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51화 (51/167)

< 51. 망나니 사형 >

더듬거리는 추삼의 말에 도경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대체 그 놈이 누구랑 왔길래 이리 더듬거리느냐? 아니, 얼굴이....”

문을 열고 나선 도경명이 코에 천을 틀어 막고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변한 추삼의 얼굴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 감히 내 식구에게 손을 대?”

도경명의 흥분된 어조에 일행들이 전부 방 문 앞으로 몰려 들었다.

“헤헤, 별로 많이 다치지는 않았습니다요.... 제가 곤륜에서 오신 고수분 앞에서 너무 까불었나 봅니다요.”

“이리로 들어와요!”

도교교가 추삼이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상처를 봐 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 보거라.”

독고우의 말에 추삼이 힘겹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약 한 시진 전 쯤 곤륜에서 오신 손님이 먼저 들어오셨습니다요.”

“어서옵셔, 혼자 오셨습니까?”

날카로운 하관에 뱁새눈의 뾰족한 인상의 사내가 객잔을 휘이 둘러 보더니 거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기룡이는 아직 도착 하지 않았군.”

“기룡... 아, 공자님의 지인이신가 보군요.”

“냉큼 최고 좌석으로 안내 하거라. 곧 네 놈의 주인이 올 것이니라.”

추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검을 들고 오만하게 객잔을 훑어보는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공자님이 제 주인분은 아니시구요. 최고 좌석은 이미 손님이 계십니다요. 기룡 공자님이 오실 때 까지 여기서 기다리십쇼!”

추삼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며 사내가 묘한 웃음을 지었다.

“네 놈의 주인이 오기 전에 개를 길들여 놓아야 겠구나. 어디 감히 주인의 지인에게 건방진 표정을 지어?”

‘퍼억 퍽 퍼어억’

순식간에 검집 채 휘두른 검에 얼굴을 두드려 맞은 추삼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커어헉, 컥.... 왜 저를 때리시는지요?”

“주인을 몰라 보는 개는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법이지.”

연이어 날아온 발에 복부와 얼굴을 두드려 맞고 신음하는 추삼의 목을 향해 발을 내지르려는 찰나 객잔 안으로 들어선 기룡이 급히 추삼의 앞을 막아섰다.

“육사형, 그만 하시지요!”

“오호, 이제야 왔는가? 난 벌써 도착 한 줄 알았지...”

속가제자 중 자신의 사형 중 하나인 금적방의 삼남인 육도평이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술 자리에서 술에 취해 한 이야기를 가지고 왜 이러시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도기룡이 속가제자들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 술에 취해 자신을 삼재검으로 이긴 놈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술 기운에 취해 자신의 누이가 미색이 출중하니 사형들 중에 복수를 해 주면 객잔에서 좋은 술과 누이를 소개해 주겠다고 한 말을 듣고 자신의 본가에 가기 전에 대신 복수를 해 주겠다고 쳐들어온 금적방의 망나니 육도평의 앞을 가로막은 도기룡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육사형! 술주정이었소이다. 소제가 잘못 했으니 술 한잔 하시고 본가로 돌아가셨으면 하오이다.”

“도사제! 곤륜의 속가제자가 어디서 두드려맞고 왔는데 사형된 도리로 어찌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온 김에 복수도 해 주고 그리 자랑하는 누이의 술 한잔 받고 가려 하니 너무 부담갖지 마시게.”

추삼이 자리에서 억지로 일어나 도기룡의 난처한 얼굴을 보고 불쑥 끼어들었다.

“저희 아가씨는 아무에게나 술을 따르는 분이 아닙니다.”

“하아.... 도사제! 객잔에 하인이 저리 주제를 모르고 나서는데 이 사형이 대신 계도해 주겠네.”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베어 물고 ‘스르릉’ 자신의 검을 뽑아드는 육도평을 보며 도기룡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추삼아! 아버지와 누이를 불러 오너라.”

“공자님....”

“어서!”

잘못하다 추삼이의 목이 달아날 것을 저어한 도기룡의 고함소리에 추삼이 주춤 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하아......이런 개 망나니 같은 새끼가....”

