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25화 (25/167)

< 25. 받아주시오. >

“술 한 잔 주겠소?”

독안검이 위를 올려다 보며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올라와! 여기 넓어....”

다섯 낭인이 주섬 주섬 자신들의 무기를 챙겨들고 바위 위에 모여 앉았다.

“한 잔씩 해! 아, 이제 내가 대장이니까 하대 할게.”

“불만 없소. 손 속에 사정을 두어 줘 고맙소.”

독안검이 북리준이 채워준 잔을 들어 예를 취하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조장들의 대결이 끝나자 공터 한 켠에서 비무를 지켜 보던 팔조 조원들이 우수수 일어나 검진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나도 내려 가야겠네. 대가리들끼리 잘 이야기 해 봐.”

곡굉이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고는 바위 밑으로 내려가 자신이 속한 조원들과 함께 보법을 밟아 나가기 시작했다.

“저건 뭐요?”

다섯 명의 낭인들에게 한 잔씩 술을 따라 주는 북리준에게 환영창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검진! 팔조에서 사상자가 그나마 덜 나오게 하는 마법이지.”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생전 본 적 없는 생소한 광경에 다들 술잔을 든 채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저거, 우리도 배울 수 있겠소?”

독안검이 시선은 검진을 펼치는 낭인들에게 둔 채 입을 열었다.

독안검의 말에 네 낭인들의 대장들이 일제히 북리준에게 시선을 모았다.

“왜 배우려는데?”

퉁명스럽게 말을 던진 북리준이 술병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왜라니? 매일 매일 칼 끝에 목숨을 얹어 놓고 사는 우리 같은 낭인들에게 하루 라도 더 살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데 안 잡을 자가 어디 있겠소?”

흑웅이 북리준이 채워준 잔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불퉁거렸다.

“너희들 한테 너희 조에 속한 낭인은 어떤 의미지?”

나른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 북리준의 얼굴을 다섯 낭인들이 바라 보았다.

“솔직히 말하리다. 낭인 용병 생활 십 년 동안 나름 생존기술을 익혀 지금 까지 운 좋게 살아 남아 왔소. 사람이란게 말이오.... 조금 무공이 높아지고 몇몇 낭인들이 떠받들어 주니까 내가 속한 곳에서 대접을 받고 싶더이다.”

광랑도가 빈 잔을 내밀자 북리준이 잔을 채워 주었다.

“조장이건 대장이건 되고 난 사람들을 보니까 두 부류로 나뉩디다. 첫째는 나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나머지 낭인들을 등쳐 먹는 개 같은 새끼들... 둘째는 같은 낭인의 처지에서 최소한 등골을 빼 먹지 않고 할 수 있다면 도움을 주려는 자들.....

우리 다섯은 후자에 속한 낭인이라 자부하오. 우리가 당신한테 도전한 가장 큰 이유는 보급이 팔 조에 쏠리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 제일 컸소. 팔조에 보급품이 쏠리면 나머지 낭인들에게 돌아 가는 양이 줄 것이 뻔하니까.”

광랑도가 잔을 입에 가져 가자 흑수검이 말을 받았다.

“당신도 우리와 같은 부류라는 것은 일찌감치 알았지만 우리는 당신과 같이 할 수가 없었소. 능력도 없고 조원들도 전체가 우리를 따르는 것도 아니고....”

씁쓸한 표정의 다섯 낭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북리준이 말없이 술병을 입에 물고 침묵을 지키자 다섯 낭인 또한 서로 술을 권하고 말없이 들이키기 시작했다.

“만약에 내가 너희들의 계획대로 졌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듣고 싶군.”

북리준의 말에 다들 쭈뼛 거리며 눈치를 보자 독안검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다섯이 팔조에게 더 가는 보급을 다시 나눠 가지기로 하였소.”

북리준이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술병을 입에 가져 가자 독안검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조금 더 나눠 가지려고 했소. 어찌되었건 우리는 승자니까 말이오......”

“승자라..... 그렇지, 원래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것이 맞는 거지.”

북리준의 중얼거림에 다섯 낭인 조장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사정을 조금 봐 주시오. 우리가 생각을 잘 못 해서 이 지경까지 왔지만 더 이상 보급이 줄거나 낭인이 보충 되지 않으면 우리가 맡은 구역을 방어 할 수가 없소. 그냥 개죽음을 당할 밖에.”

환영창이 읍소 하듯 북리준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가 잘못했소. 한번만 기회를 주시오.”

흑수검과 광랑도, 흑웅이 머리를 숙였다.

