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공공무환진 >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북리준의 손에 끌려나온 막대광을 보며 독고우가 혀를 찼다.
“아주 볼만하더라.”
“흐윽 흑, 이 미친놈아 네 놈이 한번 들어가 보거라....”
겨우 진정을 한 막대광이 민망한 표정으로 손소매를 들어 얼굴을 훔쳤다.
“뭐가 있었길래 그랬습니까?”
도문주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막대광에게 다가왔다.
“처음에 저 곳에 발을 디디니까 갑자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가 몰려 오기 시작하더라구. 무슨 놈의 안개가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뻑뻑하냐고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땅이 꺼지며 한없이 추락을 시작하는 거야.
정말 끝이 없는 무저갱에 떨어져 내리는 심정이 어떤지 알겠더라구. 진짜 한 시진 이상 떨어지는데 이러다 땅에 부딪쳐 육젓이 되겠구나부터 시작해서 내가 살아왔던 후회스런 일들이 전부 다 떠오르는 거야.”
도교교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려는 막대광에게 물주머니를 건넸다.
“고마워....”
벌컥 거리며 물을 들이킨 막대광이 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도문주에게 말을 이어 설명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사막 한 가운데 서있더라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밟고 있는 모래가 서서히 꺼지기 시작하며 천천히 내 몸이 모래에 잠기기 시작하더라.”
끝없는 추락, 유사하에 잠겨 질식하기 일보 직전 거대한 바다 속에 끝없이 허우적 대기 등 거의 하루 동안 떨어지고 허우적거렸다는 막대광의 말에 독고우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 놈아, 네 놈이 저 곳에 들어간 지 반각도 안되었다. 뭔 놈의 하루......”
“네 다시는 진법 근처에 얼씬도 안 한다. 다시 들어 가면 사람이 아니지, 암!”
“공공무환진은 진법에 들어간 사람이 무서워 하는 환경을 만들어 공포에 절게 만드는 진입니다. 문제는 조력자가 없다면 공포에 질려 정신이 나간다는 것이지요.”
“파훼법은 있겠지?”
독고우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진을 뚫고 들어가서 그 안에 진을 구성하는 중심부작을 손 보면 됩니다.”
“어떻게? 누가 들어가는데?”
막대광이 두 팔에 돋는 소름을 양손으로 문지르며 놀란 눈을 치켜떴다.
“네 놈 보고 들어가란 소리는 안 하니까 그만 주접떨어라.”
독고우의 말에 막대광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지? 나보고 다시 들어가라고는 안할거지?”
“제가 들어 가서 진을 해진 할테니 잠시들 기다리시면 됩니다.”
북리준이 공공무환진이 펼쳐진 진법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직 이보 우 삼보 후 이보 직 사보 좌 오보....’
뒤에서 보니 북리준이 휘적 휘적 마치 쓰러질 듯 어지러히 발걸음을 놀리는 것을 보며 막대광이 혀를 찼다.
“난 놈은 난 놈일세....”
직선 걸음으로 이십보가 채 안되는 공간을 일다경에 걸쳐 전후좌우로 어지럽게 움직이던 북리준의 신형이 갑자기 지워지듯 없어졌다.
“어? 없어졌어!”
도경명이 놀라 소리를 지르자 자신들이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벽 속에서 북리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우!”
“뭐야? 뭔데?”
막대광이 자리에서 일어서 까치발을 하며 뭔가 보이는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북리준이 사라진 곳을 주시했다.
“까치발을 한다고 뭐가 보이냐? 미련한 놈...”
“혹시 아냐? 보일지... 어?”
일행들의 앞에 놓인 빈 공간이 갑자기 울렁 거리는 듯 하더니 ‘푸스스스스스’ 기음과 함께 넓은 공간 전면에 뚫린 동굴 세 개가 눈에 들어 왔다.
“들어들 오세요.”
“신기한지고.... 저런 동굴이 어떻게 막다른 벽으로 보였을꼬?”
막대광이 짐짓 대범한 척 뒷짐을 진 채 발걸음을 내디디려다 멈칫 거렸다.
“뭐하냐, 안 가고?”
“네 놈이 먼저 가라.”
