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46화 (46/167)

< 46. 고작 삼재검? >

“그 빈터에 무언가 남아 있단 말인가?”

도경명이 놀란 목소리로 북리준을 바라보았다.

“저도 놀랐습니다. 지괴님의 륜이 그 곳에 가까워지니까 울기 시작하더군요.”

“허허, 마교놈들에 이어 수 많은 무림인들이 이 잡듯이 뒤져 주춧돌 하나 까지 다 뽑아 갔는데 그곳에 뭔가가 남아 있다니....”

도경명이 허탈한 표정으로 장내의 인물을 바라 보았다.

“도아우, 아.... 북리준이라고 했는가?”

“네, 제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어 본명을 숨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북리준이 해남검단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며 조사님의 이름을 쓴 사연을 들은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북리아우의 말대로 지선님의 유진을 일월혈륜으로 발견 한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상황입니다.”

도문주의 말에 독고우과 막대광이 서로의 눈을 바라 보며 고개를 주억 거렸다.

“지금 당장 가봅시다.”

도문주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부산히 옷을 입기 시작했다.

“잠깐 진정 좀 하게....”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무려 백 년을 기다려온 사람이 왔는데 말입니다.”

독고우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도문주를 보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독고우님 말씀대로 잠시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시지요.”

북리준의 말에 도경명이 냉큼 침상에 앉아 반짝이는 눈으로 북리준을 응시했다.

“뭔지 말해 보시오!”

“그곳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이 일월쌍륜이 없다면 절대 발견 할 수 없는 뭔가를 지괴님이 만들어 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땅 속에 위치한 곳을 찾아 간다면 준비를 조금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맞네. 지금까지 땅속에 있던 뭔가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을테니 진정하고 준비를 하고 나서세.”

북리준과 독고우의 말에 도경명이 두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하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백년을 기다렸는데 하루를 못 기다리겠습니까?”

도경명의 차분해진 모습을 보고는 북리준이 커다란 식도 두 자루를 쥔 주방장을 바라 보았다.

“밤이 길 듯 한데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런지요?”

“하하, 난 원래부터 자네가 마음에 들었다니까!”

“미친놈, 마교도라면 불문곡직하고 목을 따야 한다고 도를 들고 설친 놈이 누군데....”

“이놈아, 오해라고 하잖아, 오해! 야, 빨리 술상 거하게 봐 와라.”

식도 두 개를 갈무리한 주방장이 고개를 숙이고는 방을 나섰다.

잠시 후 도경명의 방에 북리준, 독고우, 막대광, 주방장 까지 거하게 차려진 술상을 사이에 두고 자리를 잡았다.

“정말 반갑네. 어쩐지 자네가 처음부터 호감이 가더라니까.”

도경명이 북리준의 잔을 따라 주며 활짝 웃음을 지었다.

“자네를 오해해서 미안하네. 너무 오랜만에 천산파를 찾는 사람이 와서.....”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 합니다.”

독고우의 사과를 넉넉한 웃음으로 받은 북리준이 잔을 들었다.

“실례가 될지 모르는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술이 두어순배 돌고 난 후 북리준이 독고우에게 넌지시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게!”

“저는 감사 하게도 천산쌍괴님 두 분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두 분의 부탁이 천산파를 도우라는 것이었는데 천산파의 후인을 돌봐 주시는 독고우님과 막대광님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군요.

독고총관님을 처음 뵈었을 때 예사 분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혹시 어디에 속해 계시는 분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북리준의 말에 도경명과 독고우, 막대광이 서로를 바라 보았다.

“북리아우는 외인이 아닙니다. 저희 천산파 조사님의 진전을 이어 두 분의 부탁을 이행하기 위해 멀고 먼 길을 흔쾌히 달려와 주었습니다.”

도경명의 말에 독고우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자신의 잔을 들어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혹시 풍령곡이라고 들어 보았는가?”

풍령곡!

중원 무림 살수계에 두 개의 하늘이 있었다.

하나는 풍령곡이오 다른 하나는 귀혈루라 불렀다.

‘원한이 사무쳐 하늘과 땅 사이를 메울 정도라면 풍령곡을 찾으라. 원한이 해결된 후 울리는 풍령소리에 영혼의 안식을 얻을지니....’

귀혈루는 돈이 된다면 남녀노소 선인악인 구분 없이 척살을 받아 주었으나 풍령곡은 삼불의 원칙에 어긋나면 억만금을 주더라도 청부를 수락 하지 않았다.

