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호군참령어사
황태자의 물음에 유공공과 곽대인이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입을 열었다.
“첫번째, 동창과 금의위 인원 차출은 문제 될 것이 없을 듯 합니다.
둘째, 무림세가에 협조를 요청 하는 것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왜구 창궐에 무림 문파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유공공의 말을 곽대인이 바로 이어 받았다.
“해남검단의 남해검문에서의 독립시키는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
솔직히 저희 첩보에 의하면 해남검단에 내려 가는 군자금의 대부분이 남해검문으로 흘러들어가고 남해검문이 왜구를 막는 시늉만 겨우 하며 검단을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황태자가 유공공과 곽대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북리준에게 시선을 던졌다.
“우리 목숨을 구해주고 청조의 골칫거리인 왜구 문제를 해결해 준다니 본좌는 더 이상 바랄 바가 없다.”
황태자가 준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유공공과 곽대인은 남해바다의 왜구 소탕을 위해 모든 협력을 아끼지 말기 바라오.”
“봉명하겠나이다.”
“마지막으로 황태자 전하께 부탁 드릴 일이 있사옵니다.”
유공공의 말에 곽대인이 숙였던 허리를 폈다.
“북리조장이 해남검단의 단주로 간다면 뭔가 그럴듯한 직책이 필요합니다. 동창과 금의위, 무림세가의 인물들을 통솔하기 위한 관직을 내려 주시옵소서.”
북리준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이야기 하는 유공공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유공공의 말이 옳습니다. 조정에서 왜구를 소탕하기 위한 특명을 수행하는 사람을 받쳐줄 품계와 관직이 당연히 필요 합니다.”
곽대인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지적하는 유공공의 혜안에 감탄하며 얼른 한발을 들이밀었다.
“두 분 대인의 고귀한 식견에 감사 드리오. 본 태자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해 주셔서 고맙소.”
황태자가 팔짱을 낀 채 잠시 생각에 잠기는 동안 세 명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지었다.
“황상께 아뢰어 북리조장을 정삼품 무직경관인 호군참령에 봉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북리준이 날 듯이 황태자 앞에 부복 하였다.
“허허, 유공공님과 내 바로 아래 품계일세. 대 청조 사상 초고속 승진일세 그려.”
곽대인이 허허로운 웃음으로 북리준의 관직 임명을 축하해 주었다.
“유공공은 나와 함께 바로 황상을 뵈러 갑시다. 이리 조정을 위해 헌신하려는 인재를 빨리 품의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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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호군참령에 봉해진 북리준이 품계서와 황상이 친히 하사한 공작 단안 화령을 단 관모를 받아든 북리준이 유공공과 곽대인의 배웅을 받으며 오문을 나섰다.
“해남검단을 독립된 부대로 운용한다는 어명이 전해지고 남해검문이 어명에 대한 답을 주는데 약 한달 정도 걸릴 것이다.
그 안에 동창과 금의위 소속 군관들을 만날 기회가 생길 것이네.”
유공공이 말을 마치고는 곽대인을 바라 보자 바로 말을 받아 이어갔다.
“참령어사가 요청한 군관들은 품계는 어사보다 낮으나 그들을 수족처럼 부리려면 무공으로 승복 시켜야 할 것이오.
유공공님과 나의 직접 명령을 받는 군관들이지만 마음으로 승복을 받아야 해남에 내려 가서 어려움이 없을 것이오.”
유공공과 곽대인의 진정어린 조언을 들은 북리준이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두 분 대인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참령어사! 자네와 우리의 품계는 하나 차이 밖에 나지 않으니 그렇게 낮은 자세를 취할 필요가 없다.”
유공공의 말에 북리준이 허리를 펴며 힘있는 목소리로 답을 했다.
“두 분 대인 외에 제 허리를 굽힐 관원은 앞으로 없을 것이옵니다.”
북리준의 말에 유공공과 곽대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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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품 무직경관 호군참령! 와우, 내 친구 중에 최고 직위다.”
북경제일루에 다시 만난 후기지수들과의 술자리에 하후상이 진심으로 축하를 건넸다.
“단순한 호군참령이 아니잖아? 황상이 직접 내려주신 단안화령을 받은 관원은 근 이십년래 처음이야. 아버지가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 하셨다고.”
모용민이 북리준의 옆 탁자에 놓인 공작단안화령이 달린 관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럼 한달 뒤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 되겠군.”