“아버지, 추삼이 이야기를 들어 보니 기룡이가 일부러 그 자를 데려온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어디 팔 것이 없어 누이의 미모를 팔아? 이 놈은 우리 천산파에 몸담을 자격이 없는 놈이다.”

도경명이 차가운 어조로 청상검을 집어 들자 독고우가 그 앞을 막아섰다.

“도문주, 금적방이라면 청해성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부를 이룬 상가 일세. 괜히 그런 곳의 자제를 해한다면 우리 천산파의 출발 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네.”

“독고놈 말이 맞네. 그냥 우리 손에서 잘 해결 할테니 도문주와 교교는 이 곳에 있게나.”

막대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묵룡도를 손에 들었다.

“잠깐만! 일단 아드님을 이리로 불러 일의 내막을 파악한 후 조치를 취하기로 하지요.”

북리준의 말에 도교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북리봉공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일단 일의 전후사정을 파악한 후 행동을 취하시지요.”

추삼이 도기룡을 부르러 간 동안 도경명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북리준이 채워 주는 잔으로 누르고 있는 사이 도기룡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개 망나니같은 놈이..... 어디서 굴러 먹던 놈이 식솔에게 손찌검을 하는데 가만히 있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네 누이의 미모를 팔아? 당장 이 집에서 꺼지거라!”

길길이 뛰는 도경명을 도교교가 겨우 진정 시키는 사이 북리준이 도기룡의 앞에 섰다.

“당신의 사형이라는 자와 곤륜에서 함께 출발 했소?”

도기룡이 죄책감에 절은 표정으로 힘없이 입을 열었다.

“술에 취해 술주정 한 것을 귀담아 들은 육사형이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본가로 가기 전에 객잔에 들러 복수를 해주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곤륜을 떠났습니다. 뒤늦게 편지를 발견하고는 부랴부랴 달려 온 것 입니다.”

“곤륜에서는 당신의 사형이라는 자가 이 곳으로 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속가제자 중 유난히 여색을 밝히는 육사형만이 몰래 이 곳으로 향한 듯 합니다.”

“야이, 썩어 뒤질놈아! 네 놈의 누이를 팔아서 곤륜의 직전 대제자가 되려는 것이냐? 어디서 식구를 팔아 먹어?”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곤륜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하나밖에 없는 누이를 팔겠습니까? 술이 과해 한 말실수를 이용하려는 놈이 제 사형일진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자신에게 욕을 퍼붓는 아버지를 향해 도발적인 눈을 빛내는 도기룡을 향해 북리준이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책임질 계획이오?”

“당신이 뭔데 남의 가정사에 끼어드는 것이오?”

“우리 가문의 은공이니라.”

도경명의 말에 도기룡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서, 설마....?”

“네 놈이 생각하는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당장 네놈을 우리 도가의 호적에서 파내 버리고 싶구나.”

도경명의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도기룡을 뒤로 물리고 북리준이 입을 열었다.

“저는 곧 떠날 몸입니다. 도문주님이나 도낭자가 나선다면 일이 꼬일 소지가 있으니 제게 맡겨주시지요.”

“북리봉공이?”

“기룡공자 앞장 서세요.”

북리준의 말에 도기룡이 머리를 흔들어 아득해지는 정신을 일깨우고는 조심스럽게 앞장을 섰다.

“정녕 조사님의 후인이 맞으신지요?”

“그렇소. 일단 벌어진 일이나 매듭짓고 이야기 합시다.”

이제나 저제나 도기룡의 누이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육도평의 눈에 기룡과 함께 내려오는 한 사내를 마뜩찮은 표정으로 쏘아 보았다.

“누군데?”

“저를 삼재검으로 제압한 사람입니다.”

“허어, 아주 묘자리를 제대로 골라 잡았구만. 그나저나 네 놈의 예쁜 누이 얼굴을 보고 싶구나.”

육도평이 음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계단 위에 눈길을 주자 북리준의 차가운 음성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나를 이기면 그때 볼 수 있다.”

“이런 시건방진 놈이.... 어디서 어줍잖은 무공 한 자락 배워온 모양이구나. 오냐, 네 놈의 팔하나와 다리 한짝을 잘라낸 후 그 때도 이리 오만한지 두고 보겠다.”

