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30화 (30/167)

< 30. 제법이군 >

“도, 도대체 무슨 소리야? 야, 저게 다 맞는 말이냐?”

팽무강이 자신도 알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단숨에 이야기 하는 북리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제갈청하가 비도를 갈무리 하고는 한발 다가섰다.

“네 놈, 정체가 뭐냐?”

“낭인!”

“이 검진 네 놈이 만든 거냐?”

“온전히 만든 것은 아니지만 낭인들이 배우기 쉽게 손을 조금 보았소.”

“하아....”

제갈청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뭔 놈의 낭인이 진법을 만들어 내고 지랄이야...”

“이 검진의 요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소?”

“하아...., 육합을 기본으로 쓰고 그 위에 팔괘를 덧씌웠더구나,”

“흠, 제법이군.”

“호호호, 나 지금 칭찬 받은 거 맞지?”

“으응, 그런 거 같다....”

팽무강이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하여 화를 억누르고 있는 제갈청하를 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천하의 제갈청하에게 제법이라고..... 그래. 새털같이 많은 날 뭘 걱정하겠냐? 너, 도천학이라고 했나? 앞으로 내 얼굴 볼일이 무지 하게 많을 것이다. 기대해라!”

면사로 다시 얼굴을 가린 제갈청하가 찬바람이 쌩 불 정도로 신형을 돌렸다.

“어, 가, 같이 가! 시간을 내 주어 고마웠소. 다음에 또 봅시다.”

허겁지겁 저 앞에 가는 제갈청하를 쫓아가는 팽무강을 보며 북리준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재미있는 자들이네.”

“뭐라고, 저 미친년이 망신을 당하고 왔다고?”

“병신아, 망신이 아니고 칭찬을 받았다고... 그 낭인님한테....”

제갈청하가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 거리자 하후상이 팽무강에게 재차 물었다.

“저 말 진짜냐?”

“어, 엉! 도조장이 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주절 주절 하더니 제갈청하에게 제법이라고 하더라구.”

“하하하, 저 미친년이 임자 만났네.”

‘피이잉’ 비도 한 자루가 하후상의 얼굴 한 치 앞을 바로 비켜갔다.

“지금은 실수다. 다음번은 네 놈 입을 꿰뚫어 주마.”

하후상이 급히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막자 제갈청하가 중얼 거렸다.

“멀쩡하게 생긴 놈이 어디서 저런 걸 배워왔지? 좋아, 다음에는 진법 대결이다. 네 놈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마. 키키키키!”

사이한 미소를 띄우며 키키 거리는 제갈청하를 보며 하후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미친년 한테 찍혔으니 그 놈도 인생 텄다 텄어....”

다음 날 저녁!

제갈청하가 혼자 북리준을 찾아 낭인들이 모여 있는 숙소로 다가 왔다.

“좀 보자!”

툭 하니 말을 내뱉고는 냅다 신형을 돌려 휘적 거리며 걸어 나가는 제갈청하를 독안검이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 보았다.

“뭡니까?”

“휴우, 나를 귀찮게 하는 여자... 잠시 갔다 올게.”

북리준이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제갈청하의 뒤를 따라 나서자 섬전창이 웃음을 지었다.

“좋을 때군. 듣자하니 제갈세가의 여식 이라고 하던데...?”

“세가의 인물들과 얽혀서 좋을 거 하나도 없잖아요? 이야기 해 줘야 하나?”

벽안독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북리준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놔두게. 다 경험 해 보는 것이 좋은 것 일세.”

휘적 거리며 걷던 제갈청하가 사람이 안 보이는 숲 속 한켠 바위를 가리켰다.

“뭐 하자는 거지?”

말없이 품 속에서 지필묵을 꺼내며 제갈청하가 히죽 웃음을 지었다.

“고수님한테 진법 좀 배울려고!”

제갈청하가 지필묵을 바위 위에 펼치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기 한번 하자. 서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진법을 주고 먼저 푸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내기 라는 말에 북리준의 회가 동하는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뭘 걸고 하지?”

“뭘 가지고 싶은데? 하룻밤을 걸라느니 헛소리 지껄이면 입을 찢을 거니까 잘 생각하고 말해라.”

제갈청하의 말에 북리준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나중에 진 사람이 이긴 사람 부탁 하나 들어 주는 것으로 하자. 물론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말이지.”