청부대상이 어린아이와 아녀자, 선인으로 판명된 자라면 풍령의 힘을 빌릴 수가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풍령곡은 천산파의 도움으로 개파를 하게 되었고 천산이 이 지경이 되기 전까지 천산의 그늘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네.

일차정마대전 당시 최후의 결전에 풍령곡을 제외시켜 훗날을 도모케 하신 분이 당시 천산 문주셨네.”

막대광이 채워준 술잔을 다시 집어든 독고우가 말을 이어갔다.

“풍령의 조사님들이 천산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유훈을 남기셔서 도문주와 함께 하고 있다네.”

도경명이 독고우에게 감사의 눈길을 보내고는 말을 이어 받았다.

“독고우님은 전대 풍령곡주셨고 지금은 태상장로로 계신다네.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시는 너무 고마운 분이시지.”

귀령검 독고우!

전대 풍령곡의 곡주였고 백 번의 청부를 완벽하게 완수하여 살수계의 전설로 추앙받던 전대 고수였다.

“막대협도 우리 객잔에 계시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분이시지....”

“에이, 내 얼굴에 금칠 하지 말라구. 난 여기 생활이 아주 좋아.”

묵혈도 막대광!

독고우의 죽마고우이며 이십년 전 정사무림을 막론하고 잔인한 손속과 독심으로 유명한 잔지방을 혈혈단신으로 멸문시킨 전대 고수 중 한 명이었다.

“애새끼 들이 손발이 없는 병신이라도 마음을 곧게 썼으면 그렇게 안했지....”

막대광의 친우였던 한운노인의 딸이 잔지방도들에게 간살되고 한운노인의 집 또한 풍비박산이 난 것을 안 막대광이 자신의 애도인 묵혈도를 걸머진 채 잔지방의 문을 넘었었다.

“그리고 주방장으로 있는 곤오는 독고우님의 제자일세.”

말없이 잔을 들어 건배를 권한 후 잔을 쭉 들이키는 주방장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혀가 끊겨 말을 못 하네. 굳이 나를 따를 필요가 없으니 풍령곡에 머물라고 해도 말을 더럽게 안 들어요.”

독고우의 투덜거림에 곤오가 또 한번 헤벌죽 웃음을 지었다.

“여기 있는 세 분은 우리 천산파에 큰 은혜를 베푼 분들일세. 북리아우도 이 세분을 우리 천산의 문인 대하듯 해 주시게.”

“알겠습니다. 문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천산에는 언제 오를꼬?”

막대광이 연신 술을 마시며 툭 하니 말을 던졌다.

“혹시 모르니 횃불과 밧줄 등 필요한 것을 준비한 후 내일 축시경에 여기 계신 분들과 함께 오르는 것으로 하시지요.”

****

날이 밝아 도경명이 자신의 딸인 도교교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을 털어 놓았다.

“그분이 아버님이 그리 기다리던 조사님들의 전인이시라구요?”

“그렇단다. 배분상으로는 우리 윗분이시니 언동에 각별히 유의하거라.”

“내일 축시경에 저도 함께 하겠어요.”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넌 여기 남아 있거라.”

“아버지! 저도 아버지의 말씀대로 심공 하나만 익히고 조사님의 전인을 기다렸어요. 저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으흠.... 알았다. 같이 가도록 이야기해 보마.”

그 때 객잔 뒤의 연무장에서 기합성과 함께 검을 휘두르는 소리에 도경명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 망할 놈... 조금만 참지....”

“기룡이는 자기만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으니 그 얘가 선택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세요.”

기합소리와 검이 공간을 가르는 소리를 안주삼아 막대광과 북리준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도문주의 아들놈은 아버지가 언제 올지 모르는 조사의 전인을 기다리는 것을 아주 혐오했다네. 도문주와 대판 싸우고 누이인 교교가 편을 들어 주어 몇 년전에 곤륜의 속가로 들어 갔다네.”

북리준이 빈 막대광의 잔을 채워주자 잔을 입 안에 털어 넣은 채 말을 이어갔다.

“말이 속가제자지, 솔직히 곤륜의 돈줄이지 뭐.”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의 속가제자라 함은 그들의 이름을 빌려 호가호위 하려는 자들이 태반이오 개중에 높은 사람의 눈에 들어 직전제자가 되는 희귀한 경우가 있긴 했다.

