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생존자가 있소 >
북리준의 말에 각자의 소속끼리 모여 상처를 치료 하고 내상약을 먹고 서로 호법을 서 주며 진기요상을 시작했다.
“벽곡단과 물은 한 시진 후 날이 저물면 나눠주지요. 저는 잠시 밖을 살펴 보고 오겠습니다.”
북리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철면신산이 손을 들었다.
“자네도 좀 쉬시게.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제일 많이 움직인 사람이 자네일세.”
“저는 아직 까지 움직일 만 합니다. 그리고, 이 곳을 다시 찾아 올 사람은 저 밖에 없구요.”
“여러모로 수고가 많네. 부탁 하네.”
철면신산이 마교도와 싸움에서 얻은 내상이 도지는 것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내일 중으로는 별일 없을 것입니다. 워낙 큰일이 터져 적들도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북리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을 벗어나자 황태자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유공공!”
“말씀하시지요.”
“저 도천학이라는 낭인 말일세. 우리가 무사히 생환하게 된다면 보은할 수 있는 방안을 꼭 찾아 주시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곽대인과 논의를 해 보았는데 아예 궁으로 들여 동창에서 직위를 주었으면 합니다.”
“허어, 유공공! 동창이라니요? 금의위에서 중히 쓰겠다니까요.”
옆에서 조용히 금창약을 자상에 바르고 있던 곽대인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입 닥치고 약이나 발라. 저 자는 동창에서 쓸 예정이니.”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저 도조장은 양보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다른 것을 말씀해 주시면 다 드리지요.”
“허어, 태자 저하 앞에서 자꾸 추태를 부릴텐가?”
둘이 옥신각신 하는 모습을 본 태자가 웃음을 지었다.
“동창이건 금의위건 난 다 좋소. 저런 인재가 대 청조를 위해 일해 준다면 이 또한 황실의 홍복이 아니겠소?”
“야, 너도 이런 거 만들 줄 아냐?”
어느 정도 몸을 추스린 하후상이 쩔뚝 거리는 걸음으로 제갈청하 옆으로 다가왔다.
“당연하지. 대 신기제갈가를 뭘로 보고?”
“그런데 말이지.... 저 도조장이 너 보다 한 수 위 맞지?”
하후상이 헤벌쭉 웃음을 지으며 묻는 얼굴에 비수를 던질까 말까 망설이던 제갈청하가 이를 악다물었다.
“부, 분하지만 맞다, 이 병신새끼야!”
“왜 지가 모자란 걸 나한테 지랄이야?”
“네 놈이 매가 부족한 모양이다. 어디에 비수를 꽂아 줄까?”
“그렇다는 거지 뭐! 항상 네가 우리를 덜 배웠다고 해서 난 네 년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줄 알았지..... 크흠, 난 간다!”
두 손 가득 비도를 뽑아든 제갈청하를 보고 하후상이 쩔뚝 거리며 바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팽무강에게 다가간 하후상이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냐?”
“어, 도조장에 대해서....”
“뭘?”
하후상의 되물음에 팽무강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저런 무위에 능력을 가지고 왜 낭인 생활을 하고 있나 궁금해서...”
“그지? 나도 그런 생각이 막 머리에 떠오르더라. 저 정도 무공에 능력이면 어디 가도 대우를 제대로 받을 텐데 말이야. 당장 우리 하후세가에 온다면 최대 빈객으로 모셔야지.”
“혹시 나라에 죄를 지었나?”
“나라에 죄? 혹시 역적?”
“임마, 말 조심해! 저 쪽에 동창과 금의위가 있어.”
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는 곁눈질로 연신 옥신각신 말을 주고 받는 유공공과 곽대인을 쳐다 보았다.
“만약 네 말대로 그런 일에 연루 되었다면 우리 세가 측에서 힘을 써 줘야돼. 나라에서 제일 큰 죄가 역모인데 거기에 연루 되었다면 평생 도망 다녀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건 무강이 말이 맞다.”
