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50화 (50/167)

< 50. 한칼 보태려고 >

방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은 도경명이 눈을 감고 건공무극신공을 일주천 한 후 북리준의 말대로 혀를 앞으로 내밀었다.

‘또옥’ 한방울의 공청석유가 혀에 떨어지고 꿀꺽 삼킨 도경명의 얼굴이 점차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건곤무극신공의 운기에 따라 약력을 인도하겠습니다.”

터질 듯이 붉게 타오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안타까워 하던 도교교의 눈에 그 뒤에 앉아 손가락과 손바닥을 이용하여 추궁과혈을 시전하는 북리준의 얼굴에 맺히는 굵은 땀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타탓 타타탁 탓 타타타타탁’

연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을 움직여 도경명의 등과 머리를 오가던 손이 어느새 전면으로 이동하여 가슴과 얼굴, 팔등을 연신 두드리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윽 크으으윽 커헉”

북리준의 손놀림에 붉게 타오르던 얼굴이 점차 제 색깔을 찾아가고 괴로움에 신음을 내뱉으며 연신 오르내리던 가슴이 천천히 안정을 찾아갔다.

“휴우우.... 다 되었습니다. 신공의 혈로를 따라 삼주천하시면 됩니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도경명의 머리 위에서 허연김이 피어 오르고 편안한 얼굴로 운기를 하는 모습에 도교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땀으로 범벅이 된 북리준을 보고 수건을 내민 도교교에게 북리준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반시진만 쉬었다 기력을 회복 한 후 도낭자를 봐 드리겠습니다.”

반시진 후 도경명 신광이 가득한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북리준에게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은공! 이 은혜는 평생을 통해 갚겠소이다.”

“천산파를 다시 세우시면 됩니다. 이제 저 편에서 내기를 가다듬고 계시면 도낭자에게 시술을 하겠습니다.”

자신의 아비가 앉았던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도교교가 날뛰는 심장을 부여 잡고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다.

‘남자의 손길이 한번도 닿지 않은 청백지신이니 겁이 날만도 하지.....’

도경명이 발걸음을 옮겨 도교교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았다.

“시술을 받는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거라.”

“네, 아버지!”

기력을 회복한 북리준이 공청석유가 든 병을 들고 다가오자 도경명이 뒤로 물러섰다.

“면사를 벗어 주셨으면 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면사를 미처 생각 못한 도교교가 떨리는 손으로 면사를 벗어내었다.

‘교교의 미모를 본 봉공의 반응이 궁금하군.’

식구들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면사를 벗지 못하게 한 이유는 어릴 때부터 너무나 뛰어난 미색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었다.

“으음, 면사를 안 하시는 것이 훨씬 좋겠네요.”

싱긋 웃음을 짓는 북리준의 모습에 도경명과 도교교가 예사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내 얼굴을 보고 저런 표정을 짓는 사람은 처음이야...’

‘호오, 미색에 흔들리지 않는 견정함을 가진 사내구나....’

북리준은 도교교의 얼굴을 보며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백봉이라는 제갈청하하고 우열을 가리기 힘들겠네. 잘 지내겠지?’

가부좌를 튼 채 기를 일주천 한 후 혀를 내민 도교교의 혀에 자기병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크으으윽”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도교교의 얼굴을 보며 등 뒤에서 두 손을 들어 내기를 모아 추궁과혈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런 건가? 기분이 너무 야릇하네....’

북리준의 손이 등과 가슴, 머리, 팔, 다리를 거침없이 두드리며 스쳐 지나 갈 때 마다 점점 몸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끼며 흔들리는 도교교의 귀에 북리준의 전음이 들려왔다.

‘집중하셔야 합니다!’

‘아, 내가 무슨 추태를.....’

마음을 다 잡고 정신을 집중해 건곤무극신공에따라 공청석유의 약력을 돌려 내기 시작했다.

‘타타탓 타탁 타타타타탁 타탁’

거침없이 도교교의 전신을 훑어내던 북리준의 손이 어느 순간 딱 멈추었다.

‘다 되었습니다. 기경팔맥에 신공으로 내기를 삼주천 하십시오.’

자신의 딸의 머리에서 흰 김이 모락 모락 솟아나는 것을 보고는 도경명이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온 몸이 땀에 절어 혼미할 정도로 기를 쏟아낸 북리준이 도교교가 건네주었던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내었다.

“저는 제 방에서 쉬어야 할 듯 합니다. 두 분은 하루 동안 건곤무극신공에 따라 내기를 돌려 내십시오. 저는 이만....”

문을 열고 나서는 북리준을 독고우와 막대광이 반색을 하며 맞이했다.