“부조장!”

북리준이 저 밑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검진을 수련하던 곡굉을 불렀다.

“왜? 이야기 다 끝났나?”

곡굉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팔소매로 닦아 내며 바위 위로 올라왔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난데없이 뭘?”

“얘네들이 승자 독식을 이야기 하는데 말이야....”

곡굉이 술병 하나를 꿰차고 북리준의 옆에 털썩 앉았다.

“개뿔이 승자독식은.... 같은 낭인끼리 그리 야박하게 구는 거 아니지.”

곡굉의 말에 다섯 낭인이 기대에 찬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 보았다.

“우리 쪽에 보급이 많이 늘었나?”

“뭐 한 삼 사할 정도?”

곡굉이 술병을 다시 입에 가져 가자 북리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지. 일단 지금 보급은 그대로 유지해. 모자라는 조는 부조장에게 이야기 해서 받아가.

그리고, 각 조에 이야기 해서 십시일반 돈을 거둬. 물론 조장은 더 많이 내야 겠지.”

돈을 거두라는 북리준의 말에 다섯 낭인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허허, 말은 끝까지 들으라고.”

곡굉의 말에 흑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더 들어? 돈을 내 놓으라는 거잖소.”

“미친놈! 우리 조장이 너희들 같은 종자 인 줄 알아? 우리 팔조는 말이야. 조장이 사비를 털어 사제 금창약과 응급약을 사서 나눠 주고 있어. 솔직히 군에서 주는 금창약과 응급약이 약이냐? 약의 탈을 쓴 독이지.”

곡굉이 매서운 눈길로 흑웅을 쏘아 보았다.

“돈을 거둬서 부조장에게 가져다 주고 밖에서 사 온 약을 고루 나눠 줘. 그리고, 팔조에서 검진 운용이 몸에 익은 놈들 두 개 조를 각 조에 파견해서 삼재검진을 가르치게 해.

여기 있는 다섯 조와 우리 팔조는 한 몸이다. 부조장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팔조 조원들은 잘 다독여 주고 너희들은 돌아가서 이 상황을 전해. 너희들의 조에서 한 명이라도 수 틀리게 나오면 진짜 승자 독식이 뭔지를 보여줄테니.”

북리준이 말을 마치자 다섯 낭인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 보았다.

“우, 우리에게 너무 유리한 일인데.... 괜찮겠소?”

자신들의 조장이 다른 다섯 조장을 일방적으로 깨뜨린 모습을 본 팔조 조원들이 납득하기 어려울거라는 생각에 환영창이 더듬 거렸다.

“우리 조는 말이야. 네 놈들하고 차원이 달라. 조장이 까라면 까고 엎어지라면 엎어진다고. 왜냐구? 여지껏 시키는 대로 해서 살아 남았거든. 앞으로도 더 살 거 같고 말이야, 킬킬킬!”

곡굉의 말에 다섯 낭인들이 입을 다문 채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혹시 내 힘이 필요하면 부조장한테 이야기 해. 말 안 듣는 새끼는 대신 조져 줄테니까.”

북리준의 말에 독안검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을 하고 허리를 숙였다.

“대형으로 모시겠소. 받아 주시오.”

“저도 대형으로....”

“말만 하시오. 내 다 하겠소.”

다섯 낭인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지랄 대형은.... 삼재 검진을 운용 한 후 네 놈들의 조원들 목숨 하나에 내 주먹 한 대다. 맷집에 자신 있는 놈은 그냥 놔 두던가.”

****

오삼계 군과의 전투를 위해 팔조 전원이 출전을 한 빈 천막촌에 거대한 대도를 뒤에 맨 채 뒷짐을 지고 어슬렁 거리는 걸음으로 누군가 들어섰다.

“여긴가?”

북리준이 술병을 입에 문 채 조원들이 검진을 연습하는 것을 지켜 보던 바위 앞에 단혼참마도 팽무강이 섰다.

툭 하니 땅을 차고 유려한 신법으로 바위에 오른 팽무강이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전망은 좋군.”

탁 트인 시야 안에 팔조 천막촌이 저 멀리 한 눈에 들어오고 눈을 내리니 너른 공터에 어지러히 찍힌 발자국들이 들어 왔다.

“호오...”

팽무강이 다시 가볍게 발을 굴러 북리준이 내공을 사용하여 처음으로 새겨둔 삼재검진의 보법 앞에 섰다.

“흠, 세 명의 보법이 이리 어울러질 수 있네....”

