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45화 (45/167)

< 45. 넌 누구냐? >

“객잔주인분과는 어떤 관계 이신지요?”

북리준이 술잔을 비우고 막대광과 자신의 잔을 채웠다.

“그냥 먼 친척 이라네. 이 객잔을 아버지에게 물려 받고 내게 도움을 청해서 이 곳에 있게 된 것이지.”

독고우의 말에 얼굴이 벌개진 막대광이 말을 받았다.

“난 이 놈 찾아 왔다가 이 곳에 코가 꿴 거고.”

“미친놈아! 가라니까 네 놈이 버티고 있는 거잖아?”

“말이야 바른 말이지. 네 놈이 이 곳에 혼자 있었으면 심심해서 죽었을 거야. 나나 되니까 네 놈이 불쌍해서 말벗이나 해 주고 있는 거지.”

“네 놈이 처먹은 술을 돈으로 받았으면 이런 객잔 하나 더 지었다.”

“하나도 버거운 놈이 뭔 또 객잔?”

옥신 각신 하는 두 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도천학을 흘낏 거렸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시고 나머지는 내일 했으면 합니다.”

“엥, 왜? 이제 발동이 걸릴려고 하는데...”

“제가 조금 피곤해서요. 두 분이 더 드시다 올라 오시지요.”

북리준이 정중히 허리를 포권을 하고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북리준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즈음에 티격태격하던 독고우와 막대광의 신색이 차갑게 변했다.

“뭔가 눈치를 챈 것 같다.”

“그러지 않기를 바랬는데....쯧쯧”

‘분명 건곤무극신공이었어....’

도경명과 그 딸의 전신에 뿜어져 나오는 익숙한 기운에 북리준이 다시 한번 확신을 했다.

‘건곤무극신공을 익힌 사람은 서로를 알아 볼 수 있는건가? 그러면 저 쪽에서는 왜 날 못 알아볼까?’

건곤무극신공의 경지가 높은 사람일수록 상대방의 기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북리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밤에 직접 확인을 해 봐야 겠다.’

“교교야!”

“네, 아버지.”

진한 꿀물을 한 대접 타서 다가오는 교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 젊은이 말이다.... 처음 보았는데 왜 그리 호감이 갈꼬?”

“아버지가 기룡이 때문에 외로우셨나 봅니다.”

“그런가? 아무튼 근래 보기 드물게 건실한 젊은이를 만난 것 같다. 내일도 동생과 한잔 더 해야겠다.”

“그만 쉬시고 내일 기룡이를 한번 만나주세요.”

“에이, 가문의 사명이고 아버지의 부탁이고 개의치 않고 지 마음대로 사는 새끼를 내가 왜 봐야 되는데? 일 없다!”

“쉬세요....”

작은 한숨을 내쉰 도교교가 아버지의 방을 나서고 잠시 후 도경명의 코고는 소리가 방 밖으로 흘러나왔다.

‘딸깍’ 하는 아주 작은 소음과 함께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거구의 사내가 그림자처럼 방안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멈칫한 거구의 사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역시 예사분들이 아니셨군요.”

‘치이익’ 어두운 방 한구석에 화섭자 하나가 떠오르고 방 안의 초 두 개에 불이 붙었다.

“도둑놈도 아니고 덩치에 맞지 않게 고양이 걸음을 하고 지랄이냐?”

막대광이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의 묵혈도를 두 손으로 잡고 땅에 꽂은 채 북리준을 노려 보았다.

“마교에서 왔느냐?”

반대편에 서릿발같은 살기를 내뿜으며 옆 탁자에 검 한 자루를 올려놓고 앉아 있는 독고우가 말을 받았다.

“마교요? 아닌데요....”

“그럼 도아우는 왜 이 야심한 시각에 내 방을 방문하였는가?”

도경명이 냉기가 한겹 서린 얼굴로 문 앞에 서 있는 도천학이라는 젊은이를 쏘아 보았다.

“옆에 주방장께서도 자리를 잡으시지요.”

