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내기 >
“네, 이 관제묘를 중심으로 누군지 모르겠지만 거대한 진법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최근에 설치된 것이 아닌 오래된 것으로 저 안에서 도조장이 진을 발동 한다면 틈이 생길 것입니다.
진이 발동되면 필히 저의 뒤를 따라 주십시오, 다른 방향은 모두 죽음의 길입니다.”
자신들을 포위만 한 채 두 단주를 기다리는 마교도들을 곽대인이 굳은 얼굴로 일별했다.
“만일 도조장이라는 낭인이 실패 하거나 진이 너무 오래되어 발동 하지 않는다면?”
“그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오. 도조장이 실패 하거나 진이 발동하지 않는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밖에....”
철면신산의 말에 중인들의 얼굴이 굳어져만 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네, 니미럴...’
피투성이 혈인이 된 하후상이 팽무강에게 전음을 날렸다.
‘고작 반 시진 동안 우린 팔할의 병력이 날아갔는데 저 쪽은 칠할이 남았어. 죽기를 각오하면 그냥 뒤지는 거네...’
‘도조장이 성공 하기를 바랄밖에...’
관제묘 안에 들어선 북리준이 재빨리 폐허가 된 관제묘 안을 훑어보았다.
‘모든 것이 폐허로 변했는데 남은 건 관우상 뿐! 저 관우상이 진을 발동 시키는 열쇠 구나.’
‘휘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등을 가르며 날아 오는 대도를 가볍게 흘려낸 북리준이 자세를 바로 하고 도를 날린 추혼단주와 그 뒤에 서 있는 천살단주를 바라 보았다.
“도망갈 곳이 없어서 어쩌나? 네 놈의 양팔을 잘라 그 재미난 장난감을 취한 후 잘근잘근 포를 떠주마.”
추혼단주가 잔인한 미소를 얼굴에 떠올리며 흘흘거렸다.
“네 놈에게 줄 장난감이 아니니 눈독 들이지 마라. 그나 저나 네 놈과 칼을 섞기 전에 재미난 내기 하나 할까?”
북리준의 얼굴에 장난스런 표정이 떠오르자 추혼단주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더 떨 재롱이 남았느냐? 어디 한번 해 보거라.”
“이봐, 빨리 끝내고 나가자.”
천살단주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려 하자 추혼단주가 대도를 들어 막아섰다.
“어차피 놈들은 도망 못 가! 천천히 죽음의 공포를 만끽하고 가게 하자고. 저 어린놈이 무슨 재롱을 부릴지 궁금하지 않아?”
“일다경이다.”
“그 정도면 충분히 재미있게 놀 수 있지, 크크크.”
천살단주가 두 어 걸음 뒤로 물러서자 추혼단주가 자신의 대도를 들어 북리준을 가리켰다.
“무슨 내기냐?”
“저거 보여?”
북리준이 자신의 왼손을 들어 엄지로 뒤에 서 있는 길이 오장 폭이 이장이 넘어 보이는 거대한 관우상을 가리켰다.
“뭘 말하려는 거냐?”
“일도에 저 관우상을 양단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내기를 하자구.”
추혼단주가 대도를 어깨에 걸친 채 관우상 앞으로 걸어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호오, 통짜 참나무 인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추혼단주가 고개를 꺾어 관우상 위를 쳐다 보았다.
“그 쪽 먼저 가슴 어림을, 난 허리 어림을 일수에 완전히 베는 쪽이 이기는 거야.”
“내기라면 흥미를 돋우는 뭔가를 걸어야지, 안 그래?”
추혼단주가 북리준의 양 팔목에 둘린 묵빛수투를 탐나는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좋아. 내가 진다면 이 수투를 넘겨주지. 그러면 만일 내가 이긴다면?”
“이 관제묘를 그냥 벗어 나게 해 주마. 어차피 네 놈도 저 쪽으로 갈 거 아니냐? 편하게 가게 해주마.”
“크큭, 아주 공평한 내기구만. 좋아, 내가 만일 이기면 저 편에 합류할 때 까지 너희 둘은 여기에 머무는 조건으로 하자.”
북리준이 쿡쿡 거리며 웃자 추혼단주가 대도로 관우상 발치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지. 어차피 그 수투는 내 것이지만 네 놈이 자발적으로 넘겨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지.”
북리준이 추혼단주 어깨 너머 고요히 검을 늘어 뜨린 채 서 있는 천살단주를 쳐다 보았다.
