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허허실실 >
‘쿠구구구구구궁 콰과가가가가가콰쾅’
마치 세상이 멸망 하는 듯한 굉음이 연신 뒤에서 들려오고 앞에서 사력을 다해 나아가는 철면신산과 제갈청하의 뒤를 일행들이 미친 듯이 따라 붙었다.
“조심!”
철면신산이 밟은 길 양 옆으로 땅들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에 뒤에 따라 붙던 북리준이 소리를 질렀다.
“이, 이런.. 크아아아악”
팔기에 속한 고수가 옆으로 발을 잘못 디뎌 양 옆에 입을 벌린 무저갱으로 떨어져 내렸다.
“밑을, 밑에만 보시오!”
철면신산이 정면을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허억....”
저 앞에 철면신산의 뒤를 쫒아 가던 유공공이 디딘 땅이 무너져 내리며 신형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유공공!”
뒤에 따르던 곽대인이 손을 뻗었으나 닿지 않고 곽대인의 등에 업힌 태자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발을 디디시오.”
기우뚱 무저갱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패애애앵’ 북리준이 날린 륜이 유공공의 떨어지는 발 밑으로 날아 들었다.
‘타다다닷’ 자신의 발밑을 받친 륜을 밟고는 생로 위에 겨우 올라선 유공공이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앞으로 가시오. 빨리!”
북리준이 자신이 밟아온 길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내공이 담긴 목소리로 내질렀다.
북리준의 말에 철면신산이 온 힘을 발에 모으고 속도를 배가 하자 살아 남은 일행들이 죽자 사자 신형을 날렸다.
‘콰르르르르르릉 콰르르릉 쿠콰과가가가쾅’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연이어 죽어라 신형을 날리는 일행의 뒤를 쫓아왔다.
“조금만 더 가면 되오. 힘들 내시오.”
북리준의 눈에 철면신산과 함께 미리 탐색을 마친 생로의 끝이 저만치 보였다.
“이런.....”
북리준이 자신이 딛고 있던 땅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에 자신의 앞에 선 팽무강과 언철진에게 소리를 질렀다.
“둘 다 내 다리를 잡아! 빨리.”
북리준의 양손이 떨쳐지자 일월쌍륜이 저 앞 거대한 나무에 휘감기고 신형을 띄운 북리준의 양발을 팽무강과 언철진이 두 손으로 부여 잡았다.
“다 왔다....”
철면신산이 생로가 끝나는 지점의 공터에 큰 대자로 뻗어 거친 숨을 쉴 때 제갈청하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 왔다.
“아아아악, 무강아, 철진아, 도조장....”
맨 후미에 땅을 박차던 세 사람의 신형이 훅 아래로 꺼져 보이지 않자 제갈청하가 앞으로 튀어 나가려고 하는 것을 모용민이 잡았다.
“늦었어....”
“하아, 대형.....”
독안검이 땅에 주저 앉아 망연한 표정을 짓고 유공공과 곽대인, 태자가 허망한 눈으로 무너지 길을 응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흐흐흑, 무강아, 철진아...... 도천학 이 나쁜 놈아!”
제갈청하가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소리에 겨우 살아남은 일행들이 무거운 얼굴로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응분의 보상을 하시오. 충분히....”
자신들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한 낭인을 애도하며 태자가 유공공에게 명을 내렸다.
“야이, 병신새끼들아! 니 놈들이 네 앞에 있었어야지. 왜 뒤로 처져서 뒤지고 지랄이야?”
하후상이 무저갱으로 변해 버린 곳 끝에서 울부짖으며 무릎을 꿇었다.
“볼만 한데?”
“저 년이 우리를 위해서 울 줄은 몰랐는걸”
“그 응분의 보상, 확실히 받겠소!”
뻥 뚫린 무저갱을 원망스런 눈으로 바라 보고 있는 일행들의 뒤에서 생각지도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허억, 대, 대형!”
독안검이 팔짱을 낀 채 웃음을 짓고 있는 북리준에게 뛰어가고 이어 제갈청하가 눈물을 흩뿌리며 그 뒤를 따랐다.
“어, 어떻게? 분명이 밑으로 떨어졌는데...”
