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살아 있으면 된 거야. >
‘피핑 피피핑 깡 까깡’
제갈청하가 연신 날리는 비도를 슬쩍 슬쩍 피하고 때로는 검으로 날려 보내고는 점점 다가 서는 마교도를 보며 품을 뒤지다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비도가....’
“칼이 다 떨어졌나 보구나. 그럼 이제 나하고 운우지락을 즐겨 보자꾸나, 크크크”
그 때 품 속에 집어 넣고 있던 오른손에 들린 무엇인가가 화악 뿌려 졌다.
“또 비도... 크아아아아아악”
북리준이 따로 챙겨준 단혼사가 지척에 다가온 마교도의 온몸에 흩뿌려지자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몸부림 치며 뒹굴다 절명했다.
‘크으으윽’
곽대인이 두 명의 마교도를 맞아 분전하였으나 사흘간 모두 소진한 기로 인해 오른 다리에 깊은 검상을 입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흐흐흐, 이 놈 목을 치고 황태자를 잡아라.”
그 때 저 편에서 비명성과 함께 자신의 동료가 단혼사에 맞아 죽어 가는 것을 본 조장이 쌍욕을 뱉었다.
“이런 썅.... 저 년은 온전히 안 죽인다.”
그 때 신형이 무너져 내린 곽대인의 뒤에 있던 황태자의 손에 무엇인가가 들려 있는 것을 본 동료가 입을 열려는 찰나 ‘퍼어어엉’ 폭발음과 함께 수 천개의 침들이 통에서 터져 나오며 두 마교도를 덮쳐갔다.
“커허어어어어억 카아아아아악”
황태자가 두 마교도를 향해 쏜 폭우이화통의 독침에 전신이 노출된 두 마교도가 바닥에 널부러진 채 움찔 거리다 숨을 거뒀다.
“모두 나머지를 잡읍시다.”
절대적인 열세에 처한 마교도가 허둥지둥 거리다 하후상의 몸과 함께 날린 창에 꿰뚫리고 한 놈은 귀산자가 날린 주판 암기에 전신을 내주고 죽어갔다.
“허어어어억 헉.... 끝났다...”
하후상이 땅바닥에 드러누우며 중얼거리고 나머지 일행들도 자리에 주저앉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조장이 아니었으면.....”
도조장이 준 폭우이화통과 단혼사 덕에 겨우 목숨을 건진 제갈청하의 중얼거림에 다들 고개를 주억 거렸다.
“이제 돌아갑시다....”
곽대인이 검집을 지팡이 삼아 절뚝 거리며 신형을 일으키고 바로 앞 강변에 도착한 자그마한 범선으로 나아갔다.
****
‘닷새.... 문제가 없다면 황태자 쪽은 호북으로 넘어갔겠군.’
북리준이 말을 버리고 홀로 남하를 거듭하다 시냇물에 묵은 때와 피에 절은 붕대를 갈고 호남성 내에 들어 금구전장 호남지부에 들러 돈을 찾아 깨끗한 흑의 무복과 희디흰 백마를 구입 하고는 호남제일객잔이라는 호남성 내 제일 큰 객잔에 들어섰다.
“어서옵쇼! 주무시고 가실 예정이십니까?”
“그렇다. 상급이상의 독방을 내주고 반시진 후 식사를 하러 내려 오겠다.”
“넵! 저를 따라 오시지요.”
오랜만에 하루 숙박비가 은자 열냥이나 하는 오층에 세 개 밖에 없는 최상급 독방으로 안내 하는 점소이의 입이 찢어지기 일보 직전 이었다.
“오랜 여행으로 목욕이 하고 싶구나. 준비 좀 부탁 하마.”
손에 은자 한 냥을 쥐어 주자 허리를 직각으로 꺾은 점소이가 날 듯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거대한 방 안 한켠에 뜨거운 물이 가득한 고급스런 욕조에 전신을 담근 북리준이 모처럼의 휴식에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급하게 넘어갈 일이 없지. 천천히 쉬다 여유 있게 넘어가는 것이 맞겠다.’
느긋하게 목욕을 마친 북리준이 구입한 무복으로 갈아입고 일층 객잔으로 내려왔다.
북리준이 계단을 내려서기가 무섭게 예의 점소이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호젓하고 편안한 식사를 즐기시려면 이층으로 가시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홀로 여행을 했더니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그립구나. 이곳에서 식사를 하겠다.”
너른 일층 객잔에 수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술과 음식을 즐기는 가운데를 지나 빈 탁자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호남은 처음이신지요?”
“그렇다. 호남에 유명한 요리가 무엇이냐?”
“하아, 정말 탁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호남은 주로 매운 요리가 많은데 그 중 으뜸은 자룡탈포가 아니겠습니까?”
“자룡? 새끼용을 재료로 쓰느냐?”