“내기를 하는 동안 습격을 한다거나 비겁한 짓은 안 할 걸로 믿을께.”
“너 정도의 상대라면 예의를 지켜야지. 그 정도로 비열한 짓은 안 한다!”
“좋군! 먼저 선수를 양보 하지.”
북리준이 관우상에서 이십 여보 옆으로 물러나 팔짱을 낀 채 추혼단주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거 전력을 다해도 쉽지 않겠는데? 투지가 끓어 오르게 하는 놈이군.”
‘부웅 부웅’ 대도를 두어 차례 허공에 휘두르고 목을 좌우로 ‘뚜둑 뚜두둑’ 소리나게 꺾어낸 추혼단주가 관우상 앞에 섰다.
“하아아아아앗”
땅을 박차 허공에 신형을 띄운 추혼단주의 대도에 타고 흐르는 도기가 공간을 가르며 관우상의 가슴을 베어갔다.
‘크가가가가가가각 콰가각’
약 이장 정도 두께 참나무 관우상의 가슴을 우에서 좌로 수평베기를 한 추혼단주의 대도가 관우상의 가슴을 약 팔할 정도를 가르고는 멈추었다.
“이런 썅!”
추혼단주가 땅에 내려서 애먼 땅바닥에 도를 내리쳤다.
“후후, 이번에는 내 차례인가?”
“네 놈도 실패 할 것이다. 정말 튼튼한 나무를 썼군. 오랜 세월 동안 더 단단해 졌어.”
뒤에 무표정한 표정으로 서 있는 천살단주에게 변명 비슷한 것을 하며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내기의 약속을 꼭 지키기 바란다.”
“잔말 말고 검이나 휘둘러라.”
천괴의 남해무극칠절 중 ‘단섬’을 떠올리며 관우상 앞에 섰다.
‘단섬이란 말이다. 말 그대로 공간을 끊어 낸다는 말이다. 무림에 나가면 변변치 않은 무공에 휘황찬란한 무공명을 붙이는 정신 나간 놈들이 많은데 다 부질없다.
단섬은 네 놈이 시작하는 점부터 끝나는 점까지 빛의 속도로 갈라낸다는 말이다.
네 놈이 남해무극칠절을 대성 한다면 네 검에 갈라지지 않는 것은 존재 하지 않는다.’
천괴의 광오한 말을 떠올리며 건곤무극신공을 일주천하여 검에 기를 싣자 우유빛 검기가 검에 드리워졌다.
“서, 설마 저거 검강은 아니지?”
“검강은 아니다. 그런데 검기 치고는 좀 이상하군.”
천살단주가 독고준의 검에 덧씌워진 우유빛 검기를 보고 중얼 거렸다.
‘차하아아아아앗 파사사사사사삭‘
땅을 박차 어기충소를 신법으로 공중에 떠오른 북리준이 힘차게 검을 횡으로 베어 내었다.
’우르르르르르릉 콰가가가가쾅‘
허리 어림이 동강난 관우상의 상체 부분이 땅에 떨어져 내리며 땅을 울렸다.
“이겼네. 약속은 지키기 바란다.”
검을 수납한 북리준이 천천히 관제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다경 주마. 그 안에 네 놈의 뒤를 치겠다.”
추혼단주가 이를 꽉 깨물고는 도를 들어 올렸다.
“일다경.... 좋다!”
’왜 진이 발동 하지 않는 거지? 너무 오래되어 진법이 훼손된 건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뒷짐을 지고 관제묘를 나서는 북리준의 마음이 복잡해져갔다.
“어, 이게 뭐야? 여기 무너지는 거 아냐?”
갑자기 땅이 울렁 거리는 느낌에 추혼단주가 허물어져 가는 관제묘의 지붕을 올려다 보았다.
“저 거대한 관우상이 넘어졌으니 낡은 사당이 못 버티나 보다.”
천살단주가 뒷짐을 진 채 느릿하게 관제묘를 벗어나는 낭인의 뒷모습을 보고 중얼 거렸다.
“그 정도가 아닌데....”
디디고 있는 땅의 울렁 거림이 그 도를 더해 가자 추혼단주와 천살단주가 서로를 쳐다 보았다.
’우르르르르르릉 쿠르르르르르릉‘
마치 유부에서 광룡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땅 밑에서 들려 오며 순간 관제묘가 사정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과가가가쾅 끼이이이이익‘
폐허가 되어 모양만 갖춘 관제묘 전체가 사정 없이 흔들리며 무너지기 시작 하자 천살과 추혼단주가 급히 신형을 날렸다.
