진을 수련하던 낭인들과 같이 연무장 바위가로 모였다.

“사상자는?”

“없어. 아주 깨끗해.”

“오늘이 처음 검진을 운용한 날이지? 다 조별로 모여봐.”

북리준이 전장에서 틈틈이 검진을 구성해서 적들을 주살하는 낭인들을 도우며 본 보안점을 각 조별로 지적하기 시작했다.

“아까 적이 두 명 들이 닥쳤을 때 중앙에서 움직임은 아주 좋았어. 문제는 좌익의 네가 적극적으로 움직였어야지. 자칫 중앙에 공격이 집중 될뻔했잖아. 다음 부터는 이렇게 움직여.”

“너희들은 합격이야. 단 일합에 적병이 하나씩 쓰러지는 것에 너희들도 느꼈을거야. 이 검진의 효용을 말이야.”

북리준이 각 조의 앞을 지나며 계속 보완점을 지적했다.

“너희 조는 중앙이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면서 좌우익이 다 위험에 빠질 뻔 했잖아. 물론 뒤늦게 검진을 다시 구성 한 것은 좋았어.”

“적이 좌익을 공격하면 우익이 회전하며 중앙과 보조를 맞추어야지. 우익이 회전이 늦어지면 검진이 깨진단 말이다.”

총 일곱 개 조에 고칠 점을 지적 한 후 다시 바위위에 걸터 앉은 북리준이 흥분한 표정의 낭인들을 바라보았다.

“검진을 처음 운용한 소감을 들어보자!”

“조장이 알려준 보법을 밟으면서 적병과 검을 섞으니까 이 검진을 왜 연습하라고 했는지 알겠더라구요. 이삼합 만에 적이 거꾸러지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어요.”

“여지껏 수십번 전장에 드나들었지만 이번만큼 마음 편하게 싸운 적이 없는 듯 하네. 항상 어디에서 적의 검, 도가 날아 올지 몰라 안절부절 못했었는데 세 명이 뭉쳐 있으니 검진의 운용에 따라 베고 찌르면 끝이더군.”

“여지껏은 조장이 우리의 신변을 지켜주었지만 오늘은 조장 없이 마음껏 싸웠다는게 중요해. 나는 지금 내 조와 함께 검진을 연습해야겠네.”

총 스물한명, 일곱조의 검진을 운용한 낭인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저마다 입을 열었다.

“좋아! 눈을 감아도 몸이 저절로 움직일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해. 이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서로를 볼 수 있도록!”

저 뒤쪽에서 팔조조장과 검진을 연습한 낭인들의 대화를 훔쳐 듣던 낭인들이 서로를 쳐다 보았다.

“저거 진짜 효과가 있나 본데?”

“그러고 보니 저 놈들 검진을 연습한 한달 반 동안 아무도 죽고 다친 놈이 없잖아?”

두 낭인이 부리나케 팔조 조원들이 몸을 뉘이고 있는 천막촌으로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일곱 개의 조가 검진 연습에 빠져 있는 바위 앞 연무장에 팔조에 속한 낭인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조장, 할 말이 있소!”

바위에 걸터 앉아 검진 연습을 하는 낭인들을 내려다 보던 북리준이 시선을 돌렸다.

“뭐지?”

“우리도 가르쳐 주시오, 저 검진!”

낭인들이 몰려온 모습을 보고 검진을 운용하던 곡굉이 북리준에게 다가왔다.

“네 놈들은 하기 싫다매?”

“그, 그게.... 솔직히 적들의 도검이 난무하는 곳에서 어설프게 검진을 펼치다 개죽음 당할 것 같았소.”

“그런데?”

“그런데.... 지금 보니 검진을 연습한 놈들의 생존율이 월등히 높잖소. 그래서....”

“부조장!”

곡굉이 괘씸한 마음에 한 소리 할려는 찰나 북리준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인상을 팍 썼다.

“왜?”

“팔조에 한해서 다 가르쳐 줘요. 어차피 이름도 팔조삼재검진 이잖아.”

< 22. 팔조삼재검진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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