“여기 도조장 덕분에 살았어. 땅이 꺼지는 순간 도조장의 발을 붙잡고 저 뒤쪽 나무까지 날아갔다구. 아주 볼만하던데? 크크크, 커억!”
제갈청하가 오른팔꿈치로 웃고 있는 팽무강의 복부를 내갈겼다.
“좋냐? 이 미친놈들아....”
유공공이 다가 오는 북리준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목숨을 빚졌소. 고맙소!”
“다음에 다른 걸로 갚으면 됩니다.”
“물론이지요.”
유공공의 뒤에 서 있던 황태자가 앞으로 나섰다.
“이름이 무엇인가?”
“도천학이라 합니다.”
“그대에게 우리 전부가 큰 빚을 졌구나. 이 상황을 벗어난 후 그대와 술 한잔을 하고 싶구나.”
“고대 하고 있겠습니다.”
살아남은 일행들이 자신들의 뒤에 생긴 거대한 무저갱을 바라보며 몸서리를 쳤다.
“도대체 왜 멀쩡한 땅이 무너져 내린 거야?”
벽안독검이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입을 벌리고 있는 거대한 동공에 머리를 내저었다.
“나중에 도조장에게 물어 보자. 천재지변에 준하는 일이 바로 이건가 보다.”
섬전창이 저 뒤에서 황태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북리준을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 보았다.
“다들 모여 주시오.”
철면신산의 말에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는 생존자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일단 생존자 인원을 파악한 후 움직이기로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황실소속, 세가, 낭인분들 끼리 모여 주셨으면 하오.”
철면신산의 말에 황태자를 중심으로 황실 소속 무인들이, 세가와 낭인들이 각각 모여 앉았다.
“황실은 몇 분이 계십니까?”
“태자저하, 유공공님, 정백 기주, 나 까지 총 네명이 살아 남았소.”
곽대인이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세가 쪽은 하후상, 모용민, 언철진, 제갈청하, 철면신산대협, 저 총 여섯입니다.”
팽무강이 무거운 얼굴로 보고를 했다.
“낭인은 도조장, 벽안독검, 독안검, 귀산자, 저를 포함하여 총 다섯입니다.”
섬전창의 말에 철면신산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백명이 넘게 들어가 열 다섯이 남았군...”
“혹시 물 가진 사람 없는가?”
황태자가 갈라진 입술을 혀로 적시며 일행들을 돌아 보았다.
“이 곳에서 가까운 곳에 우리 낭인들이 말과 짐을 숨겨 놓았습니다. 먼저 그곳을 확인 했으면 합니다.”
북리준의 말에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시게.”
철면신산의 말에 제일 상처가 적은 북리준과 섬전창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한 식경이 채 안 걸릴 것 같습니다.”
섬전창과 북리준이 말과 짐을 가지러 자리를 뜨자 생존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베이고 찔린 상처를 돌보기 시작했다.
“마교 놈들, 아주 칼 갈았던데?”
“멸문된 줄 알았더니 아직 질기게 살아 있는 모양이야.”
“오삼계가 화남지방을 먹으면 양지로 몸을 드러낼 계획이었나 봐.”
“돌아가면 마교 놈들에 대해 천무맹과 사황련에 둘 다 알려야 겠다.”
철면신산의 말에 세가의 후기지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천학이라는 낭인 말입니다.”
곽대인이 여기 저기 베인 상처에 금창약을 바르며 은근한 어조로 유공공을 바라 보았다.
“말해, 뭔데?”
“저런 무공을 가지고 왜 낭인 생활을 하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군요.”
“뭔 말 못할 사정이 있겠지.”
“혹시 나라에 죄를 지어 쫓겨 다니는 죄인이라면 태자 저하가 사면을 해 주시고 궁으로 데려 가는 것이 어떨까 해서요.”
곽대인의 말에 유공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하면 그때 알아보자. 물론 태자 저하의 허락이 있어야겠지.”
“아까 못 보셨소? 우리가 일대일로 쩔쩔매던 마교의 두 단주를 일검에 나가떨어뜨린 거요.”
“봤네. 무시무시한 검공이더군.”
“저런 자를 금의위에 들이면 태자 저하의 힘이 더욱 공고해 지는 겁니다.”
“왜 금의위 인가? 동창도 제격이지.”