“시작이다!”
북리준이 뒷짐을 풀고 비천신보를 운용하여 공간을 단축 하며 남로로 날아갔다.
“이봐, 땅이 움직이지 않냐?”
청의 황태자 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한 천살단원이 옆에 서 있는 동료를 쳐다보았다.
“미친놈, 멀쩡한 땅이 왜...... 어, 정말이네.”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떨림이 느껴 지더니 시간이 갈수록 땅의 울렁거림이 극심해 지자 모든 장내의 인물들이 동요 하기 시작했다.
“성공했구나!”
철면신산의 얼굴에 희색이 떠오르며 급히 뒤를 돌아 보았다.
“제가 앞장 설테니 저를 따르시오.”
이제는 가만히 서 있기가 힘들 정도로 땅이 울렁거리자 철면신산이 질녀와 표시해 두었던 생로 앞에 섰다.
“숙부, 도조장이 아직....”
“늦으면 우리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 도조장의 무위를 믿는 수 밖에....”
’쿠르르르르르릉 콰아아아아아아‘
땅 속 저 편에서 괴수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와 함께 서 있던 땅에 금이 가기 시작 했다.
“어, 네 발 밑에 금이 생겼다.”
한 추혼단원이 옆에서 동료의 발 밑에 틈이 생긴 것을 발견 하고는 경호성을 내질렀다.
“오, 저, 저기를 봐....”
한 천살단원이 가리킨 곳을 중인들이 바라 보니 관제묘가 있던 자리가 무너지기 시작하며 시커먼 공간이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무, 무너진다. 모두 피해!”
관제묘에서 시작한 땅의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쩌저적 쩌적‘ 땅이 갈라지기 시작하자 일행들을 포위하고 있던 마교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오, 저기 대형이 오고 있소!”
독안검이 한 점 빛이 되어 날아 오고 있는 북리준을 가리키며 감동의 빛을 얼굴에 떠올렸다.
“빨리 이동 하시오. 빨리!”
북리준의 고함에 철면신산이 땅을 박차고 숲 안으로 뛰어 들어들었다.
’쩌저저저저저쩍 쿠콰과과과‘
관제묘 전체가 저 밑 무저갱으로 꺼져 들어 가고 그 주위의 땅이 삽시간에 꺼지며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마교도들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여기 저기 벌린 땅의 입에 삼켜진 무인들의 비명소리가 팔각채 전체를 뒤흔들었다.
“내가 밟은 곳만 밟으면 되오. 절대 대오를 벗어 나지 마시오.”
철면신산이 이틀 전 질녀와 도조장과 함께 확인한 생로의 말뚝을 보고 신형을 날렸다.
“뒤는 내게 맡기고 전진 하시오!”
북리준이 대오의 말미를 따라 붙으며 급히 검을 빼 들고 신형을 돌렸다.
’따아아앙 따땅’
“이 개자식이 우리를 속였어!”
어느새 따라 붙은 추혼단주가 북리준을 향해 사납게 대도를 뿌려냈다.
“이만 따라 오너라!”
북리준의 검이 거대한 몸체의 파도를 일으키며 추혼단주와 천살단주를 덮쳐갔다.
‘만파는 말이다. 말 그대로 파도의 산이다. 검으로 일으킨 만 개의 파도, 누가 그것을 거스를 수가 있겠느냐?’
‘따다다다다다다다당 파바바바바박’
천살단주와 검과 추혼단주의 대도가 자신들을 덮쳐 오는 파도를 맞이해 어지러이 춤을 추었다.
‘크아아아아악 으으윽’
천괴의 말대로 북리준의 검에서 솟아 오른 만 개의 검기의 파도에 추혼단주와 천살단주가 속절없이 쓸려 뒤로 튕겨 나갔다.
“도대체 저 자는....”
대오의 말미에 북리준과 두 단주가 검을 부딪는 모습을 본 팽무강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 탁월한 선택에 경의를 표한다.”
언철진이 저 낭인을 임무에 포함 시킨 팽무강 옆에서 고개를 흔들었다.
“빨리 앞장 서시오.”
두 단주를 일수에 패퇴시킨 북리준이 파리한 얼굴로 팽무강과 언철진에게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오를 쫓아가자 북리준이 지옥도로 변한 정경을 돌아 보고는 신형을 날렸다.
< 35. 내기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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