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추천 >
금색 용이 수 놓인 고급 비단으로 만든 흑색 무복에 강인한 인상의 사내가 중앙에 놓인 탁자의 상석에 자리했다.
“태자전하를 뵈옵니다!”
유공공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예를 표하자 좌중의 인물들도 허리를 굽혔다.
“과하오. 좌정하시오.”
현 황제의 35명의 아들 중 황태자로 일찌감치 책봉된 윤청 황태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손을 들어 앉으라는 표시에 좌중의 인물들이 착석을 한 후 자세를 꼿꼿히 한 채 황태자를 바라 보았다.
“본인이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에 속으로 놀라는 분들이 있을 것이오. 유공공, 공께서 설명해 주셨으면 하오.”
황태자가 옆에 선 무복 차림의 시비가 앞에 내려 놓은 용정차를 들자 유공공이 자리에서 일어나 중원 전도가 걸려 있는 지도 앞에 섰다.
“불경스런 삼번의 난이 일어 난지 어언 오년이 흘렀습니다. 비록 역적의 무리들의 세가 높아 화남지방을 빼앗겼으나 곧 대 청조의 팔기군이 수복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유공공이 카랑 카랑한 목소리로 좌중의 인물을 압도했다.
“근자에 들어 두 개의 역적 무리들의 세가 불리해지자 불측하게도 저희 쪽에 항복을 하기 위한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유공공이 지휘봉을 들어 전도에 나와 있는 복건과 광동지방을 찍었다.
“현 번왕인 경계무와 상가희는 연전 연패를 거듭하여 시간이 지나면 지리멸렬할 것으로 사료 됩니다. 문제는 여기지요.”
운남과 귀주, 이어 사천, 호남을 짚은 유공공의 지휘봉이 둥그런 원을 그렸다.
“평서왕인 오삼계군의 군세가 만만치 않은 가운데 이 곳 호북에서 대 청조의 팔기와 무림세가, 낭인들이 더 이상의 북진을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유공공의 말에 황태자가 손에 든 용정차를 탁자에 내려 놓았다.
“오삼계군만 제압하면 이번 반란은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그 계획을 위해 오늘 회합이 있게 된 것입니다.”
유공공이 지휘봉을 옆 탁자에 내려 놓고는 성큼 황태자의 옆에 섰다.
“오늘 회합에 참석한 자들은 계획을 실행하기 전 까지 외부 와의 모든 접촉을 금합니다. 저 밖에 대기 중인 낭인들에게는 자세한 내용을 언급할 필요가 없소이다.
그 들은 척후 겸 진군을 위해 앞에 선 방패병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방패병은 지랄... 그냥 칼받이로 쓰겠다는 거지.’
팽무강이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속으로 중얼 거렸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누구한테도 옮겨서는 안됩니다. 비밀이 새어 나가는 순간 이 작전은 실패로 간주 되니까요.”
‘도대체 뭔 작전이길래 이 난리병이래?’
하후상이 답답하다는 표정이 한껏 떠오른 얼굴로 움찔거리자 모용민의 전음이 날아왔다.
‘병신새꺄! 가만히 있어. 황태자 앞에서 골통짓 할래?’
유공공이 좌중의 인물들을 차례로 일별한 후 다시 말을 이어갔다.
“오삼계가 투항을 고려 하고 있는 두 개의 번왕들과 비밀 회동을 계획 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 했소이다.”
“확실한 첩보요?”
황태자의 물음에 유공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하. 오삼계의 직속 군관 중에 심어 놓은 세작에게서 나온 첩보입니다.”
“계속 하시오!”
황태자의 말에 유공공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보름 후 호남성 모처에서 오삼계와 경계무, 상가희가 회동을 할 예정입니다. 물론 이 회동의 주최자는 오삼계입니다.”
“첩보가 확실하다는 전제하에 오삼계만 잡으면 이 반란을 끝낼 수 있겠군요.”
황태자의 말에 금의위장인 곽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 저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오삼계의 신변이 저희 수중에 떨어진다면 경계무, 상가희는 바로 항복을 할 것으로 사료 됩니다.”
