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관제묘 >
북리준과 섬전창, 벽안독검이 척후의 임무를 수행 후 돌아와 팔기 군장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팔각채 초입까지 다녀 왔습니다. 고려 해야 할 징후나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섬전창이 대표로 보고를 하는 동안 북리준과 벽안독검이 뒤에서 말없이 서 있었다.
“최후의 목적지를 알려 준다. 팔각채 남쪽에 폐쇄된 관제묘가 있다. 그 곳이 최후의 목적지이니 내일은 관제묘 주위까지 살피고 오라.”
“알겠소이다!”
섬전창이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한 후 신형을 돌리자 그 뒤를 북리준과 벽안독검이 따랐다.
“묘가 목적지야?”
벽안독검의 말에 북리준이 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해 줬다.
“관제묘는 삼국시대 영웅인 관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야. 관제묘를 다른 말로 관림(關林)이라고도 하는데 이 ‘림(林)’ 는 오직 성인의 무덤에만 붙여. 중국 역사상 ‘림’자가 붙는 무덤은 단 두 개 뿐인데 바로 유학의 시조인 공자의 무덤인 공림(孔林)과 관우의 무덤인 관림이야.”
북리준의 설명에 벽안독검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군. 관우라는 사람에 대해서 말일세.”
“관우는 중국 역사상 수 많은 무장 중에 순수한 충성심, 의리, 용맹, 무예, 당당한 성품으로 거의 신으로 숭배 되어 공자와 함께 문무이성으로 불린다네.”
섬전창이 고개를 끄덕이는 벽안독검을 향해 설명을 이어갔다.
“실제 묘가 아닌 사당이라고 보면 돼. 이런 임무가 아니면 여행 삼아 들를만한 곳이지.”
“넌 여기 와 봤냐?”
“아니, 나도 책으로만 본 거야.”
“뭔 놈이 와 본 것 같이 이야기 하냐? 싱거운 놈....”
세 사람이 보고를 마치고 낭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가는 시각, 유공공과 곽대인, 황태자 삼인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정확한 회합이 언제라고 했는가?”
“사흘 후 묘시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이틀 정도 빨리 도착 한 것입니다. 미리 적들을 섬멸하기 좋은 위치를 선점키 위함입니다.”
유공공의 말에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낭인들이 내일 새벽에 먼저 그 곳을 정탐 한 후 이상이 없다면 동창과 금의위 위사들과 팔기, 무림세가의 고수들로 관제묘를 에워쌀 계획입니다.”
곽대인이 유공공의 말을 받아 설명을 이어갔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오삼계의 목을 취한 후 이 곳을 벗어난다면 두 번왕이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겠지요.”
같은 시각 철면신산의 천막 안에 하후상, 모용민, 언철진, 팽무강 등이 제갈청하와 함께 모여 있었다.
“팔각채 안 폐쇄된 관제묘가 최후의 목적지라고 한다. 우리가 내일 도착 한 후 이틀 뒤에 오삼계와 두 번왕의 무리들이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일 각 팔기와 동창, 금의위의 고수들과 함께 지켜야 할 구역을 받게 될 것이다.”
좌중의 다섯 후기지수들을 다시 한번 일별한 철면신산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오삼계만 잡으면 끝나는 임무다. 괜히 너무 나서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어리석은 행동은 자제 하기 바란다. 오삼계가 동창과 금의위, 황태자의 수중에 떨어지면 바로 퇴각을 계획 하고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내일 다시 이야기 하마. 오늘은 그만들 쉬거라!”
낭인들 또한 최종 목적지에 가까워 옴에 따라 금번 임무에 따른 회합을 섬전창이 주도했다.
“내일 관제묘를 살핀 후 우리 낭인들의 역할을 정해 줄 것이다.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 이 전쟁은 우리의 싸움이 아니다. 절대 목숨을 내 던져 임무를 완수한다는 개 같은 생각은 오늘 여기다 버려라. 우리의 목표는 살아서 귀환하는 것이다.”
“형님이 하는 말 우리도 다 알아 듣소.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으면 지겹다고요.”
벽안독검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와 같이 처음 임무를 수행하는 도조장과 독안검 때문에 한 말이니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바란다.”
북리준과 독안검이 섬전창과 눈을 맞추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척후는 우리 낭인 전체가 투입되니 다들 인시에 모이는 것으로 한다.”
날이 밝아 섬전창을 필두로 척후조가 출발 하였다.
“파산권, 저 관제묘 가 본 적이 있나?”