“잘 되었는가?”

“네, 두 분 덕에 잘 마쳤습니다. 저는 기력이 쇠하여 조금 쉬어야겠습니다.”

“얼른 가세. 내가 부축해 줌세!”

휘청거리는 북리준의 신형을 막대광이 받아 들고는 북리준의 방으로 향했다.

하루를 죽은 듯이 잠을 잔 북리준이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쉬운 일이 아니군....”

“북리동생, 혹시 기침 했는가?”

막대광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네, 들어오시지요.”

북리준의 말에 문이 빼꼼히 열리고 막대광이 얼굴만 쏙 내밀었다.

“독고놈이 더 쉬게 놔 두라는데 혹시 배고플 것 같아서 말이야.”

“이놈아, 술을 같이 먹고 싶다고 솔직히 이야기 해라.”

뒤에서 독고우의 목소리가 들리고 막대광이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겸사 겸사 밥도 먹고 술도 먹고....”

“그렇지 않아도 시장하던 참이었습니다. 술도 고프고요.”

“하하하, 그렇지? 자자, 빨리 나오게. 교교가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 놓고 있다네.”

막대광과 함께 일층에 내려온 북리준이 아무도 없이 휑한 객잔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하루 문을 닫았네. 오늘의 유일한 손님은 자네일세.”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환한 얼굴의 도경명이 북리준을 맞이했다.

“어, 면사를....?”

도교교가 면사를 벗고 화사한 옷을 입은 채 두 손을 모으고 북리준을 맞이했다.

“어차피 제 진면목을 아시는 데 굳이 면사를 할 필요가 없어서요.”

“훨씬 보기 좋습니다.”

커다란 탁자에 상다리가 부러져라 온갖 산해진미와 미주가 차려져 있고 그 주위에 도경명, 교교, 독고우, 곤오가 웃음을 지으며 북리준을 기다렸다.

“크하하하하! 오늘 같이 경사스런 날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자구.”

막대광이 연신 술잔을 비우고 북리준에게 어깨동무을 하며 쾌활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고맙네. 이대로 천산의 전설이 묻히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너무 안 좋았는데....”

독고우가 자신의 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했다.

기쁜 맘으로 먹고 즐기고 마신 일행이 새벽녘이 되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북리준은 도문주에게 이야기하여 미리 받아온 검법서와 보법, 진법책을 꺼내어 탁자에 올려 놓았다.

‘어느 정도 내가 천산의 검을 알아야지!’

천산파천삼검, 천산검결, 천산십팔류, 천유신보 등을 정독한 후 싱긋 웃음을 지었다.

“왜 천괴님이 나중에 천산파 후인의 무공을 보면 왜 천산의 무공을 남기지 않았는지 알거라시더니..... 내가 익힌 남해무극칠절에 이 모든 것이 녹아 있었구나.”

천유신보라 적힌 책자를 들고는 다시 중얼거렸다.

“내가 익힌 비천신영의 원류가 바로 천유신보였구나. 이러면 내가 굳이 이 검법들을 익혀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어 다행이다.”

다음 날 객잔의 일은 독고우와 막대광에게 맡기고 도경명과 도교교는 천산동부에 북리준과 함께 들었다.

“지금부터 이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천산의 무공을 전수 하겠습니다. 앞으로 육개월 안에 두 분이 알아서 수련 하실 수 있는 기초을 닦아 드리겠습니다.”

흑색 무복을 입은 두 부녀가 눈을 빛내며 동부에서 얻은 청상검과 조화신검을 들었다.

****

“진짜 독기 품었네.”

“북리봉공이 가기 전에 최대한 배워 놔야 하니 그럴 수 밖에....”

막대광이 육개월 동안 단 한번도 동부를 나서지 않는 도부녀와 북리준을 이야기 하며 혀를 찼다.

“이제 조만간 나올테니 안달하지 말아라.”

“정말 궁금하지 않냐? 백년 전 그 무시무시한 마교를 박살낸 천산의 무공 말이야.”

“곧 볼 수 있을텐데 뭔 걱정이냐?”

그 때 도문주와 교교, 북리준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오오, 드디어 왔네!”

도경명과 교교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형한 안광을 본 독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들 하셨네.....”

“이제 술 같이 먹자. 맨날 이 놈하고 먹으니까 재미가 없다.”

막대광이 껑충 거리며 북리준의 주위를 뛰어 다녔다.

“두 분 오늘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시고 그 동안의 피로를 푸시지요.”

북리준의 말에 도경명과 교교가 포권지례를 하며 허리를 숙였다.

“네, 사부님!”

“하아, 그러지 마시래도요....”