황태자가 고개짓을 하자 유공공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한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본 태자가 이 곳에 온 이유는 직접 설명 하겠소. 황제께서는 내 황태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오삼계를 직접 잡아 이 반란의 종지부를 본 태자의 손으로 찍길 바라고 계시오.
마침 너구리 굴 안에 숨어 있던 오삼계가 제발로 걸어 나온다는 첩보가 있어 본 태자가 직접 나설 예정이오.
황제폐하께서 황송하게도 내 신변을 걱정해 주셔서 정황, 양황, 정백기에 속한 고수들과 동창과 금의위를 파견해 주셨소. 여기 계신 동창의 영반과 금의위 수장도 함께 할 예정이오.
이 자리에 함께한 무림세가에게도 임무 성공 시 크나큰 보상을 약속 하겠소. 본 태자와 이 반란을 끝내는 데 동참해 주시기 바라오.”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 기꺼이 참여하겠습니다.”
좌중의 인물들이 한 목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자세한 계획은 유공공과 곽대인이 중심이 되어서 세워 주시기 바라오. 본 태자는 반역자인 오삼계의 목을 직접 취할 수 있게 되기를 고대 하겠소.”
황태자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다시 좌중의 인물들이 일어서 예를 표했고 동창과 금의위의 위사들에게 싸인 황태자가 군막을 벗어났다.
황태자가 군막을 벗어나자 유공공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첩보에 의하면 호남지방이 이미 자신들의 수중에 떨어져 있기에 최측근 들과 자신의 친위대만 대동 한 채 움직인다고 하오.
이에 우리도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비밀리에 이동을 해야 합니다. 밖에서 대기 하고 있는 낭인들이 이 곳의 지리를 잘 알고 척후로 활용하기에 유리하다고 하여 활용할 예정이오.
총 인원은 백명 내외로 구성할 예정 이며 무림세가 쪽의 인원은 총 스물을 넘지 않았으면 하오.”
“알겠습니다. 그리 준비 하지요.”
철면신산이 유공공을 바라 보며 포권지례를 취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서 보고 들은 이야기는 작전이 시행 되기 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발설 해서는 안되오. 만일 발설하는 자가 있다면 반란군의 첩자로 알고 즉결 처형 하겠소.”
유공공의 말에 곽대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경직된 분위기를 깨뜨렸다.
“유공공, 누가 이 곳에서 한 이야기를 누설 하겠소이까? 너무 심려 마시지오.”
“노파심에서 한 말이니 너무 유념치 않아 주셨으면 하오. 철면신산대협, 저희 황궁의 인물끼리 회의를 계속 할 예정이니 무림세가 분들은 자리를 옮기셨으면 좋겠소.”
유공공의 축객령에 육인의 무림세가 무인들이 군막을 나섰다.
“우리끼리 논의할 일이 있으니 한 식경 후에 내 군막으로 모여라.”
철면신산이 말을 마치고 제갈청하와 함께 자신의 거하는 군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따들 보자구. 상이만 입조심하면 문제는 없겠네.”
“미친년, 내가 미쳤다고 황태자....퍼억, 케에엑!”
냅다 하후상의 뒤통수를 갈긴 제갈청하가 모용민과 팽무강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골통새끼 입에 재갈 물려서 끌고 와!”
“휴우, 알았다. 어쩌다 이런 놈을 친구라고 사귀어서....”
모용민이 품 속에서 무명천을 하나 꺼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제갈성과 청하가 신형을 돌려 걸어 나가자 팽무상이 하후상에게 재갈을 물리는 모용민과 언철진을 뒤로 하고 낭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너도 재갈 물고 싶어?”
“할 이야기가 있어.”
“우, 우욱... 욱... 이, 이제 마, 말 안할게..”
“닥쳐! 너 때문에 첩자로 몰려 멸문 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낭인들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팽가의 소가주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대화를 멈췄다.
“무슨 일이신지요?”
이들의 대형격인 섬전창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름이 아니라 혹시 도천학 이라는 낭인을 알고 계시는지요? 현 낭인 부대 팔조 조장이라고 하더군요.”
여지껏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낭인들이 놀라 서로를 쳐다 보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번 작전에 그 낭인을 추천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팽무강의 뜬금없는 말에 섬전창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추, 추천 말입니까?”