여명이 우뚝 솟아 있는 여덟 개의 봉우리 사이로 어슴프레한 빛을 뿌리기 시작하는 즈음에 저 멀리 폐허가 되어 버린 거대한 관제묘를 섬전창이 가리켰다.
“어릴적에 놀러 몇 번 간 적이 있소. 내가 태어 나기 전에 폐허가 된 곳이라 귀신이 나온다고 하기에 장난 삼아....”
“귀신이 나올 만 하네.”
귀산자가 거대한 봉우리 절벽 바로 밑에 폐허가 되어 버린 관제묘를 보며 혀를 찼다.
“은밀한 모임 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네.”
벽안독검이 저 멀리 괴물의 그림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관제묘의 잔해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이인 일조로 갈라져서 주변을 조사 한다.”
섬전창이 출발 전 정해준 조에 따라 조심스럽게 낭인들이 흩어져갔다.
“간담이 철석 같은 사람도 밤에는 이 곳에 못 오겠다.”
같은 조가 된 벽안독검이 북리준을 보고 투덜거렸다.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 산 사람이야. 귀신은 사람을 해칠 수 없잖아.”
“왜? 귀신에 홀려 죽은 사람이 많다매?”
“다 헛소문이고 미신이지. 아, 진법이라는 것에 미혹되어 귀신에 홀렸다고 하는 경우도 있어.”
북리준이 먼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벽안독검이 조심스럽게 따랐다.
“우리는 여기서 저쪽 까지 훑으면 되겠네.”
섬전창이 지시한 관제묘 동쪽 부분의 폐허 안에 두 사람이 들어섰다.
“응?”
북리준의 기감에 무엇인가 걸렸다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그 쪽에 시선을 돌렸으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무섭게 왜 그래?”
벽안독검이 허옇게 뜬 얼굴로 북리준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아니야. 내가 잘 못 본 것 같아.”
북리준이 벽안독검과 자신에게 할당된 구역을 세심하게 살피고는 원래 모이기로 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북리준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너 나 놀리려고 그러면 죽는다.”
“아니야. 너 먼저 돌아가 있어. 난 잠깐 더 살피고 갈게.”
“야! 같이 가야지. 같은 조인데.... 어디로 갈껀데?”
“그럼 여기 잠깐 기다려 봐.”
북리준이 말을 마치고 급한 걸음으로 절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저 놈 도대체 뭐하는 거야? 시키는 일만 하면 되지...”
성큼 거리는 손짓과 발짓으로 절벽을 타고 오르던 북리준이 폐허가 된 관제묘가 한 눈에 보이는 위치에서 그 주변을 예리한 눈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내 예상이 맞네. 진법이야....”
관제묘를 중심으로 육합과 팔괘의 묘리를 더해 묘에서 빠져 나오는 천, 지, 수, 화, 바람, 번개, 산, 우물의 여덟 갈래의 길 중 산에 해당하는 두 번째 길만이 생로요 나머지는 절대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로였다.
“만일 저 안에 갇히게 된다면 산의 길로 무조건 나와야 살 수 있구나. 누가 이런 관제묘를 중심으로 진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네.”
한눈에 봐도 오랜세월이 지난 거대한 진법을 눈에 새기고는 절벽을 내려왔다.
“빨리 와. 우리만 늦는 다고.”
절벽 밑에서 북리준을 기다리고 있던 벽안독검이 닦달을 했다.
“미안, 뭐 확인 좀 할게 있어서....”
벽안독검과 북리준이 빠른 걸음으로 복귀 하니 낭인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나?”
“아닙니다. 확인 좀 할 게 있어서요. 일단 저희 구역은 이상이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리게들.”
섬전창이 파산권과 함께 종이 위에 관제묘 주위를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 그리기 시작했다.
“형님! 여기는 실제와 다릅니다.”
섬전창과 파산권이 거의 다 완성해 가는 지도를 어깨 너머로 보던 북리준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이봐, 난 여기 여러 번 와 보았다고. 넌 오늘이 처음 이잖아.”
파산권이 조금 언짢은 얼굴로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제가 조금 늦은 이유가 관제묘 주위를 조망 할 수 있는 곳에 다녀 오느라 그랬습니다.”
“도조장이 한번 손 보게.”
섬전창의 말에 파산권이 얼굴을 찌푸린 채 옆으로 자리를 내 주었다.
“여기는 이렇게 길이 뻗어 나가고 이쪽은 이렇게 서로 꼬여 있으며 나머지는 이런 식으로...”
