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교전 >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에 좌우사방에서 널부러져 있던 병사들이 각자의 병기를 들고 튀어 나왔다.
“마, 막아라!”
유공공과 철면신산의 앞을 엉거주춤하게 가로막던 오삼계 휘하 병졸이 피를 뿌리며 둘로 갈라졌다.
“활을 쏴라!”
뒤에서 쫒던 군관의 명에 궁수들이 활을 매겨 앞에 가는 십여필의 말 위 사람들을 겨냥했다.
‘피피피피피핑, 퍼퍼버벅’
“맞았다!”
북리준이 끌고 가던 말 위에 묶인 나무인형에 화살들이 사정 없이 틀어 박혔다.
“맞았는데 안 떨어지네....”
등에 화살 서너대를 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을 달리는 적들의 모습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갑옷을 구했다. 말에서 떨어질 때 까지 쏴라. 어서!”
양 옆 대로에서 튀어 나와 앞을 가로막는 병졸들을 거침 없이 베어내며 전진하는 유공공의 눈에 세 갈래로 갈라지는 대로가 들어 왔다.
“난 왼쪽으로 길을 잡겠소. 보중 하시오.”
“전 중앙으로 갑니다. 나중에 뵙지요, 이랴!”
유공공이 말 세 마리를 이끌고 왼쪽길로 내달리고 철면신산 또한 세 마리의 말과 함께 중앙을 향해 말의 배를 찼다.
뒤에서 두 사람이 갈라지는 모습에 북리준이 남아있는 우측 대로로 방향을 잡았다.
“저, 적들이 갈라진다.”
“세 방향으로 갈라 쫒는다.”
오삼계의 측근 군관이 뒤늦게 말을 달려 오다 품에서 신호적을 꺼내 검은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피이이이이이이유융’
검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같은 빛줄기와 기성에 사방에 흩어져 있는 오삼계 병력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적이 발견 되었다. 전군 적들을 쫓는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각지에 흩어진 군관의 명에 약 일만의 군병이 신호적이 쏘아진 방향으로 몰려 가기 시작했다.
“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무너져 내린 관제묘에서 얼마 멀지 않은 군막에서 연락을 기다리던 오삼계가 감았던 눈을 떴다.
“어느 쪽인가?”
“남로 방향입니다.”
“남쪽?”
“저희들의 포위망을 뚫지 못해 부득이 남쪽으로 우회하다 저희 병사들에게 들킨 듯 합니다.”
오삼계가 장검을 땅에 꽂아 놓고 두 손을 그러잡은 채 태사의에 꼿꼿이 앉아 열린 군막 사이로 쉴 새 없이 쏘아 올려 지는 신호적을 바라 보았다.
“말을 준비하라. 직접 잡겠다!”
“존명!”
오삼계가 직접 움직인다는 명에 전체 군영이 울렁거렸다.
“시작되었군....”
곽대인의 등에 꽁꽁 묶인 채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던 황태자의 눈에 쉴 새 없이 터져 오르는 신호적이 들어왔다.
“전하, 모두 무사할 것입니다.... 끄으응!”
“곽대인, 줄을 잡으시오!”
산에서 자라 절벽 타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벽안독검이 먼저 올라 줄을 여러 개 늘어 뜨렸다.
잠시 후 황태자를 업은 곽대인을 마지막으로 모든 인원들이 절벽 위로 올라섰다.
“고맙다. 이번에 생환하게 된다면 낭인들에게 톡톡히 사례 하겠네.”
섬전창이 전신이 땀에 절은 곽대인에게 물주머니를 건네 주었다.
“일단 살아 나가야지요.”
“저리 우리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조건 살아가야지.”
저 아래에서 정신없이 터져 오르는 신호적에 일행들의 가슴이 점점 무거워져갔다.
“일각 후 출발 하겠습니다. 힘드시겠지만 협조 부탁 드립니다.”
팽무강이 철면신산을 대신하여 일행들을 이끌고 친우들이 받치기로 한 약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부터는 내리막길이라 수월할 것입니다. 체력 안배를 잘 해야 합니다. 반나절 정도 내려가다 다시 산을 하나 넘어야 합니다. 쉬지 않고 넘는다면 이틀 정도면 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섬전창이 군사용 전도를 보며 손가락으로 거리를 가늠한 후 던진 말에 일행들이 자신들의 앞에 펼쳐진 광활한 숲과 그 너머에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바라 보았다.
“끄응, 제가 먼저 길을 열겠습니다.”
