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탈출 >
암영추혼대주의 검이 등을 돌리고 있는 적의 심장을 꿰뚫으려는 찰나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 오는 무엇인가를 느끼고 긴급히 검으로 쳐 내었다.
‘채애애앵’
자신의 뒤에서 들린 소리에 뒤를 돌아 보다 기겁을 한 곽대인이 나무에서 뛰어 내렸다.
“저 놈이 대장인 듯 합니다.”
곽대인의 뒤를 잡은 살수를 향해 일륜을 날린 북리준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곽가놈아, 도조장에게 목숨 빚 하나다.”
건너편 나무에서 뛰어 내린 유공공이 히죽 웃음을 지었다.
어느새 공간으로 신형을 녹여간 방향을 눈여겨 본 북리준이 두 사람을 바라 보았다.
“저 놈을 잡아야겠습니다.”
땅을 박차고 살수가 사라져간 방향으로 신형을 날린 북리준의 뒷모습을 보며 유공공이 중얼거렸다.
“나 하나 너 하나.... 목숨빚이다.”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뒤를 잡은 살수를 발견한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던 곽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나무 사이 약 사방 삼장이 조금 넘는 공터에 내려 앉은 북리준이 검을 든 채 신형을 낮추었다.
‘놓쳤다...’
앞서 나가던 살수를 쫓아 나가던 북리준의 얼굴에 당황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일부러 유인 한거구나. 당했군!’
“크으윽”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바람의 움직임에 긴급히 신형을 앞으로 빼낸 북리준의 등에 피가 흥건히 배어 들었다.
‘얕아. 만만한 놈이 아니군.’
암영추혼대주가 자신의 살행을 방해한 놈을 지우고 돌아가려던 계획을 긴급히 수정했다.
‘어디냐?’
어둠이 짙게 내려 앉은 숲 공터에 나무 사이를 비집고 떨어지는 달빛에 먼지가 점점이 떠다녔다.
‘키이잉 카하아앙’ 북리준의 왼쪽 공간에서 소리 없이 공간이 열리며 내질러진 검을 가까스로 비켜 막은 북리준의 왼팔에서 혈흔이 비춰졌다.
‘갑갑하군...’
도무지 어디에서 튀어 나올지 전혀 감지가 안되는 유령 같은 공격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살수는 처음이구나.’
숨 막힐듯한 적막이 가득 내려앉은 공터 왼편까지 밀려간 북리준의 검이 벼락 같이 오른편을 갈라갔다.
‘카캉 시이익’
자신의 검을 막아내고 자신의 가슴에 다시 자상을 입힌 살수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이대로는 당한다.... 방법을 찾자.....’
천천히 검은 세운 채 공터의 중앙으로 이동한북리준이 눈을 감은 채 기감을 퍼뜨렸다.
‘이 공간을 내가 먼저 장악한다.’
공터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나무 위에서 자신의 먹잇감을 여유로운 눈빛으로 바라 보던 대주의 눈에 적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들어왔다.
두 팔을 자연스럽게 내려뜨려 무방비 상태로 가만히 서 있는 모습에 암영추혼대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포기한건가?’
약 반다경 정도 두 사람이 아무런 움직임 없이 대치를 하다 암영추혼대주가 먼저 움직였다.
‘스카캉 카가가각’
벼락같이 신형을 돌린 북리준의 검에 비켜 맞은 대주의 검이 다시 가슴에 긴 자상을 남겼다.
순간 ‘키이이이이잉’ 뭔가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카캉’ 검으로 걷어낸 후 다시 신형을 숨기려는 찰나 숨 쉴 틈없이 다시 무엇인가가 반대편에서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창’ 튕겨낸 암기가 다시 기이한 호선을 그리며 자신이 움직일 동선 위를 어지러히 날아 다니는 모습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숨어야 해!’
희고 검은 암기의 동선에 안력을 돋우어 땅을 박차려는 대주의 발목이 뜨끔 거리는 느낌과 함께 기우뚱 신형이 무너졌다.
‘크으으윽’
무엇인가 예리한 것에 발목이 절단된 대주가 비명을 삼키며 신형을 일으키려는 찰나 다시 무색투명한 무엇인가가 땅을 짚은 왼손을 툭 스쳐 지나갔다.