북리준이 거침 없이 만들어 놓은 지도를 수정하자 찌푸린 얼굴로 지도를 보던 파산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맞아! 내가 왜 이렇게 그렸지? 여기도... 아, 이거는 내가 착각했네.”
북리준이 그린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 보던 파산권이 머리를 긁적였다.
“도조장이 그린 지도가 맞는가?”
“아, 네! 큰 줄기는 제가 맞게 그렸는데 세세한 소로와 사잇길은 도조장이 그린 것이 맞습니다.”
섬전창이 붓을 내려 놓는 북리준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도조장이 한 건 했구만. 잘했네.”
“형님, 이 지도 한 부만 더 그려서 제가 가지면 안될까요?”
“응? 안될 거는 없지만 무엇 하려고?”
“제가 이걸로 설명을 해 줄 사람이 있어서요.”
“제갈세가의 낭자를 이야기 하나 보네. 큭큭!”
벽안독검이 웃음을 짓자 섬전창이 흔쾌히 허락을 했다.
“도조장 덕분에 많은 시간을 단축 했으니 마음대로 하게.”
북리준이 다른 종이 위에 빠른 손놀림으로 지도를 필사 했다.
“이만 철수 하세. 이 정도면 저 쪽에서도 흡족해 할걸세.”
낭인들이 서둘러 철수를 하는 중에 벽안독검이 슬쩍 북리준의 옆에 섰다.
“잘해 보라구. 면사 때문에 얼굴은 못 보았지만 분명 예쁠거야.”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개뿔....”
섬전창이 넘긴 지도를 거대한 종이 위에 옮겨 군막 벽에 걸어 놓고는 황태자를 위시하여 유공공, 곽대인, 팔기 기주와 철면신산, 다섯 후기지수들이 모여 앉았다.
“낭인들이 다녀와 넘겨준 관제묘 주위 전도입니다.”
유공공이 설명을 시작하자 군웅들이 지도에 시선을 던졌다.
“관제묘를 중심으로 이렇게 네 곳을 저희가 선점한다면 오삼계 무리를 일거에 쳐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오죽으로 만든 지휘봉으로 관제묘를 중심으로 네 군데를 찍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서로 손발이 맞는 군웅들로 조를 편성하겠소이다. 편의상 동서남북로로 명명하겠소.
동로는 저희 동창에서 맡겠소. 서로는 금의위와 곽대인이, 남로는 무림세가에서, 마지막 북로는 팔기의 군웅께서 맡아 주시오. 태자 저하는 저희와 함께 하시지요.”
유공공의 말에 장 내의 군웅들의 수장에게 필사한 지도 한 장씩이 나누어졌다.
“우리는 내일 미리 지정된 장소에 은신할 예정이오. 모레 반역도 들이 들어설 때 신호를 보내면 일거에 들이쳐 오삼계의 머리를 가져오면 이번 임무는 끝이 납니다.”
회의를 마치고 철면신산이 다섯 후기지수들과 함께 내일 배당된 지역에 은신할 방법에 대해 논의를 마치고 철면신산의 군막을 나섰다.
“저, 팽소협!”
군막을 나서는 팽무강의 앞에 도조장이라는 낭인이 앞으로 나섰다.
“어, 도조장 아니오? 무슨 일로?”
“제갈낭자를 잠시 보았으면 합니다.”
“어, 웬일이래? 저 인간이 나를 다 찾아 오고...”
불쑥 천막 안에서 얼굴을 내민 제갈청하가 반가이 아는 체를 했다.
“잠시 시간을 내 줄 수 있겠소? 내일 투입 되는 임무에 관해서 할 말이 있소.”
“임무? 들어와. 숙부님도 같이 들어도 상관 없지?”
“오히려 잘 된 일이오.”
“애들은 빨랑 가서 잠이나 자라. 얼른!”
팽무강과 하후상, 모용민, 언철진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얼쩡 거리자 제갈청하가 팩 소리를 질렀다.
“미친년, 더러워서 가서 잔다!”
하후상이 팽 하니 돌아서 자신의 숙소로 향하자 나머지 삼인도 서로를 쳐다 보다 할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도천학이라 합니다.”
“무림 동도들이 철면신산이라 불러 준다네. 듣자하니 질녀에게 진법 내기를 해서 이겼다고?”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염병..... 난 운이 나빠서 진 거네.”
“각설하고 이 늦은 밤에 무슨 일인가?”
“이것을 좀 보셨으면 합니다!”
북리준이 자신의 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 31. 관제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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