팽무강이 중앙에 나 있는 보법을 천천히 밟아 보고는 왼쪽, 오른쪽의 보법을 차례로 밟아 나갔다.

“이거 일개 낭인들이 쓰기에 너무 아까운데?”

팽무강이 두리번 거리다 저 편에 놓인 지필묵을 가져다 세 보법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싸가지 없는 제갈년이 오면 보여 줘야 겠다. 뭔가 현묘한 것이 숨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삼재검진을 구사하는 낭인들의 숫자가 늘면서 오삼계 군의 피해가 커져 가는 것을 지켜본 팽무강이 품 속에 보법을 적은 종이를 집어 넣었다.

“도천학이라고 했나? 네 놈이 도대체 어떤 놈인지 알고 싶구나. 천풍루에 한번 청부를 넣어 봐야겠군.”

팽무강이 다시 예의 어슬렁 거리는 걸음으로 천막촌을 일별하고는 되돌아 나갔다.

****

“뭔 일인지 알아?”

“낸들...”

하후승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팽무강을 바라 보았다.

“골통, 뭐 들은 거 있냐?”

무영쾌검 모용민이 언철진과 다가 오며 입을 열었다.

“미친새끼, 내가 아는 것을 너희들이 모르겠냐?”

“하긴 내가 실수 했네, 인정!”

“내가 조금 들은 게 있어.”

낙성추혼권 언철진이 세 명의 친우들 앞에 서서 허리를 폈다.

“뭔데? 왜 갑자기 우리와 실력 있는 낭인들을 다 모으는 건데?”

하후승이 머리를 들이밀며 언철진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대었다.

“좀 떨어지지? 냄새 나....”

“이 새끼도 저 미친 새끼랑 같이 다니더니 닮아가네 그려. 뭔데 빨리 풀어 봐.”

팽무강과 흥미가 있다는 표정을 짓자 언철진이 주위를 둘러 보더니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반란을 일으킨 삼번 중 복곤의 평남왕 경정충과 광동의 정남왕 상가휘의 아들 상지신이 흔들리고 있나 봐.”

“그럴 수밖에. 듣기로 평서친왕인 오삼계 군만 기세 등등하지 두 번왕은 지리멸렬할 것 같다더군.”

모용민이 아는 체를 하자 하후승이 으르렁 거렸다.

“넌 입 닥치고..... 그래서, 계속 이야기 해 봐.”

모용민이 어깨를 으쓱 한번 추켜 올리고는 언철진을 바라 보았다.

“오삼계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 된 거지. 그나마 삼번의 난이라 자기 혼자에게 튈 불똥이 세 군데로 나눠 떨어 졌는데 잘 못 하면 자기가 다 뒤집어 쓰게 생겼거든.”

“그거랑 오늘 회합하고 무슨 상관인데?”

하후승의 불퉁거림에 언철진이 웃음을 지었다.

“나도 들은 게 여기까지 여서 말이야. 가면 알겠지 뭐!”

“카악, 퉤! 저 두 새끼가 계속 붙어 다니더니 재수 없는 짓을 아주 똑같이 하고 다녀요, 지랄!”

“쓸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가 보자. 철진이 말대로 가 보면 알겠지.”

팽무강이 말을 마치고는 성큼 거리는 걸음으로 청조 팔기의 군막으로 향했다.

“같이 가!”

하후승이 후다닥 팽무강의 뒤를 따르고 모용민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 모자란 놈이 어떻게 신창 소리를 듣는지 참 불가사의한 일이야.”

“하늘님이 공평하셔서 떨어지는 머리를 몸으로 보상해 주셨나 보지,”

“아하, 네 말이 맞는가 보다.”

모용민과 언철진이 킬킬 거리며 저 앞에 뛰어 가는 하후승을 따라 붙었다.

“오셨소이까?”

군막 앞에 모여 있던 낭인 중 섬전창 백리천이 네 명의 후기지수에게 포권을 했다.

“백대협도 오셨구려.”

섬전창 옆에 벽안독검과 흑도부, 거력웅, 파산권, 사망도, 독안검 등이 포권지례를 취했다.

“또 사파 놈들 치러 가는 건가?”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소이다.”

하후승의 말에 섬전창이 대꾸를 했다.

“어떻게 다르다는 거지?”

“동창과 금의위도 와 있더군요.”

“동창과 금의위? 이런 전장에 왜?”

팽무강이 혼자 중얼 거리자 뒤에 서 있던 언철진이 하후승에게 시선을 던졌다.

“봐라, 오늘은 뭔가 다르다니까.”

< 25. 받아주시오.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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