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한꺼번에 오지! >
곡굉의 안내로 팔조 조원들이 검진을 연습하는 공터에 다다랐다.
팔조 낭인들이 한켠에 질서 정연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다가오는 조장들을 바라 보고 있었고 공터 정면 거대한 바위 위에 한 젊은 낭인이 술병을 입에 물고 있었다.
“데려왔수!”
곡굉이 바위 앞까지 다가가 북리준을 쳐다 보았다.
“어쩐 일들이오? 굳이 서로 볼일이 없을 듯 한데....”
“부조장에게 이야기 못 들었나?”
거대한 덩치에 피부가 검은 거한이 앞으로 나섰다.
“난 이조 조장 흑웅이라 한다. 우리는 네 놈의 팔조를 인수 하러 왔다. 물론 너 까지 말이다.”
으르렁 거리는 어조로 말하는 흑웅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 보던 북리준이 곡굉에게 눈을 돌렸다.
“부조장, 규칙이 어떻다고?”
“크흠, 낭인들의 우두머리들이 서로의 권한을 이양받기 위해 비무를 해서 진 사람의 모든 것을 승자가 독식하는 것이오.”
“저 쪽들이 나한테 도전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이기면 저 쪽 조를 내가 받아 온다는 거네.”
“물론 자네가 이긴다면 진 사람의 모든 것이 자네 밑으로 들어갈 것이네. 마찬가지로 자네가 진다면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지.”
통짜 쇠로 만든 창을 든 꺽다리 낭인이 입을 열었다.
“오조 조장인 환영창이라 하네.”
“삼조 조장인 흑수검!”
“육조 조장 광랑도요.”
“칠조 조장 독안검이라 하오.”
다섯낭인들이 앞으로 나서며 자신을 소개했다.
“뭐 난 별호는 없고 팔조 조장을 맡고 있소. 그런데, 왜 갑자기 땅따먹기 인지 뭔지를 나한테 요청한 것인지 알고 싶소.”
북리준이 술병을 말을 마치고 다시 술병을 입에 가져갔다.
“그걸 몰라서 묻나? 너희 팔조가 너무 튀잖아. 뒤지는 놈도 적고 적들도 타 조에 비해 월등이 많이 도륙하고.... 네 놈들이 너무 잘난 체 하니까 동등하게 배분되어야 할 보급품도 너희 놈들한테 더 가고. 한 마디로 너와 너희 조가 재수 없어.”
이조 조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흑웅이 씩씩 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긴말이 필요 없겠군.”
팔조 조장이라 불리운 젊은 낭인이 바위 위에서 느릿하게 신형을 일으켰다.
“어떻게 해 줄까?”
북리준이 자신의 검을 검집 채 손에 들고 다섯 조장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제일 먼저 내가 나서겠네.”
검은 색 안대로 왼눈을 가린 날카로운 기도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제일 먼저? 그럼 독안검이 지면 너희들이 순서대로 나서겠다? 차륜전이야 뭐야?”
곡굉이 벌컥 화를 내며 다섯 낭인들에게 눈을 부라렸다.
“부조장, 놔 둬봐!”
북리준이 검집을 든 손으로 뒷짐을 진 채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당신들 다섯이서 나름 모여 짱구를 굴린 모양인데 이렇게 하자구.”
“말해 보게!”
“한꺼번에 덤벼서 나 한테 깨지면 다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하지.”
“뭐, 뭐? 저 미친 놈이.....”
흑웅이 코에서 김을 뿜어 내며 광분하고 나머지 네 명의 조장들이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봐, 비무라고 해도 진검으로 하는 거라고. 괜한 객기로 여기서 생을 마감하지 말라고.”
환영창이 혀를 차며 앞에서 건들거리는 젊은 낭인을 쳐다 보았다.
“귀찮게 뭐하러 다섯 번이나 싸워? 단번에 끝낼 수 있는데....”
“광오하구나. 좋다! 네 놈이 우리 다섯의 합격에서 살아 남는 다면 네 놈 밑으로 들어가마. 단, 여기서 목숨을 잃어도 우리를 원망하지 말거라.”
호리 호리한 체격에 검은색 무복이 잘 어울리는 흑수검이 냉막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패기 있네.”
공터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거대한 나무 위에 술병 하나씩을 들고 있던 네 명의 무인 중 하후승이 친우들을 돌아 보았다.
“네 놈 보다 백배는 낫다.”
무영쾌검 모용민이 걸터 앉은 채 발을 건들 거렸다.
“미친놈! 저러다 비명횡사 하는 거야.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지.”