독고우가 겁먹은 얼굴로 자신을 돌아 보는 친우의 엉덩이를 냅다 발로 내질렀다.
“꺼져!”
“어어어어.... 별일 없구나....”
엉겁결에 광장에 발을 디딘 막대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저 앞에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북리준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천산동부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북리준의 말에 고개를 들어 보니 세 개의 동굴 위에 일필휘지의 힘 있는 글씨체로 음각된 天山洞府(천산동부)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쌍괴 어르신들이 이 곳을 떠나시기 전 후대를 위해 준비해둔 것 같습니다.”
도경명이 감동에 겨운 표정을 지으며 울먹 거렸다.
“내, 내가 이런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대에 이런 경사가....”
“아버지께서 조사님들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시지 않으셔셔 하늘에서 도우셨어요. 정말 저도 너무 기뻐요.”
두 부녀가 얼싸안고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독고우가 세 개의 동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어디부터 볼까? 크크크!”
막대광이 두 손을 비비며 흥분된 어조로 독고우의 옆에 섰다.
“이놈아, 잘 들어! 여기 있는 것은 모두다 천산파의 소유야. 행여 눈독 들이지 마라.”
“보는 것도 못하냐? 보기만 해도 좋다!”
북리준이 도부녀가 진정되기를 기다린 후 일행들을 한 군데로 모았다.
“일단 기관이나 다른 진은 없다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너무 놀라지들 마셨으면 합니다.”
북리준이 의미있는 미소를 짓고는 맨 왼편의 동굴로 일행들을 이끌었다.
天山藥庫(천산약고)라 돌로 음각된 글씨가 쓰인 동굴 앞에서 막대광이 흥분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영약이 있나 보네.”
“약고 라고 써 있잖아. 멍청아!”
“이백년이 지났는데 약이 온전 하겠는지요?”
도교교의 말에 막대광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맞네.... 이백년동안 남아 있는게 있겠나?”
“먼저 속단 하지 말자구. 일단 들어가세. 여기만 문이 있네!”
독고우의 말에 일행들이 천산약고라 쓰여 있는 동굴 안으로 닫혀 있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와우, 춥다....!”
어디에서 불어 오는지 모를 냉기가 그득한 바람이 동굴 안을 휘감아 돌아 나가는 느낌에 막대광이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 보았다.
사방 오장 정도 되어 보이는 방 안 양 옆에 횃불을 걸어 놓을 수 있는 구멍에 횃불을 꽂아 넣자 방안의 정경이 눈에 들어 왔다.
“와아, 정리는 잘 해 놨네.”
정면에 나무로 만든 가로 다섯, 세로 다섯으로 격자를 만든 커다란 선반에 고급스런 궤짝들이 하나씩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다.
“어디보자, 뭐가 있나?”
막대광이 보니 왼편 선반 격자들 안에 놓여 있는 상자들 위에 무엇인가가 씌여 있었다.
“천산신단?”
“여기도 천산신단 이라고 써 있는데?”
“여기도요!”
“아, 천산신단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어.”
도문주가 무언가 생각을 끄집어 내는 듯 표정을 구기고 있다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천산파의 개파 때 쌍선님들이 만들었던 영단 이름이 천산신단 이었어. 내상에 이 보다 좋은 약이 없었다고 할아버님께서 말씀해 주셨지. 마교대전 때 이 약이 있었다면 내상을 입었던 천산의 고수들이 그렇게 헛되이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들었어.”
오른편 선반 격자에 있는 상자를 본 막대광이 손가락으로 상자를 가리켰다.
“여기는 천산신고라고 써 있는데?”
“천산파에서만 만들 수 있었다는 비전의 금창약 이름이 천산신고였습니다.”
“일단 열어 보세. 지금 쓸 수 있는지 말일세.”
독고우의 말에 도경명이 천산신단과 신고가 든 상자 하나씩을 가지고 왔다.
‘딸깍’ 닫혀 있던 천산신단의 상자를 여니 금색의 알 수 없는 재질의 천에 고이 싸인 열 알 정도의 약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냄새를 맡아 보니 부패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도 상하지 않았어. 이거 대단한데?”
좌측 선반에 놓인 천산신단의 상자를 어림잡아 계산 하더니 막대광이 희희낙락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상자가 스무개니 열알씩 이백개네. 비전의 내상약이 이백개에 금창약은.... 우와, 이 것도 이백개야.”