“하하, 손님 말씀 대로 새끼용을 재료로 쓴다면 저희 객잔을 떼돈을 벌었겠지요. 여기 자룡은 뱀장어를 말하는 것입죠. 생김새가 새끼용과 비슷하다고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자룡탈포라.... 뱀장어의 두루마기를 벗긴다?”
“맞습니다요. 뱀장어의 껍데기과 뼈를 제거한 후 속살로만 만들어 낸 호남 특유의 요리입죠.”
“고놈, 아주 재미있는 놈이구나. 그 요리에 걸맞는 술은 뭐가 있느냐?”
“바로 이 자룡탈포와 찰떡궁합인 술이 그 유명한 소흥황주입죠.”
익살스런 표정으로 음식과 술을 소개하는 점소이의 손에 다시 은자 한냥을 쥐어 주었다.
“네 놈이 알아서 요리 두 어개 하고 술을 내 오거라.”
재신이 강림했다고 속으로 외치며 점소이가 주방을 향해 신법을 펼치듯 날아갔다.
“소문 들었어?”
옆 탁자에서 낭인차림의 무사들 넷이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 말이여?”
“두 번왕이 청조에 백기 투항 했다는 거 말이야.”
“이 무식한 새끼야, 너 그 두 번왕 이름 모르지?”
“개새끼, 그냥 번왕이다 왜?”
“평남왕과 정남왕이다 이 무식한 놈아, 좀 배워라!”
“니 똥 굵다.”
“계속 이야기 해 봐. 난 처음 듣는 이야기야.”
티격태격 하는 낭인 사이에 앉은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낭인이 싸움을 말렸다.
“삼번이 난을 일으킨 지 칠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 두 번왕이 만세를 불렀으니 오삼계만 엿된거지.”
“곧 청나라 군대가 이리로 밀고 내려 오겠구만.”
“병신아,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먹고 산다고 오삼계 장군이 그리 호락 호락 당할 것 같냐?”
화주와 간단한 소채를 사이에 두고 권커니 받거니 술잔을 돌리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틀 전에 호남과 호북사이의 강에서 대대적으로 교전이 있었다는 이야기 들었지?”
“응, 청조의 범선이 냅다 들이쳤다가 그냥 돌아갔다는데?”
그 때 뭔가를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낭인이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들은 게 있는데 말이야....”
“말해 병신 새끼야. 사람 궁금하게 해 놓고 별 거 아니면 이 술 니가 사.”
“만약 별거면? 네 놈이 살껴?”
“그래, 내가 모르는 내용이면 내가 산다.”
호기롭게 외친 낭인이 주위를 쓱 한번 훑어보고는 더욱 목소리를 낮췄다.
“들리는 소문에 청조의 황태자가 오삼계를 잡으러 넘어왔다가 잡히기 일보 직전에 그 강을 통해 호북으로 넘어갔다는 거야.”
“뭐래? 그게 말이 되냐? 황태자가 미쳤다고 오삼계 나라가 된 호남에 넘어왔다 도망갔다고?”
“소리 낮춰, 병신아....”
버럭 소리를 질렀던 낭인이 얼굴이 핼쓱해지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오삼계 군에 몸담고 있던 내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영 없는 말은 아닌가 봐.”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 말고 네 놈이 향신이 년 넘어뜨린 이야기나 해 봐.”
낭인들의 대화가 음담패설로 넘어가고 귀를 기울였던 북리준의 앞에 요리와 술이 도착했다.
‘무탈하게 넘어간 모양이군. 유공공과 철면신산이야 자신의 한 몸 빼내는 것은 일도 아닐테고...’
매우 자극적이며 입맛이 도는 요리와 고급진 술을 즐긴 북리준이 식사를 마친 후 점소이를 불렀다.
“네, 손님, 뭐가 필요하신지요?”
“천풍루 호남지부의 위치를 알고 싶구나.”
점소이에게 객잔에서 천풍루의 위치를 설명 들은 북리준이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모처럼 푹신한 침상에서 피로를 푼 북리준이 아침을 먹고는 느릿한 발걸음으로 천풍루로 향했다.
“무슨 일로 내방 하셨는지요?”
‘천풍루 호남지부’란 현판이 일필휘지의 필체로 멋들어지게 쓰여진 정문 앞 위사가 정중히 물어왔다.
“정보를 사러 왔네.”
정문 위사가 안에 기별을 넣자 흰색 문사 차림의 젊은이가 나와 북리준을 안내했다.
“이 곳에서 잠시 차를 즐기고 계시지요.”
고풍스럽게 꾸며진 한 방에 안내된 북리준이 잠시 기다리자 검은 문사복 차림의 중늙은이가 방에 들어섰다.
“저희 천풍루는 처음이신지요?”
“이 곳은 처음이고 다른 지부를 이용한 적이 있소.”
“어떤 정보를 구하시는지요?”
“두 가지 용건이 있소. 혹시 편지를 전달해 줄 수도 있소?”