“하긴 네 놈은 네 주제를 너무 잘 아니 장수는 하겠다.”
“여기서 한바탕 할 거 아니면 그 입 닥쳐라.”
모용민과 하후승이 투닥 거리는 모습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언철진이 옆에 앉아 있는 팽무강에게 시선을 옮겼다.
“비슷한 놈들 끼리 모인 거 같은데 저 놈 객기가 지나치네.”
“내가 들은 이야기가 맞다면 볼만한 광경이 벌어 질 거야. 기대해도 좋다고.”
팽무강이 자신이 심어 놓은 밀정의 보고가 떠올랐다.
‘팔조삼재검진이라는 것을 저 조장이라는 놈이 가르쳐 줬다고 했지.... 전장에서 저 놈이 종횡무진 누비며 자신의 조에 속한 낭인들을 보호 한다고 소문이 났고....’
그 때 팔조 조장이라는 젊은 낭인이 자신들이 숨어 있는 나무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 보는 듯 했다.
“저 새끼 설마 우리를 보는 거 아니겠지?”
“병신아, 거리가 얼만데? 우리도 내공을 운용해야 겨우 보이는데 내공도 없는 낭인이 어떻게 알아채?”
모용민이 하후승의 말에 잔뜩 핀잔을 주었다.
“시작한다. 재미있겠다!”
팽무강의 말에 네 명의 친우가 공터를 향해 안력을 돋우었다.
“분명히 네 놈이 먼저 우리에게 합격을 하라 이야기 했다. 허풍도, 네 놈이 공증인이다.”
“조장, 무리 하는 거 아냐?”
곡굉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뒤로 물러나 있으슈.”
북리준의 말에 곡굉이 불안한 눈으로 팔조 조원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물러섰다.
“한꺼번에 오라구!”
북리준이 자신의 검집을 든 채 앞에 서 있는 조장들 앞에 섰다.
“크흥, 저리 죽기를 원하니 묻어 주자구.”
흑웅이 자신의 양쪽 허리에 달린 철곤 두 자루를 꺼내 들자 환영창이 두 손으로 창대를 잡아 가고 독안검과 흑수검, 광랑도도 자신의 검과 도를 뽑아 들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공터 중앙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북리준을 포위 하듯 다섯 낭인이 에워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냥 무릎을 꿇어라.”
독안검이 냉랭한 어조로 말하자 북리준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야기 할까? 그냥 꿇어 하면 너희들은 꿇을거냐구. 잔말 말고 다 덤벼.”
“어흐흐흥”
흑웅이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기쾌하게 양 손의 철곤으로 얄미운 새끼를 짓이기기 위해 날렸다.
“후우우웅”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창이 열 자루 정도로 갈라지는 듯 환영을 일으키며 북리준의 전신을 꿰뚫기 위해 공간을 가르고 광랑도의 거치도가 난폭하게 북리준의 몸을 찢어 발기기 위해 비행을 시작했다.
순간 북리준의 발이 기이한 호선을 그리며 신형을 낮추더니 흑웅의 철곤이 바로 한 치 위 머리위를 스쳐 지나 가고 일직선으로 뻗어 오는 창도 흘려 보내고는 검집으로 창대를 밀어 자신의 몸을 가르기 위해 날아 오는 거치도와 흑수검의 진로에 밀어 넣었다.
“차차창 차창”
세 명의 무기가 부딪는 순간 북리준의 신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흑웅에게 쏘아져 갔다.
“이런 개새끼가....”
흑웅의 철곤 두 개가 묵직한 원을 그리며 다가 오는 북리준의 머리를 터뜨리려는 찰나 살짝 고개를 움직여 곤을 흘려 보내고는 검집 채 앞으로 쭉 내밀었다.
“퍼어억, 케엑!”
검집에 목을 직격당한 흑웅이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뒤를 잡은 독안검의 검이 창공을 가르는 독수리 마냥 날카롭게 뻗어 나왔다.
“차아아앙”
어느새 신형을 바로 세운 북리준의 검집이 독안검의 검을 맞서 나가고 공중에서 불쑥 튀어나온 창이 북리준의 목을 노리고 날아 들었다.
“슈우우우욱”
공간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기이한 보법으로 창을 흘려내고는 뻗어진 창대를 따라 북리준의 검집이 물 흐르듯 흘러나갔다.
“퍼버버벅 퍼벅, 커어어억”
창대를 쥔 손을 검집에 두드려 맞아 창을 놓고 급히 뒤로 물러나는 환영창의 턱에 북리준의 묵직한 주먹이 올려 붙여졌다.