“무공과 내공을 다 사사 받았는데 당연히 사부님으로 모셔야지요.”

“저도 아버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북리준에게 독고우가 다가갔다.

“일단 다들 쉬고 내일 이야기 하세.”

뜨거운 목욕물에 전신을 담근 도교교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난생 처음 외간 남자의 손길이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갔고 육개월 동안 지극정성으로 아버지와 자신을 가르친 북리봉공의 모습이 계속 눈앞에 아른 거렸다.

‘떠나실 분인데 정을 주면 안돼....’

자신의 미색에 혹한 수 많은 남자들을 보며 스스로 남자에 대한 혐오감이 극심했었으나 북리준을 생각하면 남자라는 존재가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물 둘에 한 사람 정도는 마음에 담아 두어도 나쁘지 않겠지.... 오늘까지만 잡스런 생각을 용납하자. 내일 부터는 아버지와 천산파를 바로 세울 일만 생각하자....’

다음 날 저녁 오랜만에 독고우와 막대광, 곤오, 도씨부녀, 북리준이 도경명의 방에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도문주님과 도낭자께 천산파천삼검, 천산검결, 천산십팔류, 천유신보의 기초는 다 닦아 드렸습니다. 다행이 공청석유의 효용이 뛰어나 도문주님은 오십년, 도낭자는 사십년 정도의 정순한 내공을 쓰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도경명과 교교는 스스로의 성취에 자부심을 느꼈다.

“천산의 입문 검법인 천산검결의 경우 두 분 다 사성을 넘어섰고 상위 검법인 천산십팔류와 최상위 검법인 천산파천삼검은 이성과 일성 초입에 드셨습니다.

현재 상태로라면 두 분이 계속 검술을 연마 하시면서 무관을 여셔도 무방하리라 생각 합니다.”

북리준의 말에 도경명이 포권을 취했다.

“봉공님의 헌신적인 가르치심 덕분입니다.”

사부라는 말에 곤혹스러워 하던 북리준을 배려 하여 봉공으로 명칭을 통일 하기로 하였다.

“저는 앞으로 열흘 정도만 이 곳에 더 머물다 떠날 예정입니다.”

북리준의 말에 도교교의 얼굴에 아픈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드디어 자네가 이야기한 복수행을 시작 하는건가?”

막대광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 했지만 이제 시작해보려 합니다.”

그 때 막대광이 독고우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 받더니 북리준의 잔을 채워 주었다.

“북리아우! 독고놈하고 이야기를 조금 해 보았는데 내가 북리아우의 복수행에 한칼 보태려고 하는데 괜찮겠지?”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허, 내가 가고 싶어서 그래. 이 천산 촌구석에서 이십년을 버티고 있었더니 삭신이 쑤셔. 아직 내 묵혈도 아, 아니지... 지금은 묵룡도지. 어찌되었건 자네의 강호행에 폐가 되지는 않을걸세.”

“도문주님을 도우셔야지요.”

“아니요, 이미 저희끼리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저와 교교는 당장 북리봉공을 따라 나서지 못하지만 독고숙부님과 막숙부님은 천산무관에 관한 일이 어느 정도 준비되면 바로 북리봉공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로 하였습니다.”

도경명의 말에 독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가놈 말대로 나도 무림인인데 너무 이 곳에서 총관 노릇만 했더니 조금 지겹다네. 다행이 도문주가 천산의 무공을 다시 이었고 천산파의 은공인 자네의 강호행에 나와 막가놈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바랄 것이 없네.”

“암, 우리가 자그마한 도움은 될걸세. 우리의 무공과 경험이 어디 나가서 무시 당할 정도는 아닐세.”

막대광이 호쾌하게 술잔을 비우고 북리준에게 내밀었다.

“저야 두 분이 도와주시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지요.”

“하하하, 그래! 그렇게 말해 줘야 우리가 갈 맛이 나지.”

“그런데 도문주님과 도낭자께서 괜찮으실런지요? 두 분의 도움이 절실하실텐데.....”

“걱정마시게. 독고숙부님이 요청 하셔서 풍령곡의 식구들이 오기로 했네.”

풍령곡의 고수들을 상주 시킨다는 말에 북리준이 그제야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너무 좋은 분위기에 술이 계속 돌고 마음껏 웃고 떠드는 중에 누군가 도문주의 방 앞에서 인기척을 내었다.

“누구냐?”

“주인어른, 도련님이 돌아오셨습니다요.”

“기룡이 놈이?”

점소이인 추삼이 더듬 거리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 오신 것이 아닌뎁쇼!”

< 50. 한칼 보태려고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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