“가능 합니다. 저희 천풍루는 중원 무림 각지에 지부를 두고 있어서 편지를 전달하는 업무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단, 단가가 많이 비싼 대신 확실하게 전달을 해 드리지요.”
“다행이군. 그럼 오늘 의뢰한 정보를 수령할 때 전달할 편지를 가져 오겠소이다. 비용이 얼마인지 계산해 주시오.”
“어떤 정보를 원하시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어떤 정보를 원하시는지요?”
“백년 전 일차정마대전에서 마교를 전면에서 막아낸 천산파에 대한 정보를 원하오.”
“천산파라..... 내일 이 시간에 오시면 정보를 드리리다. 편지는 어디로 전하면 되는지 알려 주시면 내일 금액을 알려드리리다.”
“하나는 하북팽가고 하나는 호북 접경 지역 전장에 있는 사람이외다.”
천풍루의 문사가 잠시 눈을 감고 계산을 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총 금자 석냥으로 해드리지요. 한번 의뢰 해 보셨다시피 계산은 정보를 확인 하신 후 지불 하시면 됩니다.”
천풍루를 나선 북리준이 다시 객잔에 들어 점소이에게 지필묵을 부탁하여 두 통의 편지를 쓴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벌써 열흘이 지났네....”
제갈청하가 처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별일 없을 거야. 유공공과 철면신산 대협도 다 돌아 오셨는데 아마 개인적인 볼일을 보고 있겠지.”
모용민의 말에 하후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그렇게 호락 호락 뒤질 인상이 아니었다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다. 곧 돌아 오겠지.”
그 때 팽가에서 인편이 왔다고 나갔던 팽무강이 흥분된 얼굴로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도조장의 편지가 왔다. 살아 있었어!”
한 손에 든 편지를 흔들며 흥분된 어조로 떠드는 팽무강의 손에서 편지를 뺏어 든 제갈청하가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팽소가주 보시오. 다들 무탈하게 귀환 했을 거라 생각하오. 나 또한 무탈 하게 잘 지내고 있소. 들리는 소문에 오삼계군의 마지막 발악이 있을 거라 하던데 그 곳에 내가 없어 조금 아쉽소이다.’
“역시 살아 있었네.”
“입 닥치시고.... 마저 읽어 봐!”
하후상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 언철진이 다음 내용을 채근하자 제갈청하가 다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내 개인적으로 해결할 일이 있어 천산을 갔다 와야 할 듯 하오. 갔다 올 동안 보중 하시고 혹시 내 안부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팽소협이 대신 전해 주시면 감사 하겠소.
개인적인 일을 마치는 대로 각 가문에 기둥뿌리 하나씩 뽑으러 방문 하겠소이다. 낭인 도천학 배상.’
“하아, 멋지네. 우리 집에서 어떤 기둥 뿌리를 뽑아야 하나 골라 놔야 되겠네.”
하후상의 말에 일행들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기쁜 낯으로 서로 입을 열었다.
“무강이의 탁월한 선택에 우리가 이렇게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게 된거야. 일단 무강이에게 우리가 한턱 쏴야 한다구.”
언철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유공공에게 도조장의 소식을 알려야 겠네. 소식이 오면 필히 알려 달라고 황태자께서 신신당부를 하셨다는거야.”
“빨랑 갔다 오고 우리는 도조장의 생존을 확인 했으니 오늘은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자구.”
하후상이 후련한 표정으로 대소를 터뜨렸다.
‘와서 얼굴이나 보여주고 가지... 망할 놈!’
제갈청하가 얄밉게 웃음짓고 있는 도천학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자 고개를 흔들었다.
“부조장, 손님 왔수!”
허풍도 곡굉이 북리준의 막사에서 술병을 기울이고 있다 팔조 조원의 말에 천막을 나섰다.
“뉘신지...?”
생전 처음 본 오른편 가슴에 천풍이라는 금색 실로 수 놓인 검은색 정갈한 무복을 입은 사내에게 다가갔다.
“허풍도 곡굉 대협께 전하는 편지입니다.”
“대협 아닌데.....”
고급스런 금장 봉투가 곡굉에게 전해지고 사내가 내민 종이에 수결을 했다.
“누가 장난을 이렇게 고급스럽게 하는거야?”
곡굉이 편지를 들고 다시 막사 안으로 들어서 술병을 들이켰다.
‘형님, 대협 소리 들으니 기분 좋소? 나 준이오.’
“이런 망할 새끼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곡굉이 북리준의 편지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일을 다 잘 마치고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신강에 좀 다녀 와야 하오. 다녀 와서 형님은 나와 함께 할 일이 있소. 그 동안 몸 보중하고 절대 다치지 마시오.
내 천막에서 술 먹는 거는 좋은데 좀 치우고 지내시오. 동생 준이가.’
“허허, 이 망할 놈의 새끼가.... 그려, 살아 있으면 된 거야. 얼른 와라. 네 놈이 뭘 원하든 내가 다 해 줄테니까.....”
< 42. 살아 있으면 된 거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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