“저도 이 친구와 함께 먼저 출발 하겠습니다.”
하후상의 말에 모용민이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일으켰다.
“부탁한다.”
팽무강이 먼저 출발하는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힘을 주어 잡았다.
“일단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 까지 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으로 하지요.”
섬전창이 바로 앞 희미하게 보이는 길을 가리켰다.
“문제가 발생하면 소리를 내겠다. 일다경 후에 출발 해라.”
하후상과 모용민이 고개를 끄덕인 후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신형을 녹여 들어갔다.
****
‘피피피피핑 파파팟’
뒤에서 쏘아진 화살을 검으로 걷어내며 전력을 다해 달리던 북리준의 앞에 쓰러진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빠르군!’
“타핫”
나무 뒤에서 나무 때문에 속도를 줄일 것으로 예상한 군사들이 창을 곧추 세웠다.
“어어,...”
대로를 가로 막고 있는 나무를 보며 급히 고삐를 튼 북리준의 말이 오른편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자, 잡아라. 숲에서는 말들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북리준이 왼손으로 잡은 말고삐를 놓고는 뒤를 돌아 보았다.
“고생들 했다. 죽지는 말거라.”
자유스러워진 왼손으로 자신이 탄 말고삐를 틀어 잡고 나무 사이를 요리 조리 최대한 피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잡았다!”
뒤에서 병사들의 외침이 들려 오자 북리준이 더 세게 말의 배를 걷어찼다.
“어, 이게 뭐야?”
푸르릉 거리며 쏘아진 활에 다리를 맞아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누워 버둥거리는 말에서 튕겨져 나온 신형을 창으로 냅다 찌른 병사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허수아비?”
뒤따라온 군관이 나무와 풀로 만들어진 허수아비를 보고는 이를 꽉 깨물었다.
“여기도 잡았습니다!”
저 편에서 들려 오는 군사의 말에 군관이 땅을 박찼다.
“속은 듯 합니다.”
총 세 필의 말을 잡아 바닥에 눕혔으나 전부 허수아비들이 탄 것으로 밝혀지자 군관이 고함을 질렀다.
“이 말들을 끌고 온 놈을 필히 잡아라.”
군관의 고함소리를 저 앞에서 들은 북리준이 말에서 내려 물주머니와 건량, 벽곡단을 챙기고는 말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려 내었다.
놀란 말이 다시 앞으로 내달리는 뒷모습을 보고는 북리준이 나무 위로 올라 빽빽한 나무들을 밟으며 질주를 시작했다.
오삼계의 앞에 나무와 풀로 만든 허수아비 일곱이 누워 있었다.
“실제 달아난 놈은 세 명으로 보여 집니다.”
“총 열필의 말에 도망간 놈은 셋이라.... 총 몇이 살아 남은 건가?”
“마교에서 보낸 살수들의 마지막 대화 내용을 들어 보면 다섯에서 열 이하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성동격서라.... 당했군!”
오삼계가 앞에 눕혀진 허수아비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호북으로 가는 모든 길목에 검문 검색을 강화한다. 이번 습격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자는 무조건 체포하라.
고문을 하던 사지를 잘라내던 황태자가 빠져 나간 경로를 확보해라. 절대 황태자를 죽여서는 안된다. 난 살아있는 황태자가 필요하다.”
“존명!”
****
“벌써 빠져 나간 거 아냐?”
“그래말이다. 벌써 사흘이 지났는데 놈들 콧빼기도 못 봤잖아.”
호남과 호북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 주변에 형식적으로 번을 서던 두 병사가 두런거렸다.
저 멀리 하늘에 매 한 마리가 선회하다 자신들이 서 있는 편 어딘가로 내려 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팔자 좋은 놈일세. 심심하면 날아다니다 배고프면 저리 먹이를 찾아 먹고 또 날아다니고...”
“미친놈!”
선회하던 매 한 마리가 날아오는 모습을 보고 곽대인이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수고했다, 금응아!”
금의위에서 키운 전서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발에 매인 전서통을 열었다.
“전하, 약 한 시진 후 저희 수군이 대대적인 상륙작전을 펼칠 예정입니다. 목적은 저희의 구출입니다.”
사흘을 내리 달려 꾀죄죄한 모습의 일행이 곽대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 강변에 포진하고 있는 오삼계 군들이 아군의 상륙 작전에 대항하는 시점에 저희는 저 앞에 있는 귀두암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곽대인이 가리키는 곳에 거북이 머리를 닮은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희가 무사히 강을 건너면 수군은 바로 병력을 물리기로 하였습니다. 다들 준비 해 주시오.”