‘크아아아악’
오른 발목과 왼팔이 혈륜에 달린 금강사를 머금은 천잠사에 잘린 대주가 쓰러지며 자신의 검을 저 편에서 양팔을 춤을 추듯 놀리고 있는 적에게 날려보냈다.
‘카아앙’ 허공을 배회하던 륜에 의해 허무하게 날아간 검을 보며 품속에서 둥근 원통의 무엇인가를 꺼내 누르려는 찰나 ‘서걱’ 기음과 함께 오른팔이 통째로 잘려 나갔다.
‘방심했군....’
“손발이 통째로 잘려 나가는데 신음성 하나 안 흘리는 것을 보니 네 놈이 대장인가 보구나.”
북리준이 자신의 몸에서 흘린 피에 혈인이 된 채 땅바닥에 누워 안간힘을 쓰고 기어가려는 살수에게 다가갔다.
“그만 포기하지?”
북리준이 살수의 앞에 쪼그리고 앉으려는 찰나 복면안에 가려진 살수의 입 부분에서 ‘푸슈슉’ 쇠침이 얼굴을 향해 쏘아졌다.
슬쩍 고개를 젖혀 독침을 피해낸 북리준의 손이 우악스럽게 살수의 머리를 잡아갔다.
‘크으으윽’
“이런 자결하는 거야?”
입 안에 숨겨둔 독단을 깨물어 검은피를 뭉클 거리며 오공에서 쏟아내 절명한 살수를 보고 북리준이 혀를 찼다.
“대단하군....”
북리준이 살수가 자신에게 쏘려던 암기통과 품 속을 뒤져 나온 주머니 두어개를 챙겨서 신형을 일으켰다.
“저기 오는군!”
진법 앞 숲에 포진하고 있던 일행들이 살수들을 다 처리 한 후 북리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당했나보군.”
전신이 피에 절은 북리준의 모습에 제갈청하가 앞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괘, 괜찮아?”
“피륙을 조금 긁힌 것 뿐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의 북리준의 말과 달리 등과 가슴,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았다.
“괜찮은가?”
철면신산이 다가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살수의 대장이었나 봅니다. 피륙을 조금 긁힌 정도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일단 들어가서 응급처리를 받아. 너무 많이 피를 흘렸어.”
옆에 서 있던 제갈청하의 채근에 북리준이 웃으며 일행들과 진법안으로 들어섰다.
피갑칠을 한 채 들어서는 북리준의 주위에 일행들이 모여 들어 걱정스런 말을 던졌다.
“대형, 괜찮으신거죠?”
“도아우,...”
“도조장, 상처가 심한가?”
바위 위에 걸터앉은 북리준이 상의를 탈의한 후 응급처치를 시작 하자 제갈청하가 북리준의 등 뒤로 돌아갔다.
“등은 내가 해 줄게.”
“고맙군.”
독안검과 벽안독검, 제갈청하가 북리준의 자상을 돌보기 위해 상체를 살피다 신음성을 터뜨렸다.
“이, 이게 도대체....”
벗은 상체에 난도질 치듯 뻗어 있는 상처들의 잔재에 제갈청하의 눈이 커졌다.
“고생을 많이 했구나....”
섬전창이 수 십개의 자상이 얽혀있는 북리준의 상체를 보며 중얼 거렸다.
“이 정도면 죽기 일보 직전 까지 갔겠네...”
벽안독검이 가슴을 횡으로 일직선으로 가로지른 깊은 검상에 혀를 내둘렀다.
등에 난 자상에 금창약을 바르고 무명천으로 정성스럽게 감싸던 제갈청하의 눈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올랐다.
“무슨 낙서도 아니고....”
곽대인과 유공공도 북리준의 상체에 나 있던 수많은 흉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살아 있는 게 용하네.”
귀산자도 한 사람의 몸에 저렇게 많은 자상과 파열상, 화상이 있는 것을 처음 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옥에서 살아 왔구나, 도아우....”
섬전창의 말에 북리준이 겸연쩍은 얼굴로 서둘러 옷을 입었다.
“별 거 아닙니다.”
“도조장의 몸을 보니 내가 엄살이 심했네...”
하후상이 몇 군데 입은 자상에 끙끙거리고 있다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정도 응급처치를 마친 일행들이 다시 모여 앉았다.
“지금 바로 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살수들이 우리에게 당했다는 것을 아무리 늦어도 반나절 안에는 적들이 알아차릴 것입니다.”
