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23화 (23/167)

< 23. 저 놈들은 뭐야? >

“오랜만에 전장을 노닐어 봐야 겠다.”

“미친놈! 그러시든지....”

사파와의 전쟁에서 복귀한 하후세가의 하후승의 말에 팽무강이 코웃음을 쳤다.

자신의 애창을 정성스럽게 닦아내던 하후승에게 팽무강이 툭 하니 말을 던졌다.

“소문 들었냐?”

“무슨 소문?”

“네 놈이 그리 개무시하는 낭인들 중에 인물이 하나 난 모양이던데?”

“인물? 그렇게 지칭 할 놈이 있을 리가.....”

항시 낭인을 사람 이하로 취급 하던 하후승이 비웃음을 날렸다.

“나도 소문의 진위를 알고 싶어 그 쪽으로 이동할 테니까 따라오던지.”

자신의 창을 다 닦은 후 ‘후우우웅’ 공중에 한번 떨어내며 하후승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무슨 소문인데?”

“낭인들 중에 검진을 만들어 싸운다고 하더라.”

“검진? 낭인들이.... 누가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는거야?”

“직접 보면 알겠지.”

팔기의 장수들이 바삐 돌아 다니며 매번 벌이는 전투를 위해 대군이 이동을 시작했다.

“후으으읍, 좋군!”

하후승이 양쪽에 대치한 군세에서 뿜어져 나오는 군기를 흡입하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좌우지간 넌 제대로 미친 놈이다.”

“뿌우우우우우웅”

진군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자 대치한 몇만의 군세가 일제히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슈우우우우우, 퍼버버버버벅”

양 군세 뒤쪽 궁수들이 쏘아 올린 화살비가 서너차례 지나간 후 본격적인 충돌이 시작 되었다.

“크아아아아악 와아아아아악”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함인지 저 아랫배에서 끌어올린 고함소리와 함께 병사와 낭인들이 뛰쳐 나갔다.

“퍼억, 콰직”

하후승의 창이 휘둘러 질 때 마다 적병 하나가 스러져 가고 팽무강의 거도에 휩쓸린 적병이 부서져 나갔다.

“어디인데?”

“따라 오라구.”

하후세가의 고절하며 막강한 창법이 터져 나가며 팽가의 무지막지한 도세에 길이 열리고 그 길을 따라 두 무인이 앞으로 나아갔다.

“저긴가 보다!”

약 백여명의 낭인이 등을 돌린 채 적병을 도륙하는 모습을 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삼재검진?”

“아니, 조금 다른데...?”

하후승이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다가 오는 적들을 도륙하는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후승과 팽무강이 장난스럽게 휘두르는 창과 도에 접근 하던 적병들이 부서지고 터져 나가자 주위로 다가 오는 적병이 없어졌다.

팔짱을 낀 채 백 여명의 낭인들이 삼재진을 펼치는 모습을 유심히 보던 팽무강이 혀를 찼다.

“허, 저거 단순한 삼재진이 아닌데? 저 보법을 보라구.”

오삼계 군이 정신없이 뛰어와 덮치는 가운데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중앙과 좌익, 우익이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이듯 적을 도륙 하고 있었다.

“아주 효율적이네....”

최대한 적은 움직임으로 다가 오는 적들을 차분하게 베어내며 갈라내는 모습을 보며 하후승이 침음성을 흘렸다.

“저 쪽을 봐라.”

자신들이 지켜 보는 오른편 앞에 자신들과 같이 팔짱을 낀 채 진법을 펼치는 낭인을 바라 보는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저 놈이 대장놀이 하는 골목대장인가?”

순간 적병 둘이 창과 검을 휘두르며 달려 들자 사내의 검이 기이한 호선을 그리며 두 병사의 목을 공중에 띄워 올렸다.

“호오? 저거 물건인데....”

팽무강의 말에 하후승 또한 깔끔한 검의 궤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하나의 검진이 다섯 명의 적병을 맞아 무너지려는 찰나 땅을 박찬 사내의 일검에 적병 셋의 등이 갈라졌다.

“고마우이!”

남은 두명의 적을 베어 넘긴 곡굉이 북리준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종횡무진 백여명의 낭인들 뒤에서 위태로워 보이는 낭인들을 때로는 일검, 일권, 일각을 써서 효율적으로 보호하는 모습을 보고 하후승과 팽무강이 서로를 바라 보았다.

“인물 맞네, 인정!”

