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26화 (26/167)

< 26. 낭인계의 보살 >

“어라, 저 미친년은 웬일이래?”

하후승이 군막 너머 문사 차림의 인물과 함께 다가오는 눈이 확 밝아 지는 미모의 여인을 보고 손가락질을 했다.

“손가락 접어라, 확 뿌러뜨려버리기 전에...”

무림 삼화 중 하나인 백봉으로 불리우며 신기 제갈가의 떠오르는 신성인 제갈청하가 인상을 썼다.

“오랜만이다. 청하!”

“그러네. 여기는 여전하고?”

팽무강이 아는 체 하자 제갈청하가 일행들에게 다가 왔다.

“여기는 제갈성 숙부님, 숙부, 얘네들이 내가 이야기한 젖비린내 나는 애숭이들.”

냉막한 문사 차림의 인물을 향해 언철진이 포권을 했다.

“철면신산 대협을 뵙습니다. 언가의 철진이라 합니다.”

“반갑다.”

단 한마디 말을 던지고는 입을 꾹 다무는 제갈성을 향해 각자 자기 소개를 했다.

“하후가의 상이라고 합니다.”

“팽가의 무상입니다.”

“모용가의 민입니다.”

네 후기지수의 소개가 끝나자 백봉이라 불리우는 제갈청하를 향해 모용민이 다가 갔다.

“웬일이냐, 제갈가도 참전 하는 거야?”

“아니, 우리는 초청 받았어. 저 위에서...”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자 하후승이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저 병신은 여전 하구나.”

“뭐래? 누가 초청했다는 건데... 옥황상제?”

“얘는 뭘 좀 아나 보다. 이따 잠깐 보자.”

언철진의 말에 제갈청하가 고개를 주억 거렸다.

그 때 군막 안에서 팔기 중 정황기 복장의 장수가 나와 일행들에게 다가 왔다.

“한 시진 후 회합이 있을 예정 이오. 특별하신 분이 참석 하시니 옷차림과 언사에 예의를 갖춰 주시오.”

제 할 말을 마친 장수가 다시 돌아 들어가고 낭인들과 무림세가 인물들이 각자 흩어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청하야. 숙부는 안에 누굴 볼 일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우마. 말썽 부리지 말거라.”

“제가 아직도 어린애로 보이시나 봐. 어여 일 보고 오세요.”

철면신산이 못 미더운 얼굴로 자리를 뜨자 팽무강이 백봉의 옷소매를 잡아 끌었다.

“도대체 뭔데? 답답하게 하지 말고 속 시원하게 풀어봐.”

제갈청하가 네 명의 친우들이 동그래진 눈으로 자신을 주시하자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극비 중의 극비인데 귓구멍 파고 잘 들어.”

백봉의 말에 하후상이 자신의 양 귀를 후비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말해, 후볐으니까.”

“휴우, 저 골통은 신경 쓰지 말고 계속 해라.”

모용민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평남왕과 정남왕이 항복 하기 일보 직전이거든. 하루가 멀다 하고 어떻게 하면 멸문 당하지 않고 항복을 할까 매일 간을 보는 모양이야.”

“황제가 가만 두겠어? 역모를 꾀한 놈들인데?”

“모지리는 입 닥치고. 황제 입장에서 삼번이 다 들고 일어나 골치 아파 죽겠는 상황에 두 개의 번왕이 백기 투항 하겠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그냥 흘려 보내겠냐?”

하후상이 제갈청하의 면박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문제는 혼자 남은 평서친왕, 오삼계야. 지금 오삼계 군이 화남 지방을 다 먹은 상태에서 두 번왕이 항복 한다면 청조의 모든 군력을 혼자 맨 몸으로 받아야 하는데 견디겠냐고....”

“거기 까지는 알겠어. 그게 오늘 회합과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특별한 사람이 누구고?”

제갈청하가 다시 고개를 들어 주위에 자신들 뿐 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 한 후 목소리를 낮추었다.

“오삼계가 평남왕과 정남왕에게 비밀 회동을 제안한 모양이야.”

“비밀회동?”

