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37화 (37/167)

< 37. 양파 같은 놈 >

“여기 잠시 계시면 제가 저희 일행들이 무사히 머물만한 장소를 찾아 보겠습니다.”

“그런 장소가 있겠나? 놈들이 샅샅이 수색을 할 텐데?”

철면신산의 말에 북리준이 제갈청하를 바라 보았다.

“소저, 지난 번 내기 기억 하시오?”

“내기? 아, 환환미진!”

“제 계획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진법을 설치할 생각입니다. 이 진은 우리 일행이 숨을 수만 있는 간단한 진입니다.

우리는 그 진 안에서 최소 사흘 최대 닷새를 버티다 적들이 포기 할 때 쯤 은밀하게 단숨에 호북으로 치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호오, 그런 진도 알고 있는가?”

유공공이 감탄어린 표정으로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무공이면 무공, 진법이면 진법... 역시 우리 대형이네.”

독안검이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슴을 쭉 폈다.

“그런데, 우리 일행들이 닷새를 버틸 수 있겠나? 물과 식량을 말함일세.”

곽대인의 말에 섬전창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저희 낭인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벽곡단과 상비약 등을 항상 넉넉히 소지하고 다닙니다. 최대한 아낀다면 도조장 말대로 닷새를 버틸 수 있습니다.”

“물은 이 곳에서 조달하면 됩니다. 섬전창 형님과 제가 장소를 물색 할 동안 이 곳 말고 저 안 쪽 숲속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이 곳은 너무 사방이 트여 있어 은신 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일행들이 말과 짐을 챙겨 숲 속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전멸?”

관제묘 입구에서 전황을 관망하다 급격히 땅이 무너지는 천재지변에 물러선 군관 중 한 명이 전신갑주를 입은 위맹한 자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갑자기 관제묘 주위가 땅으로 꺼져 들어가 그 안에 있던 자들이 전부 매몰 되었습니다.”

두 번왕과의 회담 시 황태자를 사로잡을 거라는 말로 회유를 하고 나온 오삼계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놈들이 빠져 나갔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보여 집니다. 너무 삽시간에 땅이 꺼지는 바람에 멀리 관망하던 저희도 자칫 땅에 묻힐 뻔 했나이다.”

거대한 태사의에 몸을 묻고 한 손에 장검을 땅에 꽂은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오삼계의 입이 열렸다.

“관제묘를 중심으로 호북으로 가는 모든 길을 차단한다. 만에 하나 놈들이 살아 돌아간다면 대국이 어그러진다. 두 번왕이 황태자가 살아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내게 등을 돌릴 것이 명약관화하다.”

“존명!”

“별도의 명을 내릴 때 까지 호북으로 가는 모든 길을 차단하고 관제묘를 중심으로 북으로 올라가는 그리고 남으로 내려 가는 모든 곳을 샅샅히 수색한다.”

군관이 오삼계의 명을 받아 조치를 취하기 위해 거대한 군막을 벗어났다.

“그나 저나 마교 쪽에는 뭐라고 해야 하나? 허허, 땅이 꺼져 전멸이라니....”

****

“뭐라는 거야? 전멸?”

흰색 문사복을 입고 커다란 비취가 박혀 있는 검은색 영웅건을 두른 매서운 인상의 인물이 방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자세히 고하라!”

맞은편에 검은색 문사복에 노란 호박이 박혀 있는 흰색 영웅건을 두른 인자하게 생긴 인물이 말을 받았다.

“천살단, 추혼단이 청조의 황태자를 포함한 적도를 도살하는 중에 관제묘를 중심으로 사방 천여장이 함몰 되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동 안으로 저희 신교도들과 적도들이 다 떨어져 내렸다고 합니다.”

“오삼계는 뭐라 하는가?”

“전혀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으로 파견해 준 고수들을 잃게 되어 애석하다고 전해 달라고...”

“갈! 애석하다?”

“진정하게, 좌사!”

광명우사가 흥분해서 자리에서 일어선 광명좌사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오삼계의 전언이 더 있습니다.”

광명좌우사에게 보고를 하던 오행기주의 얼굴에 난처한 빛이 떠올랐다.

“주저하지 말고 고하라.”