팽무강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남검단을 남해검문에서 온전히 떼어내 독립된 검단으로 운용을 시작할 때 너희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나 저나 도천학 보다는 북리준이 훨씬 어울린다.”
자신의 본명을 밝힌 북리준이 한결 가벼운 얼굴로 친우들을 바라 보았다.
“지난 번 이야기 했듯이 우리의 제일 목표는 남해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왜구의 토벌이다. 남해검문과의 개인적인 원한은 그 다음 일이니 너무 걱정 하지 말아라.
그리고 노파심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해남에 내려가게 되면 내 이름은 도천학이라는 것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그런 실수 할 놈은 한 놈 밖에 없는데 옆에서 재갈 물려 놓고 있을 테니 염려는 접어 놓으라고. 그나 저나 청하는 조금 그렇지 않나? 제갈가주님이 너를 호락 호락 보내주실 것 같지 않은데 말이야.”
언철진의 말에 팽무강을 비롯한 친우들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당연히 나 혼자는 안 보내시지. 이미 숙부님과 말을 다 맞춰놨어.”
“어, 그럼 철면신산 대협도 같이 오시는 건가?”
“도조장, 아니 북리조장....아, 북리어사인가? 어찌되었건 무조건 숙부도 한팔 거든다고 제갈세가 내에 엄포를 놓으셨거든.”
제갈청하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세가는 나하고 숙부님 둘만 파견 나갈 예정이야. 너희들은 어때?”
“우리 팽가는 나 포함 스무명의 일대 이대 제자가 함께 할 거야.”
“하후세가도 나 포함 스물!”
“모용가는 나 포함 열 다섯 이네.”
“언가도 나 포함 열 다섯으로 확정 났어.”
“황궁에서의 지원은?”
제갈청하가 북리준을 보며 질문을 던지자 다른 친우들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창의 경우 종오품직 집사 열, 정육품직에 군관 열, 금의위의 경우 종오품직의 부천호 열, 종육품직의 백호 열명을 파견해 주기로 했다.”
“와우, 이거 할만한데?”
하후상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으로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그런데 그 콧대 높은 동창과 금의위 군관들이 우리 어사님 말을 들을까?”
모용민의 말에 팽무강이 동조하는 듯 말을 이어 받았다.
“동창과 금의위 군관들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고 하더라. 유공공과 곽대인이 명을 내려도 순탄하게 이행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거야.”
“그렇지 않아도 유공공과 곽대인에게 언질을 받았어. 보름 후 동창과 금의위의 군관들과의 첫 대면식에서 확실한 위계를 세울려고.”
북리준이 말을 마치고 잔을 들었다.
“와우, 재미있겠다. 우리도 같이 가도 되나?”
모용민이 두 손을 비비면서 흥분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단 나와 그들사이의 위계를 제대로 세우려면 나중에 기회를 보는 것이 좋겠다.”
“큭큭큭, 우리 준이한테 그 콧대 높은 동창과 금의위의 군관들이 줄줄이 터지는 모습이 기대된다.”
평소에 고압적인 자세로 무림 후기지수들을 대하던 동창과 금의위 군관들을 고깝게 생각하던 제갈청하가 큭큭 거렸다.
“자, 이제부터 바빠질테니 오늘 까지 즐겁게 먹고 마시자.”
기꺼이 자신들의 친우가 되어준 후기지수들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북리준이 건배를 제의했다.
“해남검단의 무적질풍행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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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은 처음인가?”
연신 휘둥그래진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벽안독검 구백을 보며 섬전창 백리천이 웃음을 지었다.
“과연 황도가 다르긴 다르네요.”
“벽안독검은 정말 북경이 처음인가 보군. 북경은 말일세....”
허풍도 곡굉이 벽안독검을 붙들고 끝도 없는 설명을 시작하려 하자 옆에 서 있던 귀산자와 독안검이 진저리를 치며 섬전창 쪽으로 도망을 왔다.
“저 영감탱이 양기가 다 입으로 몰렸나? 어찌 저리 쉴 새 없이 떠들 수 있는지...”
커다란 철주판을 등에 맨 귀산자가 혀를 내둘렀다.
“저 치가 무공은 비록 떨어져도 초짜 낭인들 편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오. 도조장과는 조장과 부조장으로 합을 많이 맞추었다 들었소.”
북리준의 요청으로 낭인 다섯이 북경에 들어와 두런거리며 대로를 가로질러 저 앞에 보이는 북경제일루로 방향을 잡았다.