“네, 이번 작전에 그 낭인이 필요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팽가의 소가주로써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낭인에 대한 보수는 저희 팽가에서 지불 하겠습니다.”
“갑자기 뭔 일이야?”
입에 재갈을 문 채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후상을 양 옆에 끼고 온 언철진과 모용민이 팽무강을 쳐다 보았다.
“지난 번 그 낭인 말이야. 왠지 이번 임무에 데려가고 싶어서....”
“팽가의 소가주가 추천을 하신 것이니 팔기에는 제가 이야기 할 필요가 없겠군요. 그 낭인에게는 직접 물어 보겠습니다.”
“꼭 같이 갈 수 있게 부탁 드립니다. 돈은 넉넉히 지불하겠습니다.”
할 말을 마친 팽무강이 세 친우들과 제갈성의 군막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모용민이 입을 열었다.
“왜 그 놈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왜인지 그 자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아니면 말고지!”
제갈성의 천막에 도착하여 보름 후 작전에 투입될 무인들의 인선을 끝내고 제갈성이 유공공을 만나러 군막을 나섰다.
“재미있는 거 하나 보여줄까?”
팽무강이 차를 홀짝 거리던 제갈청하의 앞에 앉았다.
“하후상 저 병신새끼 같이 춘화 쪼가리를 들이밀면 내 비도로 네 몸을 후벼 버릴 거야.”
장난으로 내민 춘화에 이승을 작별할 뻔 했던 기억에 하후상이 몸서리를 쳤다.
“내가 골통이냐? 자 봐!”
팽무강이 내민 종이 위에 점점이 찍혀 있는 세 가지의 그림을 보며 제갈청하가 허리를 곧추 세웠다.
“이게 뭔데? 보법인가?”
“검진인데 세 명이 한 조를 이루는 거야. 이게 중앙, 이게 우익, 이게 좌익..... 천천히 보고 생각 나는 대로 이야기 해 봐.”
팽무강이 내민 그림을 모용민, 언철진, 하후상이 슬쩍 어깨 너머로 보았다.
“어, 이거 그 삼재검진인가 뭔가네.”
하후상의 말에 모용민과 언철진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오호.... 이거 재미있네.”
제갈세가에서 백년에 한 번 나온다는 재녀 소리를 듣는 제갈청하가 눈을 빛내며 세 장의 그림을 한 군데로 모았다.
“저게 저 미친년이 재미 있을 정도의 검진인가?”
“다 들린다, 병신아!”
고개를 박고 세 개의 보법을 유심히 살펴 보는 청하가 툭 하니 말을 뱉었다.
“이거 어디서 난 거야?”
약 일다경 정도 뚫어져라 보법을 합쳐 이리 저리 돌려 보던 제갈청하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 있는 한 낭인이 퍼뜨린 검진이야. 뭐, 본인이 직접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꽤나 잘 만들지 않았어?”
“꽤나 잘 만든 정도가 아니야. 무공이 많이 모자란 낭인 셋이 이 검진대로 움직인다면 웬만한 놈 하나는 그냥 난도질 치겠는데? 그 낭인, 얼굴 좀 보자!”
“곧 보게 될 거야.”
“야, 이거 기대 되는데? 이 놈은 이런 고절한 검진을 어디서 배웠을꼬? 그리고, 이런 검진을 고작 낭인들한테 가르쳤다고?”
제갈청하가 눈을 빛내며 말하자 하후상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 놈, 엿됐다. 저 미친년의 관심을 끌었으니....”
“먼저 내 관심을 확 끌은 놈이야. 뭔가 재미있는 것을 숨기고 있는 거 같다니까....”
“숨겨 봐야 낭인 부스러기야. 너무 큰 기대 말라고.”
언철진이 심드렁한 표정을 짓자 하후상이 한 팔 거들었다.
“나도 팽가 놈의 말에 동의해. 그 놈 그 아비규환 전장에서 차가운 눈으로 주변을 관장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다구.”
“저 병신 새끼 말을 들으니 갑자기 기대가 반감되네....”
제갈청하의 푸념에 하후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에이씨, 나도 사람 볼 줄 안다구!”
< 27. 추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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