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천산객잔 >
천풍루에 들러 받은 천산파에 관한 정보를 객잔에 돌아와 다시 집어 들었다.
‘천산파는 백년 전 일차 정마 대전 전까지 중원 제일 문파로 자리 매김을 했던 막강 문파로 정사무림이 마교의 마수에 갈가리 찢겨 나갈 때 분연히 일어나 당대 천산파 문주였던 창천뇌검 도천위가 천마와 대결 후 양패구상함.
일차 정마 대전 시 천산파는 궤멸적 타격을 입어 거의 멸문 직전 까지 간 상황에서 정마대전이 천산파의 희생으로 정도 무림의 승리로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에 마교 잔당의 복수행으로 완전 멸문당함.
정사무림인들이 천산파의 희생을 기려 천산에 천산파를 기리는 기념비와 사당을 헌정함.
현재 사당은 폐허가 되고 반파된 기념비만 남아있을 정도로 무림인들의 뇌리에 잊혀진 문파임.
천산 어딘가에 후손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인된 바는 없음.
천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구십년 전통의 천산객잔이 있고 만일 천산파에 관한 실마리를 잡으려면 이 곳 천산객잔부터 시작 하기를 추천함.’
“금자 한냥만 받을만 하네...”
천풍루에서 천산파의 관한 정보와 편지 두 통을 전하는 댓가로 금자 한냥을 요구 하며 천산파에 대한 정보가 미미함을 시인 하였다.
“하긴 백년 전 멸문한 문파에 대해 어느 누가 정보를 가지고 있겠나? 하아, 이거 어쩌나...”
천괴와 지괴의 유진을 이은 북리준이 천산파를 돕기 위해 알아본 결과 완전 멸문이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천괴님과 지괴님의 은혜를 입었는 바 일단 가보자. 가서 찾다가 완전 멸문되어 흔적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천산객잔이라.... 일단 이 곳부터 방문해 봐야겠군.”
다음 날 북리준이 신강 까지의 먼 여행을 위해 말과 마차, 건량, 벽곡단, 금창약 등을 준비 한 후 호남제일객잔을 나섰다.
호남을 출발하여 중경, 사천, 청해를 가로 질러 신강에 진입하여 천산의 초입에 도착하니 두 달이 훌쩍 지나 있었다.
“멀기는 멀구나. 어찌 되었건 오늘은 천산객잔에 도착 할 수가 있겠구나.”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마차를 몰아 사람들에게 물어 천산객잔의 앞에 섰다.
“호오, 진짜 구십년 전통이 눈에 보이는구나.”
천산 산맥에 들어 서는 초입에 천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마을이 있고 그 중앙에 약 오층 정도 높이의 고풍스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옵셔! 천산의 백년 객잔에 오심을 환영 합니다요.”
“이봐, 말을 똑바로 해야지. 백 년은 아니잖아?”
점소이의 말에 객잔에 들어서던 두 사람 중 검을 찬 한 사람이 웃음을 지었다.
“에이, 거의 다 된 백년이지요. 내일 모레면 정말 백년입니다요.”
점소이의 너스레에 두 장한이 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옵셔, 천산의 백년 객잔에 오심을 환영 합니다. 묵고 가실 예정 이십니까?”
먼지투성이의 말과 마차를 보며 점소이가 마차에서 내리는 북리준에게 다가 왔다.
“그래, 노숙을 오래 했더니 따뜻한 물이 그립구나.”
“문제 없습죠. 안락한 방에 따뜻한 목욕물을 대령하겠습니다요.”
말과 마차를 다른 점소이가 받아가고 북리준이 점소이의 안내로 객잔 안에 들어섰다.
“삼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 드리겠습니다요.”
일층과 이층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객잔이고 삼층과 사층이 숙박할 수 있는 시설이 구비 되어 있었다.
“오층을 빼고는 구경을 하러 다니셔도 됩니다.”
“오층은 왜 안 되느냐?”
“거기는 저희 객잔의 주인님 식구분들이 기거 하시는 공간 입니다요.”
“아, 그렇구나!”
“목욕을 하신 후 식사를 이 곳으로 올려 드릴깝쇼?”
“아니다. 씻고 일층에 내려가서 식사를 하겠다.”