“북리아우, 내 부탁 하나 함세.”

“도문주, 그래도 조사님의 진전을 이었는데 아우는 너무 하는 거 아냐?”

막대광의 말에 도경명이 멈칫 거리다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럼 뭐라 호칭을 해야 할까요?”

“나도 그런 걸 잘 몰라. 독고놈한테 물어 보라구.”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독고우가 일행들이 있는 탁자로 다가왔다.

“태상장로 정도?”

“아이구, 그건 제가 사양하겠습니다. 무슨 백살 먹은 할아버지 같습니다.”

북리준이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젓고는 술잔을 들었다.

“그냥 봉공 정도로 하지요. 천산파를 위해 애써 일할 일군 정도로 해 주세요.”

“호오, 좋네. 북리봉공!”

막대광이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북리준을 쳐다 보았다.

“봉공, 부탁이 있네.”

“말씀 하세요.”

“내 아들놈에게 천외천의 세상을 보여 주고 싶다네. 저 놈은 곤륜의 무공이 세상 제일인 줄 알고 있다네.”

“귀령검님과 묵혈도님도 계시는 데 제가 어찌....?”

“살수의 검과 낭인의 검은 저 놈이 인정하지 않는다네. 아주 우스운 발상이지....”

막대광의 말에 북리준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스운 발상이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네요. 고쳐야 한다면 빨리 고치는 것이 낫지요.”

“고맙네.”

도경명이 활짝 웃음을 지으며 앞장을 섰다.

‘후우웅 하아아앗 탓’

곤륜의 속가제자들에게 전하는 금안행공의 신법에 소청검을 연습한 도기룡의 얼굴에 만족감이 떠올랐다.

‘두고보라구, 아버지에게 보란 듯이 곤륜의 직전제자로 들어가 천산파의 미련을 내 대에서 끊어 버릴 거야.’

저 편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아버지가 처음 보는 사내와 함께 총관과 부총관을 대동하고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아주 지랄났구나. 그게 곤륜의 검이냐?”

“무공 한 자락도 모르고 오로지 심법만 수련한 아버지가 뭘 알겠습니까?”

“네 놈이 그리 자랑스러워 하는 곤륜의 검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고 싶구나.”

“숙부님들과는 검을 섞지 않는다니까요.”

도기룡이 신경질적으로 검을 수납하고는 벗어 놓은 웃옷을 집어들었다.

“삼재검만 쓰겠네.”

처음 보는 사내의 말에 도기룡의 얼굴이 팩 돌아섰다.

“지금 고작 삼재검으로 대 곤륜의 검에 도전하겠다는 거요?”

“대 곤륜의 검이라.... 검이란 말일세. 형과 식이 중요한 것이 아닐세. 삼재검이라도 일만번 십만번 백만번 휘둘러 그 진의를 얻은 자를 형식에 얽매인 검이 결코 이길 수 없다네.”

“어디서 훈계질이오?”

북리준이 연무장 옆에 놓인 병기대에서 목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넌 진검으로 하고 난 목검으로 하지. 약속대로 삼재검만으로 대응하겠네.”

하도 어이없는 말에 도기룡이 자신의 부친을 쏘아 보았다.

“저 자는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네요.”

“네 놈의 그 잘난 대 곤륜의 검으로 시험해 보거라.”

“분명 아버지가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 자가 죽어도 제 책임이 아닙니다.”

그때 술병과 잔, 간단한 소채를 챙겨온 막대광이 연무장 한켠 탁자에 올려놓고 웃음을 지었다.

“자, 한판 놀아봐라. 난 여기서 술이나 한잔 하련다. 독고놈아, 안 보인다. 이리 오던가 들어가던가.”

“나도 한잔 다오.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칠 수가 있나....”

“저도 한잔 주시지요.”

도경명도 독고우의 옆에 자리를 잡자 도기룡의 얼굴이 화가 나 폭발 일보 직전까지 갔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대 곤륜의 검을 보고 싶으니 들어와!”

북리준이 왼손으로 목검을 거꾸로 쥐고 직립부동자세로 전방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검결지로 해서 팔을 뻗어 몸의 측면에 자연스럽게 두었다.

“소진배검.....”

도기룡이 정말 삼재검의 기수식을 취하는 북리준을 보며 이를 악다물었다.

“죽어도 내 탓을 하지 말아라.”

< 46. 고작 삼재검? > 끝

ⓒ 편광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