어느새 철면신산과 제갈청하, 언철진, 모용민 등이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생환하게 된다면 일단 황실쪽과 도조장을 떼어 놓고 왜 낭인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연유를 묻도록 하자.”
“본인이 밝히기를 꺼려하면요?”
제갈청하의 말에 철면신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싫다면 강요할 수는 없지. 다만 우리가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이야기 해야지.”
“우리 전체가 그에게 목숨 빚을 졌으니 보답을 해야지요.”
팽무강의 읊조리는 듯한 말에 중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왔는가?”
북리준이 진법안으로 들어서자 불안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 보고 있던 섬전창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이 아직 여력이 없는 모양입니다. 다만 북쪽으로 가는 길목이 군사들로 부산한 걸로 봐서 호북으로 가는 길은 다 차단 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북리준의 옆으로 다가온 일행들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일단 여기 앉아서 이야기 해.”
제갈청하가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얼굴의 북리준을 보고 자신의 품에서 수건을 건넸다.
“고마워!”
제갈청하가 건네준 수건으로 얼굴에 흥건한 땀을 닦고는 자리에 앉자 북리준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저 미친년이 자기 수건을 줬어.... 너 저 년이 남에게 수건 주는 거 봤냐?’
하후상이 동그래진 눈으로 팽무강에게 전음을 날렸다.
‘수건이 아니라 옷이라도 찢어 줘야지...’
‘하긴....’
“관제묘 주위에는 군사들이 깔려 있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적장들의 이야기를 얼핏 들어보니 호북으로 가는 길은 모두 차단 되었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북리준의 말에 유공공과 곽대인이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현재는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군관들은 전부 다 저 구덩이에 빠져 죽었을 텐데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 하더군요.”
“그럼 이 곳에서 최대한 버티면 알아서 다 물러가는 거 아닌가?”
섬전창의 말에 중인들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철면신산대협, 마교에서 천살단과 추혼단의 위상이 어찌 되는지요?”
갑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북리준의 말에 철면신산이 바로 입을 열었다.
“오십 년 전 마교 내 최고의 무투조직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간다고 알고 있네.”
“전 마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자기들이 보낸 최고의 무투조직이 당했는데 적들도 같이 죽었을 거라 판단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것 같습니다.”
“그건 자네 말이 맞네. 마교라는 종자들은 죽음을 순교로 받아 들이며 영광 스럽게 생각하지만 ‘피의 복수’ 라는 말로 적들에게 열 배의 보복을 한다네.”
철면신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북리준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제가 마교라면 자신들의 형제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적들이 정말 죽었는지 필시 확인을 할 것입니다. 만일 그 적들이 살아 있다면 대협의 말대로 ‘피의 복수’를 하겠지요.”
북리준의 말에 이 진 안에서 버티다 적들이 물러나면 손쉽게 생환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어두워져갔다.
“최대한 저희의 흔적을 지우면서 이 곳으로 이동해 왔지만 추적의 전문가가 붙는다면 이곳이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흘 안에 최고의 몸상태를 만들고 이동을 했으면 말씀드린 것입니다.”
북리준이 말을 마치고 중인들을 돌아 보자 유공공이 황태자의 허락을 받고 입을 열었다.
“도조장의 말이 맞네. 여기에서 안일하게 머무는 것은 너무 위험하네. 나도 도조장의 의견대로 사흘 후 귀환하는 것이 좋을 듯 하네.”
“유공공님과 도조장의 말대로 앞으로 상황을 보아 사흘 후 호북으로 향하는 것으로 하고 그 전에 최대한 몸상태를 정상으로 만들도록 노력 하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철면신산의 말에 다들 동의를 하고 낭인들이 나누어 주는 물과 벽곡단을 챙겨 들고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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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땅이 꺼져 버린 거대한 동공 앞에 흑색야행의에 복면을 한 인물 하나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고 그 뒤에 한쪽 무릎을 꿇고 대기 하는 이십인의 같은 복장의 무인들이 있었다.