두 달 가까이의 긴 여정에 지친 몸을 뜨거운 물에 풀어내고 정갈한 흑색 무복으로 갈아 입은 북리준이 일층으로 내려왔다.
“시장 하니 여기에서 잘 하는 요리 두어개와 술을 준비해 주거라.”
점소이가 자신에 손에 쥐어진 은자 한 냥에 눈이 휘둥그래지며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다.
객잔 안에 약 십여명의 손님이 둘 셋 정도 같이 모여 식사와 술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산에 오르시려는가 보오.”
자신의 탁자에 차려진 맛깔스런 음식과 술에 손을 대려는 찰나 저 편 구석에서 꾸벅 거리며 졸고 있는 늙은이가 천천히 다가왔다.
“네, 개인적인 볼 일이 있어서요.”
“혼자 먹는 술은 맛이 없는 법이지요. 혹시 내가 거들어 드릴까?”
순한 인상의 나이가 육십은 넘어 보이는, 젊었을 때 힘깨나 쓴 듯한 거구의 늙은이가 털썩 북리준의 앞에 앉았다.
“저야 감사하지요. 자,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하하, 예의를 아는 젊은이구만.”
북리준이 따라 주는 술을 호쾌하게 들이킨 늙은이가 자신의 소개를 했다.
“난 막대광이라고 하네. 이 곳 천산객잔의 부총관을 맡고 있지.”
“아, 반갑습니다. 저는 도천학이라고 합니다.”
“호오, 우리 객잔 주인과 동성이구만. 자자, 자네도 한잔 쭉 들게.”
그때 자신을 막대광이라 소개한 늙은이의 뒤통수에 누군가의 손바닥이 작렬했다.
“막가야. 제발 손님한테 주접떨지 말랬지? 아이구, 죄송합니다. 이 놈이 치매끼가 있어서 아무한테나 술을 사달라고 하니 소협께서 이해해 주시지요.”
“야이 새끼야, 나 아직 치매 아니거든. 그리고 허락 받았단 말이다. 씨벌, 총관이면 다야?”
제대로 맞은 뒤통수를 문지르면 다른 한손으로 연신 술을 들이켰다.
“이 놈이 마시는 술은 제가 내겠습니다. 저는 이 곳 총관을 맡고 있는 독고우라 합니다.”
빼빼 마른 몸에 키가 약 칠척 정도 되는 비슷한 연배의 늙은이가 자신을 소개 했다.
“이 놈이 제 친우인데 언제 부터인가 이 곳에 빌붙어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군요. 소협은 어디에서 오셨는지요?”
“호남에서 왔습니다.”
“아이구, 멀리서도 오셨군요. 모쪼록 하시려는 일 다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막가야. 그만 일어나라.”
“이런 씨불... 모처럼 마음에 드는 젊은이를 만났는데 훼방 놓지 말고 저리 꺼져!”
“저는 상관 없습니다. 총관님께서는 일 보시지요. 막노야께 물어 보고 싶은 것도 있구요.”
북리준의 말에 막대광의 얼굴이 희색이 만연해졌다.
“봤지? 도소협이 나랑 술 마시고 싶다잖아! 저리 썩 꺼지고 어향육사와 회과육을 잘 해서 내오거라.”
“이 미친놈이 어디서 무전취식을 하려고?”
“오랫동안 혼자 여행을 해서 외로웠는데 막노야를 제가 대접 하겠습니다. 원하시는 음식을 내 주시지요.”
“하하하, 오늘 내가 진정한 지기를 만났구나.”
막대광이 앙천대소를 하며 자신의 허리에 양 손을 척 올렸다.
“이봐, 손님이 주문 하시는데 얼른 안 뛰어 가고 뭐하나?”
“끄응, 네 놈은 나중에 보자.”
독고우가 근처에 있는 점소이를 불러 음식을 주문한 후 돌아 서려는 찰나 젊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관님께서도 안 바쁘시면 함께 자리 하시지요.”
“엥? 독고놈은 바뻐. 나하고만 먹으면 된다구.”
독고우가 객잔을 휘이 둘러 보고는 척 하니 막대광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네 놈이 술주정 하는 것을 말리려면 나도 여기 있어야 겠다.”
추가로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술단지도 대여섯개가 추가 되었다.
“도소협이라고 했는가?”
“네, 도천학이라고 합니다.”
“허어, 이름 한번 멋지구만!”