“어서오십시오. 혹시 다른 일행분들이 계시는 지요?”
“여기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네. 도천학이라고...”
“아이고, 어사님의 손님들이시군요. 이리로 저를 따라 오시지요.”
객잔 안으로 들어서니 일층이 사람들로 꽉차 만석이 된 것을 보고 곡굉이 혀를 찼다.
“자리가 없네. 자리 날 때 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하나?”
자신들을 안내하는 점소이가 거침없이 계단을 타고 이층, 삼층을 지나 사층에 다다르자 귀산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쟤가 우리를 다른 사람하고 착각 한 것 같은데? 여기는 기본 은자 열냥을 깔아야 올라 올 수 있는 곳이라고.”
귀산자의 말에 백리천이 앞장선 점소이를 불러 세웠다.
“이보게, 뭔가 착오가 있는 듯 한데 우리는 도천학이라는 사람을 찾아 왔다네.”
“알고 있습니다. 벌써 도어사님은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요.”
“자꾸 어사 어사 하는데 우리가 찾는 손님은 관인이 아니라네.”
섬전창의 말에 점소이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아닌데.... 일단 찾으시는 손님이 맞는지 확인만 해 주시지요.”
사층에 너른 공간에 육칠인용 탁자 네 개 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고급진 벽화와 자기, 장식들이 고풍스런 멋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여기, 어서들 오시지요!”
도조장이 북경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는 남측 창가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 도아우!”
허풍도가 날 듯이 반가운 얼굴로 북리준에게 뛰어갔다.
“맞네요. 저 분이 이번에 황상께서 직접 제수해 주신 호군참령어사님 되십니다요.”
점소이가 낮은 목소리로 섬전창에게 귀띔을 해 주었다.
“허허, 호군참령어사라....”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형, 무탈 하시지요?”
독안검이 반가운 얼굴로 북리준에게 포권을 했다.
“친구, 아주 출세했네. 신수가 훤하네 그려.”
벽안독검이 관복 차림의 친구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섬전창 대협, 오랜만입니다. 귀산자님도 별일 없으시지요?”
“우리야 도조장 덕분에 잘 먹고 잘 살고 있지요.”
귀산자가 말로만 들은 북경제일루의 사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리번 거렸다.
“축하합니다. 이번에 호군참령으로 제수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부득이 관인이 되었습니다. 여기 준비한 음식 좀 준비해 주게.”
칠인용 고급스런 탁자 위에 향기로운 냄새를 가득 품은 먹음직스런 음식들과 술병이 차례 차례 진설되어 졌다.
“일단 드시면서 말씀을 나누시지요.”
낭인 생활을 하면서 생전 한번도 보지 못했던 음식과 최고급 술을 게걸스럽게 먹던 곡굉의 귀에 북리준의 전음이 들려왔다.
‘형님, 제 본명은 형님만 알고 계십니다. 주의 부탁 드립니다.’
갑자기 음식을 입에 구겨 넣다 동그래진 눈으로 북리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허기를 메웠으니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로 하지요.”
북리준의 말에 일행들이 자신들의 잔을 채워 연신 비우기 시작했다.
“오늘 여러분을 이리 불러 모은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북리준이 자신이 남해바다에 창궐한 왜구에 의해 고아가 되고 해남검단에 들어 오년간 사투를 벌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일 등을 설명하며 금번에 해남검단을 휘하에 두고 왜구 토벌을 나서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도조장.. 아, 미안하오. 도어사님이 고생이 많았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그 정도 일 줄은 몰랐소.”
섬전창의 말에 어느새 북리준의 말에 빠져 들어 술잔을 손에 들고 마시지 못했던 낭인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기 계신 다섯 분을 제가 고용하려고 이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우리를?”
곡굉이 의아한 눈으로 일행들을 둘러 보았다.
“월 은자 이십냥의 녹봉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해남검단에 들어와 주시오. 숙식 제공과 그 외 특전은 참전하는 것이 확정되면 설명 드리겠소이다.”
그 때 곡굉이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말씀하시오, 형님!”
“나, 나는 말일세.... 여기 있는 다른 낭인들과 어울리기에는 무공이 너무 일천하네. 솔직히 이 자리에 나를 불러 준 것만도 감사할 따름이지. 내게 맞지 않는 옷을 권하지는 마시게.”
허풍도의 말에 귀산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냉혹하지만 허풍도의 말이 맞네....”
그때 북리준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형님은 여기 있는 분들과 다르게 꼭 필요한 분이시오.”