북리준의 말에 일행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 거렸다.
“이게 뭔지 좀 봐주십시오.”
북리준이 살수에게서 가져온 둥근 나무통을 하나 철면신산에게 내밀었다.
“이건? 폭우이화통이네. 당문의 암기인데 어떻게....”
“이건요?”
북리준이 다시 내미는 주머니를 열어 보니 검은 모래가 매캐한 냄새를 품고 있었다.
“단혼사네. 살에 닿은 즉시 중독되어 절명한다네. 저 폭우이화통은 전면에 있는 적들에게 발사한다면 절정이하의 고수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고급 암기일세.”
철면신산의 말에 북리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폭우이화통을 집어 들었다.
“이건 황태자 전하께 주십시오.”
“이걸? 자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중에 유일하게 무공이 약하신 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 단혼사는 제갈낭자가 지니시오.”
“왜 나한테...?”
“그것이 좋을 듯 합니다.”
세가 인물 중 무공이 제일 떨어지는 제갈청하에게 단혼사를 건네었다.
“고맙네.”
그렇지 않아도 무공이 떨어지는 질녀에 대한 걱정이 있던 철면신산이 고마움을 표했다.
“한식경만 쉬시고 바로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유공공님, 철면신산 대협은 각자 끌고 갈 말을 챙겨 주십시오.
산을 넘어갈 일행들이 출발 하면 저희도 이 곳을 나서겠습니다. 대로까지는 말발굽에 댄 헝겊과 입마개를 한 채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일행들이 각자의 짐을 챙긴 채 준비를 마치고 말고삐를 쥐고 있는 유공공, 철면신산,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부디 호북에서 몸 성히 보시게.”
황태자의 말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 옥체 보중하시고 나중에 뵙겠습니다. 곽가놈아. 부탁한다!”
“유공공님, 이 쪽은 걱정 마시고 무탈하게 돌아 오시기를 빌겠습니다.”
“숙부....”
“걱정말거라. 도망치다 적당한 시점에 내 한 몸 빼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난 네가 더 걱정이다. 네게 탈이 생기면 난 형님 얼굴을 죽어도 못 보니까 꼭 몸조심하고 나중에 보자꾸나.”
“도조장, 목숨 빚 꼭 갚을 수 있게 돌아 오라구. 하후세가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꼭 보여 줄테니까.”
“우리 팽가가 더 크고 화려하다네. 꼭 보세.”
“도아우, 나중에 거하게 술 한잔 살테니 기대 하시게.”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세 사람에게 짧은 작별인사를 건네 일행들이 모두 절벽 앞에 섰다.
“크으으윽 컥”
숲 안 쪽에서 순찰을 돌던 오삼계군의 목을 꺾어 조용히 수풀 사이에 누인 북리준이 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말발굽에 헝겊은 대고 입마개를 한 말 열필을 나누어 끌고 유공공과 철면신산이 뒤에 붙었다.
“다행이 살수 놈들이 수색을 하는 것을 믿고 경계가 허술합니다. 최대한 들키기 전까지 이대로 나가다 발각되면 대로를 질주하다 길이 갈라지면 흩어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북리준이 오삼계 군의 목숨을 열 대 여섯 번 취한 뒤 전면에 말 열 필이 횡으로 뛸 수 있는 거대한 길이 눈에 들어왔다.
“두 분 다 호북에서 뵙겠습니다. 무탈하시기를.”
“도조장도 조심하시게, 유공공님도...”
“둘 다 꼭 다시 보세.”
“먼저 출발하시면 바로 따르겠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유공공과 철면신산이 말들의 말발굽에 헝겊과 입마개를 제거했다.
‘푸르르르릉 히이이이이이힝’
북리준이 말 네필, 유공공과 철면신산이 각 세 필 씩 고삐를 쥐고 자신들의 짐이 실린 말에 신형을 올렸다.
“이봐, 어디서 말이 우는 소리 안 들려?”
“젠장, 이 밤에 말 타는 군관이 뭐하러 돌아 다니겠어? 잠이나 자라구.”
대로변 양 옆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잠을 청하던 병사의 말에 다른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 때 ‘히이이이이잉 푸르르르릉’ 말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땅을 울리는 말발굽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맞잖아? 말!”
‘두두두두두두두’
땅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자신들의 앞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말들을 보며 병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 40. 탈출 > 끝
ⓒ 편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