하후상이 놀라 목소리가 커지자 제갈청하가 하후상의 귀를 사정없이 잡아 당겼다.

“이 골통아, 목소리 낮춰!”

“아, 미안...”

“동창과 금의위까지 동원해서 이 회동에 참석하는 오삼계를 덮치겠다는 거 같아.”

너무도 엄청난 말에 네 명의 후기지수들이 서로를 쳐다 보았다.

“그 말은 오삼계를 잡고 이 전쟁을 끝내겠다는 거네.”

“그렇지. 오삼계가 죽거나 잡히면 두 번왕은 바로 무릎을 꿇을거라는 것은 명약관화잖아.”

“그런데, 비밀회동인데 네가 어떻게 알어?”

다들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연 하후상을 쳐다 보았다.

“와, 골통! 나도 그게 궁금했거든. 가끔 보면 머리가 정말 나쁜 것은 아닌 거 같아.”

“미친새끼. 우리 집안에서 머리 좋기로 한 손 안에 꼽으면 그 중에 내가 있어.”

하후상의 으쓱거림에 다들 웃음을 짓자 모용민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상이 말마따나 이런 극비 회동을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오삼계 휘하 직계 장수 중에 청조에 협조 하는 자가 있는 모양이야. 동창 관할 인 것 같고...”

“특별한 사람은?”

“그건 나도 몰라. 오늘 회합에 참석해 보면 알겠지.”

제갈청하의 말에 멀뚱한 표정의 하후상을 제외하고는 다들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들어갔다.

“형님! 이야기 들었소?”

“무슨 이야기?”

섬전창 백리천의 옆에 벽안독검 구백이 털썩 주저앉았다.

“낭인 부대에서 보살이 난 모양이오.”

“보살?”

백리천이 의아한 표정으로 의동생인 구백을 바라 보았다.

“형님이나 나나 팔기에서 내려준 임무 때문에 한 일년 정도 자리를 비웠잖수. 그 동안 아주 재미난 일이 생겼더군요.”

무료한 표정으로 주변에 흩어져 있던 낭인들이 구백의 말에 하나 둘 백리천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팔조 조장이라는 자가 사비를 털어 금창약과 응급상비약을 사서 나눠주고 낭인들이 덜 죽게 하려고 검진을 가르쳤답니다.”

“사비를 털어? 그리고 낭인들에게 검진을?”

백리천이 처음 듣는 말에 관심 있는 얼굴로 다음 말을 재촉했다.

“계속 해 봐, 그래서?”

“그 이야기 라면 내가 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소.”

독안검이 구백의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왔다.

“현 낭인 부대 칠조 조장을 맡고 있는 독안검이라 하오.”

“반갑소. 섬전창이오.”

독안검이 자신이 직접 겪은 팔조 조장에 관한 이야기를 약 한식경에 걸쳐 천천히 털어 놓기 시작 했다.

“허허, 저 말대로라면 정말 낭인 세계의 부처일세 그려.”

파산권이라 불리운 낭인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지난 일년 여 동안 다른 곳에 파견을 나갔다 오셔서 이 내용이 생소 하실 것이오. 허나, 대형의 일은 진짜요!”

“허, 대형이라.... 천하의 독안검에게 대형이라는 소리를 듣는 젊은이라... 한번 보고 싶군.”

평소 독안검과 기꺼운 관계를 맺고 있던 사망도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형님! 그 부처 반 토막 같은 팔조 조장이라는 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자더군요.”

“내가 알아?”

“그 왜 형님이 우리 파견 전에 내게 소개 해준 친구 있잖수. 내 눈 색깔이 자신의 고향인 남해바다 색이라고 했던...”

“어? 도천학인가.....”

“맞수. 난 그 놈이 뭔 일을 낼 줄 알았지만 이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수.”

“허허, 그 친구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기길래 친하게 지내자고 하고는 잊고 있었네..... 그 친구가 다섯 조장들을 다 무릎 꿇렸다는 말이네.”