환영창이 주먹 한 방에 저 멀리 나동그라지며 미동도 하지 않자 남은 독안검, 광랑도, 흑수검이 서로를 쳐다 보았다.
“셋 남았네. 포기?”
독안검의 검이 영사와 같은 움직임으로 날아들자 북리준의 검이 독안검의 검과 어울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리준의 손목이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자 검집과 검이 딱 붙은 채 같은 방향으로 돌기 시작하고 ‘타악’ 떨치자 독안검의 검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크으으으윽”
검을 놓친 오른손이 찢겨 나가 피를 흘리며 뒤로 물러나는 독안검을 향해 북리준이 쇄도 하자 거치도와 흑수검이 목과 몸통을 노리고 검을 내질렀다.
“저, 저...”
곡굉이 보기에 무리하게 독안검을 잡으려 몸을 날리다 거치도와 흑수검에 걸려 몸이 찢길 것 같은 모습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이이익, 이게....”
두 사람이 내 뻗은 도와 검 사이의 사각에 몸을 집어 넣고 어느새 독안검 앞에 선 북리준의 오른발이 호선을 그리고 그 선의 끝에 독안검의 턱이 걸렸다.
“퍼어어어억”
저만치 나동그라지며 정신을 잃은 독안검을 뒤로 하고 자신의 뒤를 치는 거치도와 검을 땅을 박차 뒤로 물구나무 서 듯 신형을 틀어 앞으로 흘려 보내고는 낮게 깔린 검집이 서 있던 두 사람의 무릎을 연타했다.
“퍼퍼벅 퍼버벅”
무릎을 연신 두드려 맞아 정신 없이 검집을 피해 뒤로 물러 나던 광랑도와 흑수검의 앞에 불쑥 튀어 나온 각이 두 사람의 가슴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쿠당탕탕 쿠당당”
인정 사정 없이 내질러진 각법에 가슴을 내어준 두 낭인도 입에 거품을 물고 땅을 굴렀다.
“와아아아아아”
비무를 지켜 보던 팔조 조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자신들의 조장의 승리를 축하하고 곡굉이 조원 몇을 데리고 널부러진 다섯 낭인을 한 곳에 모았다.
“봤냐?”
낙성추혼권 언철진이 열 호흡 안에 다섯 낭인을 땅에 눕힌 팔조 조장이라는 사내의 모습을 보고 팽무강에게 시선을 던졌다.
네 명의 친우들이 놀라 부릅뜬 눈으로 서로를 바라 보았다.
“내공 없이 저 놈하고 붙으라면 난 사양 할란다.”
하후승이 한숨을 내쉬며 술병을 입에 가져 갔다.
“아주 효율적인 움직임이 인상적이네. 만약 저 움직임에 내공이 실린다면.... 후우, 끔찍하군.”
모용민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술병을 입에 물었다.
“육신을 극한 까지 수련한 놈이네. 거의 동물적인 감각과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적을 제압하네.”
“후후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팽무강이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무심한 눈으로 이 쪽을 바라보는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아주 재미있는 놈을 만났네.”
“우리 넷이 말이야. 내공을 쓰지 않고 저 놈과 붙는 다면 저렇게 맥없이 당하지는 않겠지?”
하후승의 말에 모용민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병신아, 저런 거는 낭인들과 일반 병사들한테나 통하는 거지, 내공을 운용하고 기를 싣는 무림인을 만나면 오초도 못 버텨. 뭐하러 내공을 운용하지 않고 싸우냐?”
“하긴 내공을 실었다면 저 새끼들 머리통이고 가슴이고 다 터져 나갔겠지.”
하후승과 모용민의 대화를 들으며 팽무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그럴까?”
“네 놈들 덕분에 재미난 구경 하다 간다. 저 놈, 꽤나 관심이 가는 놈이네.”
모용민이 나뭇가지에서 신형을 일으켰다.
약 한 식경 정도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다섯 낭인이 자신들이 바위 앞에 널부러져 있었음을 발견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손 속에 사정을 두었군.....”
“그래, 죽어도 할 말 없었는데 말이야.”
먼저 깨어난 독안검과 환영창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끄으으응, 아이고 목이야....”
벌겋게 부은 목을 부여 잡고 흑웅이 깨어 나고 광랑도와 흑수검도 자신들의 가슴을 부여 잡은 채 정신을 차렸다.
“정신들 돌아 왔나?”
바위 위에 앉아 팔조 조장 사내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허풍도가 헤벌죽 웃음을 지었다.
“말 안 해도 알겠네. 규칙은 규칙 이니까!”
< 24. 한꺼번에 오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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