하후승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자 팽무강 또한 뜨거운 눈길로 사내를 바라 보았다.

“꽤나 흥미롭네. 재미있는 놈을 발견 했어.”

하후승과 팽무강이 보는 동안 사내가 동분서주 뛰어 다닌 낭인들의 앞에 적병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어갔다.

“퇴각하라!”

오삼계 군영 측에서 먼저 퇴각의 명이 떨어지자 적병들이 우후죽순 무질서 하게 후퇴를 하는 동안 삼재진을 운용하는 낭인들의 검에 수 많은 적병의 목이 떨어졌다.

“퇴각!”

산 같이 서 있던 사내의 짤막한 말에 백 여명의 낭인들이 일사분란하게 후방을 경계 하며 뒷걸음으로 빠르게 후퇴를 했다.

“웬만한 정병들 보다 낫네.”

“누가 보면 황실 직속의 정황, 양황, 정백기 정병인 줄 알겠다.”

맨 마지막 까지 낭인들의 안전한 후퇴를 지켜본 사내가 신형을 돌리다 자신을 주시하는 하후승과 팽무강을 쳐다 보았다.

‘고수군!’

짧은 생각과 함께 팔조의 인원들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연구 대상이 생겼어. 좋아!”

팽무강의 말에 하후승도 고개를 끄덕였다.

****

“팔조 개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아주 곤란해 졌다고.”

호북 전장에 투입된 총 열 개 조의 낭인 부대에 근 이년 동안 고군분투하여 각 조의 조장의 위를 점한 낭인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청의 팔기에서도 은근히 경쟁을 시키고 있어. 각 조의 사상자 수가 많아지는 곳은 보급을 줄이고 있다고....”

총 열 개의 낭인부대 중 팔조를 제외한 아홉 조 중 마음이 맞는 다섯 개 조의 조장이 부륵 부륵 화를 내고 있었다.

“낭인 새끼들 뒤지는 것이 하루 이틀이냐고? 그리고 그 새끼들 뒤지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막아?”

덩치가 산만하고 얼굴빛이 검은 낭인이 벌컥 거리며 술병을 입에 물었다.

“흑웅 말이 맞아.”

오른눈에 검은 안대를 댄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맞장구를 쳐 줬다.

“독안검, 문제는 팔조는 낭인새끼들이 웬만하면 안 뒤진다는 거네.”

“거기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팔조 새끼들은 조장이라는 놈의 말에 절대 복종 한다는 거야. 우리들을 봐! 힘으로 찍어 눌러서 조장을 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반 정도는 우리 뒤통수를 후리기 위해 칼을 갈고 있잖아?”

흑수검이 뭔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새끼, 멱을 따 버리자. 그 새끼만 없으면 우리가 이렇게 골머리 앓을 필요 없잖아?”

으르렁 거리는 광랑도의 말에 다른 네 명의 조장이 서로를 쳐다 보았다.

“일이 커져. 팔조는 지금 팔기 측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그럼 우리가 잘 하는 방식으로 하자구.”

“땅 따먹기?”

낭인들 사이에 서로의 우열을 가려 진 자가 이긴 자의 밑으로 들어가며 그 세력도 같이 귀속된다는 뜻이었다.

“그 새끼, 무공은 어떻대?”

“세다고 소문은 있는데 본 놈 있냐?”

흑웅, 흑수검, 광랑도, 환영창, 독안검 다섯이 서로를 쳐다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없네. 우리 다섯이 다 가서 다구리를 놓을 수도 없고....”

“일단 우리 중에 무공이 가장 센 독안검이 나서서 놈을 꺾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차륜전으로 놈을 이길 때 까지 한 명씩 도전 하자구.”

“술이나 먹자. 내일 조지구.”

의견을 정한 다섯명의 낭인 조장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음담패설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

“땅따먹기?”

“낭인들 단체 사이에서 우열을 정할 때 대장이 도전을 받아 들여 비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세력을 자기 밑으로 두는 거야. 아주 단순 무식한 방법이지.”

곡굉이 북리준과 술병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누가 도전하는데?”

“다섯개 조 조장이 다 온다네.”

“후후, 우리가 눈에 많이 거슬렸나 보군.”

북리준이 술병을 입에 물자 곡굉이 당연하다는 눈으로 자신의 조장을 바라 보았다.

“당연하지. 우리 팔조에 사상자가 거의 전무 한 지 몇 개월 되었잖아. 우리 조가 지나간 곳에 적병들의 시체가 쌓여 있으니 팔기 측에서 우리가 이뻐 보일 수 밖에.