검은색 문사복의 광명우사가 오행기주를 재촉했다.

“만에 하나 황태자 일행이 생존하여 복귀한다면 대국에 지장을 주게 되니 적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 하고 혹여 살아 있다면 추적할 수 있는 무인들을 내어 달라고 합니다.”

“우사, 오삼계의 멱을 따자. 어디 감히 박쥐같은 놈이 위대한 신교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

광명좌사가 이를 부득 갈며 신경질적으로 앞에 놓인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교주님이 폐관수련에 들어가시면서 오삼계와 잘 지내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천살단과 추혼단의 일도 적도의 손이 아닌 땅이 꺼지는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일이니 오삼계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잖은가.”

“하아, 천살단과 추혼단이 어떤 곳인가? 우리 신교의 최정예 무투조직 아닌가? 신교의 광영을 위해 쓰여져야할 교도들이 저런 쓰잘데기없는 일에 목숨을 내려 놓다니....”

광명좌사의 탄식에 우사가 천천히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신교의 광영을 위한 순교이니 그들로 기꺼운 마음으로 갔을 거네. 그나저나 생존자의 유무를 확인하고 여차하면 추적까지 해야 한다?”

“귀혈루 살수 새끼들이 제격이지....”

중원 삼대 살수 조직 중 하나인 귀혈루가 마교와 거래 중 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 이었다.

“귀혈루에 의뢰를 넣으시게. 파견은 한 개 대 전체, 청부 내용은 생존자 유무 파악 및 생존자 발생 시 추적 살해까지로 하지.”

“존명!”

오행기주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포권을 취한 후 방을 나섰다.

“오십년을 와신상담했는데 그 몇 달을 못 참겠는가? 좀 더 자중 하시게.”

선대 광명좌우사에게 무공과 내공을 사사받은 두 사람이 기꺼운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준 스승들을 떠올렸다.

“답답해서 그러네. 교주님의 폐관이 생각 보다 길어져서 말이야.”

“때가 되면 나오시겠지. 우린 그저 교주님이 저 중원무림을 향해 검을 드실 때 신경 쓰실 만한 것들을 치우고 있으면 되네.”

전혀 상반된 외모와 성격을 지닌 광명좌사와 우사가 서로 잔을 주고 받았다.

****

“잠시만!”

섬전창과 함께 숲을 헤치고 나아가던 북리준이 숲이 끝나는 절벽 앞 사방 약 오십여장 되는 공터 앞에 섰다.

“형님, 물소리가 들리는 듯 한데 어디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지 확인 부탁 드리오. 난 여기서 잠깐 살펴 볼 게 있어서...”

“알겠네!”

섬전창이 최대한 신형을 낮추고 물소리가 들려 오는 곳으로 신형을 날리자 북리준이 공터 한 가운데 서서 방위를 셈하기 시작했다.

“동쪽이 절벽으로 막혀 있으니 햇볕으로 인한 진의 투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삼방이 숲으로 막혀 있으니 이 곳에 진을 설치하면 되겠구나.”

북리준이 숲으로 들어가 어른 팔뚝 만한 나무와 어린아이 몸 정도 되는 바위들을 연신 공터 주위로 나르기 시작했다.

“동생, 다녀왔네. 여기서 반다경 거리에 식수로 쓸만한 냇물이 흐르고 있네.”

“잘되었군요. 잠시만 쉬고 계시지요.”

“도대체 뭘 하는 건가?”

북리준이 나무와 바위들을 들고 공터 저 쪽에서 이 쪽, 다시 반대로 종횡무진 오가며 공터 가장자리 수풀 보이지 않는 곳에 때로는 나무를 때로는 바위를 신중하게 내공으로 땅에 박아 놓고 있었다.

“잠시만요.”

북리준이 약 스물이 넘는 나무와 바위를 공터 주위에 진법에 의거 하여 설치한 후 마지막 자신의 상체 정도 되는 나무를 들고 주위를 세밀하게 살폈다.

“이게 마지막 이군.”

북리준이 자신의 발 밑에 들고 있던 나무를 땅에 박아 넣자 공터를 주시하고 있던 섬전창의 입이 한껏 벌어졌다.