“일단 한 상자씩 가지고 나가 지금도 약효가 남아 있는지 검증을 하기로 하시지요.”
북리준의 말에 도경명이 상자 두 개를 챙겼다.
“그런데 왜 중앙에는 이거 하나만 덩그러니 있지?”
좌측에는 천산신단이 우측에는 천산신고가 선반에 가득 놓여 있었는데 중앙 선반에는 중간에 사람 손바닥 정도 되는 자그마한 궤가 놓여 있었다.
“설마 이거 진짜야?”
조그만 상자 앞에 쓰인 글을 본 막대광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공청석유? 야, 너 공청석유 본 적 있냐?”
“그건 전설에나 나오는 영약이지, 내가 언제 보겠냐?”
“여기 써 있는 것이 진짜면 우리는 전설을 보는 거다.”
두 사람이 중앙에 놓인 자그마한 상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도문주님이 가지고 계세요.”
북리준이 성큼 앞으로 나와 상자를 집어 도경명에게 내밀었다.
“이, 이건...”
“이 곳에 있는 모든 것의 소유권은 도문주님께 있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독고우와 막대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근데 구경만 해도 안될까?”
막대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도경명이 흔쾌하게 상자를 열었다.
붉은색 마개에 앙증스런 자그마한 옥색 자기병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막대광이 혀를 찼다.
“저거 먹으면 막 몇 갑자씩 내공이 늘어 초인이 되고 막 그런거냐?”
“이 미친놈아! 그런 영약이 어디있냐?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저거 한 방울에 일갑자 정도 보면 된다고 들었다. 더 먹는다고 더 느는 것이 아니고...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른데 온전히 공청석유의 효능을 다 녹여 내공으로 화하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했다.”
“야, 반만 녹여도 삼십년 내공인데 그게 어디냐?”
“네 놈이나 나나 이제 얼마나 살겠다고 저런 거에 눈독들이겠냐? 아서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그나 저나 눈호강 제대로 했다.”
막대광과 독고우의 사심없는 눈과 말에 북리준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 곳에서 칼부림을 하게 될까 걱정 했는데....’
“다음 동굴로 가보시죠!”
북리준이 도경명이 자신의 가슴속에 잘 갈무리한 상자를 확인하고는 다음 동굴로 향했다.
天山武庫(천산무고)라 써 있는 동굴 안에 들어서며 독고우가 막대광에게 주의를 줬다.
“횃불 조심해라. 화재 나면 넌 죽는다.”
살펴 보니 방 왼편에는 네 자루의 검과 한 자루의 도가 먼지를 흠뻑 쓴 채 가지런히 병기대에 놓여 있었고 오른편에는 책장이 보였다.
“이 검 예사롭지 않군.”
“야야, 이 도 좀 봐라.”
이백년이 흘렀으나 검과 도에 씌인 먼지를 털어 내자 예사롭지 않은 예기가 검과 도에서 흘러 넘쳐 나왔다.
“용영검이라...”
독고우가 검병에 쓰인 글을 보며 중얼거렸다.
도교교도 자신을 이끄는 검을 하나 들고 검집에서 검을 빼들었다.
“조화신검이라 쓰여 있네요.”
“이건 청상검이군.”
“묵룡도라.....허허!”
막대광이 묵빛의 도신에 새겨진 묵룡을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욕심내지 말자. 내 것이 아니잖아....’
가슴 한 켠에서 비집고 올라오는 욕심을 애써 내리 누르며 도를 내려 놓으려는 찰나 도경명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 도, 막숙부님께 드릴께요.”
“어억....아니, 안되지.... 이 귀한 걸....”
“어차피 이 중에 도를 다루시는 분이 막숙부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무런 보답도 해 드리지 못하고 은혜만 입었는데 제가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한번 더 사양하면 내가 가지마!”
“이런 미친놈이.... 정말 고맙네. 천산파는 이제부터 꽃길만 걸을 걸세, 허허허허!”
어린아이 같이 묵룡도를 품에 안고 실실거리는 막대광을 보며 독고우가 씨익 웃음을 지었다.
< 48. 공공무환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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