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33화 (33/167)

< 33. 당했군 >

“누구인가?”

황태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시선은 정문 밖 무리들에게 둔 채 질문을 던졌다.

“오삼계 휘하 저희가 심어 놓은 세작입니다.”

“그럼 우리가 역으로 함정에 빠진 건가?”

“저들의 수가 저희와 비슷하니 저희의 무력으로 누를 수 있습니다.”

유공공이 자신이 계획한 일이 틀어짐을 느끼고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이렇게 숨는 것이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나서겠습니다!”

곽대인이 자신의 검을 소리 없이 뽑아 든 채 정문을 향해 가고 그 뒤를 황태자와 유공공이 따라 나섰다.

“역적 오삼계는 어디 있는가?”

금의위장인 곽대인의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우렁거리며 관제묘를 떨어 울렸다.

‘이거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

하후상이 전음으로 요상하게 굴러 가는 상황에 눈을 굴렸다.

‘은신이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그래도 일단 기다려 봐!’

팽무강 또한 계획대로 굴러 가지 않는 상황에 얼굴이 굳어갔다.

‘숙부!’

‘일단 기다리거라.’

제갈청하 또한 당황한 표정으로 전음을 날렸다.

‘형님!’

북리준의 전음에 섬전창이 시선을 관제묘 앞에 둔 채 대답을 했다.

‘말하시게.’

‘전투가 시작되면 낭인들과 함께 이 뒤까지 물러나세요. 절대 동창과 금의위, 무림세가 인물들 보다 앞에 서지 마세요.’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는가?’

‘저 검은 피풍의를 입은 인물들.... 예사 무인들이 아닙니다. 오늘은 길보다 흉이 더 많을 듯 합니다.’

각자 은신한 장소에서 예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에 당황스런 전음이 오고 갔다.

“왕야께서는 오시지 않았소이다.”

동창이 심어 놓은 세작의 잘린 수급을 가지고 온 위맹한 인상의 군관이 앞으로 나섰다.

“후후, 우리가 역으로 함정에 빠진 건가?”

황태자의 자조 섞인 중얼거림에 군관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평서친왕이신 오삼계님의 전언이오.

오랑캐의 나라, 청조의 태자는 얕은 수로 본 왕을 잡으려 하였지만 하늘이 본 왕을 도우심에 역으로 태자가 내 손 안에 떨어지게 되었다. 순순히 투항 한다면 자비를 베풀어 태자의 목숨은 보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

오삼계의 전언을 전한 군관이 입을 굳게 다물자 유공공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오삼계는 어디 있는가?”

“왕야는 다른 두 왕야와 함께 다른 장소에서 회합을 가지고 계시다. 순순히 투항한다면 포로의 예우로 대해 주겠다.”

유공공이 전면에 포진한 백여 명의 검은 피풍의의 무인들 외에 다른 군세가 개입되어 있는지 옆에 선 동창 위사에게 전음으로 확인을 지시했다.

“확인할 필요 없다. 여기에는 우리만이 도착했다.”

동창의 위사가 신형을 날리려는 찰나 검은 피풍의 무인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하하, 네 놈들이 어디에서 온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자신감이 과한 것 같구나. 모두들 은신을 풀고 나오시게.”

유공공의 내공이 실린 목소리에 동서남북로에 은신하고 있던 고수와 무인들이 백여명의 피풍의 인물들을 에워쌌다.

“우리를 함정으로 몰아 넣은 작전은 매우 주효했다. 문제는 네 놈들이 더 많은 군세를 동원하지 못했다는 것이 네 놈들의 패착이니라.”

동창과 금의위, 황제 직속의 삼기의 최고수들과 무림세가의 후기지수와 소집된 고수들의 무공을 믿기에 유공공의 굳은 얼굴이 풀어져 갔다.

“저 놈들이 뭘 믿고 저 인원으로 호랑이 입 안으로 걸어 들어 온 걸까?”

어느새 섬전창과 북리준의 옆에 선 벽안독검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믿는 뭔가가 있으니 저러겠지.”

섬전창의 말에 북리준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들..... 우리가 자신들을 포위 했는데도 일말의 동요도 없어. 자신들의 무력을 믿는 거지. 우리가 호랑이 입에 스스로 들어 온거야.”

“부탁 드리겠소이다.”

오삼계의 전언을 전한 군관이 정중하게 검은 피풍의 무인에게 허리를 숙여 포권을 취하고는 같이 온 군장들과 함께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느냐?”