생로의 마지막에 위치한 공터에서 남쪽으로 이동하여 찾은 숲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일행들이 섬전창과 북리준이 나선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왔군!”

유공공의 말에 수풀이 잠시 흔들리더니 북리준과 섬전창이 일행들 앞으로 나섰다.

“머물 장소를 찾았습니다. 이동하시지요.”

북리준의 말에 말굽에 헝겊을 대고 입마개를 한 말들과 군막등을 챙긴 일행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희들 가서 깜짝 놀랄거다.”

섬전창이 벽안독검과 독안검, 귀산자에게 다가와 싱글벙글 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뭐 깜짝 놀랄 게 있수? 혹시 객잔이라도 찾은 거유?”

벽안독검의 농담에 여전히 미소를 띈 얼굴로 섬전창이 대답을 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일 거다. 기대 해라, 흐흐흐.”

“하아, 도조장을 만나고 나서 우리 형님 많이 이상해졌네. 뭐가 그리 좋소?”

“그냥 다 좋다!”

최대한 은밀하게 약 한식경 정도 무성한 숲을 뚫고 나가니 정면에 거대한 절벽이 눈앞에 섰다.

“절벽이네. 막다른 곳인데 어디로 가지?”

하후상이 막다른 하얀 절벽의 끝은 고개를 직각으로 꺾어 쳐다 보았다.

“설마 저리로 올라가라는 것은 아니겠지?”

“다 들 오셨습니까?”

북리준이 맨 후미에 선 섬전창을 바라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따르시지요.”

“어디로 가라구?”

하후상이 자신의 앞으로 나서는 북리준을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 보았다.

“어, 어, 어...”

북리준이 거침없이 절벽을 향해 나아가자 하후상이 어어 거리며 말리려는 찰나 북리준의 신형이 절벽 안으로 쑤욱 들어갔다.

“저, 절벽으로 들어 갔어....”

“따라 오라구!”

“히익.”

북리준의 상체가 절벽에서 튀어나와 놀란 하후상을 향해 손짓을 했다.

“진이군.”

“환환미진이라는 군요. 제가 못 풀었던...”

철면신산과 제갈청하가 거대한 절벽 안에서 상체를 내밀며 손짓하는 북리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 놈의 한계는 어디까지죠?”

“정말 양파 같은 친구군. 까도 까도 새로운 속살을 보이니 말이다.”

하후상을 비롯한 일행들이 절벽 안으로 신형을 밀어 넣자 마지막으로 섬전창이 주위를 살피고는 자신의 신형도 밀어 넣었다.

“허어...”

안에 들어서 밖을 보니 흐느적거리는 투명한 막이 연신 움찔 거리고 마치 닦지 않은 유리 너머의 풍경을 보는 듯 했다.

“참으로 신기하구나.”

황태자가 진 너머의 흐릿한 숲 정경을 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이 진은 밖에서 보셨다시피 절벽으로 보입니다. 물론 물리적으로 밀고 들어오면 이렇게 들어 설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넉넉하다면 이 진에 진입하는 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진을 만들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 진이 한계입니다.

이 곳에서 최소 사흘 정도 각자의 상처와 내상을 치료 한 후 복귀할 방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북리준의 말에 일행들이 얼굴에 화색이 돌며 여기 저기 주저앉았다.

“질문 하나 해도 되는가?”

곽대인이 손을 들고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말씀 하시지요.”

“여기에서 내는 소리는 밖에서 들리는가?”

중인들이 모두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를 곽대인이 대표로 질문을 했다.

“시각과 청각을 교란시키는 진으로 여기서 나는 소음은 밖에서 들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밖에서 나는 소음은 저희가 들을 수 있게 진을 펼쳤습니다.”

“호오, 신기한지고....”

유공공이 새삼스런 표정으로 서 있는 북리준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 곳에서 약 반다경 정도 거리에 냇물이 흐르고 있어 물에 대한 걱정은 덜었습니다. 지금부터 각자의 상처와 내상을 돌보시고 최상의 몸상태를 빨리 만드셨으면 합니다.

어떤 변수가 발생해서 계획대로 안 될 경우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무력 뿐입니다.”

< 37. 양파 같은 놈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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