북리준이 웃음을 지으며 침대 옆 휘장을 바라 보자 커다란 식도 두 자루를 양손에 든 주방장이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예사분들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생각 보다 대단하신 분들이시군요.”

“쓸데없는 잡설은 집어치우고.... 모처럼 마음에 드는 놈을 만났더니 이렇게 되고 마는구나.”

세 사람이 검과 도, 식도를 날리려는 일촉즉발의 찰나 북리준이 교묘히 맥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오해? 네 놈이 천산파의 옛터를 찾고 천산의 후예에 대해 캐고 다닌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니냐? 정말로 징한 복수심이다....”

“하하, 충분히 그렇게 오해하실 수 있겠군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저도 앉았으면 합니다. 괜찮겠지요?”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표정과 행동에 독고우의 표정이 무거워져갔다.

‘자신의 무에 대한 자신감인가? 잘못하면 오늘 길 보다 흉이 많겠구나....’

“네 놈의 헛소리를 듣고 난 후 목을 잘라도 늦지 않겠지. 그 쪽에 앉거라!”

막대광이 언제든지 자신의 묵혈도를 도천학이라는 자의 목에 날릴 준비를 하고 의자를 가리켰다.

“고맙습니다. 하아, 두 시진 전까지만 해도 참으로 화기애애했는데 오해가 이렇게 무섭군요.”

“우리가 무슨 오해를 했는지 한번 이야기 해 보거라.”

독고우가 자신의 품에 든 쇠혼금침과 혈신전, 추명사등 뭐부터 날릴까 고민하며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일단 저는 마교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마교에서 저를 잡으려고 아마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유는?”

“약 삼개월 전 오삼계 군이 청조의 황태자를 잡으려다 팔각채에서 놓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제가 있었고 오삼계 측에 협력한 곳이 마교였습니다.”

북리준이 황태자와 함께 팔각채 관제묘에서 오삼계를 잡으려다 오히려 함정에 빠져 겨우 탈출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내었다.

“네 놈 말에 의하면 이차정마대전에서 패해 숨었던 마교가 다시 발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조만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대일의 구도로 앉아 대치하고 있는 중에 도경명의 얼굴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과 네가 내 방에 이렇게 스며든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아, 그 쪽에서 마교도인지 물으셔서 답을 한 것입니다. 그럼 왜 제가 객잔주의 방에 들었는지 지금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북리준이 자신이 몸을 담았던 해남검문의 이야기부터 쌍괴동에 들어 천괴와 지괴의 유진을 이은 일을 차분한 어조로 한식경 정도 되는 시간동안 풀어내었다.

“저, 정녕 네가 천산쌍선 어르신의 진전을 이었다는 말이냐?”

“후후, 두 분은 쌍괴라는 말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그럼 자네 말을 종합해 보면 도문주와 교교의 몸에서 흘러나온 건공무극신공의 기운을 느꼈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분명 도형님과 따님은 건곤무극신공을 익혔습니다.”

“맞아, 맞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문 앞에 앉은 젊은이에게 다가가려는 도경명을 독고우가 막아섰다.

“너무 막연한 말이다. 뭔가 다른 증거가 없느냐?”

“뭐를 보여 드릴까요?”

“도문주, 천지쌍선 어르신의 신물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천선님의 일월신검과 지선님의 일월쌍륜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도경명의 말에 독고우가 북리준이 탁자에 올려 놓은 검을 바라 보았다.

“저것이 일월신검인가?”

“천괴님의 검이라면 맞소. 난 이 검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소.”

“도문주, 확인할 방법이 있는가?”

“없습니다. 전 방법을 모릅니다.”

“혹시 륜도 가지고 있는가?”

독고우의 말에 북리준이 말없이 양 팔목 수투에 숨겨져 있던 일월쌍륜을 꺼내었다.

“흰 것이 일륜이고 검은 검이 월륜일 것입니다.”

도경명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도경명이 흥분된 얼굴로 북리준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조사님들의 전인이 틀림없습니다.”