도기룡의 안내로 객잔 뒤편 공터에 도착한 육도평이 다짜고짜 검을 빼 들었다.

“목검으로 깝죽대다 목이 달아나지 말고 진검을 들거라.”

묵묵히 공터 한 켠에 있던 목검 하나를 들고 허공에 몇 번 휘두른 북리준이 목을 ‘뚜두둑’ 소리나게 풀었다.

“그만 짖고 덤비거라!”

“이런 개 같은 놈이 뭐? 그만 짖어? 오냐, 그 한마디에 내년 오늘이 네 놈의 제삿날이 된 줄 알거라.”

분기탱천한 육도평의 검이 허공을 헤집으며 북리준의 오른팔을 끊어내기 위해 날아 들었다.

‘퍼어억, 커억!’

기이한 보법으로 유령같이 사라진 북리준의 신형이 어느새 육도평의 뒤에서 왼쪽 어깨를 내려친 목검에 비틀거렸다.

“이이익...”

사정없이 내리쳐진 목검에 어깨가 부러진 것을 느끼며 땅을 박차고 검신합일의 기세로 북리준의 몸을 꿰뚫기 위해 날아들었다.

‘퍼버벅 퍼억’

한발을 뒤로 빼내어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흘려낸 북리준의 검이 사정없이 육도평의 전신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퍽 퍼퍼퍽 퍼버버버버퍽 퍼억’

“그, 그만... 커어억, 커허허허억”

옆에서 지켜보던 도기룡이 오한을 느낄 정도로 차가운 표정으로 쉬지 않고 목검을 휘두르는 북리준을 보며 몸서리를 쳤다.

‘저러다 죽는 거 아냐? 말려야 되는데....’

석상 마냥 굳은 얼굴로 무심하게 목검을 내리치는 북리준을 보며 도기룡이 섣불리 접근을 못하고 있었다.

“그, 그만.... 사려 줘.....”

‘퍼억 퍽 퍼어어억 퍼벅’

바닥에 널부러져 여기 저기에서 피가 솟구치며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로 시야가 흐려진 육도평이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제, 제가 자못, 자르못 해앴습니다. 그, 그만 사려, 사려 우세요....”

사정없이 내리쳐진 목검에 전신이 만산창이가 되어 가는 육도평의 앞을 도기룡이 힘겹게 막아섰다.

“그, 그만 하시지요.”

눈을 질끈 감고는 두 팔을 벌려 자신의 사형에게 떨어져 내리는 목검을 막아섰다.

‘으으으윽.....응?’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목검의 충격을 대비해 이를 꽉 깨물던 도기룡이 눈을 살며시 뜨니 자신의 머리 한 치 앞에 멈춘 목검이 눈에 들어왔다.

“비켜라. 이런 놈은 살려 두면 복수한답시고 깝칠 놈이니 여기서 때려 죽이는 것이 후환이 없다.”

“아, 아니니다. 저, 저대 보수 안 하니다....어어엉 크허어어엉”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와 코,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로 범벅이 된 육도평이 엎드린 채 두손을 싹싹 빌었다.

“그만 육사형을 놓아 주십시오.”

도기룡이 호랑이의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북리준의 앞에 후둘거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 잡고는 소리를 쳤다.

북리준이 목검을 들어 자신의 앞을 막아선 도기룡을 옆으로 밀어내고는 엎드려 고개를 처박고 빌고 있는 육도평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들어라!”

힘겹게 고개를 드는 육도평의 눈 앞에 살기를 온몸에서 뿜어내는 사내의 목검이 사정없이 내리꽂히는 모습에 비명성을 질러대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자신의 몸을 관통할 줄 알았던 목검이 자신의 눈 앞 땅에 검병만 남기고 꽂혀 있는 모습에 ‘히끅 히끅’ 딸꾹질을 시작했다.

“네 놈의 사제 덕에 살아 남은 줄 알거라. 만일 네 놈이 복수를 하고 싶다면 북경 황궁에 동창영반인 유공공에게 내 행방을 물어 보거라.”

단단한 맨땅에 꽂힌 목검을 보고는 긴장이 풀린 육도평이 눈이 뒤집어진 채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 51. 망나니 사형 > 끝

ⓒ 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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