섬전창의 말에 다른 낭인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팔조 조장의 무력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독안검의 검도 예사로운 것이 아닌데 다섯이 한꺼번에 붙어서 깨졌다? 만만한 친구는 아니군.”

흑도부의 말에 거력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사재를 털어 약을 사 주고 검진을 가르치고....”

“실제로 대형의 검진을 수련한 낭인들의 사망률과 부상률이 급격이 줄었소. 다른 네 개조의 인간 같지도 않는 조장들이 힘으로 찍어 누르고 있지만 조만간 낭인들이 들고 일어설 것이오. 대형에게 속한 조의 낭인들은 서로가 서로의 등을 지켜 주고 아낌 없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에 다른 낭인들이 부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지요.”

독안검의 얼굴에 떠오른 자부심에 다른 낭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보고 싶군, 그 팔조 조장이라는 자 말이야.”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파산권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대형은 이런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 하셔서 위에서는 잘 모를 거요. 오늘 회합에는 내가 아니고 대형이 참석해야 제 격인데....”

그 때 군막에서 예의 정황기 장수가 나와 저 쪽에 있던 무림세가의 고수들을 불러 안으로 들여 보내고는 자신들에게 다가왔다.

“오늘 회합에 당신들은 참석 할 수가 없소. 당신들은 대기 하고 있다 임무가 하달되면 그 임무에 따라 움직이면 되오. 물론 보수는 후하게 쳐 줄 것이오.”

“알겠소이다.”

섬전창이 대표로 포권을 취하자 군관이 군막 안으로 들어 갔다.

“젠장, 뭔 놈의 비밀이 많은지.... 그렇게 우리를 못 믿겠으면 지들끼리 하던가!”

벽안독검이 침을 탁 뱉으며 투덜거렸다.

“그만큼 비밀이 유지되어야 하는 작전인가 보지. 우리는 돈 값만 하면 되는 거야. 뭘 그리 새삼스럽게 굴어?”

섬전창의 말에 벽안독검이 어깨를 으쓱 거렸다.

“형님 말이 맞수. 시키는 대로 하고 보수만 제대로 받으면 되지 뭐.”

거대한 군막을 정황, 양황, 정백기의 고수들이 에워싸는 와중에 처음 보는 복장의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 자들은 뭐지?”

“동창과 금의위 복장인데? 저 들이 이 전장에는 무슨 일로 왔지?”

섬전창이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던 동창과 금의위 위사들의 복장을 기억하고는 중얼거렸다.

“뭔가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 오나 보네. 저리 지랄 하는 것을 보니 말이오.”

황제 직속의 정황, 양황, 정백기의 고수들과 동창, 금의위의 인물들이 삼중 사중으로 겹겹이 군막을 둘러싸는 모습에 벽안독검이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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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군막 안!

중앙에 약 이십인 정도가 충분히 둘러 앉을 수 있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한쪽 편에는 무림세가 인물들이, 반대편에는 정황, 양황, 정백기의 기주와 하얀 얼굴에 예리한 기도를 뿜어내는 동창 차림의 인물과 거대한 덩치에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을 주는 금의위 복장의 인물이 자리를 했다.

“인사들 하게. 동창의 영반이신 유공공이시네. 이쪽은 금의위 위장이신 곽대인이시네.”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기주들 외에 철면신산에 의해 두 인물의 정체를 알게 된 후기지수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반갑다. 너희들의 공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유공공의 말에 다 들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이번 반란이 진정되면 당신들의 가문에 후한 보상이 있을 것이네. 기대 하게.”

거한인 곽대인의 말에 유공공이 팩 쏘아 붙였다.

“나라를 위한 일에 무슨 보상?”

“허허, 공공님! 나라를 위하려해도 배를 곪으면서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유공공을 향해 곽대인이 순후한 얼굴로 일행들을 돌아 보았다.

그 때 저 쪽 천막 한 켠이 거두어 지며 누군가가 동창과 금의위 위사들에게 겹겹이 싸여 들어서자 유공공과 곽대인. 기주들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희들도 일어서 예를 표하거라.”

철면신산의 말에 네 친우과 제갈청하가 궁금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 26. 낭인계의 보살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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