“잠깐! 천산파의 조사이신 천산쌍선의 성명무기가 검과 쌍륜인 것을 아는 자가 전인을 가장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독고놈 말에도 일리가 있다. 무조건 믿기에는 검과 륜 밖에는 없지 않는가?”

막대광 또한 아직까지 도천학이라는 젊은이에 드리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 들이지 않고 있었다.

“뭘 노리고 전인 행세를 합니까? 우리가 지금 가진 거라고는 심공 하나 뿐이고 천산의 무공이고 재물이고 전부 다 잃어버렸잖습니까?

고작 마교에서 백년 전 일로 복수를 위해 내 목숨 하나 취하자고 이런 짓을 한다구요? 두 분 께서 너무 앞서 나가시는 것 같습니다.”

그 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북리준이 조용히 격론을 벌이는 세 사람의 중간에 불쑥 끼어 들었다.

“증명할 방법이 있을 듯 합니다.”

“뭐로? 천산의 무공이 남아 있다면 네 놈이 펼치는 무공을 보고 인정하겠지만 지금은 너를 인정할 만한 것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독고우의 날선 말에 북리준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죄송하지만 두 분은 천산파 분이 아니신 듯 한데 도문주님과의 관계를 물어도 될런지요?”

불쑥 내밀어진 질문에 도경명이 독고우를 바라보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산파에게 구함을 받은 문파의 후손이십니다. 독고숙부님이 계신 문파 단 한 곳만 아직까지 저희 천산파를 돌봐 주고 계십니다.”

“난 독고놈의 친구고 어쩌다 보니 이 곳에 눌러 앉게 되었다.”

막대광이 독고우와 눈을 맞추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증명할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도경명이 애타는 눈빛으로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그 전에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말해 보시게!”

“왜 이리 쌍괴님의 전인을 기다리고 계시는 지요? 이미 이백년전의 분들인데.....?”

북리준의 질문에 장 내의 인물들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설명 하겠네. 난 자네가 알아보았다시피 현 천산파의 칠대 문주인 도경명이라 하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현 천산파는 이름 뿐인 껍데기라네. 이 객잔도 독고숙부님이 속한 문파에서 내어준 것이지.

백년 전 마교 잔당의 이차 습격 당시 총관이셨던 분과 내 조부님이 겨우 살아남았다네. 그 때 당시 총관께서는 무공을 모르는 분이셨고 조부님은 핏덩이에 불과한 갓난아기셨네.”

목이 타는 지 탁자에 든 찻주전자를 통째로 들어 벌컥 거리며 들이킨 후 다시 말을 이어갔다.

“총관께서 아시는 거라고는 건공무극신공 뿐이었고 믿고 의탁할 곳이라고는 독고숙부의 가문 뿐이었네.

총관께서 숨지시기 직전 건곤무극신공을 익히고 있으면 조사님의 전인이 찾아와 후손임을 알아 볼 수 있다고 하셨다네.”

도경명의 이야기에 북리준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 때문에 백년 동안 심공만 익혔다고요?”

“건곤무극신공에 맞는 무공을 찾을 수가 없었네. 천산파의 무공을 모두 잃은 상태에서 대체할 만한 것이 없었지.

내 대까지는 참고 견뎠지만 내 아들 놈이 더 이상 못견뎌하더군.....”

순간 도경명이 곤륜의 속가라 비아냥대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 그래서 아드님이....”

“자신은 잊혀진 문파의 후손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문파의 문하에서 무림을 활보 하고 싶다는 것을 결국 말리지 못했네....”

도경명의 참담한 표정을 보고 독고우과 막대광, 주방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가 천산쌍선의 후인 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네, 쌍괴 선배님들의 유진이 천산파의 옛 터에 이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천산파의 터에?”

“오늘 막노야와 함께 올랐을 때 그 터의 한 곳에 접근 했을 때 쌍륜이 우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일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 륜으로 밝힐 수 있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겠습니까?”

< 45. 넌 누구냐?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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