더군다나 낭인들의 추가 보충이 없으니 돈도 신경도 더 안 써도 되고 말이지. 그래서인지 우리 쪽에 양질의 보급품이 더 많이 들어오고 있어.”

곡굉이 신이 나서 현 상황을 설명 하자 북리준이 무심한 눈을 들었다.

“받아 들여? 그 땅 따먹기인가 뭔가....”

“당연히 받아 들여야지. 그 다섯 놈들이 우리 조장의 무위를 모르니까 저리 겁도 없이 덤비는 거지. 이 기회에 이 곳의 낭인부대를 다 집어 삼키자구, 크크크!”

“별로 생각 없는데.....”

북리준이 자신이 속한 조의 낭인들에 한정 해서 신경을 쓴 것 뿐인데 판이 커져 가는 느낌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는데 바람이 자꾸 흔들잖아. 조장이 가만히 있으려 해도 저 돌머리 새끼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덤빌 때 확실하게 밟아 두지 않으면 여기 있는 내내 귀찮아진다고.”

자신들이 앉아 있는 바위 위에서 열심히 검진 연습을 하는 팔조 낭인들을 내려다 보았다.

“언제 온대요?”

“내일, 저녁 먹고 보자던데?”

“알겠어요. 형님이 알아서 해요. 그냥 오면 눌러 버리면 되는 거죠?”

“아주 자근 자근 밟아 줘, 크크!”

“땅따먹기가 뭐야?”

하후승이 자신이 심어둔 낭인 첩자가 물고 온 정보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낭인들 사이에 힘겨루기야. 대장들이 싸워서 이긴 놈이 진 놈 거를 다 가지는 거야. 낭인 놈들에게 맞는 단순 무식한 방식이지.”

팽무강의 설명에 하후승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그 도천학 인가 팔조 조장 놈이 수락 한 거네.”

“그런 가 보네. 구경이나 가야 겠다.”

“우리가 가면 이 새끼들 판 깨는 거 아냐?”

“미친놈아! 대 놓고 참관 하려고? 몰래 숨어 봐야지.”

어이없는 하후승의 말에 팽무강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 내일 저녁 이라.... 재미 있겠네.”

“그나 저나 너 그 때 그 놈 검 봤지?”

“봤지. 워낙 짧아서 뭐라 말하기 뭐해....”

일 검에 두 적병의 목을 날린 검로를 떠올리며 하후승이 중얼 거렸다.

“이길 수 있어?”

“설마 내가 낭인 나부랭이한테 지겠냐? 그리고, 너나 나나 일반 병사 두 명 목 따는 거야 쉬운 일이잖아? 거기다가 내공이 그다지 깊은 것 같지도 않았고....”

중얼거리는 하후승을 보며 팽무강이 빙글 거리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만약 자신의 내공을 다 쓸 정도의 상대가 아니어서 대강 상대한 거라면? 네 놈 말대로 일반 병을 상대로 우리도 내공을 쓰지 않잖아?”

“설마 그런 놈이 이런 전장에서 낭인 노릇 하겠냐? 그 정도 실력을 가졌으면 천무맹이나 사황련에 가지.”

“웬일로 네 놈이 맞는 말도 다 하는구나.”

팽무강이 하후승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건 재미있는 구경꺼리가 생겼네. 낙성이 하고 무영이도 부를까?”

낙성추혼권 언철진과 무영쾌검 모용민을 떠올리며 하후승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내일 출전도 없고 따로 일도 없다면 다 같이 불러 보자구. 낭인들 대장 실력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

“재미있겠다. 당장 두 새끼들 한테 이야기 하고 오자.”

희희낙락 하며 방을 나서는 하후승을 보며 팽무강이 혀를 찼다.

“참 단순한 놈이다. 어떻게 저런 놈이 신창이란 별호를 얻었는지 불가사의 하구나....”

****

다음 날 저녁을 파한 후 다섯 개 조의 조장인 흑웅, 흑수검, 광랑도, 환영창, 독안검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팔조가 있는 천막촌 앞에 섰다.

“그 쪽 조장 좀 보자고 전해!”

“기다리고 있었소.”

곡굉이 앞으로 나서자 환영창이 아는 체를 했다.

“허풍도께서 이 곳에 있었구려. 몰랐네.”

“에헴, 이 몸이 팔조의 부조장이네. 따라들 오시게.”

< 23. 저 놈들은 뭐야?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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