“호호호, 좋아!”

제갈청하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붓을 까닥거렸다.

“자, 여기에다 각자의 진법을 펼쳐서 내일 저녁에 확인 하는 것으로 하자.”

제갈청하가 필묵을 들어 일필휘지로 진법을 종이 위에 진설했다.

‘오행금쇄진 정도면 저 얼굴만 멀쩡한 놈이 쩔쩔 매겠지.’

제갈청하가 힐끔 거리며 북리준을 쳐다 보았다.

‘지괴님의 진법 중 환환미진 정도면 되겠군.’

지괴 냉가려의 진법서 중 사물의 환상을 이용한 미진을 종이 위에 구현해 내었다.

“이름은 알고 고민 해야겠지? 이건 오행금쇄진이야.”

제갈청하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든 북리준이 자신의 손에 든 종이를 넘겼다.

“환환미진이오.”

“내일 저녁 때 까지 풀던 못 풀던 같은 시간에 보자구.”

제갈청하가 북리준이 준 종이를 접어 갈무리하고는 미련없이 신형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후후, 재미있는 아가씨네.”

북리준이 제갈청하가 준 종이를 들여다 보며 웃음을 지었다.

“나를 너무 낮게 보았군.”

오행금쇄진의 해진법이 떠오른 북리준이 그 자리에서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으으으윽!”

“저 년, 또 지랄한다.”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중에 제갈청하가 종이 한 장을 들고 충혈된 눈으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뭐 하는 짓이래?”

하후상이 제갈청하에게서 널찍이 떨어져 팽무강에게 물었다.

“도조장하고 진법 내기를 한 모양 인데 잘 안되는 가 봐!”

“임자 만났네. 항상 잘난 척 뻐기더니 말이야.”

모용민이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종이에 얼굴을 박고 걸음을 옮기는 제갈청하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새끼도 못 풀었을 거야. 암, 한낱 낭인 나부랭이가 어떻게 풀겠어?”

혼자 중얼 거리며 미친 듯이 머리를 긁적거리던 제갈청하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 새끼 지도 못 푸는 진법을 준 거 아냐? 개자식, 만일 오늘 이 진법을 못 풀면 오늘이 내년 네 녀석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흐흐흐!”

헝클어진 머리에 붉게 충혈된 눈의 괴소를 흘리는 제갈청하를 보며 하후상이 혀를 찼다.

“저거 진짜로 미쳤네. 미친 년이 제대로 미쳤다구.”

그날 저녁!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두들 내일을 위해 잠자리를 준비하는 시각에 제갈청하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북리준을 찾아 왔다.

“따라와!”

팽 하니 신형을 돌려 앞서 나가는 제갈청하를 보며 섬전창이 미소를 지었다.

“도조장! 잘 되어 가나 봐. 잘해 보시게.”

“그런 거 아닙니다. 참 성가시게 구네....”

사람들 눈이 닿지 않는 숲 속 한 구석에 자리를 잡은 제갈청하가 손을 내밀었다.

“내 놔봐! 못 풀었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손을 내민 제갈청하를 보고 짧은 한숨을 내쉰 북리준이 주섬주섬 종이를 넘겼다.

“내 수준을 너무 낮게 본 거 같군.”

넘겨 받은 종이를 들여다 보며 눈이 점점 커져 가는 제갈청하를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 쪽도 보여 주시지.”

면사 안에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제갈청하가 고개를 푹 숙이며 품 속에서 종이를 건네었다.

“뭐야? 손도 못 댄 거야?”

북리준의 말에 제갈청하가 눈에 독기를 뿜어대며 입을 열었다.

“너 이 새끼! 네 놈이 낸 이 진법을 풀지 못하면 이 내기는 무효야. 맞지?”

“허어, 넌 내가 풀지도 못할 진법을 냈다고 생각하는 거냐? 네 머리는 장식이니?”

북리준이 붓을 들어 쓱쓱 싹싹 몇 줄의 선과 점을 찍고는 제갈청하의 눈 앞에 들이 밀었다.

종이가 찢어질세라 잡아채고는 고개를 처박았던 제갈청하의 어깨가 한없이 떨구어져갔다.

“패배를 인정하지?”

“한 번 더 하자!”