“허허, 제가 먼저 이야기 했습니다.”
“네 놈이 나를 이겨 먹으면 그때 가서 데려가라.”
그 때 저 편 숲이 흔들리자 하후상과 팽무강이 급히 창과 도를 들었다.
“다행히 말과 물건이 그대로 있습니다.”
섬전창과 북리준이 말 열 필과 말 위에 실린 물건을 가지고 공터로 나아왔다.
“저하, 목을 축이시지요!”
곽대인이 섬전창이 건네 물주머니를 태자에게 두 손으로 건네었다.
“크하아아, 살겠다. 목 말라 뒤지는 줄 알았네.”
하후상이 물 주머니를 받아 벌컥 거리며 물을 마시고는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네!”
북리준이 건네준 물 주머니를 받아든 철면신산이 자신의 옆자리를 손을 탁탁 쳤다.
“이리 앉으시게.”
섬전창과 벽안독검, 독안검 등이 벽곡단과 물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북리준이 자리를 잡았다.
“자네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저 곳에서 뼈를 묻었을 걸세.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대협이 일개 낭인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귀 담아 들어 주셨으니 이리 잘 풀린 것이지요.”
“일개 낭인? 이봐, 자네 무공이 일개 낭인이 펼칠 무공이야?”
하후상이 존경의 염이 떠오른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
“운이 좋았을 뿐이오.”
“운이 두 번 좋았다간 천하제일인이 되겠군.”
제갈청하의 말에 일행들이 웃음을 지었다.
“아까 그리 질질 짜던 가녀린 낭자는 어디 갔을꼬?”
“그 입 찢을 힘은 아직 남아 있다!”
소리 없이 비도를 꺼내든 제갈청하를 보고 하후상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도형! 목숨 빚을 졌소. 나중에 팽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하시라도 찾아 주시오.”
“언가도! 정말 고맙소.”
언철진이 포권을 취하며 예를 표하자 북리준이 웃으며 화답했다.
“전 찾아 오라면 진짜 찾아 갑니다. 기둥 뿌리 하나 뽑을 생각 아니면 부르지 마십시오.”
“제갈세가는 두 개라도 뽑을 테니 꼭 찾아 오게.”
철면신산의 말에 제갈청하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꼭 찾아 가겠습니다. 그 때 박대하시면 안됩니다.”
“배은망덕한 짓을 하는 놈이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 하시오. 이 창으로 항문을 찔러 줄테니.”
“으이구! 찔러도 꼭 저 같은데만 찔러요.”
“내가 왜 항문같은데? 저 년이 뭐라는 거야?”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았다는 안도감에 일행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때 북리준이 나직한 목소리로 철면신산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직 이 곳은 적지입니다. 분명 오삼계 군이 마교도에게 우리를 온전히 맡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북리준의 말에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들었던 일행들이 현실로 돌아왔다.
“여기는 우리가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간단한 응급처치 후 이 곳을 떠나야 합니다. 제가 오삼계 라면 살아남은 자들이 호북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것입니다.”
“저 지옥에서 우리가 다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어느새 무림세가가 모여 있는 곳으로 모여든 일행 중 곽대인이 질문을 던졌다.
“오삼계라는 자는 명나라의 장수였다 청나라에 투항한, 전장에서 먹고 자던 군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가 허술하게 아무리 무공이 높은 마교에게 일을 맡겼다지만 결말을 알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손 놓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 하지 못했다.
“그럼 어찌 했으면 좋겠나?”
유공공이 북리준에게 호감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단 이 곳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갔으면 합니다.”
“왜 남쪽으로? 우리는 북쪽으로 가야 되는데?”
하후상의 물음에 제갈청하가 하후상의 뒤통수를 갈겼다.
“너 같은 병신도 북으로 간다고 알고 있는데 저 쪽은 모르겠냐? 허허실실, 적의 의표를 찔러 반대로 이동한다는 거야.”
“제갈소저의 말이 맞습니다. 이 곳을 중심으로 분명 호북지방으로 넘어가는 모든 길을 오삼계군이 다 막고 있을 것입니다.”
북리준과 제갈청하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얼마만큼 남하할 생각인가?”
태자의 말에 북리준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 36. 허허실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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