“이 곳에서 살아나간 생존자의 유무를 먼저 파악한 후 만일 생존자가 있다고 판단되면 지체없이 그 뒤를 쫓는다.”
귀혈루 소속 암영추혼대주의 말에 이십인의 대원들이 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복명!”
소리 없이 신형을 일으킨 살수들이 거대한 동공 주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생존자의 유무는 언제쯤 알 수 있겠소이까?”
오삼계 휘하 군관이 암영추혼대주에게 다가왔다.
“하루면 충분 하외다!”
“알겠소. 결과가 나오면 내게 알려 주시오.”
살수 한명 한명이 추적의 달인으로 구성된 암영추혼대의 살수들이 퍼져 나가는 모습을 본 대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누군가 살아 나갔어.....”
약 반나절이 지난 시각!
‘삐이이이익’
살수들에게만 들리는 신호적 소리에 군막 안에서 술병을 기울이던 암영추혼대주가 거구의 신형을 일으켰다.
“찾았군!”
약 한 시진 후 북리준 일행들이 머물다 떠난 생로의 끝 부분에 위치한 공터에 암영추혼대 전원이 모여 있었다.
“이 곳에서 약 이십명 안쪽의 인원들이 말과 함께 이동한 지 사흘이 채 안 되었습니다.”
“저 곳이 무너진 후 바로군. 역시 생존자가 있었어.”
대주의 중얼거림에 부대주가 계속 보고를 이어갔다.
“저쪽 방향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쫓아라.”
“복명!”
부대주의 지시 하에 일사불란하게 공터를 중심으로 살수들이 퍼져 나갔다.
“부대주, 오삼계 군에 전해라. 생존자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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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가 있다고 합니다.”
오삼계가 신형을 묻고 있는 태사의를 향해 군관이 보고를 올렸다.
“지금 까지 우리에게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황태자 무리겠군.”
“지금 마교에서 보내준 살수들이 뒤를 쫓고 있습니다. 조만간 적들과 조우 할 듯 싶습니다.”
군관의 보고에 오삼계가 빈 술잔을 들자 옆에 서 있던 군관이 술잔을 채웠다.
“황태자의 목숨은 붙여 놓으라 전해라. 나머지는 다 죽여라.”
“존명!”
군관이 군막을 벗어나자 오삼계가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황태자, 당신이 살아 있어야 해. 살아 있는 당신이 내게 절실히 필요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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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안에서 각자의 상처를 돌보고 원기를 회복 한 지 이틀이 되는 날 저녁!
북리준이 혼자 정찰을 나가기 위해 진을 나서려는 순간 갑자기 신형을 낮추었다.
“모두 저 밖을 보시오.”
두런 두런 서로 대화를 나누던 중인들이 북리준의 말에 밖을 바라 보았다.
“군인은 아니다...”
흑색 야행의와 등에 두 자루의 칼을 멘 두 명의 복면인이 진법 앞 수풀에서 신형을 일으켰다.
“여기에서 끊겼다.”
“절벽인데? 저 위로?”
두 명이 진법 절벽을 바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북리준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살수들인 듯 합니다. 저희들의 꼬리를 잡혔습니다.”
두 살수가 서로 번갈아 주위 수풀을 살피고는 다시 신형을 일으켰다.
“다시 점검해 보자.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
“사냥꾼들일 수도 있어.”
“그러면 이 절벽에서 돌아 나간 흔적이 있을거 아냐? 찾아 봐야지. 대강 훑어 보다 대주한테 줘 터지지 말자구.”
두 살수가 다시 들어왔던 길을 돌아 나가자 일행들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곳도 위험하다. 저쪽에서 은신, 잠입, 추적에 능한 살수를 투입 한 것 같다.”
철면신산의 말에 북리준이 굳은 표정의 일행들을 바라 보았다.
“하루! 오늘 하루만 이 곳에서 지낸 후 이동 합니다.”
< 38. 생존자가 있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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