곽대인의 말에 일행들이 귀두암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
“어, 저거.... 적이다!”
기존에 강변을 수비하던 병사가 거대한 군선이 하류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뿔피리를 입에 물었다.
‘뿌우우우우웅 뿌우웅’
강변에 포진해 있던 약 오천여명의 병력들이 부산히 진을 구성 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궁수들은 불화살을 준비 하라. 단 한 명의 적도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하라.”
군관들이 여기 저기를 뛰어 다니며 군선이 상륙할 만한 곳에 군대를 포진하기 시작했다.
“시작했습니다.”
곽대인이 전방에 깔려 있던 적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
“군선은 귀두암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교전을 벌일 예정입니다. 교전이 시작되면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둥 둥 둥 둥”
군선 위에서 거대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가까이 다가 오자 군관의 명이 떨어졌다.
“발사!”
약 일천여명의 궁수들이 일제히 매긴 불화살이 다가오는 군선 네 척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피피피피피핑 피피피피핑’
천 여발의 불화살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아가 군선 위에 내리 꽂히자 배 위의 군관들이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했다.
“응사!”
각 군선에 탑승한 궁수들이 일제히 응사를 시작하고 다른 군병들은 불을 끄기 시작했다.
“발사!”
‘쿵 쿠웅 콰쾅 콰콰쾅’
군선 위에 실린 포들이 불을 뿜자 강변에 배치한 적들의 포들도 연신 불을 뿜어대며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켰다.
“지금입니다!”
정신없는 교전 가운데 말미에 붙어 있던 작은 범선 하나가 쏜살같이 귀두암 쪽으로 다가 오기 시작했다.
적들의 화살에 맞아 속절없이 강으로 떨어져 내리는 병사들과 포탄이 떨어진 강변에 있던 오삼계군들이 육편이 되어 날아가고 온 몸에 화살이 꽂혀 고슴도치가 된 병사 등 삽시간에 수백의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역시 구경은 싸움 구경이 제일이지.”
마교에서 지원을 나온 마령단 소속 무인 다섯이 바위에 걸터 앉아 연신 포를 쏴대며 화살을 날려대는 전투를 구경하고 있었다.
“어, 쟤네들은 또 뭐야?”
자신들이 구경하고 있던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길로 약 십여명의 꾀죄죄한 자들이 강변으로 뛰어 내려 가고 있었다.
“수상하면 잡아야지. 우리도 밥값을 해야잖아.”
“심심하던 차에 잘되었네.”
다섯명의 마교 무인들이 각자 병기를 챙겨 들고 뛰어 내려가는 자들의 뒤를 잡아 나갔다.
“다 왔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배가 도착할 것입니다.”
곽대인이 숨이 턱에 찬 채 겨우 입을 열었다.
“정말 서 있을 힘도 없네...”
하후상이 자신의 창에 기대어 그대로 땅에 주저 앉았다.
“사흘을 잠도 안 자고 쉬지 않고 달렸으니 그럴만도 하지. 돌아가면 한 이틀 잠만 자야겠다.”
옆에 앉은 언철진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호오, 이 놈들 오삼계가 전언으로 말한 황태자 무리 아냐?”
강변에 앉아 저 멀리 다가오는 범선을 기다리는 일행들의 뒤로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런....”
일행들이 후둘거리는 다리를 부여 잡고 각자의 무기를 들고 적들을 맞이했다.
“저 놈이 황태자네. 저 놈만 남기고 다 죽여.”
조장의 말에 네 명의 마교도들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조장, 포탄 소리를 배경으로 놈들을 도륙하는 운치가 있네. 크크크!”
“전하, 제 뒤로 서시옵서소.”
곽대인이 검을 든 채 황태자의 앞을 막아서자 조장이라는 자와 다른 한 명의 마교도가 서서히 다가왔다.
‘카카캉 캉 가가가각’
하후상과 팽무강, 모용민, 언철진이 겨우 한 명의 마교도를 상대로 고전을 하고 섬전창과 벽안독검, 독안검, 귀산자가 한 명의 마교도의 검에 여기 저기 베이며 땅에 널부러지기 시작했다.
“호오, 씻기면 아주 볼만한 얼굴이겠구나.”
음심이 동한 표정을 지으며 나머지 한 명이 다가 오자 양손에 비도를 뽑아 든 제갈청하가 이를 악다물었다.
< 41. 교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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