유공공 옆에 도열해 있던 동창 첩형이 땅을 박차고 군관의 목을 베기 위해 검을 뽑아 들었다.

‘푸아화확’ 기음과 함께 신형을 띄운 동창 첩형의 신형이 피보라를 뿜어내며 두 조각으로 갈려 땅에 떨어졌다.

군관에게 예를 받은 피풍의의 무인의 손에 어느새 피를 흠뻑 먹은 검이 쥐어져 있었다.

“으으음....”

유공공과 곽대인, 철면신산과 북리준 정도만 검의 궤적을 보았을 뿐 다른 무인들은 왜 동창 무인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는지 무인의 손에 든 검을 보고 겨우 알아차렸다.

“저, 저자가 한 짓이야?”

하후상이 순식간에 두 조각 고깃덩이가 되어 버린 동창위사의 시신을 보고 버벅 거렸다.

어느새 십여 명의 군관들이 관제묘로 들어서는 길 초입까지 물러나 팔짱을 낀 채 관망을 하는 모습을 보고 철면신산이 침음성을 내며 앞으로 나섰다.

“제갈세가에서 온 철면신산이라 하오. 어디에서 오신 고인 이신지 신분을 밝혀 주셨으면 하오.”

“제갈세가라.... 정도 개쓰레기도 포함되어 있구나, 크크크!”

옆에서 거대한 도를 어깨에 걸친 대한이 예의 검을 든 무인 옆에 섰다.

“어차피 황태자만 살리고 다 죽일 건데 죽기 전에 궁금증이나 풀어 주고 가자구.”

“마음대로....”

‘쿵’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도를 땅에 꽂아 놓은 무인이 거칠게 삿갓을 벗어 던졌다.

“이쪽은 천살단, 우리는 추혼단이라고 한다.”

“천살, 추혼..... 마, 마교!”

오십년 전 정마대전에서 패해 십만대산의 심처로 숨어 들어간 마교의 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정사 고수들과 제갈세가의 전 가주와 장로들이 투입된 무용담을 듣고 자란 철면신산의 입에서 경악스런 단어가 터져 나왔다.

“마교라고?”

“여기서 왜 마교가 나와?”

“멸문된 거 아니었어?”

무림세가 측에서 터져 나온 웅성거림에 철면신산이 사자후를 터뜨렸다.

“조용! 정녕 내가 아는 그 마교에서 왔느냐?”

“명교에서 일이위를 다투는 무투조직인 천살단과 추혼단의 이름을 도용하는 간 큰 놈이 있기는 한가?”

대로를 땅에 꽂고 기대어 히죽 거리는 거한을 향해 곽대인이 입을 열었다.

“정녕 마교가 오삼계와 붙어 먹은 것이냐?”

“허, 붙어 먹다라.... 찢어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나불대다 골로 간다.”

“어디 감히 대인께....”

두 명의 금의위 위사들이 금빛 검을 빼들고 대도에 기대고 있던 거한의 목과 심장을 노리고 신형을 날렸다.

‘퍼어억 퍼퍽’ 무엇인가 터져 나가는 파육음과 함께 두 위사의 신형이 공중에서 산산히 부서져 갔다.

“정녕 마교로구나....”

“오삼계가 악수를 제대로 두었구나. 네 놈들의 마교를 인정해 주겠다는 약조를 했겠지...... 오삼계가 이리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인 것을 알기나 할까?”

철면신산의 한탄어린 중얼거림에 검을 든 천살단주의 왼손이 들렸다.

“모두 죽여라. 황태자를 제외하고!”

“존명!”

“추혼단도 한 팔 거들어야지. 빨리 서둘지 않으면 우리 몫은 없을 거다, 크하하하하!”

중앙에 포위되어 있던 검은 피풍의의 천살단과 추혼단의 고수들이 검은 물결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카카캉 크아아악 까까깡 푸확’ 사방에서 병기들이 부딪는 소리와 함께 살이 갈리고 터져 나가는 기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 청조의 정예다. 멸문 지경에 처했던 마교의 무리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없애자.”

곽대인이 짓쳐들어오는 마교 무사를 향해 신형을 날려 검을 부딪쳐 갔다.

“제 뒤에 자리 하소서!”

유공공이 황태자의 앞에 자리를 잡고 정황, 양황, 정백 기주 삼인이 황태자를 에워싸며 달려드는 검은 파도를 맞아 검을 내질렀다.