“허허, 이 철없는 아가씨야. 지금 우리가 놀러 가고 있는 줄 아나 본데 이번 임무가 다 끝나면 그 때 설욕할 기회를 줄게. 내일부터 말굽에 헝겊을 대고 불도 못 피운다고 하니 이번 임무 마칠 때 까지 참으라고.

아, 그리고 언제고 내 부탁 하나는 들어 주어야겠지. 내기는 내기니까 말이야!”

시원스레 웃는 잘 생긴 얼굴에 비도를 날릴까 말까 고민 하던 제갈청하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돌아가면 보자. 일단 한 가지 부탁은 들어 주마.”

“역시 강호의 여협은 다르군. 기대 할게.”

북리준이 미련 없이 신형을 돌려 낭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양 손에 진법이 적힌 종이를 든 제갈청하가 힘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호북을 떠나온 지 팔일째 되는 저녁!

황태자와 유공공, 곽대인, 팔기 기주들이 모여 회합을 진행 하고 있었다.

“이틀 후면 저희가 목표 하고 있는 지점에 도달합니다.”

유공공의 말에 황태자가 눈을 빛냈다.

“분명 오삼계가 오는 것이 확실한 거지?”

“네, 사흘 전 오삼계가 측근 군관과 친위대를 데리고 이동을 시작 했다는 밀서를 받았습니다.”

“화기 없는 음식을 오래 먹으니 불편하군. 최대한 빨리 오삼계의 목을 가지고 돌아 가세.”

황태자의 말에 곽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전력이면 반나절도 안 되어 끝낼 수 있습니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낭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도 회의가 이루어 지고 있었다.

“내일, 모레 척후는 나하고 도조장, 벽안독검이 나설 차례군.”

“준비 하겠습니다. 친구도 준비하고!”

벽안독검이 북리준의 어깨를 툭 치며 웃음을 지었다.

“우리 셋은 내일 인시에 출발 할걸세. 지금부터 미리 자 두게.”

섬전창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벽안독검과 잠자리가 마련된 곳으로 이동했다.

“별일 없겠지요?”

호남 토박이로 섬전창과 동향인 파산권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동창과 금의위, 황실 친위 팔기와 무림세가 고수들까지 있는데 뭔 일이 있겠나?”

“목표가 뭘까요?”

귀산자가 자신의 철로 된 주판을 닦으며 질문을 던졌다.

“요인 암살일 수도 있고 귀물 탈취 일 수도 있고.... 우리야 시키는 대로 하면 될 일이니 신경 끄세. 이 정도 전력이면 우리까지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말일세.”

“하긴 우리가 언제 동창과 금의위 위사들과 작전을 함께 한 적이 있었나? 빨리 임무를 끝내고 뜨끈한 오리구이에 화주 한잔 하고 싶네.”

“조금만 참자구. 이삼일 이면 끝나겠지.”

낭인들이 모여 앉아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아홉 번째 밤이 깊어만 갔다.

“여기서 부터가 랑산이네.”

새벽부터 척후로 나선 섬전창이 뒤를 따르는 북리준과 벽안독검을 고개를 돌려 보았다.

“오늘은 팔각채 초입 까지만 갔다 오는 걸로 하세. 정확한 목표가 떨어지지 않았으니....”

“형님! 도대체 여기 까지 와서 최종 목적지를 안 알려 주는 경우는 처음이네요.”

“그래 말이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겠지 뭐!”

섬전창이 앞장서고 그 뒤를 북리준과 벽안독검이 따르는 중에 수려하기 이를 데 없는 랑산의 정경이 일행을 맞이 했다.

“저기 보이지?”

숲 속 그늘진 곳에 신형을 낮춘 섬전창이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가 팔각채라네.”

엄청난 크기의 바위들로 이루어진 봉우리 여덟이 마치 녹색의 머리를 하고 서 있는 거인의 형상 인양 모여 있는 모습이 웅장하게 다가왔다.

“저 안에 들어서면 진정한 신선계가 펼쳐져 있지. 저기 어딘가가 우리의 목적지가 되겠군.”

북리준의 눈에는 암울한 표정의 거인들이 들어오지 말라고 손짓하는 듯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이 좀 그러네요.”

“무슨?”

“불길하다고 해야 하나요?”

“허허, 저 팔각채는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네. 아마 자네의 마음에 꺼림직한 뭔가가 있나 보군.”

< 30. 제법이군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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