“감사합니다!”
독고우가 술잔을 비우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자네 이름이 이 곳에서 아주 유명했던 천산파의 시조님 이름과 같은 것을 혹시 아는가?”
“아, 그렇습니까?”
북리준이 천산파의 시조인 천괴의 본명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이 곳에 얼마나 묵을 생각이신가?”
“한 열흘 정도 묵을 예정입니다.”
“목적지는 어디인고?”
독고우가 연신 술잔을 채우는 친우를 매섭게 한번 노려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내일은 천산파를 기념하는 비와 천산파의 옛 터를 가보려 합니다.”
“천산파? 백년 전에 멸문당한 문파의 폐허에 볼 것이 없을텐데....”
“그 유명한 일차 정마대전에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앞장선 문파의 발자취를 한번 보고 싶어서요.”
북리준이 천산파를 이야기 하자 독고우와 막대광이 서로를 쳐다 보았다.
“혹시 천산파의 옛터를 안내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비용은 지불하겠습니다.”
“막가야, 맨날 술 처먹고 노는 네 놈한테 밥값 할 일이 생겼다.”
독고우의 말에 막대광이 연신 잔을 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안내 하지. 비용은 섭섭하지 않게 쳐 줘야 하네.”
“알겠습니다. 자, 한잔 하시지요!”
천산객잔의 총관과 부총관과 의도치 않게 한 술자리를 파하고 자신의 방에 돌아왔다.
‘이런 곳에서 객잔을 할 사람들이 아닌데....그런데, 왜 천산파 이야기에 저리 과민하게 반응을 하는 걸까?’
북리준이 약 한 시진 정도 술자리를 함께 하며 느낀 독고우과 막대광의 수상한 기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시각 독고우과 막대광이 멀쩡한 얼굴로 총관의 방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설마 그 쪽 놈은 아니겠지? 만만치 않겠던데...”
“모르는 일이지....”
“그 독한 놈들이 백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찾고 있다고?”
막대광의 말에 독고우가 예리한 눈빛으로 대답을 했다.
“내일 네 놈이 같이 다녀 보고 판단하는 것이 나을 듯 하다. 만일 그 쪽 놈이라면 소리 소문없이 지워야겠지.”
“혼자 온 것이 아니라면?”
“일단 사나흘 두고 보면서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하자꾸나.”
“도문주한테 알릴까?”
“아니, 뭔가 확신이 생길 때 까지 우리만 알고 있자구.”
독고우와 막대광이 각자의 생각에 잠겨 말없이 술잔을 비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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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식사를 위해 일층으로 내려 오자 막대광이 반갑게 북리준을 맞이했다.
“도소협, 아침 해장 해야지?”
“그러시지요. 식사 후 바로 출발 했으면 하는데 괜찮으신지요?”
“나야 놀고 먹는 게 일인 사람인데 언제든지 좋지.”
막대광과 북리준이 아침 해장술과 식사를 마치고 천산에 오르기 위해 객잔을 나섰다.
“원래 무인이셨나 봅니다.”
막대광이 등에 멘 거대한 묵빛 도를 보고 북리준이 물었다.
“그냥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거라네. 산적이라도 만나면 개죽음은 피해야 할 것 아닌가? 허허허.”
막대광이 도천학이라는 무인이 객잔을 나서 천산을 오르는 모습을 객잔 사층에서 독고우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 보았다.
“기우이기를 바래야지....”
“뭐가 기우인데요?”
희디흰 백의에 사람 좋은 인상의 오십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가 웃고 있었다.
“아, 도문주!”
“제발 그 문주라는 말 좀 하지 말아주세요. 천산파는 완전히 망했다니까요!”
천산객잔의 주인인 도경명이 심통맞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별 거 아니네. 그나 저나 기룡이가 오늘 돌아 오는가?”
“오던가 말던가 신경 안 씁니다. 애비 말은 죽어라고 안 듣는 새끼가 오던 말던이지요.”
“경명이, 자네도 그만 고집을 꺾게. 무려 백년 일세. 어찌보면 기룡이가 현명할 수도 있다네.”
“옵니다. 분명히 옵니다.”
신경질적으로 신형을 돌려 계단을 내려 가는 도경명의 뒷모습을 보며 독고우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도 왔으면 좋겠다네....”
< 43. 천산객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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