“피래미들은 얘들한테 맡기고 너는 금위위장을 맡아라. 난 동창 고자 놈을 맡을 테니.”

거침없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동창 위사들은 대도로 부서버리며 유공공에게 걸음을 옮기는 추혼단주를 일별하고는 천살단주가 자신들의 수하를 베어 넘기고 있는 곽대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크허어어억’ 자신의 가슴을 관통하는 두 개의 검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 보다 즉사한 거령웅의 마지막 감은 눈에 네 조각으로 갈려져 가는 흑도부가 들어왔다.

“낭인 놈들은 대강 썰고 제대로 된 손맛을 보러 가자. 재미없네, 킬킬킬!”

두 명의 추혼단 마교도가 피에 절은 도를 들고 한 곳에 모여 있는 낭인들에게 다가 갔다.

‘파아아앙’ 낭인들 사이에서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예리한 창 한 자루가 추혼단 무사의 머리를 터뜨리기 위해 섬전처럼 날아 들었다.

“호오, 제법 하는 놈이 있네!”

슬쩍 고개를 젖히는 동작으로 창을 흘려 보낸 추혼단 무사가 창을 내지른 섬전창의 미간을 향해 도를 날렸다.

“이, 이런....”

섬전창이 회심의 일격이 맥없이 빗나가고 이어 자신의 미간을 꿰뚫기 위해 날아 드는 도 끝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푸화아아아악 크헉’ 소리와 함께 자신의 미간 바로 앞까지 뻗은 도가 힘없이 떨어져 내리고 두 조각으로 나뉘어 땅에 널부러졌다.

“이런 개새끼가!”

자신의 동료가 낭인으로 보이는 젊은 놈의 검에 두 조각으로 나뉘자 자신의 대도에 내공을 불어 넣어 앞에 모인 낭인들을 부서버리려는 찰나 무엇인가 이질적인 기운이 자신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커허어억, 이, 이 무슨 개 같은... 컥 꺼어억.”

두 손으로 감싼 목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며 섬전창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 정신차리시오.”

북리준의 거대한 등이 자신의 앞에 서 있고 피에 절은 검을 들고 전면을 주시했다.

“도, 도아우! 그건 뭐였지?”

“나중에 설명 하겠소. 벽안, 독안, 귀산, 섬전 형님 까지 제 양 옆에 나란히 서시오. 전면에 오는 적들의 공격을 최대한 막기만 하면 나머지는 내가 처리 하겠소.”

다섯 낭인이 나란히 바위를 등지고 서자 전면에서 천살단과 추혼단의 무인 셋이 땅을 박차고 날아 왔다.

“공격을 막기만 해. 단 한번만!”

도천학의 말에 낭인들이 자신의 무기를 힘있게 잡으며 날아오는 적들을 노려 보았다.

“설마 이 허접쓰레기들 한테 당한 거야?”

땅에 두 조각으로 나뉘고 두 손으로 감싼 목에서 연신 쿨럭 거리는 피를 뿜어내는 추혼단 무사를 보며 혀를 찼다.

“뭔가 있으니 당했겠지. 조심하자구!”

세 명의 마교무인들이 후둘거리는 다리로 서 있는 낭인들을 보며 비웃음을 떠올렸다.

“이 놈들에게 당한 것이 아닌가 보네. 빨리 끝내자.”

세 명의 천살, 추혼단 무인들이 한껏 진기를 끌어 올려 자신들의 검과 도를 낭인들의 목과 가슴을 가르기 위해 날렸다.

‘카아아앙 카캉 크가가가각’

귀산자의 철로 된 주판이 부서질세라 천살단원의 검을 막고 추혼단원의 대도를 섬전창과 벽안독검, 독안검이 힘겹게 흘려 내었다.

“커허어어억 크어어어억”

두 마디 신음소리와 함께 허리가 양단되어 엎어지는 두 추혼단원들을 뒤로 하고 천살단원이 급히 신형을 뒤로 빼다 자신을 목을 휘감는 무엇인가를 느끼고 세상이 빙글 돌았다.

“너, 너 정말 강하구나....”

벽안독검이 일검에 두 추혼단원을 베고 급히 도망가려는 천살단원의 머리가 둥실 공중으로 떠오르자 북리준을 놀란 눈으로 바라 보았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북리준이 관제묘 앞 광장에 벌어지는 전투의 양상의 보니 검은 피풍의의 물결만이 굽이 치고 있었다.

< 33. 당했군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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